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끄어어…”
라바골렘이 지부장의 말에 호응했다.
명령을 인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능 정도는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리내 같은 인공지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저급해 보이긴 했지만.
세이야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골렘이라면 마석을 에너지원으로 반영구적으로 움직인다는 마법 물체잖아. 하지만 골렘도 골렘 나름이지 저런 건 일개 용병이 지닐만한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용병 지부장이 세이야를 향해 히죽 웃었다.
“마법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는 듯하구나. 네 말대로 저건 여기서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지. 누가 버리고 가기라도 한 모양이더군.”
“저런 걸 그냥 버리고 갔다고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이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라면 상급 기사라도 상대할 수 있는지 의문인 전투 병기인 것이다.
용암 부분은 제쳐두고라도 돌로 만들어진 골렘의 신체에 제대로 된 타격을 주려면 말이다.
용병 지부장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알 게 뭐냐. 주운 사람은 잘 써주기만 하면 그만이지.”
김검천이 용병 지부장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군. 마법 물체라는 골렘이 움직이려면 마나 같은 에너지가 원이 필요할 텐데.”
“골렘은 마석으로 움직인다고 저 녀석이 말하지 않았나?”
“다른 곳도 아니라 이곳은 마나를 쓸 수 없고 있어도 사라진다는 지역이니 궁금한 거지. 저것에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한 거지?”
그때 김검천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아까 용병이 걸려 넘어질 뻔한 하얀 물체였다.
그건 사람의 해골이었다.
횃불의 빛이 약해서 구석진 곳이 잘 안 보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까지 사람들을 라바골렘에게 먹이로 던져준 것인지도 몰랐다.
이곳 생명체에게는 마나가 기본적으로 있다고 하지 했으니까.
김검천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본 용병 지부장 입꼬리가 밀려 올라갔다.
“알아채는 게 빠르군. 대충 짐작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눈치챈 거지?”
“우리를 먹이라고 했을 때부터지. 사람에게 마나가 있다고 했으니 그걸 섭취하게 한 건가?”
“정답이야. 이곳에서는 마나를 쓸 수 없으니 저런 무거운 걸 동굴 밖으로 꺼낼 수도 없더군. 그래서 저 라바골렘을 움직이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써보고 결론을 내렸지.”
“그게 인간인가?”
“마법사들처럼 다른 생명체들도 가지고 실험해 보았지만 역시 인간이 가장 효율이 좋더군.”
“내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로군.”
용병 지부장이 손을 높이 쳐들며 대꾸했다.
“칭찬 고맙군. 자, 먹어치워라! 라바골렘이여! 네가 원하는 마나를 위한 먹이가 저기 있다!”
용병 지부장의 말에 따라 라바골렘이 김검천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가장 근처에 있던 용병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올렸다.
용병을 바라보는 라바 골렘의 두 눈이 붉게 번뜩였다.
“뭐야? 이거? 살려줘!”
용병 지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뭘 하느냐! 라바골렘! 네가 잡아야 할 놈들은 용병이 아니라 저기 있는 두 놈이야!”
“지부장님! 끄아악!”
라바골렘의 손아귀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용병에게 닿자 몸에 불이 붙으며 타올랐다.
용병을 잡고 있던 라바골렘의 몸에서 나던 붉은 빛은 한층 더 강렬해졌다.
잡혀 있던 용병이 잿더미가 되어 버리자 라바골렘은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섰다.
라바골렘의 다음 목표도 용병이었다.
이상하게도 옆에 있는 김검천과 세이야에는 흥미도 없는 모양이었다.
통제 불능의 사태에 용병 지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용병들만 때려잡고 있는 걸 보니 미칠 것 같았다.
죽이라는 김검천과 세이야는 내버려 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뭐지? 왜 갑자기 말을 안 듣는 것이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김검천이 세이야를 붙잡더니 용병 지부장 맞은편으로 뛰어올랐다.
용병 지부장과 옆에 있던 용병이 무기를 쥐었지만 김검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굳이 그가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손을 쓰는 대신 김검천은 입을 열었다.
“너희들 말이야. 생각은 나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뭐라고?”
“너희들이 여기에 데려온 자들은 다들 너희보다 강자였겠지.”
“물론이지! 쉽게 해치울 수 있다면 굳이 여기로 유인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면 유인된 자들이 가지고 있던 마나는 최소한 너희보다 많았을 테지?”
“당연한 것 아닌가? 이곳에서는 마나가 곧 강함을 나타내는 기준이니까. 육체 단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마나는 한계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그런데 노리라고 한 상대의 마나가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이 세상에 마나가 없는 생명체 같은 게 존재할 리가.”
“그런데 그런 존재가 여기 있군. 난 몸에 마나가 없을 테니까.”
용병 지부장이 입가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식 외의 말이었지만 그렇다면 라바골렘이 저러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
“서… 설마!”
“심지어 세이야도 평범한 소년이라 기사가 아니야. 즉 너희 보다 마나가 적다는 거지.”
용병 지부장이 세이야를 바라보았다.
전신 금속 갑옷을 온몸에 두른 저 녀석이 일반인에 불과하다니.
“어딜 봐서 평범하다는 거냐! 그런 갑옷은 하급 기사들도 입고 다니기 힘들어 한다고!”
“믿든지 말든지 사실 내가 알 바 아니지. 확실한 건 마나가 더 많은 쪽은 너희들이라는 거다.”
“우리들이 먹잇감이라고?”
“라바골렘이 너희들의 말을 따른 건 알아서 맛있는 먹이를 가져와서 그런 거였던 모양이야. 그런데 지금은 너희들이 더 맛있는 상태지. 배까지 고파 보이니 눈에 너희들이 들어올 리 없고.”
그 말을 끝으로 김검천이 세이야를 데리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라바골렘은 용병들을 먼저 노릴 테니까 급할 건 없었다.
- 치익.
곧바로 옆에서 불길한 소리와 함께 냄새가 풍겨왔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시끄럽던 용병들의 비명이 사라진 지 예전이었다.
용병 지부장은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가 자신을 덮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아하하, 편식하는 것도 가끔은 좋은 법이라고. 그러니 마나가 많다고 꼭 먹을 필요는 없잖아?”
그 말로 끝으로 용병 지부장도 다가온 라바골렘의 손아귀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렸다.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에게 라바골렘의 먹이가 돼버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것 같군.”
라바골렘은 용병 지부장의 마나를 음미라도 하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김검천에게는 전혀 흥미가 없어 보였다.
이윽고 라바골렘은 세이야에게 손을 뻗었다.
용병들만으로 배가 차기에는 마나가 모자란 모양이었다.
“으앗! 김검천님!”
반자동 전투 모드로 어느 정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된 세이야는 암건을 마주 쏘았다.
- 투투퉁.
무수한 총알이 라바골렘의 돌로 된 표면을 파고들었다.
사람이라면 이걸로 즉사했을 테지만 라바골렘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라바골렘은 아무론 망설임도 보이지 않은 채 다시 세이야를 노렸다.
세이야는 그대로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움직임은 둔해 보여서였으니까.
그게 세이야의 실수였다.
- 휘익. 탁.
라바골렘은 보는 것만큼 느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느렸다면 용병들이 그 짧은 시간 내에 다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라바골렘에게 잡힌 세이야 어깨 부분의 파워드슈츠가 열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세이야의 실력과 사병용 파워드슈츠로는 이런 근접거리에서 실드를 만들어 낼 수도 없었다.
- 위이잉.
그 순간 백열하는 빛의 검이 세이야와 라바골렘의 팔을 스치고 지나쳤다.
파워드슈츠의 백병전용검, 광선검이었다.
- 치이익.
라바골렘의 팔이 떨어져 나가며 잘린 부위로부터 용암이 솟구쳤다.
라바골렘의 붉은 눈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금 일격으로 김검천을 적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라바골렘이 생김새만큼이나 투박한 말투로 소리를 냈다.
“마나. 적. 적은 죽인다.”
겨우 풀려난 세이야가 라바골렘을 피해 뒤쪽으로 굴러갔다.
세이야도 김검천을 따라 광선검을 꺼내 라바골렘의 다리 부분을 베었다.
하지만 김검천과는 달리 다리를 전부 베어내지는 못했다.
끈적거리는 용암이 광선검을 휘감아 움직임을 막은 것이었다.
세이야가 다시 같은 곳을 베려다가 몸을 피했다.
라바골렘이 잘려나간 부위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세이야를 차려고 든 것이었다.
공격을 피해 바닥을 구른 세이야가 라바골렘을 보더니 외쳤다.
“김검천님. 이거 생각보다 끈질긴 녀석 같은데요? 저걸 보세요.”
거기에는 팔다리가 멀쩡해진 라바골렘의 모습이 있었다.
베여 떨어진 팔을 들어 잠시 가져다 대자 다시 붙어 버린 것이다.
세이야에게 베인 다리 또한 그 짧은 사이에 복원된 상태였다.
세이야가 어이가 없는 듯했다.
“골렘 주제에 트롤과도 비교할 수 있는 재생력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요.”
김검천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더한 것 같군. 적어도 트롤은 팔이 베이면 고통이라도 느꼈거든. 그런데 저렇게 재생하는 게 이상한 건가?”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요. 마석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 보통은 내구성을 중시하거든요. 재생까지 하는 골렘이라니 신기할 수밖에요.”
“그러면 연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인지도 모르겠군.”
“이곳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녀석을 유인해야겠지. 세이야,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치워둬라. 녀석은 내가 막고 있지.”
김검천은 달려들자 라바골렘이 주먹을 날렸다.
사람 머리보다도 더 큰 돌주먹이었다.
맞기라도 하면 더 이상 어떤 고민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살아 있다는 증거일 테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너와는 다르게.”
김검천은 주먹을 피하며 광선검으로 라바골렘의 어깨부터 가슴을 그대로 그었다.
“쿠오오오!”
라바골렘의 가슴으로부터 용암이 흘러나왔다.
1000도 전후의 온도라면 사람을 불태우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터였다.
보통이라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하고 피해야 할 것이었다.
김검천은 대신 한 단어를 입 밖에 내었다.
“실드.”
그러면서 김검천은 머리부터 가슴 부분까지만 실드를 전개했다.
비스듬히 실드를 기울여 용암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김검천은 다시 광선검을 반대쪽 어깨부터 가슴으로 그어 내렸다.
그 순간 김검천은 라바골렘의 한쪽 어깨가 원상태로 복원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광선검으로 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베었는데도.
거기에 더해 멀쩡해진 몸으로 돌아간 라바골렘의 무릎이 자신의 가슴을 향하는 것도 보였다.
- 퍽!
공격에 직격당한 김검천이 허공으로 떴다.
파워드슈츠와 합친 몸무게가 100킬로는 넘어가는 신체를 말이다.
라바골렘의 돌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신체는 3000킬로를 가볍게 넘는 몸이었다.
그런 몸을 움직이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한 법이었고.
김검천도 이 정도까지 차이나는 체급을 극복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떠오른 동굴 천장에는 창처럼 뾰족한 종유석이 등을 노리고 있었다.
김검천은 금방이라도 종유석에 박혀버릴 모양이었다.
끔찍한 모습을 떠올린 무서운 상상에 세이야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김검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