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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46화 (46/250)

46화

김검천을 제외한 마을의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다리가 날아간 채 목숨만 붙어 있는 영주도 타오르는 중이었다.

다가오는 김검천을 본 영주가 그나마 멀쩡한 손을 내밀었다.

“도와줘!”

“도와주기도 싫지만 도와준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지금 보이는 영주의 상처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하고도 남을 만한 상처였다.

절단된 몸에 불까지 붙어 타들어 가고 몸이 재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영주의 목숨이 붙어 있는 건 그가 스스로 사람이라는 걸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신체를 목격한 영주가 얼굴을 으그러뜨렸다.

“이럴 수는 없어! 그분에게 힘을 받아 이제야 마음대로 즐길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별 쓸모가 없던 모양이야. 지금의 네 꼴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재상이신 테우펠 공작님이 이 원한을 갚아 주실 것이다. 너도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너 바보 아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켁!”

반박하려고 말을 더듬던 영주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재가 되어가는 영주로부터 검은 인장이 떠오른다 싶더니 마지막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영주의 죽음을 확인하던 미리내가 말했다.

[방금 전 영주가 죽은 건 김검천 함장님의 대답이 결정타였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재가 되어 사라질 것처럼 보였는데?”

[불꽃에 정화되는 것과 화가 치밀어서 혈압이 올라 사망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렇게 끈질기던 녀석이 내 말 한마디에 죽다니. 생각보다 섬세한 놈이었네.”

[강력한 신체를 가졌다고 해서 정신이 강하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 쿠웅.

김검천의 몸에서 외장형 장비가 떨어져 나갔다.

김검천이 집어서 살펴보다 물었다.

“재사용은 안 되겠지?”

[외장형 장비 자체는 어떻게 장착할 수는 있어도 안에 있는 무기는 못 씁니다.]

“1회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기술 장교가 남긴 선물은 이제 끝이로군요.]

“어쩌면 기술 장교나 그가 아니더라도 함선 내 숨겨둔 보물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방금 영주가 한 말 때문에 그러는 모양이군.”

[이야기를 검토하면 테우펠이란 자는 이 나라를 움직이는 실력자이니 당연한 반응입니다.]

“이제는 국가 권력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네?”

[그런 것 치고는 평온하신 얼굴입니다. 앞으로 수만 명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대비는 해야겠지만 미리 겁 먹을 필요는 없지. 그럴 바에는 함선 다음 구역 개방을 위한 고민이 낫겠다.”

[하긴 여기 국가 단위로 달려들어도 함선만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그럼 이곳에서의 일은 다 끝났으니 돌아가자고. 테우펠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일단 두고 봐도 괜찮을 거야.”

***

“일이 계획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는 것 같군. 치료사.”

“원하시는 대로 안 된다니요? 테우펠 공작님.”

테우펠의 말에 응답한 건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자였다.

그가 바로 병석에 누워있는 국왕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제국의 치료사였다.

“사람을 모으는 일이나 국왕 전하에 대한 것, 거기다 테이룬 경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문제까지. 이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진행되는 게 있는가?”

“욕심도 많으십니다. 그것 외에는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3개가 마음대로 안 되는데 나머지 일은 알 바 아니지. 국왕의 일은 특히.”

“그건…”

치료사가 갑자기 눈을 뒤집더니 하얀 눈동자를 드러내면서 행동을 멈추었다.

기묘한 모습이었지만 그것보다 테우펠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더 신경쓰였다.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가!”

테우펠의 호통에 치료사가 제정신을 차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원망스러운 눈초리였다.

“그동안 연락이 없던 그분과 이제야 드디어 연결이 되려는 참인데 당신이 방해를?”

테우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뭔가 중요한 일을 방해 받은 건가? 하지만 네 놈 따위가 지금 누구를 탓하고 있는 것이냐?”

테우펠을 바라보던 치료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드릴 말이 없습니다. 미천한 치료사의 몸으로 재상이신 테우펠 공작님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다니요.”

“흥,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다면 네 놈의 목숨으로 화를 풀도록 하지.”

마음에 안 들지만 아직은 쓸 곳이 있는 자였다.

테우펠은 당장은 넘어가주기로 했다.

치료사가 테우펠과 시선을 맞추지 않는 낮게 숙인 자세로 입을 열었다.

“국왕의 일은 이제 곧 마무리 단계인 만큼 곧 소원을 성취하시게 될 겁니다.”

“테이룬 경이 혹시 그들을 데려오는데 성공한다면?”

“저번에 테이룬이 재상님과 만났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늦었습니다.”

“마침내! 상위 마법 도구의 벽을 돌파한건가? 국왕을 손아귀에 넣었군!”

“독, 정신조작 등의 모든 상태 이상을 막아주는 상위 마법 도구는 확실히 상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국가 내에서도 몇 개 찾을 수 없는 상위 마법 도구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제일가는 권력자가 독 몇 방울 정도 따위로 죽는 일은 막기 위한 마법 도구니까요.”

테우펠의 시선이 벽 옆에 놓여있는 오래된 거울을 향했다.

얼굴이 비치지 않은 흐릿한 거울 표면이 마치 국왕의 미래 같아 보였다.

“에너지용인 상급 마석을 못 구해서 마법 도구가 제 기능을 못한 게 다행이었지.”

“설마 국왕의 힘으로도 상급 마석을 못 구할 줄은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못 구하도록 우리 쪽에서 손을 썼으니까. 무엇보다 근래 들어 이상할 정도로 마석 수가 줄어든 덕을 본 것도 있고.”

“확실히 요즘은 상급 마석뿐만 아니라 마석 수급 자체가 큰일이더군요. 마석이 없으니 나라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고 있지 않습니까?”

테우펠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이런. 제 말이 테우펠 공작님의 심기를 거슬린 모양이로군요. 하긴 나랏일 같은 건 제가 알 바가 아니지요. 그러면 전 이만 제국으로 돌아가 봐도 될까요?”

“웃기는군. 네가 언제부터 허락을 받고 움직였었나?”

“무슨 말씀이신지. 재상님의 명령을 받들어 국왕에 대한 일도 꾸몄습니다만.”

“이 몸을 부추킨 건 너희들이었지. 뭐, 좋아. 공식적으로는 돌아갔다고 사람들에게 알려두지. 그러니 눈에나 띄지 마라.”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 일은 제국이나 초월교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러면 원하시는 바를 성취하시기를.”

검은 두건의 치료사가 자리에서 물러서자 테우펠은 고개를 내저었다.

“갈수록 제멋대로 구는군.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는데도 뭐 하나 마음대로 못하다니. 하지만 국왕만 처리한다면 이 나라만큼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테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테우펠은 방 한쪽에 장식되어 있는 전신 거울로 다가갔다.

거울은 제대로 관리를 안 했는지 사물이 잘 비치지 않았다.

테우펠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거울을 향해 입을 열었다.

“테이룬 경과 만났나?”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거울 표면이 변했다.

잠시 흔들리면 거울 속에서부터 마갑을 착용한 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저번에 테이룬에게 서신을 전달한 근위 기사였다.

- 테우펠 재상님이십니까?

“이 원거리 마법 도구로 너에게 말을 걸 사람이 또 있겠나? 그래서 테이룬 경은?”

- 저 앞에서 이동 중인 테이룬 경의 모습이 보입니다.

“츳,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마물의 숲으로 들어가다니. 이번에 돌아오면 어떻게 해서든 성 안에 잡아둬야겠어. 빨리 가서 국왕의 인장이 새겨진 서신을 전해라.”

- 알겠습니다. 다만…

“뭐지?”

- 저번에 서신을 전할 때 본 테이룬 경의 태도로 볼 때 인장만으로는 명령을 안 따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어떻게 하기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 예?

“테이룬을 귀환 못 시키면 너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다.”

-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걸 테우펠 재…

근위 기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테우펠 공작의 모습은 사라졌다.

근위 기사는 손거울 모양의 마법 도구를 품 안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먹고 살기 힘드네. 휴, 별수 없나.”

높으신 분이 죽으라고 하면 죽지는 않아도 적어도 죽는 시늉은 해야 하는 게 기사였다.

근위 기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테이룬을 향해 뛰어갔다.

근위 기사를 힐끗 쳐다본 테이룬은 혼자서 짐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근위 기사가 다 포기한 채 말을 걸었다.

“테이룬 경. 어째서 혼자 이 마물의 숲을 걷고 계신 겁니까?”

“원래는 영주를 만나 지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자리에 없더군.”

“그러면 길잡이라도 데리고 오셔야지요.”

“했다.”

“혼자신데요?”

“길잡이와 짐꾼들은 밤을 틈타 도망쳤더군. 무섭다고. 그보다 넌 또 뭐냐?”

“저 모르시겠습니까? 저번에 서신을 가져온 전령입니다. 이번에도 서신을 가져왔고요.”

“서신이라고? 인장이 새겨진 건가?”

“그렇습니다.”

테이룬이 근위 기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근위 기사가 시선을 피해 품속에서 인장이 새겨진 서신을 내밀었다.

테이룬이 고개를 저었다.

“보여줄 필요 없다. 이번에는 거기에 뭐가 적혀 있든지 간에 따를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테이룬 경. 이 서신에는 국왕 전하의 인장이 찍혀 있습니다. 왕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성으로 복귀했을 때 전하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로 병상에 누워계셨다. 그런데 왕명을 내리셨다라. 언제부터 테우펠 공작이 왕이던가?”

“그게 아니라 인장이 찍힌 서신의 내용은 전하가 내린 명령과 같다는 건 테이룬 경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때는 속는 셈 치고 돌아갔었지.”

“그렇다면 이번에도…”

“한 번은 넘어갈 수 있어도 두 번은 못 참는다.”

“테이룬 경. 이 서신의 인장을 보시면 싫어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근위 기사가 서신을 펼쳐 마법 인장을 띄우려는 순간이었다.

테이룬의 검이 뽑히더니 근위 기사를 향해 휘둘러졌다.

근위 기사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으악!”

- 철컥.

테이룬의 검이 검집에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근위 기사는 급히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그의 목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어? 살아 있네?”

“벤 건 네 목이 아니라 서신이다. 아예 서신을 안 보면 그만이니까. 요즘 근위 기사들은 이러니 테우펠 공작에게 붙어 열심히 꼬리나 흔들고 있는 거겠지.”

그 말에 내려다보니 서신이 두 조각난 채로 불타고 있었다.

근위 기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목숨을 걸고 전해야 하는 서신이 펴지지도 못한 채 잘려진 것이다.

테이룬이 서신을 자른 것과 별개로 이건 근위 기사의 책임이었다.

“서신이 저 모양이 되었으니 제대로 관리를 못한 제가 책임을 져야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걸 누가 알겠나? 그냥 돌아가서 보았다고 보고하던가.”

“근위 기사인 제가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전 죽었다고요!”

테이룬이 기가 찬다는 듯 근위 기사를 보았다.

자신도 꽤나 고지식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 근위 기사는 더한 것 같았다.

“그러면 당분간 왕성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되겠군.”

“예? 테이룬 경.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목적을 달성하면 알아서 돌아갈거다. 그러면 국왕 전하가 다시 정신을 차리실 테니.”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가보면 알겠지. 그보다 네 놈, 나와라.”

테이룬이 검집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머리에 불이 붙은 채로 튀어나왔다.

“앗, 뜨거!”

그는 김검천을 피해 마을을 탈출한 후 인간 사냥꾼 본거지로 돌아가던 주술사였다.

하필이면 돌아가는 길에 테이룬을 만난 것이다.

주술사를 보던 근위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룬이 무슨 수를 쓴 것 같은데 어떻게 주술사의 몸에 불을 붙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마법이나 마법 스크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주술사를 향해 테이룬이 입을 열었다.

“어딘가 익숙하다 싶더니 주술사인가. 마침 잘 되었군. 안내해라.”

주술사가 울상을 지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순위 제2위에 올라와 있는 테이룬을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명단의 서열 1위는 김검천이었고.

머리카락을 잘라 불을 끈 주술사가 테이룬을 보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로 말입니까?”

“당연한 걸 다시 알려줘야 하나? 대장장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는 거다.”

주술사의 표정이 곧 죽을 것 같이 변했다.

대장장이가 있다는 그곳에 마을에서 귀환한 김검천이 먼저 돌아가 있을 지도 몰랐다.

마을에서 겨우 탈출했는데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가는 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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