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근위 기사가 급히 끼어들었다.
“근위대장님.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필요한 건 놈의 목이지 입이 아닙니다.”
부하의 말에 근위 기사 대장이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 아무리 입을 잘 놀리는 놈이라고 해도 목이 떨어져 나가면 말을 못 할 테지.”
김검천이 대꾸했다.
“네가 내 목을 베어보기라도 했나? 안 해봤으면 말을 말아야지.”
“이놈이 끝까지? 놈을 산채로 데려와라!”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단 근위 기사들이 마나 플레임 소드급 마나참을 동시에 날렸다.
협공에 익숙한 모양인지 세 개의 마나참은 서로 겹치는 공격 방향이 없었다.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공격은 상급 기사가 마나 보호막을 사용한다고 해도 소용없어 보였다.
근위 기사 대장이 김검천을 향해 소리쳤다.
“테이룬과 겨뤄 이겼다고 듣긴 했지만 녀석은 배신자. 너와 실제로 겨루기나 했을까? 그러니 네 녀석은 이걸로도 충분하겠지!”
“그러면 이번 기회에 내가 어떤지 똑똑히 보여줘야겠네.”
김검천은 날아오는 마나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약하지만 푸른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몸의 일부에만 실드를 발동한 것이었다.
좌우를 노리던 마나참은 그대로 김검천의 양손에 하나씩 붙잡혔다.
정면에서 날아들던 마지막 마나참은 김검천이 주먹을 쥔 채로 그대로 후려갈겼다.
- 캬득.
마나참은 그대로 공중에서 박살이 나버렸다.
상대의 실력도 확인할 겸 날려본 마나참이지만 저렇게까지 간단하게 부숴버리다니.
김검천이 마나참을 가지고 노는 걸 본 근위 기사들의 시선이 근위 기사 대장에게 쏠렸다.
“저런 자를 산 채로 잡으라고요?”
“적어도 테이룬 경과 정면 대결했다는 건 사실로 보이는데요.”
“마스터 나이트와 싸워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날 정도라면 저희들만으로 가능할까요?”
“에잇! 마스터 나이트 하나 정도는 우리도 상대 가능하다! 지금부터 사정을 봐주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근위 기사 대장도 검을 빼 들었다.
김검천이 손을 까닥거렸다.
“테이룬이 나와 싸운 건 들은 모양이로군. 그러면 마나참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건 알겠지?”
“네 녀석 정도는 마나참 정도로 충분하다!”
근위 기사 대장이 근위 기사들에게 은밀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약조된 신호에 따라 근위 기사들이 힘을 모아 다시 마나참을 쏘아붙였다.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안 된다니까. 음?”
김검천이 달려들어 마나참을 튕겨내려다 잠시 멈칫했다.
근위 기사 대장의 비웃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4개의 마나참이 뭉쳐 중간에 2개의 붉은 오러로 변해 덮쳐오고 있었다.
마나가 중간에 오러로 변한 건 신기한 일이었지만 김검천이 처리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나참이 붉은 오러로 변하는 순간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만 않았다면.
“오러에서 혈석의 기운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검천은 일단 붉은 오러를 분석하기로 했다.
“실드 전개. 처음 겪는 건 조심스럽게 확인해 보는 게 현명하지.”
푸른 실드가 전방으로 뻗어 나가며 2개의 붉은 오러와 마주쳤다.
- 치지직.
실드에 부딪힌 붉은 오러는 사라졌다.
미리내가 충돌 결과를 보고했다.
[실드 전개로 인해 에너지 5% 저하.]
“오러와 부딪혔다고 해도 에너지가 그렇게 많이 소모될 리가 없는데.”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소모되는 중입니다. 실드 해제를 권해드립니다.]
“실드 해제.”
미리내의 말에 따라 실드를 풀자 실드의 푸른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게 나타났다.
실드에 달라붙어 있던 붉은 오러의 잔재가 떨어진 것이다.
붉은 오러는 마치 생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꿈틀거린 후에야 사라졌다.
김검천은 이런 모습을 어디서 보았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오러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니. 라바골렘의 용암이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나?”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저 붉은 오러는 실드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에너지가 그렇게 급격히 소모되었던 건가. 실드로 막아보기를 잘했군. 테이룬의 오러와 비교하면 이상한 오러니까.”
김검천은 막아낸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붉은 오러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그가 가볍게 오러를 막아낸 모습에 근위 기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지금 오러를 마나 보호막만으로 막아 낸 건가?
“오러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도 가능하다니.”
“저 마갑은 도대체 뭐지?”
근위 기사 대장이 김검천에게 말을 걸었다.
“테이룬과 싸웠다는 말이 아예 거짓은 아닌 것 같구나. 다만 순수한 실력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닌 것 같군. 놀라운 마갑이야.”
그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마나 보호막만으로 오러를 막아내는 마갑이라니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대답하기 귀찮기까지 한 김검천이었다.
“애초에 난 마나가 없는데?”
“웃기지 마라! 그러면 마나 보호막은 어떻게 만들어 냈다는 말이냐? 마갑에 장착된 기능이라고 해도 마나 자체는 착용자의 힘을 빌려다 쓰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마나는 필수다!”
“방금 그건 마나 보호막이 아니라 실드니까 가능한 것이지.”
“실드?”
“그래. 내가 착용하고 있는 건 마갑이 아니라 파워드슈츠라는 것이다. 과학의 산물이지.”
“과학이라면 혹시 화약인가 뭔가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건가?”
근위 기사 대장은 테우펠 공작의 명령으로 화약과 관련된 검열을 시도한 걸 떠올렸다.
잘하면 김검천의 목 말고도 테우펠 공작에게 진상할 전리품이 늘어날지도 몰랐다.
김검천이 팔을 내밀었다.
“말해주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게 나을 테지. 총탄 관통형 선택.”
저기서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근위 기사 대장은 경각심이 들었다.
성벽이 날아간 화약의 위력 덕분에 테우펠 공작에게 욕을 배부를 정도로 먹었지 않은가.
근위 기사 대장이 급히 소리쳤다.
“마나 보호막을 발동해라!”
“암건 발동.”
근위 기사들이 지시에 따라 마나 보호막을 발동했다.
그 위를 총탄이 덮쳤다.
- 퍼퍼펑.
마나 보호막을 쉴 새 없이 두들기는 탄약의 세례에 근위 기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총알이 날아올 때마다 마나 보호막으로부터 물결 같은 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상급 기사 이상의 마나로 강화된 신체로도 총탄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고.
“이게 뭐지?”
“마법이나 마나를 쓴 공격이 아닌 건 확실한데.”
“이런 속도와 위력의 공격이라니. 마나 보호막을 못 쓰는 자들에게는 정말로 유용하겠어.”
“마나 보호막을 뚫을 정도는 아닌 게 정말로 다행인데.”
총알이 마나 보호막을 못 뚫는 걸 확인했다.
그러자 마음 놓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여유를 찾은 근위 기사들이었다.
공격을 받으면서도 근위 기사 대장이 김검천에게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이게 화약을 사용한 공격이라는 건가?”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원리는 비슷하거든.”
“너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
“말했지 않았나? 김검천이라고.”
“그걸 물은 건 아니다! 이걸 보니 테우펠 재상님이 걱정하시는 바도 알 것 같군. 마나가 없는 데도 사용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힘. 이게 다른 나라의 손에 들어간다면?”
무슨 불길한 생각을 했는지 근위 기사 대장이 몸을 떨었다.
김검천이 말했다.
“몸을 떨 정도로 즐거운 상상이라도 떠올렸는가?”
“아니,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마나와는 관계없이 쓸 수 있는 힘 따위는 사라지는 게 나아!”
“이상하군. 그렇게 따지자면 너희들이 쓰는 오러 자체도 문제 있어 보이는데.”
“…이 힘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 거지?”
“적어도 혈석이 관련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겠더군.”
근위 기사 대장의 눈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저들이 쓰는 오러의 힘에 대해 어떤 식이든 혈석이 관련된 것 같았다.
“혹시 테이룬이 말해주기라도 한 건가? 우리들에 대한 비밀을?”
테이룬이 사라진 뒤로 본 적도 없던 김검천이었다.
뭔가 착각한 모양이었지만 김검천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렇게 해주면 알아서 저쪽에서 정보가 나올 것 같았으니까.
“왕국 최강의 기사라는 호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겠지.”
“하, 그건 그렇군. 제국의 마스터 나이트인 킬만도 대충은 눈치챈 모양이었으니까.”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오러를 쓸 수 있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흐흐흐. 너무 쉽게 말을 하는군. 우리가 어떻게 상급 기사를 넘어 마스터 나이트에 근접했는지 아나?”
“혈석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몸속의 마나를 혈석과 충돌시켜 원래 실력 이상으로 강해진 것이다.”
근위 기사 대장이 망토로 가려져 있는 마갑의 어깨 부분을 슬쩍 드러냈다.
거기에는 혈석이 박혀있었다.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액세서리가 꽤 귀여운데.”
“귀엽다고? 이 혈석을 넣은 마갑을 장착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아느냐? 이걸 사용하기 위해 10명의 근위 기사들이 나섰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남아있는 건 4명뿐이지.”
“꽤 위험하게 들리긴 하네. 그래도 벼락 맞을 확률보다는 엄청나게 높지 않아?”
“벼락이라고?”
“정확히는 불벼락 말이야. 너희들에게 닥칠 미래라고.”
- 위잉.
화살 모양의 미사일 하나가 어깨에서 튀어나왔다.
이제야 암건의 공격에 겨우 적응했는데 다시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다니.
썩은 고기라도 씹은 듯한 표정의 상대를 보며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유도형 미사일. 조준 완료.]
“발사.”
[발사합니다.]
미사일이 하늘 높이 솟아 사라졌다.
근위 기사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김검천과 미사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쪽으로 하라는 공격은 안 하고 어디에다가 저걸 쏜다는 말인가.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렇지 보지 말라고.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릴 거 같거든.”
“상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구멍을 만들어 주지!”
근위 기사 대장의 신호에 맞춰 근위 기사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익숙한 모습이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타타타탁.
4명에게 분산된 공격이 그 혼자에게 집중되었다.
전면에 나선 근위 기사는 힘든 표정이었지만 잠시 버티는 건 문제 없어 보였다.
근위 기사 대장을 포함한 3명의 근위 기사가 마나참을 날렸다.
나쁘지 않은 공격 진형에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은 방어에 전념하고 나머지는 공격으로 전환하는 건가? 태세 전환이 꽤 안정적이군.”
날아오던 마나참이 중간에 만나더니 붉은 오러참으로 변했다.
김검천은 암건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다른 손에 실드를 집중시켜 오러참을 튕겨내려 했다.
오러참에 근위 기사 대장이 날린 마지막 마나참이 섞여들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마나참이 섞여 들어가자 반월형의 오러가 천처럼 펼쳐지며 김검천을 덮쳤다.
실드로 전신을 보호하기에는 늦었다.
오러망은 김검천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여 나갔다.
오러가 아니라 마치 생명이 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면서.
공격이 성공하자 근위 기사 대장이 크게 입을 벌리며 웃었다.
“으하하! 마기술, 오러망의 맛이 어떠냐! 마나참으로 오러를 다시 변형시킬 수 있을 줄은 몰랐을 거다!”
사실 붉은 오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러가 아니었다.
오러가 모든 것을 부수는 힘이라면 붉은 오러는 상대를 잠식해 먹어치우는 힘이었으니까.
다만 위력만큼은 오러와 비슷했기에 다들 오러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런 힘을 지닌 붉은 오러라지만 아직도 김검천을 어찌하지 못하고 대치하는 중이었다.
붉은 오러가 먹혀들어 가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든 근위 기사가 물었다.
“근위대장님. 오러망이 사라지지 않는 게 이상합니다. 아직 버티고 있는 중일까요?”
“걱정 마라. 녀석의 파워드슈츠라는 게 제법 단단해서 탐욕스러운 붉은 오러가 그것마저 먹어치울 때까지 남아있는 거겠지. 저게 오러는 아니지 않느냐.”
“그렇지만 저 녀석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면 테우펠 재상님이 화를 내실 텐데요.”
테우펠 공작의 이야기가 나오자 근위 기사 대장이 움찔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봐주다가 우리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저건 뭡니까?”
근위 기사 한 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공중의 한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근위 기사들도 고개를 들어 하늘의 검은 점이 점점 커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아까 김검천이 쏘아 올린 미사일이 그들을 향해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