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48화 (48/250)

48화

김검천은 위관급 파워드슈츠를 대충 장착한 채 서둘러 무기고를 나섰다.

움직임이 불편한 만큼 전투력이 하락할 것 같지만 사병용 파워드슈츠보다는 나았다.

“적이라니 무슨 말이지?”

“저기를 좀 보십시오.”

쿠퍼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전함 외부 주변 광경을 투영한 5D 홀로그램이 떠다니고 있었다.

의외로 쿠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나타나는 홀로그램을 보면서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미리내가 홀로그램을 이용해 나타난 모습을 먼저 봐서였다.

놀라움보다 문제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홀로그램을 살펴보던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함선의 보안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증거가 여기 있었군. 그런데 저자는 누구지?”

[확인 중입니다.]

“네가 찾은 게 아니었나?”

[이번에 기동한 외부 보안 시스템이 침입자라고 판단해 자동적으로 홀로그램을 띄웠군요.]

“네가 관리할 수도 있잖아. 외부 보안 시스템이 굳이 기동할 필요가 있어?”

[제가 제어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에너지가 이중으로 소모됩니다. 그렇게 변경할까요?]

“당장 기동하는 데 무리가 없다면 그냥 이대로 가는 게 낫겠지. 쿠퍼, 그래서?”

홀로그램의 한 곳을 가리키려던 쿠퍼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공중에 띄웠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지금은 안 보이는군요.”

“아, 그건 목표가 계속 이동 중이라 그런 거지. 내가 찾아주도록 하지.”

김검천이 손가락으로 5D 홀로그램을 만졌다 늘렸다 하면서 함선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모습을 나타낸 사람들을 향해 쿠퍼가 입을 열었다.

“저들이 제가 말했던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설마 저분이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쿠퍼의 저런 심각한 표정은 처음 본 김검천이 물었다.

“누구길래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이곳의 왕국 기사들 중 최강이라는 테이룬 경입니다.”

“최강이라고 하는 걸 보니 강한 자인 것 같긴 하군. 얼마나 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검천님! 테이룬 경이라고요?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마스터 나이트입니다!”

“오러라면 마나의 극에 달해야만 쓸 수 있다는 그것 말이군. 그러고 보니 테이룬이라는 자의 얼굴을 멀리서 본 것 같긴 한데. 언제 보기라도 한 건가?”

미리내가 홀로그램에서 보이는 테이룬의 얼굴을 분석해 데이터를 확인해 보았다.

함선에 설치되어 있는 외부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김검천의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이 데이터를 본 적이 있어서 일 것이다.

[동일인물 확인. 테이룬이라는 자는 함선이 공격당할 무렵 이미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군. 혹시 그 당시 함선 외부 장갑에 피해를 입히기라도 했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검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함선 외부장갑은 위관급 파워드슈츠보다 더 단단했다.

만약 테이룬이 함선 장갑을 파손시킬 수 있었다면 파워드슈츠 또한 자를 수 있는 것이다.

미리내가 장갑이 받은 피해를 확인 후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러를 사용한 모양이지만 함선의 장갑에는 큰 피해를 가하지 못했습니다.]

“다행이로군. 만약 함선 장갑을 손상시킬 수 있는 상대라면 나에게도 위험한 상대였을 거야. 그 장갑에 피해를 입힐 위력이면 위관급 파워드슈츠 정도도 잘려나갈 테니까.”

쿠퍼는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오러를 쓸 정도면 국가의 운명을 건 전투에서 승리와 패배를 가져올 수도 있는 존재였다.

마스터 나이트를 저렇게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김검천이 미리내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테이룬이라는 기사가 오러의 위력을 조절해 공격했다면 장갑이 파손 되었을거 같나?”

[가능성은 있습니다. 처음 오러는 전력을 다해 장갑을 공격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숨겨둔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거군.”

[그것까지 감안해 우리가 철저히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장착한 파워드슈츠부터 몸에 맞게 조정하라는 거군.”

[지금 상태라도 공격력과 방어력 모두 30% 이상 증가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준비는 많이 해둘수록 좋지. 그러면 저 녀석들이 분화구 아래에 도달하기 전까지 가능한 정비를 해둬야겠군.”

김검천은 쿠퍼와 세이야에게 부탁해 위관급 파워드슈츠 조정을 시작했다.

그 둘에게는 무기고에 대한 임시 출입권한을 부여한 뒤였다.

미리내가 물었다.

[적을 더 가까이 끌어들이시지 않으실 겁니까? 전함에서 지원 사격 정도는 가능합니다.]

“적은 상급 기사를 넘어서는 상대야. 암건 정도의 위력의 공격은 소용없을 거라고.”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함선은 이미 들킨 상태고요.]

“이 싸움 이후를 생각해야지. 싸우다 보면 함선의 광학 미채 장치가 파괴될지도 모르잖아. 장갑은 오러도 버티는 모양이지만 해당 장치는 그보다 약한 충격에도 부서질 수가 있어.”

[광학 미채 장치는 모습만 안 보이게 하는 거지 공격 자체를 투과시키는 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광학미채 장치가 부서지면 지금 당장은 고치는 게 불가능했다.

잘 동작하고 있는 은신 상태가 풀리면 위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미리내, 녀석들이 분화구 아래까지 오면 날 불러.”

[알게습니다.]

십여 분 정도 지났을 무렵 미리내가 김검천을 호출했다.

[적이 도착했습니다. 총 3명입니다.]

“적당한 수로군.”

“김검천님. 혹시 저도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무기고를 나서던 김검천이 쳐다보니 쿠퍼는 양손에 금속 망치를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싸울 일이 생기니 쿠퍼의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 이후로는 세이야만 밖을 돌아다녔으니까 몸을 쓰고 싶을 만하지. 쿠퍼.”

“예.”

“너도 네 한 몸 정도는 간수 할 수 있으니 동행해도 좋다. 하지만 테이룬과 겨룰 생각은 하지 마라.”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에를 놔두고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날 믿는 건가?”

“제가 김검천님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그 말을 하는 쿠퍼는 김검천에 대한 신뢰감으로 가득 차 있는 표정이었다.

김검천은 그 믿음에 대답해 주었다.

“알겠지만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 물론 싸울 때 내 명령에 복종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좀 아쉽긴 합니다. 테이룬 경과 같은 마스터 나이트와 한 번쯤은 싸워보고 싶긴 했거든요.”

“대장장이가 할 만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아. 기사라면 이해하겠는데.”

김검천의 말에 쿠퍼가 움찔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 뭐냐. 강자와 싸우는 건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죽으면 안 되겠지만요.”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어야 하니까. 최악의 경우 우리가 널 대신해 리에를 보살피는 건 상상하기도 싫군.”

“그렇습니다. 리에는 부모가 필요하지요. 가족도요.”

그 말을 하는 쿠퍼는 어딘가 침울해 보였다.

김검천은 쿠퍼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있는 이상 네가 죽을 걱정은 없으니까.”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검천이 함선 밖으로 나서 분화구로 올라서면서 슬쩍 내려다보았다.

쿠퍼는 뭔가 생각에 잠긴 채로 따라오는 중이었다.

“내가 쿠퍼에게 뭔가 말을 잘못한 게 있었던가?”

[김검천 함장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어떤 말이라도 잘못일 리가 없습니다.]

“뭐야, 그게. 내가 절대적 존재도 아닌데 매번 그럴 수는 없지. 난 어디까지나 사람이잖아.”

[저한테는 누구보다도 절대적이며 영 번째 순위인 존재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고마운데. 살면서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은 인생이라고 하더라고.”

[…]

“미리내, 갑자기 왜 조용해진 거야?”

[…저를 사람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거야 미리내 정도면 사람 아니겠어? 쿠퍼도 한눈에 반해 고백을 할 정도였고.”

[그건 단순히 제 인공지능 설계자가 새겨놓은 영상에 불과합니다. 실제 모습이 아닙니다.]

“너무 고민하는 거 아니야? 난 좋아한다고.”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미리내가 응답했다.

[김검천 함장님.]

“응.”

[경고. 45도 아래 방향에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녀석들인가. 손님들이 오셨으니 주인으로서 대접을 하는 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겠지?”

김검천이 100여 미터는 될 만한 높이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테이룬 일행 위로 내리쬐는 태양 빛을 가리면서.

주술사는 머리 위로 그림자가 생기자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하늘에서 자연 재해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첫눈에 김검천이 누군지 알아본 주술사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김검천이다!”

기겁을 한 주술사는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생각만큼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룬과 근위 기사는 각자 방어 자세를 갖춘 채 뒤로 물러섰다.

주술사의 불쾌한 비명 소리만으로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으니까.

- 쿠웅!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쿠헥!”

눈과 코에 흙먼지가 잔뜩 들어간 주술사가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테이룬과 근위 기사는 갑옷에 달려있는 망토로 코와 입을 가렸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흙먼지 때문에 주위가 잘 안 보이자 테이룬이 팔을 내 저었다.

- 후웅.

가볍게 휘두른 모양새였지만 주변에 떠다니던 흙먼지들은 단번에 사라졌다.

마나로 강화한 신체의 위력이었다.

갈라지는 흙먼지 사이로 김검천이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주인을 맞이해 집 앞 청소도 해주다니. 손님치고는 꽤 정중한데?”

테이룬이 대답했다.

“그 청소 대상에는 너도 들어가 있지.”

“정중하다는 말을 취소해야겠어. 손님이라도 무례하면 주인은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

“얼마나 무서운지 곧 알게 될테니 기대가 되는군. 네가 김검천 맞는가?”

“그게 바로 나지. 어떻게 내 이름은 알았나?”

“널 많이 본 녀석이 이 자리에 있거든.”

김검천이 그제야 주술사를 알아보았다.

세이야의 마을에서 보았던 녀석이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었군. 죽을 거면 굳이 이 자리에 안 나타나도 되었을 텐데.”

주술사가 뭐라고 하려는데 테이룬이 먼저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자가 문제가 아닐 텐데.”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 하니 네가 이 왕국에서 최강을 다툰다고 하더군. 그런 것치고는 제법 정중하게 굴고 있잖아?”

“어느 곳을 가든지 예의를 지키는 건 중요한 법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가? 그런 것치고는 얼마 전 방문한 자들의 태도는 형편없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본인도 필요해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었거든.”

“그러는 너도 남이 사는 곳에 대놓고 칼을 휘두른 적이 있지 않았나? 내가 보기에는 모두 비슷한 것 같은데.”

그 말에 테이룬이 웃었다.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니군. 이렇게 온 이유도 칼을 휘둘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니까.”

“역시 두 사람 때문에 온 건가.”

“말로 좋게 처리 못 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테이룬이 검집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튕겨진 검날이 드러나며 살벌한 빛을 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