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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77화 (77/250)

77화

마부석에 앉아 있던 용병, 데탈이 그런 경비병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분들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이쪽과 대화해야지. 넌 뭐가 먼저인지도 모르나?”

원래는 김검천과 세이야만 수도로 갈 작정이었다.

이 마차는 말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물건이니 굳이 사람을 데려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영지를 거쳐 수도로 가려는데 귀족 신분으로 움직일 거라고 하니 데탈이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었다.

귀족이 이런 여행길에 호위 하나 없이 행동하는 건 이상하게 보일 거라면서.

그렇게 데려온 데탈이 여기서 활약하는 모양이었다.

경비병이 데탈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용병 녀석과 대화가 통하기라도 할까?”

“용병이라고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네 녀석 따위가 무시할 정도는 아니거든.”

경비병이 대꾸하려는데 데탈이 검을 꺼내 그를 겨냥했다.

경비병이 깜짝 놀라 외쳤다.

“네 놈! 이게 무슨 짓이냐? 설마 검문에 반항하겠다는 거냐?”

“반항하는 게 아니라 네가 누구를 상대하는지는 알려주려는 거다.”

데탈의 검에 푸른 마나가 뭉치며 마나 소드가 형성되었다.

제대로 된 마나 소드를 보니 데탈도 그동안 실력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 행동은 주변에 있던 경비병은 물론 책임자인 중급 기사의 관심까지 끌었다.

지켜보던 중급 기사가 마나 소드를 보고 입을 열었다.

“훌륭해. 이 정도면 최소 A급은 되는 용병이야. 하긴 이 정도는 되니 혼자 호위 중이겠지.”

“기사님. 어떻게 할까요?”

“물러나라. 확실히 경비병이 우습게 볼만한 상대는 아니다. 물론 용병이 말썽을 피워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중급 기사가 단호히 말하자 데탈은 검을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너희 상대는 이 몸이 낫다는 거지. 마차 안의 고귀한 분들이 너희와 상대하는 것보다는.”

“호오.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시기에 네가 그렇게 잘난 척하는 거지?”

“잘난 척할 만큼 높으신 분이지. 더구나 우리 일행에 대해서는 이곳 상인길드 지부의 프리하고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들었는데.”

“잠깐. 윗선과 이야기가 이미 되었을 정도라면 확실히 신분이 보장된 인물이라는 건데.”

데탈을 놔둔채 중급 기사가 경비병에게 물었다.

“혹시 프리라면 상인길드의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평상시에 제법 저희들에게 기부를 많이 하는 상인이지요. 벌써 10년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는 자고요. 듣자 하니 어제 저녁에 이야기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이러니 인수인계를 잘해야 하는 법인데.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다니. 그래도 본인이 맞는지 신분증은 확인해야 한다.”

그 말에 데탈이 중급 기사에게 자신의 것 외에 다른 신분증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 신분증은 변두리 영지에서 제국 상인을 구해주고 상인 대표에게 받은 것이었다.

신분증을 받아낸 중급 기사가 마법 물품으로 진품 여부를 검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넌 제국 출신 용병이었나? 거기다 이건 제국 상인길드에서 발생한 귀족들을 위한 신분증이군.”

중급 기사는 마차 안의 귀족이 기사가 아니라 용병을 데리고 다니는지 알 거 같았다.

상인길드에 속할 정도의 귀족이라면 겉치레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성격일 테니까.

또한 괴물이 날뛰는 이런 시기에 대놓고 부리기에는 기사보다 용병이 더 나을 것이다.

“짐도 문제없습니다. 그냥 특이하게 생긴 금속 덩어리 같은 게 실려 있을 뿐입니다.”

마차 뒤에 연결된 짐수레를 확인한 경비병이 중급 기사에게 보고했다.

데탈이 태연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이만 지나가도 되겠지?”

데탈의 말에 중급 기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평상시라면 충분히 지나가도 되지만 지금은 곤란하군.”

“어째 서지?”

“아직 한 분의 신분이 확인 안 되었잖아. 확인이 안 되었다면 못 지나가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평상시라면 귀족 한 명의 신분을 확인하는 순간 보내주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신분을 확인하려 드는 건 테우펠 공작의 명령이 내려져서 이러는 것이었다.

그때 김검천에게 이야기를 들은 세이야가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본인이 누구인지 알기나 하느냐? 감히 경비 기사 따위가 이 몸을 막다니!”

“죄송합니다만 제가 결정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위쪽에서 내려온 지침을 따르는 거라 서요.”

“이 몸은 너희 나라 사람이 아니다. 신분증이 없다면 설마 출발했던 곳까지 돌아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중급 기사가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세이야의 말투에서 어떻게든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읽은 것이다.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라면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아무리 대단하신 분이라도 신분이 확인 안 되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답답하기는. 꼭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을까?”

“그 말씀은?”

“신분증이 아니라 사람을 검사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곳이라면 그런 장비가 있을 텐데.”

“아, 순수 혈통 검사기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하긴 거기에 반응할 정도의 순혈 혈통이시라면 굳이 신분증이 필요 없는 몸이시지요.”

중급 기사가 환한 표정을 짓더니 경비병에게 마법 도구를 가져오도록 시켰다.

고위 귀족일지도 모르는 상대와 별문제 없이 지나갈 방도가 생겨난 것이었다.

순수 혈통 검사기는 어떤 마법사의 실수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마법 도구였다.

왕족이나 적통의 고위 대귀족들의 혈통은 특정 마법 시약에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평민들의 피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왕족이나 귀족은 하늘이 내려준 계급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았다.

순수 혈통 검사기가 도착하자 중급 기사가 직접 세이야에게로 가져갔다.

“확인을 위해 손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혈통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던 세이야였다.

그렇다지만 이 순간만큼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의 피가 부정당한다면 여기까지 올라온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 되는 것이다.

손을 올리기 전 세이야가 뒤에 있는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김검천이 괜찮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에 지금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테이룬에게 세이야 출생의 비밀을 들었기에 여기로 데려오긴 했지. 하지만 정말 세이야가 그런지는 알 수 없으니 객관적으로 확인이 필요해.‘

저런 혈통을 검사하는 장비는 수도에서도 검문소 정도에서나 사용된다고 프리에게 들었다.

그러니 의심을 받지 않고 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물론 테이룬이 김검천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이룬이 실수할 수도 있었고 살다 보면 혹시나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중요한 일이라면 남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확인해야지 않겠는가.

이윽고 결과를 확인한 중급 기사가 조심스럽게 세이야에게 말했다.

“확실히 반응하고 있습니다. 신분증 같은 걸 들고 다니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시군요. 이런 귀한 분을 미처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장비가 반응하는 건 최소한 대귀족의 직계 혈족 이상.

높으신 분을 몰라본 듯한 기사의 반응을 보자 세이야 말고도 김검천도 내심 안도했다.

“이 정도면 들어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받은 명령은 정체도 알 수 없는 자들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거였지 고귀하신 분들을 막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김검천과 일행들이 탄 마차는 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바로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시간을 더 끌면 높으신 분들에게 찍힐까 봐 중급 기사가 우선적으로 편의를 봐준 것이다.

이동하는 길에서 왕성만큼이나 높은 탑이 건축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김검천이 물었다.

“데탈, 저게 뭐지?”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건물이네요. 얼핏 보기에는 마법사들이 거주한다는 마탑이라는 것과 비슷하게 생겼네요.”

“수도는 확실히 변두리 영지와는 달리 여러 가지가 있군.”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데탈은 그대로 마차를 조종해 상인길드 지부까지 이동했다.

프리는 지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데탈을 보고 반색했다.

“데탈! 이 친구야! 이제야 김검천님 일행을 모셔오다니!”

“누가 네 친구냐. 아, 김검천님. 이제 전 이제 용병길드로 가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마차를 몰고 온다고 수고 많았다. 데탈. 고생한 대가로 발화통을 비롯해 몇몇 도구를 챙겨놓았으니 잊지 말고 들고 가라.”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데탈이 사라지자 프리가 서둘러 올라 마차를 지부 안으로 이동시켰다.

중간에 사람들과 만나기는 했지만 다들 바쁜지 시선도 안 돌리며 지나쳐갔다.

한적한 곳에 마차를 세운 프리가 내리며 말했다.

“다들 여기서 내리셔서 저곳에서 짐을 푸시면 될 겁니다.”

“이 정도면 빚에서 일정 부분을 감액해도 좋겠군.”

“그게 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빚을 삭감해 주시는 게 아니라 물건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말이지?”

“전에 제가 받은 군용폰도 그렇고 데탈이 가져간 발화통도 그렇고 신기한 물품을 많이 지니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욕심이 나는 모양이군.”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봤는데 욕심이 안 생기면 그건 상인이 아니지요.”

김검천이 마차에서 내리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 네 빚이 늘어나는 지름길이라고.”

“이미 아다만임 검의 가격을 갚는 것만 해도 제 일생을 담보로 잡혀 있는 상태라서요.”

“그렇군.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김검천님… 사실은 빚을 갚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뭐에 쓸려고 필요하다는 건가?”

“높으신 분들은 특별한 걸 좋아하니까요. 새로운 판매 경로를 뚫기 위해서도 필요하고요.”

“뭐, 네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높아지면 내가 너를 더 잘 부려 먹을 수 있을 테지.”

프리가 울상을 지었다.

“헉! 물건 몇 개를 주시는 것만으로 그런 식의 말이 되는 겁니까?”

“누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랬나? 불만은 빚이나 다 갚은 다음 하던가. 네 녀석이 그럴 줄 알고 물건 담아 온 주머니가 있으니 그걸 들고 가면 될 거다.”

“감사합니다!”

프리가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이 마차로 뛰어갔다.

마차에서 내리는 세이야의 손에는 돌로 만든 그릇과 반짝이는 목걸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어딘가 눈에 익었기에 김검천이 물었다.

“그 그릇은 라바골렘을 담은 건가? 다른 하나는 리에가 마석으로 만들던 목걸이로 보이는데.”

“이걸 함선에 놔두고 오기가 그래서요. 목걸이는 놔두고 오려는데 리에가 꼭 들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기껏 만들어 준 선물 버리고 가면 리에가 슬퍼해서 들고 온 거냐? 상냥한데.”

“아뇨. 리에가 한 말 때문에요.”

“무슨 말을 했기에 가져온 건데?”

“이걸 가져가면 언젠가 국왕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순간이 올 거라고 하더라고요.”

김검천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외에 무슨 다른 말도 했었나?”

“아니요. 그러고는 잠시 후 잠이 들어 버리더라고요. 출발하기 전까지도 계속 자고 있던데요.”

“마석 목걸이를 만든다고 힘을 써서 그런 건가. 아무튼 열심히 만든 것이니 잘 가지고 있어야겠는데.”

“그럴 생각이에요. 기껏 만들어 주었는데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섭섭하겠지요.”

김검천과 세이야는 프리가 알려주었던 건물로 들어섰다.

이제 해가 지는데도 아직 불을 안 켜서 그런지 건물 안은 어두웠다.

세이야가 벽을 더듬거리며 촛불이나 등불을 찾으려고 하는데 김검천이 잡아 세웠다.

“움직이지 마라. 위험해.”

“예? 아무리 그래도 불을 켜는 정도로 제가 잘못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게 아니고 이 안에 우리 말고 누군가 있어서 그렇다.”

“예? 설마 프리가 저희를 테우펠 공작에게 팔기라도 한 걸까요?”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보면 알 일이지. 야간 모드 가동.”

[야간 모드 발동. 빛 입자 광량 30%로 조정 중.]

적외선의 붉은빛이 점멸하면서 김검천의 시야가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어두운 건물 안이었지만 김검천은 대낮처럼 볼 수 있었다.

김검천이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단 나와라. 아니면 강철로 만든 녀석을 배부를 때까지 먹여주도록 하지.”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건 사양하도록 하지. 기왕 먹을 거라면 강철보다는 김밥이 좋거든. 김검천님.”

저 건방진 말투는 얼마 전 겪어 본 누군가와 똑같았다.

김검천이 팔을 내리며 테이룬에게 말했다.

“프리에게 네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군. 테이룬.”

“아아, 테우펠 녀석에게 좀 당해서 잠시 휴식이 필요하던 참에 프리의 도움을 받았지.”

테이룬이라는 소리에 세이야가 반갑게 소리쳤다.

“테이룬 경. 무사하셨군요!”

김검천이 반가워하는 세이야의 어깨를 잡고 테이룬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주었다.

“세이야. 테이룬이 있는 곳은 이쪽이다. 거기는 벽 쪽이야.”

불이 꺼져 있는 건물 안은 어둡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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