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주술사의 말에 주변에서 모여들었던 인간 사냥꾼들이 웅성거렸다.
“김검천?”
“그건 누구야? 그보다 두목님마저 돌아가셨다니요!”
“두목 말고도 간부 3명이 포함된 5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었는데 다 당했다고?”
“그 정도면 이 근방 영지를 침략해도 될 정도인데 그 인원 전부 다 죽었다니!”
“더군다나 두목은 상급 기사 정도의 실력자였다고. 간부들도 중급 기사 정도는 되었는데…”
“정말 다 죽은 게 맞아? 김검천이라는 녀석은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냐고? ”
혼란에 빠진 인간 사냥꾼들을 바라보며 주술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조용! 지금부터는 이 몸이 너희들을 관리하겠다. 다 죽었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야.”
우습게도 주술사가 본거지에 남아있는 인간 사냥꾼들 중에서는 가장 계급이 높았다.
두목이 본거지에 있던 쓸 만한 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간 탓이었다.
그렇기에 버려지기 직전에 있던 주술사가 이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인 인간 사냥꾼들 중에서는 주술사가 나대는 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었다.
실력은 있지만 두목이 출발한 이후에 본거지로 복귀했기에 남아있던 자였다.
그는 본거지에서 주술사 다음으로 계급이 높으며 힘도 강한 인간 사냥꾼이었다.
두목에게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차기 간부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기도 했고.
“웃기는 소리. 주술사 너 말이야, 임무에 실패해서 두목에게 처분당하기 직전 아니었나?”
“뭐?”
“그래서 실력자들은 모두 나가는데 너 혼자 본거지나 지키라고 남아있게 된 것이었고.”
“이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주술사가 뭐라고 말을 이으려고 들자 덩치 큰 인간 사냥꾼이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기습 공격을 주술이 특기인 주술사가 막을 리 없었다.
“너 같은 퇴물은 여기에 필요 없다는 거지. 죽기 싫으면 꺼지거나 이 몸에게 굴복해라.”
“웃기지 마라! 두목과 간부가 다 죽었다면 이 몸이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이야!”
“그러면 너도 죽으면 되겠군!”
주술사의 목숨이 다시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건물 안 어둠 속으로부터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한심하군. 이 정도의 조직도 관리를 못 하고 이런 소란이 일어나는 걸 방치하다니. 그러니 인간 사냥꾼 따위에게 일을 맡기는 게 아니라고 말했거늘.”
“헤헤. 그 말씀이 맞습니다요. 죄송합니다. 미천한 것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항상 그렇지요.”
인간 사냥꾼들이 흠칫 놀랐다.
그들이 출현한 방향은 두목의 거처 쪽이라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자들이 나타날 때까지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상황을 지켜본 주술사만이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날카로운 눈과 단련된 몸을 지닌 마갑 착용자는 가만히 있어도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살찐 체구에 최고급 비단 의복에 무려 10개의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마갑을 장착했기에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인간 사냥꾼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재는 누가 책임자지? 앞으로 나오도록.”
주술사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린 인간 사냥꾼이 그에게 무례하게 대꾸했다.
“일단 이게 책임자이긴 하지. 곧 아니게 될 테지만. 그런데 넌 뭐길래 그따위 말투냐?”
“고맙군. 본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목이 붙잡힌 저 녀석뿐이라는 걸 유언으로 남기다니.”
- 스윽. 달칵.
푸른 검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마갑을 착용한 자가 바로 검 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인간 사냥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갑 착용한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 사냥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자신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 자식이 무슨 헛소리를… 컥?”
그 말에 발끈해서 발을 뗀 인간 사냥꾼이 목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목이? 헉!”
“으아악!”
- 쿵, 쿵, 쿵.
모여 있던 인간 사냥꾼들이 각자 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하나씩 땅에 코를 처박기 시작했다.
간부가 될 몸이라고 실력을 뽐내던 자도 예외는 아니었고.
검이 휘둘러지는 걸 누구도 보지 못했는데도 주술사만 남기고 모두 죽은 것이다.
겨우 풀려난 주술사가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면서도 슬쩍 두 사람을 살폈다.
자기 생명이 달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쿨럭. 커헉!”
뚱뚱한 체구의 사람은 주술사도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 근방 변두리 영지의 영주 중 한 명이었으니까.
두목에게 가끔 의뢰를 하러 온 영주의 얼굴을 목격한 적이 있던 것이다.
그의 탐욕스러운 성미는 주술사도 아는 편이기에 대처하기가 쉬운 상대였다.
그저 돈이든 인간이든 원하는 탐욕만 채워주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정체를 모른다는 건 그에 대한 대처법이 없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렇기에 주술사는 우선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반항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들어 보았자 지금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미래가 예상되었으니까.
설사 다른 인간 사냥꾼들이 저들을 죽인다고 해도 자신이 죽으면 결국 손해였다.
주술사는 땅에 코를 박은 채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영주님의 존안은 익히 듣고 보아 알고 있지만 다른 한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영주가 주술사의 말에 잘난 척하며 나섰다.
“마갑을 입었으니 기사일 테고 기사인 걸 알았다면 이분을 몰라봐? 하긴 미천한 놈들이 뭘 알겠냐.”
“예, 예. 미천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저분은 누구십니까?”
“잠깐만, 영주…”
기사가 말을 못 하게 막으려고 하는데 영주가 눈치도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분이 바로 마스터 나이트이자 왕국 최강의 기사, 테이룬 경이시다!”
주술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마스터 나이트라면 마나의 극에 달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기사! 오러를 쓴다는!”
“그렇다. 벌레 같은 너 같은 녀석에게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만 해도 황송한 분이시지.”
주술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눈앞의 기사가 공식적으로 왕국 최강이라고 알려진 마스터 나이트인 테이룬이라니.
상급 기사보다는 적지만 마스터 급 기사는 그래도 가끔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륙에서 마스터 나이트의 칭호를 받은 자들은 모두 합쳐도 20명을 넘지 않았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마스터 나이트는 왕이라도 해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거물이었다.
설사 제국의 황제라고 해도 존중해 주는 게 마스터 나이트였고.
혼자서도 수천 명이 격돌하는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마스터 나이트였으니까.
그런 대단한 인물이 왜 이런 변두리 영지에 있는 인간 사냥꾼 본거지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주술사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런 누추한 분이 이런 귀한 곳에 나타나다니?”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잘못 나온 주술사였다.
헛소리를 들은 영주가 눈을 부릅떴다.
“이 미천한 놈이 미쳤나?”
“살려만 주십시오! 헉!”
테이룬과 주술사의 눈이 마주쳤다.
주술사는 테이룬의 시선을 받게 되자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나의 극에 달하면 보기만 해도 사람을 억누를 수 있다고 하는 소문이 맞는 것 같았다.
테이룬은 두목이 죽었기에 일을 다시 맡을 자가 필요한 참이었다.
어차피 영주 때문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났다면 그걸 이용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이런 자에게 일을 맡기려면 말이다.
주술사를 바라보던 테이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이 마스터 나이트라는 게 믿기지 않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
“하긴 그런 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지.”
- 스릉.
테이룬이 검을 뽑아 들고 주술사에게 다가섰다.
주술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렀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잘못 내뱉은 말 때문에 죽게 되다니.
영주는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듯이 웃으며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주술사는 다가오는 검을 보고서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목에 차가운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뜬 주술사는 테이룬이 자신을 지나쳐 근처의 건물 기둥에 다가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건 4층짜리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 몸통만큼 두껍게 만들어진 강철 지지대였다.
- 고오오.
바람이 테이룬의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더니 마나가 실타래처럼 엉키는가 싶더니 불꽃처럼 뿜어져 나왔다.
상급 기사의 경지를 알리는 마나 플레임 소드가 형성된 것이다.
이어 그것에 멈추지 않고 불꽃 모양으로 넘실거리던 마나 플레임 소드 일부가 사라져갔다.
마침내 그 자리에는 순수한 마나의 결정체만이 검의 표면을 덮은 채로 남아있었다.
오러.
검의 극에 이른 자만이 쓸 수 있다는 마나의 기운이 응집된 모습이었다.
오러는 반투명한 푸른색 보석을 검에 덧댄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중 하나인 것이다.
마나 플레임 소드는 마나 소드를 이루고 남은 마나가 분출되어 불꽃처럼 보였다.
마나를 넘치도록 불어넣었기에 마나 소드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오러는 그런 힘마저 한곳에 응축하여 무기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슬쩍 보면 유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오러의 검을 테이룬이 강철 기둥에 가져다 대며 밀었다.
- 스윽.
오러 소드가 강철 기둥을 대각선 방향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종이를 칼로 자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오러 소드는 이윽고 강철 기둥을 통과했다.
오러의 검이 통과한 강철 기둥은 실 같은 선만이 남아 통과했다는 흔적을 남겼을 뿐이었다.
기둥에 남은 흔적을 본 테이룬이 아쉬운 듯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이 정도인가. 그래도 신분은 증명되었을 거라고 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던 주술사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
테이룬이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영주가 먼저 말을 했다.
“오, 너같이 하찮은 자도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어이쿠, 테이룬 경, 이런 곳에 먼지가!”
영주가 품속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 힘들게 허리를 숙여 테이룬의 신발의 먼지를 털었다.
주술사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모습에 기가 찼다.
말끝마다 하찮다느니 미천하다느니 지껄이더니 자신 이상으로 추한 행동을 하다니.
나불거리던 영주의 입을 박살 내고 싶은 주술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참고 고개를 조아릴 때였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언제고 등 뒤를 찌를 기회는 생길 것이었다.
인간 사냥꾼 두목만 하더라도 자신보다 먼저 죽었는데도 자신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먼지를 털고 있는 영주를 내려다보며 테이룬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도 영주라는 자가 이런 모습을 인간 사냥꾼 앞에서 보이다니.
순혈 귀족이 아닌 자라서 그런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영주라고 해도 변두리 영지의 영주.
그것도 대대로 영지를 계승해오던 귀족이 아니라 기회를 잡아 영주가 된 인물이었으니까.
테이룬은 이곳에서 오래 있을수록 영주가 더한 추태를 보일까 봐 서둘러 용건을 꺼냈다.
“넌 죽은 두목이 했던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 근래 의뢰에 대해서 말이야.”
“혹시 제가 실패한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세 사람에 대한 건 말입니다.”
“세 사람? 두 사람이 아니라?”
“의뢰 내용은 두 사람이지만 연관된 자들은 대장장이 쿠퍼, 그리고 딸로 보이는 소녀 말고도 김검천이라는 자가 있기에 3명이라 말한 겁니다.”
“그 대장장이에 대한 의뢰를 말하는 거다. 그걸 다시 수행해 줘야겠어.”
“하지만 두목과 간부들, 거기에 대부분의 인원들을 동원했어도 실패로 돌아간 일입니다.”
“실패했으니 너에게 다시 맡기는 거다. 새로 조직을 정비하는 데 10일 주지. 곧 재해가 다가오니 지나가는 기간까지 감안해주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안 되는 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망설이던 주술사가 대답했다.
“안 그래도 조직의 주력이 격파당한 상태입니다. 외부에 나가 있는 자들을 불러들인다고 해도 예전 정도의 힘은 없습니다. 10일 정도로는 시간도 부족하고요.”
“너희들에게 거부권은 없다.”
영주가 테이룬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네 놈들 따위가 우리말을 안 듣는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안 그렇습니까? 테이룬 경.”
테이룬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영주를 힐끗 쳐다보다가 주술사에게 말했다.
“어찌 되든 간에 너희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 명심해라.”
“하지만 대장장이에 대한 의뢰를 해결하려면 먼저 김검천이라는 녀석의 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상급 기사 실력의 두목마저도 그자에게 당했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