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그래도 김검천은 만약을 위해 금속 갑옷 남자에게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하는 행동에 비해서는 순진한 녀석 같았기에 솔직히 대답해 줄 것 같았으니까.
“그거랑 마나 플레임 소드와 비교하면 어느 쪽 위력이 세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이런 마나 소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지.”
“그러면 혹시 너 분영술이라든가 그런 마나 기술 같은 거 쓸 줄도 아냐?”
“그건 상급 기사 정도 마나의 보유량이 있어야 가능한 마기술 중 하나인데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너도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이야.”
“아니, 난 마나는 못 쓰니까 불가능한데.”
“뭐라고? 과연. 그 갑옷은 겉치레에 불과하구나. 이 몸은 그렇다는 걸 진작 알아보았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잘난 척하는 금속 갑옷 남자였다.
김검천이 마나 플레임 소드를 파워드슈츠로 막아낸 적이 있다는 걸 알면 무슨 얼굴을 할까.
금속 갑옷 남자는 한심하다는 김검천의 표정을 겁먹은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가 자신 있게 달려들면서 검을 내질렀다.
“갑옷 따위를 믿고 반항한 너 자신을 원망하라! 받아라! 이 몸의 마나 소드를!”
마나 소드는 그대로 김검천의 파워드슈츠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 깡.
“깡?”
- 뚜둑. 툭.
마나가 서려 있던 장검의 검 날이 부러져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금속 갑옷의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마나를 두른 검이 갑옷에 부딪혔다고 나뭇가지처럼 가볍게 부러지다니!”
“차라리 나뭇가지가 더 단단하겠다. 거기다 충격받은 건 알겠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지?”
“엣?”
- 퍽!
김검천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에 적중했다.
남자는 공처럼 지면을 구르며 기절했다.
김검천이 봐주지 않았다면 기절한 게 아니라 그의 머리는 수박처럼 박살 났을 것이다.
가죽 갑옷의 사람이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형님!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그 모습을 본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죽지는 않았다. 빨리 치료하면 얼마 후 걸어 다닐 수는 있겠지. 별다른 상처도 없잖아.”
가죽 갑옷의 사람이 남자를 부축했다.
몸을 들어 올리는데 남자의 입가에서 하얀 치아 하나가 굴러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가죽 갑옷의 사람이 원망스러운 듯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상처가 없다며! 형님의 외모 중 그나마 볼만한 부위가 망가졌잖아!”
“너 말이 짧다?”
“상처가 없다면서요!”
“그거야 사람이니까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법 아닐까?”
“나쁜 놈님아!”
“애초에 시비를 건 쪽은 너였지. 그런 상대에게 나쁜 놈이 되어주는 건 언제나 환영이야.”
“으드득. 두고 봅시다.”
“이를 갈면 이빨에 문제가 생기는데? 치아의 건강은 중요하다고.”
“그거 걱정해줘서 고맙네요! 당신, 이름이 뭡니까!”
“난 김검천이라고 한다.”
“이 몸은 내더. 형님의 이름은 데탈이라고 한다. 기억해라. 두고 보자!”
말이 다시 짧아졌지만 자발적으로 상납한 금액을 생각해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내더와 데탈, 그 일행이 사라지자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렇게 혼나고도 다시 보자니. 취향이 이상한 건 저쪽이었군.”
“역시 세상은 넓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많네요. 당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요?”
“별로 알고 싶지 않은걸. 그보다 대충 일이 끝났으니 빨리 함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그런 소동이 있었는데도 일을 마치고 마을을 나가는 김검천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죽어 나갈 정도는 되어야 소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마을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자 세이야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보다는 일이 괜찮게 끝났는데요? 김검천님이 옆에 있어 주신 덕분이에요.”
걸으면서 뭔가 생각하던 김검천이 세이야에게 물었다.
“저 마을에 대해서 규칙 말고도 아는 게 더 있어?”
“글쎄요. 말해드린 것 외에는 저도 잘 모르거든요. 왜 그러시지요?”
“아까 그 용병이 하급 기사 정도 실력은 된다고 했었지? 저곳에 기사도 들리는 모양이었고.”
“마을 입장했을 때 경비병이 말한 대로 자주 방문하는 건 아닌 듯싶지만요.”
“마나 소드를 다룰 정도라면 무장한 병사 10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라고 했던가.”
“보통 그렇게 판단하지요. 그런데 왜 그러시지요?”
“아까 그 녀석이 몸을 사리는 걸 보면 저 마을에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거니 궁금해서.”
“그저 마을에 정해진 규칙 때문에 조심하는 게 아닐까요?”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세이야. 대부분의 사람이 규칙이 있다면 그에 따르기는 해. 하지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지.”
“그러면 어떻게 규칙을 따르게 만드나요?”
“더 강한 힘이겠지. 따르게 할 힘이 없으면 공허한 말에 불과해. 특히 이런 곳에서는.”
“그래서 생각 중이신 거네요. 그러면 조금 더 마을에 머물며 뭐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아니. 일단 볼일은 끝났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에 걸려서 돌아가고 싶네.”
“우리를 따라다니던 그 코폴드도 요즘은 안 보이니까 이상한 느낌이긴 하네요.”
“어쩌면 다른 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함선 근처라든가.”
“그러면 빨리 함선으로 돌아가요! 마을이야 필요하면 다시 오면 그만이니까요.”
그렇게 김검천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함선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움직였다.
그런데 김검천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함선으로 귀환하는 방향으로 테이룬과 인간 사냥꾼들이 접근하고 있던 것이었다.
***
어느 인간 사냥꾼에게 이야기를 듣던 주술사가 테이룬을 향해 급히 다가왔다.
“테이룬 경. 아무래도 지금 진행하는 방향을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
“대장장이라도 찾은 건가?”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정찰 나간 자들이 대장장이의 흔적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이 있어서요.”
“대장장이에 대한 것 이외의 일들은 보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꼭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저희들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서요.”
“그런 건 일이 끝난 다음 봐도 된다.”
“또한 대장장이의 흔적이 그게 발견된 근처에서 사라졌다 합니다. 그러니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테이룬은 주술사가 자신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스터 나이트가 된 이후로는 주술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보통은 영주처럼 별 것 아닌 것에도 말을 걸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술사가 의견을 제시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테이룬도 그 말이 타당한 것 같아 마음이 끌렸다.
“좋아. 일단 진로를 그쪽으로 변경하지. 그나마 발견한 대장장이의 흔적이라니까. 하지만 별 것 아니라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어이!”
정찰을 맡은 인간 사냥꾼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영주가 다가오더니 테이룬에게 말했다.
“테이룬 경. 하찮은 자들이 말한 것 가지고 경로를 바꾸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이렇게 헤맨 끝에 발견한 단서니 어쩔 수 없지. 그보다 뭔가 더 들은 게 있는 것 같은 모양이군.”
“정찰 나간 것들이 괴물과 만나서 싸우다가 일행과 떨어져 길을 헤맨 녀석이 있었나 봅니다. 다시 일행으로 돌아오려고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더군요. 그 녀석이 웃기는 소리도 하더군요.”
“뭐가 말이지?”
“마치 괴물이 자신들을 일부러 그쪽으로 유인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거든요.”
“인간 사냥꾼의 변명치고는 재밌군. 다만 그게 헛소리라고 해도 이미 한 말을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야.”
“하긴 테이룬 경의 말씀은 금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고요.”
“아부는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괴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군. 여태까지 마물의 숲을 정복하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야.”
“운이 좋은 거겠지요.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군대가 숲을 진입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숫자의 괴물이 밀어닥쳤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괴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그 말에 호응하듯이 먼저 앞서가던 인간 사냥꾼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아앗! 고블린이다! 트윈헤드 트롤도 같이 있어!”
“살려줘! 커헉…”
멀리서 들려오는 인간 사냥꾼들의 비명을 배경음 삼아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인간 사냥꾼들이 몇 명 안 죽었으니 그런 의문이 들만도 합니다. 다만 과거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괴물들이 몰려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더군요.”
“그동안 숲에 변화라도 있었던 건가. 아무튼 지금보다는 좀 더 속력을 내야겠어.”
지시를 내리고 자리를 떠나려던 테이룬은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 방향에는 영주가 데려온 다른 호위 기사들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룬이 영주를 응시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에 필요한 자라서 데리고 다니고 있지만 아무래도 별로 느낌이 좋지 않은 자란 말이지.”
그렇게 하루 정도를 이동했을 무렵 테이룬 일행은 주변 나무가 누워있는 지역으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다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가 대각선으로 자라난 장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뽑혀진 나무가 바닥을 나뒹구는 지역에 진입할 무렵 정찰 나갔던 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저 위가 그것을 발견한 목적지입니다! 저 분화구 끝부분 쪽에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100미터는 가볍게 넘는 분화구를 보자 정찰 나간 인간 사냥꾼을 향해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힘든데 다시 높은 데다 경사까지 심한 곳을 올라가야 한다니.
“젠장,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등산은 누가 시켜서 하면 진짜 하기 싫은데.”
“저기에 분화구가 있으니 분화구를 올라야 하는 거 아니냐?”
“뭐래. 분화구가 없었으면 애초에 올라갈 필요도 없잖아.”
주술사가 테이룬의 눈치를 살피다 인간 사냥꾼들에게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올라가라! 억울하면 출세하던가!”
인간 사냥꾼들이 주술사에게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욕을 하며 분화구를 올랐다.
주술사는 뒷짐을 쥐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팍.
갑자기 주술사가 뒤통수를 붙잡고 인상을 쓴 채로 돌아보다가 바로 풀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주술사의 머리를 후려갈긴 건 영주였다.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아? 야, 넌 여기서 뭐하냐?”
“예? 그거야 다른 녀석들의 관리를 하려고 남아있는 겁니다.”
“이게 미쳤냐? 테이룬 경도 직접 저기를 오르시겠다는데 네가 감히 남아있겠다고?”
“헉, 몰랐습니다. 그러면 당장 올라가야지요.”
영주가 우쭐거리며 테이룬에게 말했다.
“에잉. 미천한 놈들이 눈치까지도 없어서야. 안 그렇습니까? 테이룬 경.”
“영주, 그런 말을 할 거면 발이나 먼저 움직여 올라간 다음에 하시오.”
“헤헤. 알겠습니다. 테이룬 경.”
영주가 이동하는 테이룬의 뒤를 열심히 따라 올라갔다.
정상에 거의 도달한 인간 사냥꾼들이 땀을 흘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경사가 높아 기어오르는 셈이었기에 체력이 많이 소모되어서였다.
테이룬은 먼저 꼭대기에 도착하자 영주가 따라오는지 슬쩍 살펴보았다.
영주는 보이는 체격과 다르게 의외로 테이룬을 잘 따라붙고 있었다.
발을 옮기는 것보다 구르는 게 더 빠른 것 같은 체구였는데 말이다.
영주 같은 체격으로 저렇게 움직이는데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건 이상할 정도였다.
테이룬의 그런 의문 같은 건 잠시 후 사라지고 말았다.
동산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멍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어서였다.
오르기 전까지는 그냥 동산인 줄 알았는데 올라서 보니 깊숙한 웅덩이가 파인 분화구였다.
그 분화구 안에서 직경 1000미터는 넘을듯한 거대한 금속의 산, 함선 미르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이런 곳에 저런 게 있다니?”
누군가 중얼거렸다.
“설마 저게 바로 초월 존재는 아니겠지? 저런 거대한 금속 덩어리 같은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지금 우리들은 선을 넘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러 버린 건가?”
아래에 뭐가 있든지 간에 움직여야 하는 인간 사냥꾼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심지어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할 주술사마저 혼이 빠져나간 듯한 상태였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테이룬이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저게 뭐든지 간에 각자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야. 저런 게 이런 곳에 있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저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이 근처에 대장장이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어느 쪽에 순위를 먼저 둬야 하는지 잊지 마라.”
그 말에 인간 사냥꾼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갔다가 저게 움직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마나라는 신기한 힘도 쓸 수 있는 세계였다.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존재들도 여전히 세상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초월 존재라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입을 열자 다른 사람들도 연달아 말을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한적한 곳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저런 거대한 물체가 있다니요.”
“분명 초월적 존재나 그들이 관련된 뭔가가 만든 게 분명합니다. 가까이 가면 저주받을 거라고요!”
- 쓰윽.
마지막 말을 내뱉은 인간 사냥꾼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분화구 밖 경사진 비탈로 굴러떨어졌다.
영주가 데려온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가 검을 들어 그대로 베어 넘긴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떠들던 인간 사냥꾼들이 모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