12화
김검천은 부전원실에서 쓰고 있는 마석으로 ‘파워드슈츠를 증폭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미리내가 다시 증폭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기에 실제로 행동으로 취하지는 않았다.
증폭시킨 마석이 평범한 돌멩이에 가깝게 된 건 김검천도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었고.
“파워드슈츠를 강화시키려면 마석이 꼭 필요하다니. 남은 에너지 팩으로는 안 될까?”
[에너지 팩은 폭발 위험이 있기에 기본 설계와 제조 단계부터 출력 제한이 걸려 있습니다.]
“파워드슈츠에 있는 무기로도 다음 차단문은 흠집 밖에 안 나더라. 문 너무 단단하잖아!”
[그것이 차단문이라서 그렇습니다.]
“레몬 하나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레몬 1개 분량이다 같은 말은 안 해도 알 거든?”
식사를 마무리 중인 세이야가 남은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서 천천히 질문을 던졌다.
“듣자하니 동력원인 에너지 팩이라는 게 뭔가요?”
“네 기준에서 말하자면 마석 같은 것이지. 그게 있어야 뭔가 사용할 수 있거든.”
“그러면 저 에너지 팩이라는 걸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말은 쉽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다른 건 몰라도 손재주만큼은 나도 별로니까.”
“혹시 저번에 파워드슈츠라는 게 마갑과 비슷하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마갑이라는 갑옷 말이지? 그건 그런데 왜 묻는 거야?”
김검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이야가 가슴을 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마갑을 만들 줄 아는 대장장이를 알고 있거든요. 이 숲 근방에 살고 있어서요.”
“알고 싶었던 정보였다. 그런데 그 자가 도움이 될까?”
“보통 대장장이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마나에 대한 지식도 제법 알고 있었거든요.”
“마나라면 일종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지? 마석은 마나의 응집체 같은 거고.”
“마석을 이용하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골렘 같은 것도 가능하고요.”
“골렘이라면 지구의 신화에서도 나오지. 찰흙으로 만들어진 생명이 없는 거대한 존재 말이야.”
“어디 신화인지 모르지만 비슷하네요. 골렘은 돌이나 금속,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마법 물체니까요. 마석에 의해 반영구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고요.”
“마법인가. 그래서 에너지 팩과 관련된 장비를 만드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거네.”
김검천의 눈동자가 활발히 움직였다.
“약간의 도움이 있다면 간단한 정비 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마석을 이용해 움직이는 걸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세이야.”
“예. 김검천 님.”
함장이라고 부르라는 건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중요한 게 아니니 김검천도 일단 넘어갔다.
“그 대장장이가 사는 곳이 어디지?”
“이곳으로부터 남동쪽, 그러니까 제가 살던 마을로부터 하루 정도 거리일 겁니다.”
“생각보다는 함선과 가까운데. 왜 그곳에 사는 것이지?”
“처음 그와 만났을 때 마을에 와서 살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알아서 살겠다고 하더군요.”
“거절한 건가. 내 생각이지만 마을에 가보고 말했을 것 같은데.”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세이야가 한숨을 쉬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때는 그자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나 보네.”
“마을에서의 일을 겪고 나니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는 생각으로 말이지요.”
“너무 침울해하지 마. 사람은 각자 가지고 있는 장점이 다르니까.”
“감사합니다. 전 아직 성인도 아직 안 되었으니 노력하면 나아지겠지요.”
김검천이 20세 초중반은 되어 보이는 세이야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직 성인이 아니었나? 아니, 여기 관습은 조금 다른 건가?”
“어디 관습을 말씀하신지 모르겠지만 전 아직 16세니까 내년에 성인이 됩니다.”
“네가 아직 16세라고?”
“헤헤. 제가 좀 성숙해 보였나요? 어른스러워 보인다니 기쁘네요.”
[10대로 보이는 30대와 20대로 보이는 10대라니.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군요.]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건 그런 말이 아니거든?”
약간의 소란 끝에 김검천과 세이야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떠나기 전 김검천은 아쉽지만 파워드슈츠에 검은색 수성페인트를 칠했다.
붉은 색은 눈에 너무 잘 뜨이는 것 같아서였다.
“검은색 도장도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약해진 기분이 드는데. 그래도 대장장이랑 싸우러 가는 건 아니니까.”
세이야는 길 안내를 해야해서 검은 몽둥이를 비롯한 짐은 김검천이 그냥 들고 가기로 했다.
원래 검은 몽둥이는 파워드슈츠의 장비도 다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놔두고 가려고 했다.
파워드슈츠의 근접전 장비 중에는 라이트 세이버(Light saber), 광선검도 있었으니까.
에너지를 집중해 빛의 칼날을 만들어 내는 광선검은 사용 시 에너지를 제법 많이 소모했다.
그렇기에 이제까지는 사용하지 못한 에너지 계 무기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초고온의 칼날은 강철 정도의 금속이라면 가볍게 자를 수 있을 정도로 쓸만하기도 했다.
김검천은 위력도 재확인할 겸 검은 몽둥이를 향해 광선검을 휘둘러보았다.
- 기잉.
“엇?”
가볍게 잘릴 거라는 김검천의 예상과는 달리 검은 몽둥이는 광선검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깊이의 흠집정도가 생겨났을 뿐이었다.
김검천은 예상보다 검은 몽둥이가 단단해 보이자 일단 챙겨가기로 했다.
대장장이에게 흥미로울 것 같은 소재인 만큼 영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함선 미르의 내부 차단문은 파워드슈츠의 광선검으로는 흠집도 생기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1일치 정도의 분량의 식량만 세이야에게 넘겨주었다.
나머지 짐이야 파워드슈츠로 들면 무겁지도 않았으니까.
세이야가 안내해줘서 그런지 대장장이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도 편했다.
밤이 되려고 하자 김검천이 나설 필요도 없이 세이야가 먼저 야영 할 곳을 찾기도 했고.
“오늘도 장작불이 되어버린 블러드트리가 고맙기 짝이 없는데?”
김검천이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시는데 세이야가 빈 페트병을 들고 망설이는 게 보였다.
“왜 그래?”
“식수는 다 먹었는데 물을 담은 통을 어떻게 할까 해서요.”
“그냥 버리면 되거든?”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한 물건을요? 이런 건 영지의 번화가에서도 못 보았는데요. 다시 쓸 수도 있겠고요.”
“그렇다고 계속 손에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하기 힘들지.”
“그래도 아까운데요.”
“그냥 버려도 썩는 친환경 재질이라서 상관없거든. 그래도 재활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강화플라스틱 재질이니 따로 쓸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 키잉.
김검천의 파워드슈츠 다리 부분이 열리며 빈 공간이 나타났다.
“거기다 버리면 되나요?”
“그래. 넣으면 그걸 압축해서 보관하지. 필요하면 비상시에 압축해 총탄같이 쓸 수도 있어.”
“일반 마갑은 신체 능력만 증폭시키는데...상급 마갑같이 추가 기능이 붙어 있군요.”
“자잘한 기능같은 것도 포함시킨다면 그런 느낌인가. 파워드슈츠를 안 벗고 1주일 내내 싸워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거든.”
“와, 갑옷을 입은 채로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요?”
“장착한 부위에는 노폐물을 처리하는 기능이 있거든. 사람의 급소 부분에 붙은 건 더 그렇고.”
“아하, 장기간 싸울 때는 함부로 갑옷을 벗을 수 없으니 그런 기능이 붙어 있는 거네요.”
“이해가 빠른데? 세이야, 그러고 보니 네게 할 말이 있어. 그건 네 동의가 필요하거든.”
“무엇이든지 명령만 내려 주세요!”
“아니, 명령이 아니라 네 뜻을 묻고 싶은 거야. 넌 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세이야는 김검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 평생토록 감사드리겠습니다!”
“바로 대답하면 내가 오히려 무섭거든? 잘 생각해봐. 내 사람이 된다는 건 보호받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책임을 져야해. 권리를 누리려면 나에 대한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상관없습니다. 거두어 주신다니 오래전부터 바라던 바입니다.”
“옛날부터라고? 언제부터?”
“김검천 님을 따라 나섰을 때부터 이미 각오는 되었습니다.”
“난 원래 군인이야. 앞으로 너에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릴 수도 있어. 그걸 따르지 않으면 좋은 말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고.”
“제 목숨도 걸 수 있는데 명령을 못 따를까요?”
김검천이 세이야를 바라보았다.
세이야는 김검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무섭다기보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세이야의 뜻을 확인한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를 찾아 무사히 돌아간다면 널 전함 미르의 승무원으로 삼을 예정이야. 그때부터는 각오해.”
***
대장장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느낀 건 괴물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은 동물형, 저 녀석은 식물형, 이건 심지어 이건 형체도 애매한 녀석이군.”
“슬라임같이 부정형 괴물은 타격 계에는 강하고요. 특정 속성에만 피해를 입기도 하지요.”
“별별 이상한 괴물들이 다 있네.”
여러 가지 괴물과 만나는 동안 김검천이 하나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우리를 습격하는 괴물 말고도 멀리서 지켜보는 괴물도 있는 거 같은데?”
“괴물도 괴물 나름일 테니까요.”
“사람을 잡아먹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게 괴물 아니었나? 지금까지 본 녀석들은 그랬는데.”
“맞습니다. 사실 사람을 안 먹으려 드는 괴물이 특이한 거지요.”
“어떤 종류의 괴물이 그런 건지 궁금한데.”
“예를 들자면 코폴드라는 게 있다더군요. 개라는 동물과 닮았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늑대 머리에 사람 모습을 한 웨어울프같은 종류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저도 흘려들은 정도라서 자세한 건 모르고요.”
“그런가. 그래서 우리들을 지켜만 보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김검천이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나무 사이로 뭔가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코폴드라는 게 보이는 거 같지 않아? 어젯밤 정도부터 말이지.”
“그렇군요. 코폴드라면 먹을 게 있는 이상은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사실이면 먼저 잡을 필요는 없겠네. 나라고 해서 괴물의 피에 굶주린 건 아니니까.”
“다만 이 시기라면 슬슬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 수도 있을 테니 방심할 수는 없고요.”
“뭐, 덤비는 괴물까지 용서해줄 정도로 성격이 좋지는 않지. 계속 이동해볼까?”
“예. 이제 대장장이가 있는 곳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네요.”
세이야가 앞장서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김검천은 가지고 있던 것 중 육포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는 코폴드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육포가 느닷없이 날아들자 코폴드가 흠칫하며 몸을 피했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돌아오는 게 육포가 위험한 게 아니라 먹을 거라고 알아낸 것 같았다.
김검천이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웃었다.
“개와 닮았다고 하니 집에서 키우던 댕댕이 녀석이 기억났단 말이지. 부모님과 함께 잘 있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나이가 들어 죽었으려나…”
***
얼마 후 대장장이의 거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의 거처라서 그런지 나무집이라지만 일부가 뼈나 금속으로 보강된 곳도 있었다.
나무가 베어진 공터의 한구석에는 흙으로 된 덮인 묘지 같은 것도 있었다.
세이야가 김검천에게 말했다.
“마을 사람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이런 곳에 사는 만큼 경계심이 많을 겁니다. 그러니 먼저 가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도록. 아무래도 안면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는 게 낫겠지. 그 전에 잠깐. 미리내. 집 주변에 함정 같은 거라도 있나 확인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