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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78화 (78/250)

78화

- 화륵.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건물 안의 불이 켜졌지만 김검천은 놀라지 않았다.

테이룬이 여기 있다면 켈헴이 덤으로 붙어 있을 테니까.

생각한 대로 모습을 드러낸 켈헴이 김검천을 향해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김검천님.”

“꽤 고생한 모습이로군. 테우펠에게 공격이라도 받은 건가.”

켈헴은 움푹 꺼져 있는 마갑에 한쪽 눈은 시퍼런 멍까지 들어있었다.

켈헴이 한숨을 쉬었다.

“아뇨. 이건 테이룬 경 때문입니다.”

“고약한 잠버릇이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게 아니라 몸에 구멍이 난 상태로 복수하러 간다는 걸 말리다고 이렇게 된 겁니다.”

켈헴의 불평에 김검천이 테이룬을 바라보았다.

테이룬도 자신이 한 짓이 마음에 걸리기는 한 모양이었다.

“흥, 그렇게 안 봐도 켈헴을 저렇게 만든 게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다.”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 왜 본 거냐?”

“켈헴도 못 뿌리칠 정도였다면 그만큼 크게 당했다는 말이겠지. 자기 몸 하나도 관리 못 하는 최강의 기사님이라니 흥미로워서다.”

“큭… 죽여라.”

“안 죽여. 뭐, 그냥 놔둬도 죽을 만큼 부끄러울 테니 그걸로 대신하도록 하지.”

둘의 대화를 들던 켈헴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테우펠 공작으로부터 도망친다고 고생한 건 저인데 위로라도 좀 해주시지요?”

김검천이 그런 켈헴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켈헴이 자신의 힘든 걸 알아주는 듯한 손길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김검천님…”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그건 위로가 아니거든요? 그보다 이번에 새로 공격 기회를 잡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테이룬이 동의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같이 테우펠 공작을 잡자고. 마침 김검천님도 때를 잘 맞춰 왔군.”

“들어올 때 보니 평상시보다 검문에 신경 쓰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프리를 통해 입수한 바깥 정보에 따르면 내일 저녁 귀족들의 대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렇군. 귀족 대회의라는 게 끝나기 전까지 치안을 강화 중이었어.”

“이번 귀족 대회의 때 테우펠 녀석은 왕위를 물려받을 생각일 거다. 그자리에는 국왕 전하를 동반할 테고.”

“거기서 끝을 볼 거라는 표정이야. 테이룬.”

김검천의 말에 테이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번은 좋은 기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래야만 해. 왕이 되면 더욱 테우펠을 노릴 기회가 없어질 거다.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사람을 조종해 일을 진행할 녀석이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나보다 옆에서 보아온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런데 프리가 널 이렇게까지 도와줄 이유가 있던가?”

“필요할 때 도와주면 나중에 크게 되돌려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 몸을 숨길 장소와 먹을 것, 그리고 정보 약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왕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지.”

“자칫하면 반역자와 한패로 몰릴 위험 부담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라기에는 애매한데.”

“그건 아닐 거다. 알고 보니 이 건물은 프리와 관련 없었다. 그저 안 쓰는 빈 건물에다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생색을 내는 중인 거지.”

“들키면 언제든 꼬리를 자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가. 하긴 그런 쪽에 특화된 녀석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계약으로 프리의 목숨을 잡고 있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김검천이 죽어도 계약 내용을 달성하기 전에는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아니었다면 수도에 입성 전 김검천을 테우펠에게 팔아넘겼을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테이룬이 김검천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믿을 만한 녀석이 아닌 건 이 몸도 안다. 이해가 일치했기에 이러는 중인 거다.”

“그래서 계획은 세워져 있나? 그곳으로 귀족들이 모인다면 경비가 삼엄할 거다.”

“성안을 들키지 않게 이동하는 건 맡겨라. 국왕 전하를 옆에서 모시던 몸이니 비밀통로 같은 것 한두 개쯤은 기본으로 알고 있다.”

“그걸 통해 전에 테우펠을 습격했던 건가. 하지만 성까지는 가는 것도 문제가 많을 텐데.”

“그건 프리가 해결해 주기로 했다. 사람이 있는 곳은 항상 빈틈이 있기 마련이라 돈이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이 가능하다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는 하지만 혹시 그 사람이 거절한다면 돈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긴 하지.”

“거기다 테우펠이 여는 귀족 대회의야.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몰라도 아니라면 다들 웃으며 헤어질 것 같지는 않을걸.”

“좋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군.”

“이 나라 귀족들도 욕심이 많은 편이거든. 물론 테우펠이 그들이 욕심부리는 이상을 보상해주면 잠자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이야.”

“테우펠이 노리는 바와 귀족들의 이해가 충돌하면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건가. 준비는?”

“몸 상태가 최고는 아니지만 저번에 테우펠을 습격할 때에 비하면 거의 다 회복되었다. 보여줄까?”

테이룬이 아무 말 없이 마나를 뿜어내며 김검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김검천은 동요하지 않고 몸을 슬쩍 돌리자 뒤에 쌓여있던 짐들이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느닷없는 테이룬의 공격에 세이야와 켈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세이야가 외쳤다.

“테이룬 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설마 배신을?”

켈헴이 테이룬에게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테이룬 경. 아무리 속이 타는 상황이라고 해도 화풀이는… 켁.”

테이룬이 켈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정말 죽일 생각이라면 마나참이 아니라 오러라도 날렸겠지. 근위 기사나 된 녀석이 그것도 판단 못 하나?”

“하긴 저런 괴물이 이런 단순한 공격으로 끝장날 것 같지는 않네요.”

물론 그건 두 사람의 생각이었기에 세이야는 화를 내려고 했다.

김검천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세이야를 겨우 진정시킨 김검천은 테이룬에게 태연히 말했다.

“안부를 묻는 것치고는 좀 과격했어.”

“다른 사람은 알 바가 아니지. 너만 알아주면 되니까.”

“몰라줄 세이야가 네게 화를 내도 말인가?”

테우펠 공작을 죽이는 게 테이룬의 유일한 목표라면 희망은 세이야였다.

지금이라도 세이야가 돌아간다면 테이룬이 생각하는 일들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테이룬이 급히 반성했다.

“…앞으로는 때와 장소를 가려야겠군. 다만 나름대로의 신분 확인이었을 뿐이다.”

“만약 내가 당했다면?”

“괜히 하는 소리지? 김검천님이라면 이런 인사치레 정도에 당할 리가 없잖아. 인사 좀 한다고 상대가 죽는다면 그건 자연사겠지.”

“그런 것 같더군. 인사하던 상태를 보니 네가 어디 가서 맞고 울지는 않을지 걱정되더라고.”

“흥, 이 몸의 공격을 받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너 정도밖에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자자, 그보다 다들 내일을 위해 오늘은 푹 쉬도록.”

세이야와 켈헴이 잘 준비하는 사이 김검천은 테이룬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두 사람은 눈치 못 챈 거 같지만 혹시 프리와 무슨 일이 있었나?”

“뭐, 그는 오히려 자기 일처럼 잘 도와주고 있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데도 프리가 의심스러운 듯한 말투였다.”

“너무 적절한 때 도움을 주었으니까. 문제가 없을 때야말로 주변을 의심해야 하는 법이지.”

“하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세이야처럼 믿을 수는 없는 자이긴 해.”

“그쪽도 계약으로 묶여있지만 않았다면 프리를 이런 일에 부릴 생각을 안 했을 테지?”

“물론이지. 이제 와서는 그 녀석이 돈을 갚을 생각이 있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야.”

“이 일이 끝나면 녀석의 속셈에 대해 털어보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털자? 하긴 언젠가 한 번 털어보기는 해야겠지.”

테이룬이 세이야를 가리키면서 김검천에게 물었다.

“그런데 세이야도 데려온 걸 보니 테우펠을 보러 가는 길에 데려갈 생각인 건가.”

“뭔가 문제라도 있나?”

“세이야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나. 차라리 여기에 켈헴과 같이 있는 게 나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그럴 거면 함선에 놔두고 왔을 테지.”

“무슨 의도인 거냐?”

“이번 일은 세이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이야. 도와줄 수는 있어도 결국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법이다.”

“바보 같은 소리야. 위험한 일이니 죽을 수도 있어.”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테이룬이 발끈했다.

“뭐가 웃기나?”

“웃길 수밖에. 다른 사람은 안 위험한가? 그리고 넌 위험한 일이라고 물러나서 멀리서 구경만 하는 자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가?”

“그런 말이 아니야. 그만큼 위태로운 일이니 이번만큼은 제외하면 좋겠다는 거지.”

“너무 과보호하는데. 착각하지 마. 세이야는 당당히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낼 수 있어.”

“그가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라 아직 멀었다는 거다.”

“물론 제 역할에 맞는 행동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겠지. 다만 네 도움이 없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아기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는 거다.”

“명심하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 테이룬을 향해 김검천이 달래듯이 말했다.

“무엇보다 켈헴과 이곳에 놔두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나?”

테이룬이 켈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도 절대로 안전하다고는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손이 닿는 옆에 두고 지키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하긴 전쟁터에 떨어지더라도 김검천님이 세이야 옆에 있는 게 더 안심이 되지.”

“너도 거기에 있을 테니 세이야는 마음이 든든하겠어.”

***

다음 날 저녁.

호위 기사를 거느린 뚱뚱한 귀족 한 명이 텅 빈 성 내의 통로를 걸으며 투덜거렸다.

“테우펠 공작은 뭘 생각해서 이런 밤중에 귀족 대회의를 여는 건지. 무도회도 아닌데.”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의 호위 기사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상합니다.”

“뭐가?”

“성문을 통과해서 회의실로 가는 도중 본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귀족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원래 이쪽 길은 시종이나 하인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지 않나? 거기다 늦은 밤이니 다들 자러갔겠지.”

“성안에 원래 있어야 할 경비를 서는 기사나 병사마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까?”

귀족이 웃었다.

“그건 우리들을 위해서 테우펠 공작이 배려한 거야. 이번 귀족 대회의를 소집하면서 약속을 하나 했지.”

“그게 뭡니까?”

“무력으로 우리를 억압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성 내의 병력 대부분을 물려서 밖에 두겠다고 한 거였고.”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곳이라 해서 귀족들의 눈과 귀가 없는 줄 아는가? 테우펠 공작의 말대로 이행되었는지 이미 확인했지.”

“정말로 그랬다면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작정일까요?”

“가장 확률이 높은 건 테우펠 공작 자신이 왕이 될 거라고 이번 회의에서 밝히는 거겠지.”

기사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헉,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가 왕이 된다고 해서 마음대로 굴도록 놔둘 대귀족들이 아니지.”

“그러면 사람을 물린 건 테우펠 공작이 대귀족들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일까요? 자신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 무슨 속셈인지는 귀족 대회의에서 제대로 확인할 테지만.”

“예상은 그렇다지만 만약에 테우펠 공작이 우리를 죽이려고 든다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그러면 먼저 손을 써야지. 그래서 가문의 최고 실력자이자 상급 기사인 너를 데려온 것이야. 다른 귀족들도 비슷할걸.”

“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셨군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다면 바로 손을 쓰겠습니다.”

중요한 건 일단 자신의 목숨이기에 귀족은 기사를 말리지 않았다.

정말 테우펠 공작이 함정을 파 놓았다면 기사를 방패 삼아 살아날 작정이었으니까.

그들이 회의실에 도착하자 아직까지 남아있던 근위 기사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하셨군요. 다들 모여계십니다.”

“너희들은?”

“회의 참석 인원이 다 도착하셨으니 저희들도 이만 물러날 겁니다. 그럼.”

열린 회의실 문 너머로 대귀족들과 그들의 호위 기사들이 그들의 등 뒤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늦게 도착한 귀족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늦었습니다.”

“이야기는 되었고 회의 진행을 위해 일단 앉게나. 테우펠 재상이 기다리고 있잖은가.”

“맞아, 빨리 회의를 끝내게 빨리하세나.”

귀족들의 말에 자리에 안 앉고 서 있던 테우펠 공작이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가락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붉은 색의 반지가 끼어있었다.

출석 가능한 모든 참석자의 자리가 채워진 걸 확인하자 테우펠 공작이 입을 열었다.

“다들 참석하신 거 같으니 이제부터 임시 귀족 대회의를 개최하겠소.”

회의 시작을 알리는 테우펠 공작과 대귀족들 사이에 의미 있는 시선이 오갔다.

그리고 먼저 숨어든 김검천과 일행들은 비밀장소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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