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함정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들어진 부하가 말했다.
“하지만 대장님. 집 주위에 덫이 숨겨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당한 것도 보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
“이 몸이 움직이라고 했으면 움직여야지.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거냐?”
사냥꾼 대장이 허리춤에 칼을 툭툭 쳤다.
말을 안 듣는 부하를 지금까지 몇 차례나 벤 칼이었다.
“알겠습니다! 움직인다고요!”
- 푸싱.
막 움직이려고 들던 부하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꼬부라졌다.
그의 머리에는 못 보던 화살이 박혀 있었다.
머리에서 그게 알아서 돋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 푸슝. 푸슝.
이어서 덫에 걸려 있던 다른 두 사람도 머리에 화살이 박히면서 절명했다.
집 안에서 밖을 살피며 활을 들어 보인 쿠퍼가 소리쳤다.
“인간 사냥꾼 놈들이냐? 꺼져라! 이곳은 네 놈들 영역이 아니야!”
사냥꾼 대장이 몸을 슬쩍 움직여 다른 부하의 뒤로 피한 뒤 소리쳤다.
“젠장, 손해가 막심하겠군. 대장장이 놈! 쿠퍼라고 했던가? 잡으면 네 놈으로 즐겨주마.”
“크, 피해를 더 늘리고 싶나?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뒤통수에 화살을 박아 넣지는 않으마!”
“부하를 3명이나 죽인 놈을 그냥 놓고 도망가라고? 웃기는 소리. 얘들아!”
사냥꾼 대장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부하들 중 3명이 나무에 가죽을 씌운 방패를 든 채로 앞으로 나섰다.
사람만 한 방패라서 그들의 모습은 발목 부근이나 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들 뒤로 다시 칼을 찬 3명이 기다란 창을 들고 뒤따랐다.
사냥꾼 대장이 남아 있는 부하 뒤에 서서 쿠퍼를 비웃었다.
“방금 전 몇 명 죽었다고 해서 물러설 거 같은가? 네 공격은 알고서 당할 만 한 건 아니라고!”
- 푸슝. 탁.
쿠퍼가 다가오는 인간 사냥꾼들을 향해 다시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화살은 들어 올린 가죽나무 방패에 막혀 아무 소용도 없었다.
- 찰칵.
지면에 숨겨져 있던 덫이 지면을 찌르는 창에 의해 별 의미 없이 작동되었다.
방패 뒤에서 안전하게 전진하던 사람이 창을 내지른 것이다.
창날이나 창대가 좀 부러지긴 했어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사냥꾼 대장의 말대로 쿠퍼의 공격은 이제 생존을 위한 약자의 몸부림에 불과한 듯 싶었다.
그렇게 6명이 손만 내밀면 닿을 정도로 쿠퍼의 집에 다가섰다.
그중 2명이 여전히 방패를 든 채 문 앞으로 다가서며 창을 든 뒷사람에게 눈짓을 했다
창을 든 사람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려는 참이었다.
- 쾅!
“꾸엑!”
문을 열려던 사람은 문과 함께 가슴이 박살 난 상태로 1미터는 뒤로 날아갔다.
방패를 들고 있던 사람은 겨우 막아내긴 했지만 충격으로 인해 팔이 떨리고 있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사람 상체만 한 금속 망치 2개였다.
그 망치를 들고 있는 건 쿠퍼였고.
평상시라면 무기나 장비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용도로 보이는 무식하게 생긴 망치였다.
지금은 그걸로 사람을 때려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이놈들! 화살 공격이나 덫 같은 게 이 쿠퍼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느냐?”
쿠퍼는 양손으로 금속 망치를 들고 눈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을 두들겼다.
- 뿌드득.
“악!”
방패는 너덜너덜해졌지만 금속 망치의 일격을 어떻게든 버텨내긴 했다.
들고 있던 사람의 양팔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방패를 떨어뜨리자 이번에는 망치가 방패 주인의 머리를 향하였다.
- 퍼석.
잘 익은 수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으깨진 사람이 바닥을 뒹굴었다.
“이제 남은 놈은 일곱 마리뿐이군! 우선 눈앞의 네 마리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쿠퍼가 눈을 부릅뜬 채 2개의 금속 망치를 휘둘렀다.
가죽 입힌 나무 방패도 박살 나려는 판국에 사람의 몸으로 그 공격을 버틸 리가 없었다.
마나라도 사용한다면 모를까.
평범한 인간 사냥꾼이 중급 기사 이상부터나 가능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퍼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한 사람이 사람 키보다도 높이 공중을 날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허공을 날 수 있었다면 축하할 일이었겠지만 불행히도 아니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그 광경에 혼이라도 나갔는지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람이 난다요!”
지켜보던 사냥꾼 대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트롤…. 아니, 오우거 같은 놈을 보았나!”
옆에 있던 부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트롤이고 오우거고 저희 다 망한 것 같습니다요…”
“망하긴 뭐가 망해?”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기라는 말입니까? 저 정도로 무식하게 강하다는 건 못 들었잖습니까?”
“바보 자식! 그럴 때는 머리를 써야지! 달려 있는 건 장식이냐?”
“예? 제 머리보다는 저 쇠망치가 더 센데요?”
사냥꾼 대장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무식한 녀석이 부리기 쉬워서 데리고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이걸 부하라고…저놈은 딸이 있다고 들었다.”
“아, 저놈이 저렇게 나오는 건 딸을 지키기 위해 미쳐 날뛰는 거군요. 그런 딸이 인질이라면…”
“이제 머리가 돌아가나? 저놈의 딸은 집 안에 숨어있을 거다. 혼란한 틈을 타서 찾아보자.”
“과연 대장님이시군요. 역시 나쁜 일에는 도가 텄습니다요.”
“이 새끼가? 제법 사람을 볼 줄 아는군.”
부하가 한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혼을 내더라도 이게 끝난 후의 일이었다.
사냥꾼 대장은 부하 두 명을 앞세운 채 조심스럽게 집 뒤로 숨어 들어갔다.
쿠퍼는 그런 그들의 행동을 볼 수가 없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적부터 해치워야 했으니까.
춤추던 쇠망치의 활약으로 남은 세 명의 머리와 가슴, 팔다리가 부러졌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휘둘러지는 쿠퍼의 쇠망치에 은은한 푸른빛이 어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쿠퍼의 덕에 전신의 뼈 수가 2배로 늘어난 자들은 꿈틀거리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제서야 쿠퍼가 고개를 돌려남은 자들을 찾았다.
“이제 세 마리 남았군! 음?”
아까 전만 해도 사냥꾼 대장과 부하 두 명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쿠퍼가 집을 향해 급히 몸을 돌리는 참이었다.
집 뒤로부터 사냥꾼 대장이 부하 한 명과 함께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될 사람과 함께였다.
쿠퍼의 딸, 리에가 사냥꾼 대장의 팔에 잡혀 나온 것이다.
사냥꾼 대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쿠퍼에게 말했다.
“쿠퍼, 어서 오고. 부녀가 이렇게 안 닮아서야 아빠가 섭섭하겠어. 딸은 이렇게 귀여운데.”
사냥꾼 대장의 팔뚝에 목이 조여들고 있던 리에가 울먹거렸다.
“아빠! 으아앙!”
쿠퍼가 이마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흥분했다.
“리에? 이 자식들이! 감히 누구를 건드려?”
쿠퍼가 쇠망치를 번쩍 들며 다가서려고 하자 사냥꾼 대장이 급히 말했다.
“흐흐흐. 처신 잘하라고. 쿠퍼. 이 아이의 목은 막 태어난 아기 동물 같이 연약하다고?”
부하가 소리 죽여 말했다.
“대장님, 대장장이의 딸은 특히 잘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의뢰를 승낙했고요.”
“뭐래. 그건 대장장이가 저렇게 강한지 몰랐을 때 이야기지. 우리가 죽는 것보다야 낫잖아.”
“그건 그러네요. 일단 우리가 살고 봐야 볼 일이지요.”
리에가 이런 상황에서도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쿠퍼를 불렀다.
“아빠!”
“리에야! 저기, 네 놈도 사내자식이라면 당당하게 붙어보자!”
“비겁하게 정면에서 싸우자니. 정정당당하게 이렇게 협박과 위협으로 승부해야지. 애초에 그냥 너와 싸워서 이길 거 같으면 인질을 잡을 필요가 있겠냐. 안 그래?”
부하가 사냥꾼 대장의 눈치를 보며 한쪽을 가리켰다.
“맞습니다. 맞고요. 대장님. 이제 쿠퍼 일은 대충 처리된 거 같은데 저 녀석은 어떻게 합니까?”
사냥꾼 대장이 그쪽을 슬쩍 보니 나머지 부하 한 명이 덫에 걸려서 신음 중이었다.
집 뒤로 함정이 남아있을까 봐 이번에도 앞세웠던 부하 한 명이 남아 있던 덫에 걸린 것이었다.
창으로 확인할 여유가 없어서 인간으로 함정 감지를 시도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으으으. 대장님. 아픕니다. 아픕니다요.”
“더 못 참겠냐? 슬슬 일이 끝나 가는데.”
“대장님도 덫에 한 번 걸려 보시지요. 진짜 아프다고요!”
“아, 그래? 그러면 대장이 불쌍한 부하를 위해 자비를 안 베풀 수 없겠지.”
그는 리에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맡긴 후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하를 향해 단검을 들어 올렸다.
다리가 덫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던 부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 슈슈슉슈슉.
“…이 나쁜 놈아.”
가슴 깊이 단검이 박힌 부하는 그 말을 끝으로 눕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고 죽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부하를 시체로 만든 사냥꾼 대장이 히죽 웃었다.
“너도 나쁜 놈이잖아? 이 세계가 그렇지 뭐. 고통을 못 느끼게 해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지.”
쿠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사냥꾼 대장이 말했다.
“잘 보았지? 이 귀여운 아가씨도 네가 하는 바에 따라서 저렇게 될 수도 있다고.”
“…도대체 뭘 바라는 거냐?”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야. 이런 피해가 날 지는 몰랐거든.”
옆에 있던 부하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고작해야 대장장이 한 놈을 잡는데 이게 뭡니까? 다 죽었네요.”
“그러게. 우리가 받은 의뢰는 기사를 잡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니, 그보다도 더한 피해야.”
사냥꾼 대장이 한숨을 쉬었다.
부하 3명을 잡아둔 함정은 둘째치고서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부하 7명이 죽었다.
그것도 부하 4명은 근접전에서 제대로 손도 못 쓰고 당했다.
기사를 상대한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상급 기사라면 또 모를까.
그때 쿠퍼의 행동이 이상한 걸 본 사냥꾼 대장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이놈이?”
어느새 다가온 건지 그와 별로 안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던 세이야가 어색하게 웃었다.
리에 와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고.
“헤헤. 이거 들켰네요.”
쿠퍼와 대화한다고 정신이 딴 곳에 쏠린 사이에 리에를 빼돌리려고 한 모양이었다.
사냥꾼 대장이 인상을 썼다.
“쿠퍼 말고도 일행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이놈인가? 뭘 믿고 우리들에게 다가선 거지?”
- 퍼억!
“커헉… 대장님… 살려….”
“헉!”
몸이 관통당한 채로 집까지 날아가 꽂힌 부하를 본 사냥꾼 대장이 흠칫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 몽둥이가 만들어 낸 일이었다.
리에가 사냥꾼 대장의 손에서 풀려나자 그 사이 세이야가 급히 그녀를 낚아채 도망쳤다.
사냥꾼 대장은 막으려고 들었지만 경직된 몸이 마음을 따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김검천이 걸어 나와 그를 향해서였다.
“세이야는 날 믿고 행동한 거다. 거기에 불만이 있다면 내가 직접 상담해주지.”
사냥꾼 대장의 시선이 김검천에게 머무르다가 자신의 부하에 잠시 머물렀다.
검은 몽둥이에 박혀 집의 장식물이 되어버렸기에 부하가 부하였던 것이 되었지만.
사냥꾼 대장은 김검천에게 덤벼들지는 못하고 입만 놀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김검천이 사냥꾼 대장에게 다가서며 피식 웃었다.
“네 놈들이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착하게 지내온 건 아니잖아?”
“이럴 수는 없어!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사람이 사람 같아야 사람대접을 받지. 난 적에게 자비를 베풀 정도로 착하지도 않고.”
“적이라고?”
“난 쿠퍼 씨에게 볼 일이 있었거든. 그 일을 방해하는 네 녀석들은 적인 것이지.”
“그러면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겠다. 그냥 살려만 다오! 뭐든지 할 테니까!”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는 사냥꾼 대장의 눈이 영활하게 움직였다.
그의 손이 등 뒤를 향해 움직이는 게 김검천의 시선에 잡혔다.
사냥꾼 대장이 등 뒤에서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를 꺼내 들어 올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공격 마법을 담은 양피지를 사용하려는 순간까지도 김검천이 가만히 서 있어서였다.
김검천은 마법 스크롤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사냥꾼 대장이 마법 스크롤을 찢으며 외쳤다.
“작열하라. 불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