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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83화 (83/250)

83화

김검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벽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뭐지?”

“이상한 게 난다요!”

- 우우우웅. 쾅!

배틀 머신 팔이 아무런 방해 없이 밖에서부터 성벽을 부수고 김검천에게 날아들었다.

검은 공간은 생겨나지 않았기에 외부에서의 침입을 용납했다.

독가스는 성벽에 생긴 큰 구멍을 통해 점차 빠져나가며 맑은 공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배틀 머신의 팔을 장착한 김검천이 테이룬을 가리켰다.

“검은 공간은 인식하지 못하면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것 같군. 그래서 내 공격이 먹혀들어 간 거였고. 이 정도 구멍이면 독가스는 금방 쓸모없어질 테지.”

“잘도 알아챘구나. 그런데 이 거대한 금속 덩어리는 도대체 뭐냐?”

“배틀 머신의 팔 부분이지. 어제 프리에게 말해 성에 반입해 두었는데 유용하게 쓰이는군.”

성을 지키던 기사들이 이런 시기에 들어온 짐을 확인 안 해볼 리가 없었다.

그래 보았자 평범한 금속 덩어리 그 이상으로는 안 보였을 테지만.

마법이나 마나 같은 건 하나도 사용되지 않은 물건인 것이다.

김검천이 거대한 팔을 움직여 테우펠 공작을 가리켰다.

“네 약점 분석은 끝났다. 세이야가 당하기 전에 널 먼저 처리해주지.”

곧바로 기둥보다도 더 커다란 김검천의 팔이 테우펠 공작을 향해 날아갔다.

단순한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실드마저 생성되어 있는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테우펠 공작은 저런 무식한 공격을 몸으로 받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다.

“열려라! 공간이여!”

붉은빛이 번쩍이자 생겨난 검은 공간이 배틀 머신의 팔을 가로막아 나섰다.

배틀 머신의 팔 또한 오러처럼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나 싶었다.

하지만 검은 공간은 김검천과 미리내가 예측한 대로 크기와 질량의 한계가 있었다.

배틀 머신의 팔은 힘으로 검은 공간과 함께 테우펠 공작을 밀어붙였다.

“으악!”

비명 소리와 함께 테우펠 공작은 공중을 날아 겨울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나마 검은 공간이 충격을 막아주었기에 살아남은 테우펠 공작이 입을 놀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렇게 당하라고 얻어낸 힘이 아니라고!”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상대적인 법이야. 넌 나에 비해 약했나 보네. 이제 끝을 보자고.”

소리치는 테우펠 공작의 머리 위로 배틀 머신의 팔이 내려 찍혔다.

피할 길이 없던 테우펠 공작은 소용없는 줄 알지만 검은 공간을 열어 방어에 나섰다.

압도하는 물리적 폭력 앞에서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셈이었다.

쉴 새 없이 내려 찍히는 배틀 머신의 팔에 의해 테우펠 공작은 점점 다리가 풀리고 있었다.

- 쩡!

드디어 배틀 머신의 팔을 막아내던 검은 공간에 균열이 생기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테우펠 공작의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김검천은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일 힘도 없어 보이는 테우펠 공작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도망가지도 숨지도 못하겠지. 난 너처럼 약한 자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 이걸로 끝내겠다.”

김검천이 천천히 배틀 머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테우펠 공작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 테우펠이 약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 혈석이, 혈석이 더 필요해.”

그때 김검천은 세이야의 비명 소리에 멈칫했다.

“그만 하세요! 테이룬 경!”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시간이 없어!”

김검천은 테우펠 공작을 주시하며 소리치는 방향을 살폈다.

국왕의 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점점 부풀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국왕을 향해 테이룬이 오러 소드를 전개해 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검천은 최악의 순간이라면 국왕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고 싶었다.

테우펠 공작을 살펴보니 이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마무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김검천이 등을 보이자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테우펠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몸을 앞에 두고 어디를 가는 거냐! 김검천! 무시하지 말라고!”

김검천은 테우펠 공작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 상대는 어떤 대답보다 무시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었으니까.

대신 김검천은 고민 중인 테이룬을 불러 세웠다.

“테이룬. 국왕을 베어 버릴 작정이냐?”

“김검천님. 저런 꼴을 하고 있는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나? 저런 몸에다가 세뇌는 풀리지도 않은 상태야. 차라리 단칼에 베어 고통을 끝내주는 게 더 낫다고!”

테이룬의 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김검천은 시도하고 싶지 않았던 방도를 쓸 생각이었다.

“그러면 국왕의 일은 내가 맡고 너한테는 테우펠 공작의 일을 맡기지.”

“…무슨 짓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들이 하려는 짓보다는 낫겠지.”

테이룬이 테우펠 공작에게 향하자 김검천이 세이야에게 물었다.

“지금 국왕의 상태는 대답이 가능할 거 같지는 않군.”

“그 말대로네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라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인간의 형태를 잃어가는 국왕을 껴안은 채로 세이야가 대답했다.

“그러면 국왕의 손자이자 유일한 혈족이자 네가 결정을 내릴 차례군.”

“뭔가 방법이 있는 건가요?”

- 텅. 끼이잉.

김검천이 배틀 머신의 팔을 파워드슈츠에서 떼어냈다.

이어서 파워드슈츠의 손 부분의 장갑도 개방되며 피부가 드러났다.

김검천은 굴러다니던 칼을 들어 손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나노머신 이야기 기억나지? 내가 댕댕이를 살리기 위해 했던 방법을 말이야.”

“세뇌 효과가 있으니 사람에게 사용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지요. 지금 말씀은… 혹시?

“혹시는 역시가 되는 법이지. 독을 제압할 약이 없으면 제압할 수 있는 독이라도 써봐야지.”

“나노머신을 사람에게 쓰면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요? 무조건 김검천님을 따르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국왕의 의견을 들어보고 선택하게 하려는 거였지. 문제는 본인이 의식이 없으니 가장 가까운 너보고 결정을 내리라는 거다.

세이야가 국왕을 보니 이제는 흔든 탄산수를 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퉁불퉁한 것들이 가죽 밑에서 솟아올랐다.

그냥 놔두면 분명 비참하게 죽을 것이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김검천님에 대한 마음 외에는 다 정상으로 돌아오시는 건가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죽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아 권유하는 것이야.”

“국왕 전하께서는 테우펠 공작에게 세뇌당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세이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해주세요. 어차피 테우펠 공작에게 이용을 당할 바에는 죽여 달라고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세뇌까지 당하신 몸에다 어차피 죽어가시는데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로만 그치지 않고 세이야가 국왕의 입을 벌렸다.

김검천도 망설이지 않고 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베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손을 타고 흐르던 피가 국왕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우펠 공작이 힘없이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들. 혈석이 폭주해 저런 상태가 되었는데 고작 피 몇 방울 먹인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나?”

테우펠 공작이 벌인 일을 김검천이 망쳐놓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은 그의 목숨을 붙여둔 테이룬이 대꾸했다.

“넌 저 김검천님이라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 몰라.”

“테이룬. 너도 타락했구나. 국왕도 아닌 어디서 굴러들어온 지 모르는 놈을 존중하는 모습이라니.”

“적어도 널 고른 것보다는 낫지. 거기다 지금의 네가 할 만한 대사는 아니야. 테우펠.”

테우펠 공작의 기대와는 다르게 국왕의 상태는 점차 호전되어 갔다.

국왕의 몸속에 들어간 나노머신이 신체에 효력을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몸은 그렇다 치고 정신은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으음…”

잠시 후 국왕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 어렸던 붉은 기운은 어느새 사라졌고 푸른 눈동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국왕이 천천히 세이야의 얼굴에 양손을 대었다.

다시 한번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세이야가 움찔했다.

국왕이 그러다가 자신의 목을 조른 게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염려했던 바와 다르게 국왕은 그저 세이야의 얼굴만을 매만질 뿐이었다.

손의 감촉을 느끼던 국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 손자의 얼굴이 이렇게나 잘 생겼구나. 누구 아들이기에 이리 닮아 훌륭히 컸을까.”

“국왕 전하….”

“이런 자리만큼이라도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미안하다. 지금까지 고생만 시켜서.”

“할아버지!”

“옳지. 할아버지란다. 허허. 이렇게라도 손자를 볼 수 있게 되다니. 테우펠 공작. 자네에게는 감사해야겠군.”

국왕은 건강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엄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테우펠 공작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려고 들 정도의 기세였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왕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국왕이 병환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테우펠 공작도 이런 일까지는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

테우펠 공작은 이런 처지에서도 빈정거렸다.

“뭐가 말이지? 당신을 세뇌한 것? 아니면 왕실의 핏줄을 다 없애버린 것?”

“세이야를 이렇게 볼 수 있게 된 것을 말이다. 그것만큼은 과인도 어쩔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흐흐흐, 다른 걸 제쳐놓고 그런 소리부터 하는 걸 보면 당신도 어딘가 망가져 있어.”

“그럴지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둬라. 쿨럭.”

국왕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자 세이야가 급히 그를 부축했다.

김검천이 국왕의 몸에 손을 대고 미리내를 통해 몸속을 살펴보았다.

테이룬도 다 죽어가는 테우펠 공작은 내팽개치고 국왕 옆으로 달려왔다.

“괜찮으세요? 할아버지?”

“정신 차리십시오! 국왕 전하!”

국왕을 살펴보던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당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

“당장은?”

“그것보다 테우펠 공작은 어떻게 하고 달려온 건가.”

“저 녀석은 이제 걸을 힘도 없으니 어딜 도망가겠나?”

테이룬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기회를 노릴 정도는 남아있었다.

테이룬의 말에 테우펠 공작이 대꾸했다.

“흐흐. 걸을 힘은 없어도 기어갈 힘은 남아있지. 도구를 사용할 여력도 있고.”

“회의실 밖으로 기어갈 체력도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나 멀리 갈 필요도 없지. 바로 옆에 마법 도구가 있으니까.”

“아니?”

테이룬의 눈에 테우펠 공작이 옆에 있는 거울 속에 몸을 집어넣고 있는 게 보였다.

거울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근위 기사와 연락을 하던 마법의 거울은 테우펠 공작의 비장의 탈출 도구이기도 했다.

머리와 가슴 윗부분만 더 거울 속에 넣으면 테우펠 공작의 모습을 사라질 것 같았다.

거울 너머로 사라져 가던 테우펠 공작이 테이룬을 비웃었다.

“하하하! 이 몸을 죽일 수 있을 때 죽였어야지! 그러면 작별이다! 아니, 다시 돌아오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기도 하지!”

테이룬의 손에서 검이 사라졌다.

푸른 빛줄기는 테우펠 공작의 가슴 부근을 꿰뚫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검에 담긴 힘에 밀려 테우펠 공작의 모습은 거울 안으로 사라졌다.

목을 베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죽을만한 상처를 입혔기에 테이룬이 고개를 내저었다.

“도발할 시간이 있다면 그냥 도망이나 칠 것이지. 얼마 전 네게 당한 빚은 이걸로 갚았다.”

테이룬은 다시 세이야와 국왕의 옆으로 돌아가 대화를 시도했다.

그 사이에 김검천이 미리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국왕은 오래 살 수 없는 상태였지? 유감이지만 얼마 있지 않아 수명이 다할 거야.”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의 몸인데 나노 머신에 의해 생명력이 강화된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죽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생활할 수는 있을 거야.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음?”

세이야의 몸에서 굴러떨어진 돌그릇의 뚜껑이 열리는 게 김검천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로부터는 남아있던 라바 골렘의 잔재인 용암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아까 국왕이 몸부림을 칠 때 떨어진 것이었다.

뚜껑이 열리자 용암은 꿈틀거리더니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걸 찾아 어딘가로 이동해갔다.

김검천이 용암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동굴 안에서도 저 용암은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혈석을 찾아갔었지. 우리 저 용암이 어디로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한번 맞춰볼까?”

[테우펠 공작의 몸에 있는 혈석을 찾아갈 거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나도 그렇게 대답할 테니까. 테우펠 녀석. 끝까지 운이 나쁜 것 같네. 그러면 우리는 저 용암의 뒤나 천천히 따라가 볼까나.”

***

“크흑, 하필이면 검이 이걸 꿰뚫다니.”

테우펠 공작의 옆에는 테이룬의 검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테우펠 공작은 가슴 부위에 박아둔 혈석을 어루만졌다.

붉게 빛나던 혈석은 이제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검이 가슴을 꿰뚫으면서 혈석까지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덕분에 테우펠 공작은 거울에 열린 공간도 제어하지 못해서 거울 안에 갇힐 뻔했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면 내 몸의 혈석을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다. 인간 사냥꾼과 용병들을 부려 모은 인간들로 만든 혈석들. 그것만 있다면!”

“저런. 이거 테우펠 공작님 아니십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다 오셨는지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

테우펠 공작이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제국에서 온 치료사가 서 있었다.

테우펠 공작이 소리쳤다.

“치료사? 네 놈이야말로 이곳에 왜 있는 거지? 이곳을 아는 자들은 본인과 왕실 마법사밖에 없을 텐데. 아무튼 잘 왔다. 지금이야말로 이 몸에게 도움을 줄 때다.”

“어떤 도움을 말입니까? 저는 아무 힘도 없는 치료사에 불과한데요.”

“마스터 나이트인 킬만이 네 곁에 있지 않으냐. 빨리 구조 신호를 보내라!”

“제가요? 왜 그래야 합니까?”

그 말을 하는 치료사의 입가에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잔인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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