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콰콰쾅!
마나 보호막 위로 떨어진 미사일이 폭발하자 직격당한 근위 기사 한 명은 그대로 즉사했다.
오러로 신체를 강화한 테이룬도 자칫하면 죽을 뻔한 위력의 미사일이다.
상급 수준의 마나양을 지닌 근위 기사가 버틸 만한 무기가 아닌 것이다.
주변에 있던 나머지 근위 기사들도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다.
직격은 피했다지만 미사일은 광역 범위를 공격하는 종류의 무기였으니까.
폭발에 휩쓸려 중상을 입고 쓰러진 사람들 중 그나마 사정이 나은 건 근위 기사 대장이었다.
힘들게나마 움직일 정도의 여력은 남았던 것이다.
“커헉! 이게 놈이 말한 불벼락이라는 건가? 죽어서도 우리를 이렇게 만들다니…헉!”
근위 기사 대장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부욱.
붉은 오러에 당해 죽었다고 생각한 김검천이 오러망을 찢고 걸어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아무 무기를 이용하지도 않고 맨손만으로 해낸 것이다.
근위 기사 대장의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팔 부분에 실드를 생성해 붉은 오러를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거지만 그가 알 리가 없었다.
김검천은 남아있는 붉은 오러를 실드로 보호한 발로 뭉갠 후 근위 기사 대장에게 말했다.
“꽤 흥미롭던데? 오러가 이런 식으로도 변화할 수 있는 거군. 테이룬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
“이걸 상대로 고작해야 흥미롭다고? 어떻게 붉은 오러를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있는 거지? 이건 푸른 오러 못지않은 힘이란 말이다!”
근위 기사 대장은 혈석으로 죽을 고생을 하며 붉은 오러를 얻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혈석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있었지 않는가.
기껏 얻은 붉은 오러의 힘이 김검천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다니 허무했다.
지저분한 것이 묻기라도 한 듯이 지면에 발을 문지르며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정말 이유를 알고 싶은가?”
“물론이다. 도대체 어떻게?”
“아주 간단한 일이지. 그 힘보다 내가 더 강하다는 거니까. 혈석이라는 걸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가 분명한 거지.”
“얼마나 힘들게 얻어낸 혈석의 힘인데 무시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겠다!”
근위 기사 대장이 기어가더니 쓰러진 근위 기사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중상을 입었다지만 아직 살아 있는 근위 기사가 신음을 흘렸다.
“크흑, 근위대장님? 절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그건 근위 기사의 착각이었다.
근위 기사 대장은 그에게는 관심 없었다.
마갑에 박힌 혈석을 뽑아내려고 다가온 것이다.
“너 말고 이놈이 필요해! 테우펠 공작님께서 내려주신 이 혈석의 맛, 잊지 않겠습니다!”
근위 기사 대장이 망설임 없이 뽑아낸 혈석을 꿀꺽 삼켰다.
상관의 황당한 행동에 근위 기사가 물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혈석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데 그걸 삼키다니요?”
“힘이 필요한 것이지! 눈앞에 혈석의 힘을 부정하는 적이 있는데 그런 걸 가릴 때냐!”
“그러면 자기 마갑의 혈석이나 드시지 왜 제 혈석을 가져간 겁니까?”
“어? 그건 그렇군. 마침 네 혈석이 눈에 띄어서 그만.”
“뭐야. 제 혈석 돌려줘요….”
“아, 그렇지. 이미 삼켰는데 토해서라도 줄까?”
“그것보다 근위대장님 혈석으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토해내서라도 돌려줄까?”
근위 기사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근위대장님? 왜 같은 말을 되풀이하십니까? 사람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고요. 안 그래도 최악의 상황이라고요.”
근위 기사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지금부터였으니까.
“크아악!”
근위 기사 대장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자기 몸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마구 몸부림치던 근위 기사 대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근위 기사의 등을 밟아버렸다.
- 우두둑.
“끄억!”
얼마나 힘껏 짓밟았는지 마갑과 함께 근위 기사의 등이 움푹 파였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근위 기사는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는 혈석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쓸 수가 없어진 것이다.
“혈석의 부작용인가! 제기랄! 그딴 불량식품을 처먹으니 저 꼴이지!”
근위 기사 대장의 폭주를 본 유일하게 살아남은 근위 기사가 그로부터 멀어지려고 들었다.
헛수고에 불과했지만.
평상시에 두 발로 움직이는 생명체는 기어가는 것보다 걷는 게 더 빠른 것이다.
“피가 필요해… 더 많은 피가!”
붉게 물든 눈을 한 근위 기사 대장이 근위 기사의 목을 찍어 눌렀다.
- 쿠쿵.
근위 기사 대장의 장착하고 있던 마갑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드러난 근위 기사 대장의 피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부 속의 근육은 살아 있는 것처럼 마구 꿈틀거리고 있었고.
괴로움에 발버둥을 치던 근위 기사가 소리쳤다.
“근위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그… 그래. 넌 근위 기사고 이 몸은 근위대장이지.”
“그렇습니다. 제정신이 드신 겁니까?”
근위 기사 대장이 히죽 웃었다.
“물론이지. 지금보다 머리가 상쾌한 적이 없을 정도야.”
“그 말씀은?”
“부하는 부하답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말이다! 시끄러운 입이나 다물고!”
근위 기사 대장이 자신의 손을 근위 기사의 입에 집어넣었다.
숨을 못 쉬게 된 근위 기사가 양손으로 근위 기사 대장의 팔을 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축 늘어질 때까지 근위 기사 대장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은 혈석마저 빼든 근위 기사 대장은 천천히 일어서며 김검천을 향했다.
“후후후, 기다렸군. 붉은 오러로도 네 녀석을 처리할 수 없었지만 이제부터 혈석의 진정한 힘을 맛보여주도록 하마.”
자리에서 일어난 근위 기사 대장의 육체는 아까 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커진 근육으로 인해 팔은 다리와 같이 두꺼워지고 다리는 근처 나무와 같이 단단해졌다.
눈에서는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피부는 갑옷이라도 된 듯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두꺼워진 목의 근육은 목과 얼굴의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인간이라기보다 키가 작은 오우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김검천이 근위 기사 대장에게 말했다.
“그게 너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진정한 힘이 육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보이느냐? 혈석으로 달라진 이 몸이!”
김검천은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이지. 불쌍하게도. 더욱 못 생겨졌군.”
근위 기사 대장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펴졌다.
이렇게 강한 육체를 얻었는데 이제 와서 인간의 외모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얼굴이 아니라 넘치는 힘이 담긴 이 몸을 보라고!”
“네 벗은 몸 따위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 마음도 생각해주라고. 눈이 썩겠다.”
“크, 이 육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다니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그러면 이걸 봐라.”
근위 기사 대장이 몸에 겨우 붙어 있던 마갑 조각을 손에 쥐며 힘을 가했다.
잠시 후 편 손에 들린 건 동그랗게 말린 금속 파편이었다.
오러를 쓰는 마스터 나이트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의 괴력인 것이다.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네 육체가 기존보다 강해진 건 그것만 봐도 알 것 같네.”
“흐흐흐, 이제 네가 겪을 일도 기대가 되겠지?”
“글쎄다. 네가 얻은 혈석의 힘이라는 건 부하들을 괴롭히는데 최적화된 모양이던데. 그런 게 나한테 통할까?”
“흐흐흐, 네가 새롭게 태어난 이 몸의 최초의 제물이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니, 너한테 가장 먼저 당한 건 네 부하들이었거든?”
“그러면 보여주마! 마스터 나이트의 육체도 능가하는 이 신체의 놀라운 힘을!”
“괴물이 되더니 사람 말도 안 들리나 보네. 하긴 그전에도 안 들은 것 같지만.”
- 쿵.
폭발음이 나며 근위 기사 대장이 서 있던 바닥이 갈라지며 모습이 사라졌다.
김검천 바로 앞으로 근위 기사 대장이 나타났다.
100미터는 충분히 떨어져 있었는데 몇 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근위 기사 대장이 깍지를 낀 두 손으로 김검천을 내려찍었다.
“이 몸에게 대든 걸 후회하며 죽어라!”
그 말에 김검천이 중얼거렸다.
“허나 거절한다. 그런 건 여기에 오기 전에도 너무 많이 해버렸거든.”
- 탁.
전력으로 내려치는 양손 공격을 김검천은 왼손 하나만으로 잡아냈다.
근위 기사 대장은 손을 빼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에에잇! 혈석으로 강화된 이 육체의 공격을 한 손만으로? 커헉?”
커다랗게 벌려진 근위 기사 대장의 입으로부터 핏방울이 튀어나왔다.
김검천의 오른 주먹이 그의 복부를 힘껏 강타한 것이다.
근위 기사 대장이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서 김검천이 땅을 짚은 그의 두 손을 발로 힘껏 밟았다.
- 우득.
“크아악! 이럴 수가?”
근위 기사 대장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들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김검천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압력은 그의 힘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몸의 움직임을 봉쇄해버린 김검천이 물었다.
“너 바보 아니냐?”
“크흑… 뭐가 말이지?”
근위 기사 대장이 두려운 눈으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에게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육체 하나만을 믿고 날뛰고 있는 것 말이야.”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이렇게까지 육체가 강화된 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인데!”
“그건 나도 동의해. 하나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있지만. 오러를 쓰는 마스터 나이트가 오우거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오우거가 강하다고 해도 괴물은 괴물. 상급 기사가 몇 명 모인다면 희생 없이도 잡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거든. 그런데 말이야.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는 육체를 가진 네가 순수하게 오우거와 육체의 힘만으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근위 기사 대장의 말문이 막혔다.
혈석으로 신체가 오우거 수준으로 변했다지만 막상 그가 오우거와 싸우면 질 게 뻔했다.
비슷한 크기라도 승부를 알 수 없는데 다 큰 오우거는 5미터가량 되는 괴물이지 않은가.
그런 오우거도 오러의 힘이라면 일격에 해치울 수 있었다.
그제야 근위 기사 대장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크흐.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군.”
“마스터 나이트가 무섭다는 건 강화된 신체 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러를 사용해서겠지. 그런데 넌 강화된 육체만을 믿고 나와 싸우려 들다니.”
“강해진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더 약해져 버렸던 것인가…!”
“그래서 네가 바보라는 거다. 스스로 인간인 걸 포기하고 괴물의 육체에 사로잡혔으니까.”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괴물의 육체도 지금으로서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 것 같군. 하압!”
근위 기사 대장이 기합과 함께 김검천에게 깔린 손을 빼내려고 들었다.
“하지 않는 게 좋을걸. 네가 손을 뺄 수 있는 방법은 팔을 버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바로 그걸 노린 거다!”
- 우지직.
근위 기사 대장의 팔 일부가 도마뱀 꼬리처럼 잘려나갔다.
인간과 달리 강화된 육체를 믿은 근위 기사 대장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김검천이 손으로 머리를 잡으려고 들었지만 근위 기사 대장의 목이 거북이처럼 쑥 들어갔다.
이제보니 인간을 초월한 게 아니라 포기한 것 같은 신체였다.
김검천에게 겨우 벗어나 거리를 벌린 사이 그의 육체는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도망치기 쉬운 숲을 향해 뛰어오르며 근위 기사 대장이 소리쳤다.
“다른 건 몰라도 도망가기에는 이 몸이 더 유리하군! 그 손은 작별 선물이다! 김검천!”
“난 아무 선물이나 안 받거든. 선물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지. 미리내, 미사일 남아있지?”
[언제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김검천이 막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순간이었다.
숲 너머로 사라지려던 근위 기사 대장이 허공에서 팔을 부여잡은 채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