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크학!”
쿠퍼의 망치를 맞고도 움직이던 거한이 살짝 베인 상처에 비명을 질렀다.
키가 작은 간부가 어느새 뽑아 든 단검을 손가락 사이로 든 채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쿠퍼는 섬뜩한 느낌에 망치로 몸을 보호하는 데 신경 썼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망치 하나를 키 작은 간부를 향해 집어 던졌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단검을 던지려던 간부가 혀를 차며 일단 자리를 피했다.
땅바닥을 굴러 날아든 단검을 겨우 피한 쿠퍼가 일어나 다시 망치를 들다가 거한을 보았다.
평범했던 거한의 피부는 괴물이 그것처럼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아까 녹색으로 번들거리던 단검으로부터 베인 상처로부터 색이 번지고 있었다.
단순히 피부색만 변한 게 아니었다.
땅바닥을 뒹굴던 거한은 자신의 몸을 마구 긁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려줘! 가려워! 가렵다고! 아프다고!”
그 모습을 본 쿠퍼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뼈가 부러져도 신음만 내던 녀석이 긁힌 상처로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독 무기인가?”
쿠퍼가 경계하는 모습을 본 간부가 이를 드러냈다.
“어때냐? 맹독 단검의 맛이? 특별히 만들어진 녀석이야. 이걸 맞으면 누구라도 가버리지.”
“같은 편이 아니었나? 그것도 상당한 지위의 녀석 같던데.”
“동료? 덩치만 큰 머저리는 고작해야 저 정도 쓰임새밖에 없지. 방패막이도 제대로 안 되다니 한심할 따름이야. 그런데도 힘 좀 쓴다며 이 몸과 같은 간부라고 으스대는 게 웃겨.”
“그래도 저 녀석은 나쁜 놈이라도 자기 부하가 쓰러진 걸 보고 화라도 냈는데 네 놈은…”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한 것뿐이다. 지금 와서 동정심이라도 생긴 거냐?”
“과연 인간 사냥꾼 놈들 중에서는 멀쩡한 녀석이 하나도 없군.”
쿠퍼가 해머를 들어 올려 간부를 겨누었다.
간부도 그에 맞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양 손가락 사이에는 8자루의 맹독 단검의 뾰족한 끝이 빛나고 있었다.
쿠퍼는 그 모습을 보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기습이라고 쳐도 아까 전 단 2자루의 맹독 단검만으로도 당할 뻔 한 쿠퍼였다.
지금은 무려 8자루의 맹독 단검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그때 김검천이 쿠퍼의 어깨를 잡았다.
“쿠퍼, 물러나라.”
“예? 저는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아직 두목이라는 녀석도 안 나섰고요.”
“맨 몸으로 독 단검에 스치기라도 하면 위험하다는 건 자신이 더 잘 알 테지?”
“그래도 저런 녀석의 머리 정도는 으깰 수는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다만 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리에의 약초는 어떻게 찾지?”
“그… 그건.”
“거기다 난 너 같은 덩치를 짊어지고 함선으로 돌아가는 일 같은 건 정말 싫거든. 그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저 녀석과 싸울 이유가 있나?”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지요.”
“대신 내 등 뒤를 부탁하지. 인간 사냥꾼 녀석들이 다시 포위망을 짜는 모양이거든.”
“물론입니다! 김검천님! 저 정도는 맡겨만 주십시오.”
쿠퍼가 김검천의 말에 기운차게 대답하며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퍼는 아직 눈치를 못 챈 상태였고.
“그런 공격은 사람을 보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그러면 실례야.”
김검천이 쿠퍼 앞에 나서며 급히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손을 휘두른다 싶더니 주먹을 쥐었다.
다시 김검천이 손을 폈을 때는 녹색 단검이 손바닥 위에 뭉쳐져 금속 공처럼 보였다.
다시 기습 공격을 시도한 간부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힘은 좋구나. 하지만 그런 힘자랑은 다른 사람 앞에서나 해야지.”
“독 단검을 잡은 것 가지고 그러는가? 그걸 아는데도 맨손으로 잡을 리가 있나.”
김검천이 파워드슈츠를 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간부가 히쭉 웃었다.
“상관없다. 쇠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은 움직여야 하니 장갑에 틈이 나 있으니까.”
“관절 부분에 존재하는 연결 부위를 말하는가 보군. 그래서?”
“이 독은 그런 정도의 틈이라도 있다면 그곳으로 독기가 침투해 널 중독 시킨다는 것이지.”
“특별히 만들어졌다는 게 그 말이었나.”
“그렇다. 괜히 특제라는 말이 붙는 게 아니지. 그러니 네 녀석도 괴로워하며 죽어가라!”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그 특제 독의 효력은 이렇게까지 늦게 발동하는 거였나?”
“직접 접촉하지는 않았으니 시간이 더 걸리는 걸테지. 그런 만큼 더욱 고통스러울 거다.”
“천천히 고통받으며 죽어간다는 건가. 그거 기대가 크군. 확인해 볼까? 미리내.”
[예. 김검천 함장님. 건강 상태 체크 완료. 바이탈 신호 양호. 중독된 부위는 없습니다.]
김검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손을 뻗었을 때 만약을 대비해 손 주위로만 실드를 생성했던 것이 잘 먹혀들어 간 모양이었다.
원래는 파워드슈츠의 전면에만 생성되는 게 장비된 실드의 기능이었다.
그렇지만 김검천 정도 실력자라면 자유롭게 실드의 크기와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파워드슈츠에 공급되는 에너지는 충분해야 한다는 조건은 붙었다.
김검천의 멀쩡한 모습에 간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어떤 적이라도 이 독이라면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너진 것이다.
단검에 발린 독은 그에게 있어서 존재 의의였기 때문이었다.
“네 녀석. 어떻게 아직도 멀쩡한 거지?”
“그거야 네가 자랑하는 특제 독이라는 건 쓸모없는 장난감에 불과해서 그런 것 같은데.”
“닥쳐!”
“그러고 보니 그 특제 독이라는 게 강적을 만나면 정말 쓸모가 있기는 했던 건가?”
“다… 닥쳐라!”
“차라리 그 독을 버리고 단검 던지는 데 열중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았을 텐데 슬프군. 단검에 바른 독이 그동안 너에게 대단하다고 말이라도 걸어주던가?”
“닥쳐! 닥치라고!”
닥치라는 말을 내뱉던 간부가 양손을 떨치며 단번에 8자루의 독단검을 날렸다.
말이 막힌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가 가진 최후의 기술인 것 같았는데 뻔히 보이는 공격은 김검천에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김검천은 두 손을 이용해 머리 방향으로 날아오던 독단검을 모두 낚아챘다.
마지막 8개째 독단검을 손안에 잡아채며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독단검 2개가 김검천의 눈앞에 불쑥 튀어나왔다.
사실 간부가 던진 독단검은 10자루였던 것이다.
독단검을 모두 낚아채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마지막 2자루는 김검천의 눈높이에 맞춰 던졌기에 다른 독단검에 가려 안 보인 것이었다.
간부가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갑옷에 막히더라도 박힌 틈 사이를 타고 중독이 되어버릴 것이야!”
김검천은 대꾸할 틈도 없었기에 속으로 미리내를 불렀다.
‘미리내. 실드 각도 변경. 단검은 튕겨낸다.’
[계산 완료. 성공확률 95%입니다.]
김검천은 만약을 대비해 가슴 장갑 부위로 실드를 집중시킨 후 경사지도록 만들었다.
단순히 막는 걸 떠나 자신의 위기를 공격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 팅.
김검천의 가슴까지 도달했던 독단검은 간부를 향해 도로 튕겼다.
날아든 독단검에 간부가 땅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목격한 김검천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깜짝 선물 고맙군. 그런데 나도 그런 선물에는 자신 있단 말이지. 총탄 철갑형. 암건 발동.”
김검천이 팔을 들자 침 모양의 총구가 튀어나오며 독단검을 향해 총탄이 발사되었다.
겨우 지면에서 일어서던 간부는 김검천이 팔을 들자 이상한 예감이 든 모양이었다.
“젠장, 젠장할!”
이미 한번 땅바닥을 굴렀으니 두 번 못 구를 것도 없었다.
간부는 땅바닥을 향해 잠수라도 하듯 힘껏 뛰어들었다.
목표를 잃은 총탄은 화풀이라도 하듯이 간부 주변으로 쏟아져 내렸고.
“으아악!”
“켁? 이게 뭐야?”
“뭐에 당한 거냐. 살려줘!”
금속 총알에 눈은커녕 인정도 있을리 없었다.
간부 덕분에 그의 근처에 서 있던 인간 사냥꾼들이 빗나간 총탄에 맞게 되었다.
철갑형은 물건을 관통하는 특성이 있기에 총알 한 발로 두 명씩 당하기도 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 세례에 얼굴에 문양이 있던 간부까지도 덩달아 휩쓸렸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수백 발은 발사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겨우 살아남은 인간 사냥꾼들이 두려움에 떨며 전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저게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망가자. 도망가야 해!”
“어딜 도망가? 우리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그치만… 네가 덤비려고? 저런 무서운 녀석에게?”
방금 전 공격으로 앞에 있던 적들은 모두 쓸려나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간 사냥꾼 인원의 절반정도가 날아갔으니 포위망은 이미 절단난 셈이었고.
쿠퍼가 놀란 얼굴로 김검천에게 다가왔다.
“김검천님. 그게 도대체 뭡니까?”
“쿠퍼는 처음 보는 것이겠군. 이건 총이라고 원거리 공격을 하는 무기지.”
“정말 대단한 병기로군요. 제가 쓰는 활은 비교가 안 됩니다. 마나를 사용한 건가요?”
“마나 같은 건 하나도 안 들어간다. 제조법을 알려주면 화약을 이용한 간단한 구조의 총 정도는 시간만 있다면 너도 만들 수 있을 거다.”
“헉! 그러면 저한테도 그 지식이라는 걸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세이야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손해 보았다고 말할 정도로 지식을 주입해 줄 수도 있겠지. 하는 걸 지켜보고 나중에 가봐야 할 일이겠지만…. 음?”
“왜 그러십니까?”
“쿠퍼. 역시 저 녀석은 제법 강한 것 같다.”
“저 녀석이라면… 엇?”
무수한 탄환의 세례에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얼굴에 이상한 문양을 새긴 간부가 아직 살아남았던 것이다.
총알을 직격했는데도 멀쩡한 모습이라니.
그가 두르고 있던 가죽 망토가 걸레처럼 변한 모습만이 총알 세례를 받았다는 증거였다.
두목이 구멍이 난 망토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쓸 만한 놈들이라고는 한 놈도 없군. 어차피 이 몸이 즐기러 나선 길이긴 했지만.”
땅바닥을 마구 굴러서 김검천의 공격을 겨우 피한 독단검의 간부가 입을 열었다.
“저런 놈을 상대로 두목님께서 직접 나서신다니요? 잠시만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시 한번…”
“흥. 아직도 살아 있었군. 쓰레기가. 목숨은 질겨서 말이야.”
두목이 간부의 허리를 힘껏 짓밟았다.
- 우두둑.
“끼헤엑? 두목? 두목!”
허리뼈가 나가는 오싹한 소리와 함께 간부가 죽어라 비명을 질렀다.
보통 사람은 물건을 다뤄도 그보다는 더 조심스럽게 다룰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간 사냥꾼들의 간부에다가 두목이로군. 서로 아주 잘 어울리는걸.”
김검천의 여유로운 모습에 간부를 짓밟던 두목이 발을 내려놓았다.
겨우 풀려난 간부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감사하다고 입을 열려고 했다.
두목이 발을 뒤로 들어 올리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었다.
김검천이 바위를 찼던 광경을 떠올린 간부는 잠시 후 벌어질 끔찍한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 퍽!
기대한 대로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간부가 나무 몇 개를 부수며 숲 너머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아직 남아 있던 인간 사냥꾼 부하들이 떨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김검천은 두목이 평상시에 부하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인간 사냥꾼이라는 자들이 두목에게 보이고 있는 감정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건 공포였다.
공포는 단순히 겁만 준다고 생겨나는 것은 아니었다.
두목에게 압도적인 무력이 있기에 흉포한 인간 사냥꾼들이 공포로 꼼짝 못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