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그 말에 용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만큼 단검을 쥔 손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상대의 행동을 보니 인질이라는 이름의 방패도 별로 유용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제가 없다고? 뭘 할 작정이냐?”
김검천이 대답했다.
“뭘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착해서 여기 사람들을 구한 게 아니라고. 네 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때려잡다 보니 구하게 된 셈이지.”
“그건 이쪽이 알 바 아니지! 당장 무기나 내려놓고 투항하라고!”
“보다시피 무슨 무기가 있다는 거지? 설마 내 손이라도 무기 대신 자르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김검천은 손과 발만으로도 용병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보이고 있던 것이었다.
뻔히 보이는 데도 그걸 망각할 정도로 김검천에게 겁을 먹은 용병이었다.
그러니 인질의 생명으로 김검천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지만.
용병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러면 양손을 머리 뒤로 하고 무릎이라도 꿇으면 안 될까?”
“싫다면?”
“네 놈 때문에 이 무고한 생명은 사라지게 되어도 괜찮다는 거냐?”
“아니, 둘 다 거절한다.”
단호한 김검천의 말에 불길한 느낌이 든 용병이 애원하듯이 통보했다.
“그러면 그냥 이 자리만 떠나라. 우리 일에 상관하지 말고.”
“원래는 그러려고도 했었지. 그런데 네가 하는 행동을 보니 마음이 바뀌어버렸네.”
“무… 무슨 짓을 할 작정이냐?”
“오랜만에 불장난이나 해볼까 하는데. 기왕이면 화려하게 폭죽도 곁들이는 게 좋겠지.”
- 키잉.
김검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살과 비슷하게 생긴 손바닥만 한 미사일 하나가 튀어나왔다.
뭔지는 몰라도 용병은 일단 인질로 삼은 사람을 자기 몸에 꼭 붙였다.
인질에 가려 이제는 용병의 얼굴마저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인질이 고기 방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거 같자 용병은 다시 용기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런 화살로 뭘 어쩌겠다는 거냐? 설마 우리 둘 다 죽이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넌 마음껏 걱정이나 하고 있으라고. 어떤 방법으로 실행할지 정하는 건 나거든.”
김검천이 인질극을 벌이는 용병은 내버려 둔 채 다른 용병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하지만 한 번 더 물어보지. 네 녀석들 중에서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질을 풀어주는데 협조해라.”
용병들은 김검천의 말에 동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기 시작했다.
“인질이 잡혀 있으니 손도 발도 못 쓰는가 보네?”
“협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맞아. 사람 몇 명 죽는 게 무슨 대수라고.”
“네 녀석만 죽이면 도망간 놈들을 끌고 와서 다시 놀아줄 거라고. 죽을 때까지 말이야.”
“네 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죽는 순간까지 널 저주하게 만들어주지.”
김검천이 무수한 관중들의 답변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 곧 죽을 테니 예의상 한번 물어본 거야. 미리내, 예상 확률은?”
[성공 확률 99.12%입니다.]
“그 정도면 100%라고 할 수 있지. 시간만 잘 맞추도록. 준비는?”
[시한폭탄형 유도 미사일. 조준 완료.]
“발사.”
[발사합니다.]
- 슈욱.
발사된 미사일이 용병들과 정반대에 있는 지부 벽을 뚫고 튀어 나갔다.
그저 화살처럼 보이는 게 벽을 부술 정도의 위력이었으니 용병들이 놀라긴 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미사일이 날아가 버리자 다들 긴장을 풀며 말했다.
특히 인질을 붙잡고 있던 용병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흐흐, 이쪽으로 쏘는 줄 알았는데? 역시 너도 별수 없는 정의로운 녀석이로군.”
“오해는 하지마. 네 쪽으로 쏜 게 맞거든. 그러니 네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김검천의 시선이 천정을 향했다.
용병도 그 시선을 따라 머리 위로 무의식적으로 눈이 갔다.
그 순간 2층 바닥이 무너지며 미사일이 떨어져 내렸다.
“으악!”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본 용병이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머리통만 한 돌과 나무, 그리고 미사일이라는 금속 덩어리가 그를 노리는 게 보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질 확보 같은 게 신경 쓰일 리 없었다.
대신 김검천이 단검이 목에서 떨어진 걸 보자 인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떨어진 미사일은 이상하게도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 휘릭.
손목 부근에서 가는 금속 채찍이 빠르게 튀어 나가더니 인질을 휘감더니 그대로 낚아챘다.
특수 금속 채찍은 가늘긴 해도 사람 한 명 정도 잡을 정도의 힘은 충분히 낼 수 있었다.
그것들이 뭉친 힘은 바위도 으깰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김검천은 해방된 인질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밖으로 집어 던질 테니 가능한 멀리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좋을 거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말 안 하셔도 도망갈 작정이었고요.”
“역할에 충실한 자세군요.”
밖으로 던져진 인질은 땅을 몇 번 구르더니 벌떡 일어나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단검의 감촉이 목에 남아있는 한 이쪽 방향으로는 고개도 안 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검천이 느닷없는 사태에 당황하고 있는 용병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육체적 언어보다는 지옥의 폭죽이 취향이겠지? 사양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라고.”
그 말을 끝으로 김검천도 용병 지부를 그대로 빠져나갔다.
더 이상 용병들에게는 볼 일 같은 건 없다는 태도였다.
이제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려던 용병들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모든 게 종료되었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사라지다니.
김검천이 남긴 말도 이해되지 않았다.
“뭐지? 저 녀석 왜 그냥 가는 거야?”
“그러게. 혹시 도망간 건가?”
“맞아, 우리는 숫자가 많잖아.”
“숫자가 문제일 리가. 좁은 공간에서 싸움은 불리하다고 밖에서 기다리는지도 모르지.”
“방심하지 말자고. 저 녀석은 나중에 지부장님이 돌아오시면 해결하는 게 나은 거 같아.”
대부분의 용병은 바닥에 꽂힌 미사일 주위로 몰려들었다.
김검천이 돌아올까 불안해서 그런지 구멍 쪽으로 살피러 간 용병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거야말로 김검천이 남겨 두고 간 전리품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게 뭐지? 이상하게 생겼는데.”
“몰라. 그래도 벽이나 천장을 부쉈는데도 흠집 하나 안 보이는 걸 보니 금속은 맞나 봐.”
“그러면 이 화살 제법 비싼 금속으로 만든 게 아닐까?”
“헤헤. 나중에 근처 대장간에 팔아버리자고. 그보다 이 빨간 거 말이야. 뭐지? 움직이는데.”
용병이 가리킨 건 미사일 몸체에 새겨져 있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 전광판 부분이었다.
줄어들고 있던 시간은 이제 막 숫자 0을 가리키는 중이었다.
곧이어 미사일로부터 빛이 새어 나오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용병들을 감싸 안았다.
아주 화끈하게.
- 쿠왕! 펑!
붉은 화염의 폭풍에 휩싸인 용병 길드 지부가 한순간 거대한 모닥불이 돼버렸다.
돌로 지어진 곳이라 내부에서 미사일의 폭발력이 더욱 강화되었기도 했다.
김검천이 한마디 했다.
“캠프파이어치고는 좀 큰가? 아니, 원래 야외에서 불꽃은 크면 클수록 보기 좋다고.”
멀리서 폭발 소리에 놀란 세이야가 급히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데탈과 내더도 같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난리가 났는데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용병 길드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 눈에 선했다.
다가온 세이야가 김검천에게 물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생각해 줘서 고맙구나. 저런 녀석들이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그건 알지만 용병 지부가 저렇게 된 걸 보니 걱정이 돼서요. 엄청난 폭발이었거든요.”
“데탈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군.”
달려오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은 데탈이었다.
용병 지부가 날아간 걸 보니 다리에 힘이라도 빠진 모양이었다.
심지어 옆에 있던 내더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떨어진 침이 바닥에 고일 지경이었다.
데탈이 떨리는 목소리로 김검천에게 물었다.
“지부를 무슨 수로 저렇게 날려버린 겁니까? 설마 요즘 유행한다는 화약이라도 쓴 겁니까?”
“어떻게 보면 그렇긴 하네.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데탈이 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같은 용병 손에 죽을 뻔한 제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요. 그저 놀라서 물어본 겁니다.”
“너에게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겠군.”
“보통은 자기 집이 날아가면 화를 내기에는 충분하거든요.”
“오래된 건물 같아 이번 기회에 새로 만들라고 배려해 준 거다. 감사받아야 할 일이지.”
“그러고 보니 건물이 좀 오래되긴 했지요.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요. 아차!”
김검천의 말에 넘어가려던 데탈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런 말로 넘어갈 리 없잖아요! 대부분의 용병들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고요.”
“하긴 용병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겪어보니 더한 것 같더군. 이곳에서는 특히 제멋대로 하고 지내는 것 같고. 이게 다 영주 때문인가?”
“용병들의 악행에 영주가 손 놓고 있는 게 한몫한 건 맞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용병에게 일을 시킨 게 영주라면 이유가 되겠지.”
“그게 사실이라면 영주에게 부탁하면 이곳 용병 지부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거네요. 청탁에 돈이 좀 들긴 하겠지만요.”
“그거 아나?”
“뭘요?”
“이곳 영주가 내 손에 죽었다는 거.”
“예? 미친 겁니까?”
“그가 자유의 마을에서 인간이라는 인간은 싹 다 죽여 버리더군. 자기 기사들도 포함해서.”
데탈이 급히 태세를 전환하며 말을 바꾸었다.
“이제 보니 미친 영주가 죽을 짓을 했군요. 잘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덤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김검천 아닌가.
거기다 자신보다도 강한 사람이었다.
용병으로서 강한 실력자에게 복종하는 게 몸에 밴 데탈이 공손히 말을 이었다.
“사실 이곳 영주는 원한을 많이 사서 누구에게 어디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몸이었지요.”
“거기다 이곳 왕국 안에서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마물의 숲 안에서 죽었다.”
“아, 왕국의 영향력이 못 미치는 것까지도 생각하시고 처리하신 겁니까?”
“운이 따르기도 했고. 사람들이 마물의 숲으로 도망가는 걸 방치하는 이유도 알 것 같더군.”
데탈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마물의 숲에 사는 인간들을 방치하는 건 그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힘이 없기에 마물의 숲으로 쫓겨난 그들은 다른 힘 있는 자들의 사냥감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사냥을 하다 김검천에게 당한 영주와 같은 경우도 있지만 극히 드문 일인 것이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거기다 증인이나 증거도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못 질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곳 용병 길드 지부장이 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만요.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더 무섭다고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얼마 전에 테우펠 공작에게 불려가 수도에서 돌아올 예정일 겁니다.”
“안 그래도 수도로 가봐야 할 것 같았는데 잘 되었군.”
“지금 시기에는 수도로 안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괴물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뭐가 나타나도 상관없지만.”
데탈이 고개를 저었다.
“강하시다는 건 직접 겪어 봤으니 압니다. 하지만 김검천님도 사람이지요?”
“내가 사람인가 아닌가 고민 대상인지는 몰랐군.”
“김검천님의 힘을 보면 가끔 사람인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은 결국 먹고 자고 마셔야 한다는 거지요. 아무리 강해도요.”
김검천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대충 알 거 같았다.
“잠깐 잠을 자는 건 물론이고 휴식도 못 할 정도로 괴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