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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33화 (33/250)

33화

그런 암울한 분위기를 즐기기라도 하듯이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주든 뭐든 그거는 나중 일이지. 일단은 살아 있어야 저주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그 뒤를 이어 영주가 웃으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게 초월 존재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건 이 몸이 보장할 테니 당장 내려가서 살피기나 하지?”

이미 한 명이 죽었는데도 인간 사냥꾼 한 명이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안 내려가면 어떻게 됩니까?”

“죽을 것이다!”

“내려갑니다! 내려간다고요!”

주술사를 포함한 인간 사냥꾼들이 분화구 아래로 자빠지고 미끄러져 가며 내려갔다.

테이룬이 호위 기사를 보며 경고했다.

“끼어들면 엉망이 될 거 같아 안 말리긴 했지만 말을 안 듣는다고 바로 죽이면 곤란하다.”

“죄송합니다. 테이룬 경. 녀석들은 해충과 같은 존재라서 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같은 편이니 적당히 해둬.”

테이룬은 그 말을 끝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가 영주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까지 왔는데 저자도 죽일까요?”

“죽일 자신은 있고?”

“그거야 해보면 알겠지요.”

“마스터 나이트라고 해도 인간. 찔리면 죽긴 하겠지만 아직 아니야. 그보다 표식 확인은?”

“바로 근처까지 따라왔다는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잘했다. 우리 같은 자들은 높으신 분들이 하라고 하면 따르는 게 제일이거든.”

“전 영주님의 말씀에만 따르면 되고요.”

“그런 거지. 그러면 우리도 내려가자고. 테이룬 경이 늦는다고 화를 내면 귀찮거든.”

테이룬을 따라온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낸 코폴드 한 마리가 있었다.

코로 계속 주변의 냄새를 맡던 코폴드가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내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분화구 밑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일단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건 테이룬과 영주 주위로부터 떨어지고 싶어 하는 소망의 발현이기도 했다.

인간 사냥꾼들은 그 둘과 같이 있는 게 불편해서였다.

짜증이 나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젠장, 두목이 있을 때는 그래도 안 보이는 곳에서 인간 사냥하며 가끔 즐기기라도 했는데.”

“그러게. 주술사가 우리들을 부린 이후로는 심심하면 죽어 나가고만 있잖아?”

“야, 우리는 수색하는 척하면서 좀 멀리까지 가 볼까?”

“그러게. 떨어져 있으면 수색하는 건지 놀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 거야?”

그렇게 몇 명은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 이동하기로 했다.

그 방향은 김검천이 드나들던 망가진 외부 출입구가 있는 쪽이었다.

그와 반대로 주변을 성실하게 조사하는 인간 사냥꾼들도 있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다.

하필이면 테이룬이 함선 쪽으로 내려왔을 때 그 근처에 있던 자들인 것이다.

뒤이어 영주와 그 일행도 내려왔기에 도망가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이다.

잠시 후 주술사가 나이가 든 한 남자와 함께 다가왔다.

“테이룬 경! 그 대장장이는 이 근처에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그 대장장이가 이 금속 물체 안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자의 행적은 어떻게 찾았나?”

주술사가 나이든 남자를 가리켰다.

“이자는 몇 주 전 남은 사람이나 동물의 발자국만 봐도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발자국의 깊이, 넓이, 걸어가다가 남긴 숲에 난 흔적들 같은 것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정확히 쫓아갈 수 없을 텐데?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못 발견할 인간 따위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물론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흔적이 희미해지거나 쫓는 대상에 대해 잘 모른다면 찾을 확률 또한 낮아지고요. 그래서 저희들은 거기에 더해 이걸 이용합니다.”

주술사가 투명한 막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막대 안에서는 검붉은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테이룬이 막대를 관찰하며 물었다.

“그게 뭔가?”

“의뢰를 받고 나가는 인간 사냥꾼들은 간단한 술법을 걸고 나갑니다. 만약 누군가 그들을 죽이면 저주를 받게 만드는 술법이지요.”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만드는 저주인가. 강력한 저주는 아니겠군.”

“물론 저주의 힘 자체는 약합니다. 그러니 뭔가 이상하다 생각해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고요.

“한마디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자와 이 막대를 이용해서 대장장이의 흔적을 찾은 건가.”

“이래 보여도 제법 힘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보상은 충분히 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지?”

“대장장이가 이 근처에 있다면 이 막대가 붉은빛으로 깜빡거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붉게 빛나고만 있는데. 이미 근처에는 없다는 건가?”

“근처에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있다는 표식입니다. 아무래도 헛수고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테이룬이 함선 미르의 외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저 안에 대장장이가 숨어 있어서 그 막대가 제 역할을 못 할 수도 있는가?”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다만 이게 마나를 차단할 정도로 대단한 건지는…”

“이런 곳에 있는 것 자체가 수상하지. 단서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일단 확인은 해야겠고.”

“그러면 입구가 어딘지 찾아보겠습니다.”

“이미 찾고 있지 않으니 놔둬라. 우리는 따른 방법을 시도하도록 하지.”

“어떻게 말입니까?”

“제대로 된 마나의 검이라면 얇은 두께의 금속 벽 정도는 도려낼 수 있어야겠지. 영주.”

테이룬의 말에 영주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호위 기사들 중 한 명이 자신 있게 검을 꺼내 들었다.

함선을 보며 초월 존재라고 겁을 먹었던 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제가 해보지요. 다른 건 몰라도 마나 소드만큼은 다른 호위 기사들보다 나을 겁니다.”

“좋아. 너에게 맡겨보도록 하지.”

- 부우웅.

호위 기사의 검에 푸른 마나가 뭉치는 게 눈에 확실히 보였다.

테이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중급 기사는 되어 보였다.

괜히 나선 건 아닌 모양이었다.

중급 기사의 마나소드는 시간을 들인다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강철도 벨 수 있었다.

호위 기사가 자신 있게 함선 외벽에 마나 소드를 찔러 넣었다.

- 탁.

생각하지도 못한 일에 마나 소드를 사용한 호위 기사가 당황했다.

“마나 소드가 전혀 안 먹힌다니?”

옆에 있던 테이룬이 눈살을 찌푸렸다.

호위 기사의 마나검은 저 이상한 금속 벽에 티끌만 한 상처도 내지 못한 것이다.

생각보다도 더 단단한 금속 같았다.

마나검을 유지하는 게 힘이 드는지 힘을 쓰는 호위 기사의 이마로부터 땀이 굴러떨어졌다.

주술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히 힘쓰지 말고 저희들도 입구를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대장장이가 이 안에 들어갔다면 분명 입구도 있을 텐데요.”

막 고개를 끄덕이려던 테이룬은 주술사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는 주술사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한 테이룬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테이룬은 호위 기사에게 말했다.

“물러서라.”

“하지만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시간 낭비다. 마나검을 박아 넣었는데도 상처 하나 안 났다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러면 다른 기사들을 동원할까요?”

“아니다. 직접 나설 생각이니까.”

“헉! 테이룬 경께서 직접?”

“시간이 없다. 이런 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테이룬이 검을 뽑아 들자 바로 푸른 마나의 불꽃이 형성되었다.

마나 플레임 소드였다.

테이룬이 지체없이 마나 플레임 소드를 벽에다 꽂았다.

- 체엥.

가벼운 금속음과 함께 검이 튕겨 나갔다.

마나 플레임 소드로도 눈앞의 금속 벽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던 것이다.

테이룬은 자신의 검을 잠시 응시했다.

마나로 검을 보호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신에 미미하게 금이 가 있는 게 보였다.

“마나 플레임 소드도 통하지 않는 건가. 이건 마나 소드 정도로 뚫릴 만한 게 아니었군. 그러면 고작해야 금속 따위가 오러에도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도록 하지.”

테이룬의 주위로 불꽃처럼 꿈틀거리던 마나가 검 주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불꽃 모양으로 넘실거리던 마나 플레임 소드 일부가 사라져갔다.

마침내 그 자리에는 순수한 마나의 결정체만이 검의 표면을 덮은 채로 남아있었다.

오러가 발현된 것이었다.

- 우우웅.

검에 서린 오러는 발현된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주술사는 오러의 기세만으로도 전신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며 거리를 벌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홀린 듯이 오러를 바라보았다.

“저게 마나의 정화인 오러?”

“아름다워. 만지고 싶을 정도야.”

“만지면 네 손이 피안개로 변할 테니 아름답기는 하겠어.”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테이룬이 든 검에 몰렸다.

테이룬이 무엇이든 베어버릴 듯한 기세를 담아 오러 소드를 내려쳤다.

“하압!”

- 끼이익! 카칵!

오러검과 함선의 외벽이 격돌하자 날카로운 마찰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두 귀를 감싸며 고개를 숙일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였다.

잠시 후 사람들은 오러가 할퀴고 지나간 금속의 벽을 살펴보았다.

함선 미르의 외벽은 오러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테이룬은 드높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오러를 쓰고도 상처 하나 내기 힘든 금속이라니? 아다만임보다 더 단단한 재질이란 말인가?”

오기가 생긴 테이룬이 오러 소드에 더욱 마나를 집중시켰다.

집중된 마나가 얼마나 많은지 검이 견디지 못하고 저절로 몸을 떨 정도였다.

- 우우웅.

오러가 서린 검이 움직이자 주변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테이룬이 중얼거렸다.

“어디 이번에도 견디나 보자.”

“잠깐!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테이룬 경.”

어디선가 테이룬과 같은 순백의 마갑을 두른 기사 한 명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기사의 등장에 흥이 가신 테이룬이 검을 내리자 서려 있던 오러가 사라졌다.

테이룬이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를 지키는 근위 기사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것이냐?”

“귀환하실 시간이라는 걸 알리러 온 겁니다. 테이룬 경“

“너 따위가 이 몸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줄이야.”

“물론 제가 어떻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전 그저 이걸 전하러 왔을 뿐입니다.”

기사가 품속에서 둘둘 말린 마법에 걸린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폈다.

양피지를 펴자 그 안에서 빛나는 인장 하나가 테이룬의 눈앞에 떠올랐다.

국왕과 그 계승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마법이 걸린 마나 인장의 등장이었다.

“국왕 전하의 인장이 새겨진 소환 서신입니다.”

“국왕 전하는 병중이실 텐데? 서신을 쓸 정도로 병환이 회복되기라도 하신 건가?”

전령으로 온 근위 기사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눈을 감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작성하신 분이 누구신지는 저 같은 기사가 알 리가 없습니다. 다만 이 서한은 국왕 전하가 아니라 그분의 대리이자 재상이신 테우펠 공작께서 주셨습니다.”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공작으로 이루어진 오등작 귀족 계급 사회의 정점이신 공작께서 직접 말인가? 하필 이럴 때 이 몸을 소환하는 서신을 보내다니. 정말 웃기는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테이룬 경. 돌아가실 겁니까?”

테이룬이 차가운 눈빛으로 전령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재상이든 뭐든 알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국왕 전하의 인장이 박힌 친서다. 일단 따르는 게 맞겠지. 그런데 하나만 묻지. 어떻게 본인이 여기에 있는 걸 알았지? 감시하고 있던 건가.”

“감시라니요? 저는 그저 명령에 따라 여기까지 찾아온 것뿐입니다.”

“누군가의 조력도 없이 혼자 몸으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알고 보면 마물의 숲도 참 쉬운 곳이군.”

빈정거리던 테이룬의 눈빛이 영주에게 잠시 머물렀다.

영주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테이룬의 입술이 전령을 향해 천천히 열렸다.

“하긴 너에게 말해보았자 소용없겠지. 먼저 돌아가겠다. 영주는 뒷일을 부탁하지.”

“전령과 돌아가시는 길에 필요한 자들도 같이 보내드리겠습니다. 먼저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테이룬이 떠나자 영주나 인간 사냥꾼들도 흩어진 자들을 모아 자리를 뜨려는 참이었다.

“끄아악!”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영주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이제 떠나려는 참인데. 귀찮게 시리.”

마나를 이용해서 몸을 강화시키면 보통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증가하는 게 기사였다.

멀리서 떨어져 있지만 시력을 강화시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한 호위 기사가 대답했다.

“별 것 아닙니다. 아까 주변을 살펴보라고 흩어진 인간 사냥꾼 놈들 중 하나가 코폴드에게 습격을 당한 모양입니다.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인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영주가 하품을 했다.

“그래? 진짜 별거 아니군. 내버려 둬라. 괴물에게 죽으면 그걸로 끝이고 산다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주술사.”

“예. 공격받는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저희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

영주나 주술사나 힘의 차이가 있었을 뿐 사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일단 너희 본거지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라. 그리고 너는…”

영주가 옆에 있던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먼저 떴다.

주술사가 영주에게 물었다.

“저 기사는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따위가 알 일은 아니야. 철수나 하도록.”

영주 일행이 자리를 떠나자 그 뒤를 이어 주술사와 인간 사냥꾼들도 본거지로 향했다.

이 자리를 떠난 그들은 평생의 운을 이 자리에서 다 썼을 것이다.

잠시 후 나타난 김검천이 인간 사냥꾼과 코폴드가 싸우는 현장으로 떨어져 내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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