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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74화 (74/250)

74화

혈석을 유인하는 데 성공하자 김검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혈석이 내 몸을 잠식하려고 들면 신호할 테니 팔을 쳐버려.”

“알겠습니다. 아예 먹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겠지요.”

날카로운 칼을 찾아온 쿠퍼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야가 뭐라고 하려는데 쿠퍼가 입을 열었다.

“잘못해서 우리까지 당하면 오히려 방해만 된다. 지금은 김검천님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할 순간이야.”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기분 좋지는 않네요.”

“네가 도움이 안 될 리가. 일단 넌 리에를 바깥쪽으로 데려가 줬으면 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쿠퍼 아저씨는요?”

“김검천님의 지시를 이행하려면 한 사람쯤은 이 자리에 있어야겠지.”

사람들이 움직이는 사이에 혈석의 일부가 김검천의 피부를 타고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혈석은 근위 기사 대장에게 침식해 들어가듯이 김검천의 내부를 장악하려 들었다.

김검천의 피부가 붉게 물들면서 나무껍질처럼 딱딱해져 가는 게 그 증거였다.

나노머신의 저항도 만만하지 않아 대치상황에 놓였다.

결국 폭주하던 혈석은 예상대로 김검천의 몸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함선 어딘가로 도망가지도 못하겠지. 내 몸속에 모두 가두었으니까.”

김검천이 에너지 반응로에 손을 대자 문양이 흡수한 에너지를 나노 머신에 공급했다.

결국 충전된 나노 머신의 물량에 버티지 못하고 혈석은 김검천 내부에서 소멸해버렸다.

“김검천님. 이제 끝난 겁니까?”

김검천은 혈석이 달라붙었던 손을 쥐었다 피면서 대답했다.

이제야 자신의 손은 붉게 물들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그런 모양이야. 손 부위가 정상으로 돌아간 걸 보면 말이지.”

“고생하셨습니다.”

“이러고도 차단문 여는 데 실패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 진짜 고생일 거 같지 않아?”

“그건 제발 상상만으로 그쳤으면 하는데요. 정말 끔찍한 소리로 들리는군요.”

쿠퍼가 고개를 젓는데 때마침 차단문이 열렸다.

- 키이잉.

김검천은 반사적으로 일단 차단문을 고정시키고 보았다.

한숨 돌린 김검천은 그제야 꼬리를 흔들고 있는 댕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검천이 댕댕이의 턱을 긁어주며 말했다.

“녀석, 잘했다. 조금 있다가 육포도 잔뜩 챙겨주도록 할게.”

“왕!”

댕댕이의 꼬리가 빛의 속도로 흔들렸다.

이어서 쿠퍼도 차단문을 넘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파워드슈츠에서 빼낸 중급 마석이 들려 있었다.

“김검천님. 다행히도 댕댕이가 차단문을 열었군요.”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몸에 익은 모양이야. 이거야말로 경력 있는 신입이로군.”

“그러면 보수로 조금 더 먹을 걸 줘도 되겠네요. 이제 끝났으니 두 사람을 데려올까요?”

김검천이 쿠퍼에게 중급 마석을 넘겨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도록 해. 난 부전원실에서 동력 먼저 공급하고 있을 거야. 불이라도 먼저 들어와야지 다들 움직이기 편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부전원실로 간 김검천이 넘겨받은 중급 마석을 이용해 이 구역의 동력을 가동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기동했음에도 구역의 전원은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김검천이 미리내를 불렀다.

“이상하군. 증폭시켰다고 해도 혈석 때문에 중간에 그쳐서 에너지는 남아있을 텐데.”

[아무래도 이 구역에 필요한 에너지가 그 이상으로 필요한 모양입니다.]

“설마 벌써부터 이걸로도 무리가 갈 정도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김검천 함장님도 이 구역에 뭐가 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배틀 머신 말이로군. 그건 처음 기동하려면 추가적인 에너지가 들어가긴 하지.”

[거기다 이 구역에 존재하는 장비들에게 자동적으로 에너지가 공급되는 중입니다.]

“무인 장비들 말이지? 그건 일단 꺼둬야겠군. 필요할 때만 운용해야지.”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을 때는 전원을 꺼두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다.

그때 밖에서 쿠퍼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우왁! 이것들은 또 뭐야?”

김검천이 부전원실을 나가보니 쿠퍼가 해머를 들고 무인 장비를 내려치려고 하고 있었다.

김검천이 소리쳤다.

“쿠퍼! 멈춰!”

말하는 게 조금 늦은 모양이었다.

- 쾅!

쿠퍼의 해머를 맞은 무인 장비가 공중을 날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무인 장비를 날려 보낸 쿠퍼가 그제야 김검천을 보며 물었다.

“방금 멈추라고 하셨습니까?”

“그거 적 아니야. 그러니까 기계라는 종류의 골렘 같은 거니 놔둬도 괜찮다고.”

“네모난 강철 상자 같은 저게요? 상자처럼 생긴 미믹 같은 괴물이 아니고요?”

쿠퍼의 말대로 무인 장비는 큐브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게 가끔 빛을 내며 움직이고 있으니 사정을 모르는 쿠퍼로서는 기겁을 할 만도 했다.

골렘처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워드슈츠를 입고서나 다룰 정도로 무거운 것들이 널려 있어서 여기서는 필요한 장비야.”

“무거운 것들이라니 그게 뭡니까?”

“배틀 머신. 인간 육체로는 한계가 있으니 그걸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용도 범용 기계지. 다용도라고 해도 군대에서는 주로 전투용으로 쓰이지만.”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쿠퍼가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물었다.

때마침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다.

부전원실에서 공급된 에너지가 공급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불이 들어오는군. 그러면 잘 보라고. 배틀 머신을.”

쿠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김검천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곳을 응시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어디로 가야 배틀 머신이라는 걸 볼 수 있는 겁니까?”

“거기서는 안 보이나? 배틀 머신은 저기 있잖아.”

김검천이 손가락으로 보고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쿠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에는 커다란 금속 물체 덩어리밖에 안 보이는데요?”

“그게 바로 배틀 머신이지. 거리가 가까워서 한눈에 다 안 들어오나 보네.”

김검천의 말에 따라 쿠퍼가 방향을 바꿔 배틀 머신을 살펴보았다.

처음에 서 있던 장소에서 볼 때는 그저 함선 안에 있는 거대한 장식물인 줄 알았다.

이렇게 움직이며 전체적인 형상을 그려보니 그제야 배틀 머신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눈을 감고 코끼리의 부위를 무작위로 만져도 비슷할 반응이 나올 것이었다.

덩치가 큰 만큼 자신이 만지는 부위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가 나올 테니까.

쿠퍼가 아이처럼 눈빛을 반짝거리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말도 안 돼! 이런 금속 덩어리가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골렘과 비슷하긴 하지만 더 강해 보이는데요?”

김검천은 쿠퍼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도 배틀 머신을 전용기로 처음 배정받았을 때는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나도 한때는 배틀 머신 옆에 붙어 정비도 도맡아서 직접 청소도 했을 정도로 관심이 있었지. 마음에 드나?”

“물론입니다! 이렇게 크고 강해 보이는 녀석을 보다니 감격스러울 정도인데요.”

“이런 건 처음 보는가?”

“현재 알려진 골렘 중에서 가장 큰 녀석도 이 배틀 머신의 허리 정도밖에 안 올 겁니다.”

“5미터 정도면 오우거 정도의 크기인가. 그 정도 크기가 한계인 이유가 따로 있을까?”

“그 이상으로 커지면 현재 마법력으로는 몸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더군요.”

김검천은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바다에 있는 생물이 육지에 있는 생명체보다 덩치가 큰 이유도 비슷했으니까.

늘어난 무게는 뼈가 지탱을 해줘야 하는데 물속이 아닌 육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체격이 커지는 만큼 몸은 더 무거워지는데 늘어나는 무게를 마법력이든 소재든 간에 지탱하는 게 어렵다는 거군.”

“움직여야 하는 골렘 자체가 마법 생물이니 재료보다는 들어가는 마나량이 문제지만요.”

“마나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마석이 필요한 건가?”

“그렇습니다. 마법사가 임시로 소환하는 골렘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요.”

“이제야 알 거 같군. 배틀 머신만 한 골렘이 없다고 하는 이유를.”

“눈치채셨습니까?”

“그런 크기를 넘어가는 골렘이라면 적어도 중급을 넘는 마석이 필요할 것 같거든.”

“그 말씀대로입니다. 상급 마석을 이용한다면 더 큰 골렘이 나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상급 마석을 쓸 정도라면 골렘보다 다른 쪽으로 이용하는 게 더 나을 테고.”

그 말에 쿠퍼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시대착오적이라지만 아까운 일이지요. 제국 같은 곳은 이런 작은 왕국과는 다를 테니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지만요.”

“제국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이 대륙에서 수위를 다투는 강한 나라가 제국이니까요. 흥미가 없는 게 더 이상할 겁니다.”

“자신과 상관없으면 흥미도 없는 법이지. 제국이 무슨 일을 벌이기라도 했는가?”

“수십 년 전만해도 제국은 주변 왕국을 침공하고는 했습니다. 왕이 제국 사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빌어서 겨우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근래에는 평화스러운 편입니다.”

“뭘 하든 간에 강자의 행동은 주목의 대상이라는 거군.”

“지금 제 주목의 대상은 이 배틀 머신이고요. 그냥 봐도 강해 보이는 녀석입니다.”

“실제로도 강하지. 평범한 골렘 같은 건 상대도 안 될걸.”

“그런데 이 배틀 머신은 왜 바닥에 굴러다니는 겁니까? 그냥 금속 재료인 줄 알았네요.”

김검천이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배틀 머신들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원래는 함선 벽면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장비들이었는데 말이다.

왜 그렇게 된 건지 이유는 금방 떠올랐다.

“함선이 추락해 외벽이나 내벽 모두가 파손될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된 모양이야. 미리내. 이 구역에 위치한 배틀 머신들의 상태를 확인해줘. 부서진 부분이 있을 거 같아.”

[확인 완료. 대부분의 배틀 머신에 문제가 있는 상태입니다.]

“동작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망가진 상태인가?”

[대부분 당장 움직일 수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부분적으로 기동 가능한 건 있지만요.]

쿠퍼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껏 차단문을 열고 다음 구역으로 넘어와 이런 걸 발견했는데 쓸 수 없다니 아쉽네요.”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왜 쓸 수 없다는 거지?”

“방금 전 미리내가 최소한의 수리는 해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디까지나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지. 한두 대 정도는 움직일 수 있을걸.”

“정말입니까?”

“그렇지. 저건 멀쩡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거든.”

김검천이 가리킨 배틀 머신 위로 쿠퍼가 바로 기어 올라갔다.

자신이 직접 움직여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인증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김검천은 입을 열었다.

“쿠퍼, 배틀 머신이 어떻게 움직이는 줄 아는지 한번 예상이나 해보겠어?”

“그거야 파워드슈츠처럼 에너지원을 써서 동작하는 거 아닙니까?”

“정답이야. 그거 외에도 에너지 팩을 쓰기도 하지만 오래는 못가지. 어디까지나 에너지 팩은 비상용으로 쓰는 거니까.”

“그런데 여기 배틀 머신에는 엔진으로 보이는 에너지 반응로 같은 게 안 보이는데요.”

“내가 아까 배틀 머신은 전용기라고 했던 이유가 다 있지. 모처럼이니 보여주도록 하마.”

잠시 후 김검천이 예비용의 파워드슈츠를 입고 돌아왔다.

쿠퍼가 궁금해서 물었다.

“함선 내에서 왜 새로 파워드슈츠를 장착하고 오셨습니까?”

“이게 없으면 배틀 머신 기동 자체가 어렵거든. 쿠퍼, 거기서 일단 내려가 주겠어?”

쿠퍼가 내려오자 김검천이 반대로 배틀 머신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배틀 머신의 흉부 장갑 부위에 누웠다.

“미리내. 배틀 머신을 기동시켜.”

파워드슈츠의 에너지 반응로가 빛나자 굳게 닫혀 있던 배틀 머신의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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