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김검천이 외쳤다.
“축제를 마무리할 시간이로군! 외장형 장비 모드 기동!”
- 푸싱.
김검천이 장착한 외장형 장비 틈새로부터 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외장형 장비로 에너지가 충전되어 언제든 동작 가능하다는 표시였다.
파워드슈츠의 에너지팩으로는 마석처럼 성능 자체를 증폭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추가된 무게나 사용되는 기능만큼이나 에너지 소모가 빨라지는 것이다.
외부에다 붙이는 장비였기에 에너지원이 파워드슈츠의 에너지팩이라 발생하는 문제였다.
기술 장교가 실험용으로 만들어 둔 물건이기에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닌 것이다.
다만 외장형 장비의 힘과 무기의 화력만큼은 분대장급 파워드슈츠 본체보다 월등했다.
그렇기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장착하고 나왔는데 이렇게 사용하게 된 것이다.
“미리내. 외장형 장비의 기동 시간은?”
[에너지형 무기 사용을 제외한다면 평상시의 70% 전후입니다.]
영주가 손을 흔들었다.
촉수가 그에 맞춰 꿈틀거렸다.
“무슨 시간을 신경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죽어라!”
사람 팔뚝만 한 촉수가 김검천에게 달려들었다.
사람 몇 명 정도는 그대로 관통할 정도의 힘이 있는 촉수였다.
파워드슈츠는 사람 몇 명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어력을 가진 게 다른 점이었지만.
- 팅.
김검천이 촉수가 부딪힌 충격으로 약간 몸을 움찔거렸지만 그게 다였다.
영주의 공격은 김검천의 외장형 장비를 뚫을 수 없던 것이다.
김검천이 목을 천천히 풀면서 말했다.
“중급 기사의 마나 소드 위력 정도인가. 인간 사냥꾼들에게나 쓸모가 있는 것 같군. 설마 이게 끝인 건 아니겠지?”
“네 말대로 이게 다 일리가 없지. 촉수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영주가 크게 손을 움직였다.
그에 맞춰서 마을 곳곳에 있던 수많은 촉수들이 광장 쪽으로 모여들었다.
수십 개는 가볍게 넘을 듯한 촉수가 건물보다 높은 곳에서 김검천을 내려다보았다.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봐도 눈이 괴로운데 저렇게 많다니.”
“몸으로 느낀다면 즐거울 거다! 가라!”
모여 있던 촉수들이 앞을 다퉈 김검천을 노리고 날아왔다.
정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기도 했고 눈의 사각을 노려 휘어지며 공격하는 것도 있었다.
마나 소드 수십 개가 동시에 공격해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빈틈을 노린다고 해도 미리내의 보조가 있기에 그대로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촉수들이 장갑으로 보호된 부분이 아닌 관절의 틈을 노리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파워드슈츠나 외장형 장비의 관절 부분도 기본적인 방어력은 가지고 있었다.
다만 장갑 부위만 한 방어력은 없었기에 계속 당하다 보면 공격이 통할 수도 있었다.
김검천은 슬쩍 몸을 틀어 두툼한 장갑 부위 쪽으로 촉수를 막아내며 중얼거렸다.
“촉수에 눈이라도 달렸나? 약한 부위를 잘도 찾아 공격하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가?”
[촉수에 눈이 달렸다는 것 말입니다. 작아서 잘 안 보일 텐데요.]
“그냥 한 소리였는데? 진짜로 눈이 달려서 이렇게 움직였던 거냐? 기분이 더 나쁘군.”
영주가 김검천이 끔찍해 하는 모습을 보자 공격이 먹혀서 그러는 건 줄 알고 기뻐했다.
“크하하! 어떠냐! 이 몸의 귀여운 촉수가! 제법 두툼한 마갑을 입고 있어서 목숨을 연장하고 있는 것 같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김검천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양팔을 휘둘렀다.
“총탄 폭약형 선택. 암건 발동.”
- 투투퉁.
쏘아진 탄환은 주변의 촉수들을 무시한 채 허공을 날았다.
총알의 목적지는 영주였다.
영주가 날아드는 총탄에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막아라! 막아!”
김검천 주위에 모여 있던 촉수들이 서둘러 영주 근처로 향하며 방어에 나섰다.
빠르게 휘둘러진 촉수들은 날아드는 총탄을 막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영주는 퍼붓는 총알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눈 앞을 가리던 촉수를 움직이며 소리쳤다.
“네 녀석 따위의 공격이 이 몸에게 통할 거 같으냐!”
김검천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라고.”
“뭐라고?”
“방금 공격은 미끼에 불과했지. 시간벌기용이었으니까. 이 공격은 시간이 걸리거든.”
영주는 그제야 김검천이 뭘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김검천은 양손을 모은 자세로 영주를 겨냥하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있는 부분은 외장형 장갑이 둥글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외장형 장갑은 사람 머리만 한 원형 총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총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컸기에 차라리 포구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정도였다.
포구 앞에는 번개 같은 덩어리가 점점 덩치를 불리고 있는 중이었다.
번개의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온 가느다란 뇌전의 실이 돌멩이에 닿자 그대로 재로 변했다.
- 파칙, 파지직.
이건 외장형 장비를 변형시켜 만들어 낸 제7세대 에너지형 무기인 실드 입자포였다.
실드 입자포는 파워드슈츠에 내장된 실드 에너지를 공격용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외장형 장비를 이용해야 했기에 1회용이라 아껴두고 있던 것이다.
이 무기의 위력은 오러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직 오러를 직접 접한 적은 없긴 했지만 모은 데이터로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에너지가 뭉쳐져 있는 탄환을 쏘아낼 포신은 김검천 자신이었다.
“입자포를 쏘아낼 포신이 없다면 내 자신이 포신이 되면 되는 것이지!”
외장형 장갑의 등 부분에서는 지지대가 뻗어 나가 김검천을 받치는 중이었다.
발사될 때 발생하는 충격은 김검천이 사용하던 압축공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실드 입자포의 반동이라면 사람 몇 명 정도는 충분히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미리내. 에너지 출력은?”
[99%, 100%. 충전 완료.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발사!”
- 투웅.
공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김검천 뒤에 있는 것들이 충격파에 의해 튕겨 나갔다.
모여 있던 하얀 빛의 덩어리는 점멸한다 싶더니 공간을 먹어치우며 영주에게 달려들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영주가 마구 손을 휘저으며 고함을 쳤다.
“촉수들이여! 앞에서 함께 뭉쳐서 막아 내거라!”
영주가 움직일 수 있는 촉수 대부분이 다가오는 실드 입자포를 막기 위해 몸을 합쳤다.
서로 몸을 엮어 거대한 방패 형상을 한 촉수와 실드 입자포가 부딪혔다.
- 파삭.
영주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세상 어떤 것이라도 막아낼 것 같던 촉수의 집합체가 가볍게 소멸해 버린 것이었다.
“이런 젠장!”
영주는 자신을 덮치는 실드 입자포를 보며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머릿속으로만 말이다.
영주는 생각만큼이나 몸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게 원통했다.
“우아아악!”
그렇게 실드 입자포에 휘말린 것들은 태풍이라도 지나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기이잉. 철컹.
김검천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던 지지대가 다시 외장형 장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실드 입자포의 포구로 쓰였던 외장형 장비 팔 부위가 분리되며 떨어졌다.
실드 입자포의 출력을 못 이겨 부서진 것이다.
김검천이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내. 이건 다시는 못 쓰겠지? 다시 들고 간다고 해도.”
[외장형 장비는 어디까지나 기술 장교가 실험적으로 만든 것이라 예비 부품이 없습니다.]
“고출력 에너지를 감당할 정도의 내구력은 없는 게 아쉬워. 에너지가 많이 드니 장교급 파워드슈츠 이상이 아니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겠지만.”
김검천은 파워드슈츠의 남은 에너지 잔량을 살펴보았다.
이제 30% 이하의 에너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정규 장비가 아닌 걸 이용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더 심했다.
[김검천 함장님. 아직 영주가 살아 있습니다.]
“실드 입자포 조준이 잘 못 되기라도 한 건가? 살짝 빗나간 모습인데.”
[아닙니다. 실드 입자포는 분명 영주를 직격하는 코스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면 중간에 촉수들이 방어해서 어떻게든 밀어낸 건가. 몸 오른쪽이 통째로 날아간 상태지만 아직 살아있다고 하니.”
[실드 입자포에 아직 저렇게 모습이라도 남아 있는 게 대단한 겁니다.]
“인간이 아니라고 자기 입으로 말한 것처럼 생명력이 끈질긴 모양이야.”
김검천의 눈앞에는 몸의 절반이 날아간 영주가 지면에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영주는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었다.
김검천은 암건으로 영주를 마저 날려버리려다가 주변을 보고 일단 손을 거두었다.
김검천의 주위로 촉수가 다시 돋아나면서 견제를 해서였다.
“사용할 수 있는 촉수도 아직 남아 있는 게 있는 모양이군.”
[아마 마을 바닥 속에 남아 있는 게 더 있던 모양입니다.]
거기다 영주는 자기 몸이 날아간 부위를 남아 있던 촉수를 흡수해 재생하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영주는 급히 자신에게 남아있는 반지를 세어보았다.
“이놈이… 헉! 반지가 3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니!”
“몸 자체가 날아갈 정도인데 끼고 있는 반지가 멀쩡할 리가 있겠냐.”
영주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어떤 반지인지 아느냐? 인간의 피를 짜내어 생명력을 농축해 만든 마법이 걸린 반지야! 즉사하지만 않으면 회복시켜주는 물건인데 7개나 날아갔다고!”
김검천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갑옷 기사와 비슷하게 영주도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반지를 이용한다니 방법은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아하, 그래서 네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로군. 그래도 3개나 남아 있다니 다행이야.”
“이 몸의 회복 도구가 남아 있다는 것에 네가 왜 다행이라고 하는 거지?”
“그거야 널 3번 더 때려잡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단번에 죽으면 후회할 틈도 없잖아?”
그 말에 영주는 등 뒤가 서늘해졌다.
인간들의 혈액을 쥐어짜 손가락에 낀 반지가 늘어날 때마다 항상 마음이 든든했다.
죽을 위기에서 10번이나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건 목숨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늘어난 생명이 오히려 짐이 되는 느낌이었다.
영주가 남아 있던 촉수를 지면에서부터 뽑아내며 소리쳤다.
“남의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그건 네 놈이 할 만한 대사가 아니지. 너한테 죽어간 사람들이 말하면 또 모를까. 그러면 죽을 준비는 끝났나?”
“이대로 순순히 당할 거 같으냐!”
그 말과 동시에 영주의 보석 반지 중 2개가 붉은빛을 내며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