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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97화 (97/250)

97화

세이야를 따라 가보니 넓은 공간에 5미터는 될 듯한 석상 하나가 지면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세이야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데탈! 김검천님이 오셨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김검천과 세이야에게 쏠렸다.

그들 중에는 귀가 뾰족한 사람과 수염이 덥수룩하고 키가 작은 자도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열심히 뭔가 하고 있었는지 땀투성이의 데탈이 나오더니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김검천 대공 저하와 세이야 왕세자 저하.”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분이 바로 김검천 대공 저하?”

“옆에 계시는 분은 세이야 왕세자 저하라고 하시는군.”

“듣자 하니 저 두 분이 이 근처에 서식하던 인간 사냥꾼들을 모두 섬멸하셨다고 하더군.”

“그뿐인가? 이 변두리 영지의 악덕 영주도 처리하셨다던데.”

“심지어 용병 길드 지부의 악행도 심판하셨다던데.”

사람들이 김검천과 세이야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귀가 뾰족한 사람과 수염이 무성하고 키가 작은 사람도 김검천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세이야의 말대로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원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영주나 용병, 심지어는 인간 사냥꾼에게도 시달리던 참이라 차라리 이곳에서 살 작정으로.

김검천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다.

데탈이 눈치를 주자 사람들은 그제야 흩어져 자기 일을 하러 갔다.

김검천이 물었다.

“그래서 데탈, 너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지?”

“김검천 대공 저하께서는 세이야 왕세자 저하께 이야기를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너무 길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앞으로 호칭을 빼라. 세이야도 마찬가지.”

“알겠습니다. 김검천 대공 저하…. 아니, 김검천님. 저기 석상이 보이시지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저게 김검천님의 석상입니다. 얼굴만 손보면 마을 한가운데 세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김검천님의 모습을 알릴 예정입니다. 세이야님의 의견이었지요.”

김검천이 세이야를 보니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신 보람이 느껴지시나요? 제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할아버지가 승인해 주셨어요.”

너무 느낌이 와버린 김검천이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저 석상은 반대다.”

“예? 김검천님의 석상이 마을 광장에 있으면 다들 좋아할 텐데요. 아, 석상이 너무 작나요? 더 크게 할걸.”

세이야는 엉뚱한 곳을 지적하며 폭주하고 있었다.

김검천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저 석상은 철거다. 내 석상을 만들 힘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곳에 보태라고.”

“정말 안 되나요? 얼굴 쪽을 마무리 지을 드워프와 석상에 보존 마법을 걸 엘프도 기껏 불러왔는데요.”

“안 된다면 안 돼. 그런데 엘프와 드워프라면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 같기에 아인이라고 불리는 이종족 말인가?”

“예. 아까 저쪽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과연. 저들이 엘프와 드워프라는 종족인 건가.”

엘프.

보통 귀가 뾰족하고 몸이 날래며 마나에 민감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평범한 성인 엘프라도 전투력이 하급 기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드워프.

보통 키가 작지만 손재주가 좋으며 힘을 쓰는 일을 하기에 완력이 강한 전사 타입이었다.

역시 마나를 쓰는 하급 기사와도 밀리지 않았다.

다만 엘프나 드워프도 종족별로 합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결국 인간들에게 밀리긴 했다.

그들이 인간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긴 해도 다수의 힘을 뛰어 넘을 정도는 아닌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영토를 지배하는 곳이 괜히 인간 왕국인 게 아니었다.

힘의 우위가 있기에 엘프나 드워프를 노예로 잡아 쓰는 인간 왕국이나 제국도 있었다.

세이야의 왕국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서 보통 계약 관계로 일하는 편이었다.

세이야의 말에 따르면 엘프와 드워프 말고도 다양한 종족이 이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과 교류하는 종족들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김검천도 처음 엘프나 드워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놀랐다.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닌 종족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하긴 걸어 다니는 나무나 식인 괴물도 있는 세상이었으니 그런 종족이 있을 만도 했다.

결국 석상에 관한 일은 김검천의 반대에 세이야가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김검천님. 마을에 석상을 세우는 건 그만둘게요.”

“잘 생각했다. 세이야. 잠시 쿠퍼와 이야기를 할 테니 리에와 함께 있어 주겠니?”

그렇게 김검천이 쿠퍼와 같이 자리를 떠나자 세이야가 중얼거렸다.

“할 수 없네. 김검천님의 석상은 여기가 아니라 수도에다가 만드는 걸 생각해 봐야겠어.”

김검천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던 김검천은 쿠퍼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마석끼리의 반발력을 이용할 방도에 대해 뭔가 진행된 게 있었어?”

고민하던 쿠퍼가 대답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마석끼리의 반발력? 그건 이 몸이 먼저 주장한 이론인데!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흥미롭군!”

느닷없이 대화에 끼어든 사람을 향해 김검천과 쿠퍼가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발끝까지 오는 로브를 입고 있는 백발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40세는 넘지 않은 듯한데 머리는 노인처럼 하얀 게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오래 여행 생활을 해왔는지 입고 있는 회색로브는 흙먼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쿠퍼가 그를 향해 말했다.

“워스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워스덤이라고 불린 사람이 쿠퍼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소리쳤다.

“아하! 누군가 했다니 쿠퍼 꼬마로구나!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라고 했지.”

“지저분한 회색 로브를 보니 꽤 오래 외지 생활을 했나 보네요.”

“회색 로브? 이거 하얀 로브인데.”

“…세탁 좀 하시고 돌아다니시지요. 하얀 옷이 회색이 다 될 정도라니요.”

김검천이 쿠퍼에게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과거에 약간 알고 지냈지요. 방금 보셨듯이 뭔가 궁금하시면 일단 달려드시는 성격이고요.”

워스덤이 쿠퍼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사가 지식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는 게 문제지요.”

“이 몸이 마법사의 위대함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런저런 걸 알려줬는데도 이런 태도라니. 이래서 기사란 어쩔 수 없는 족속이라니까. 특히 제국 출신들은…. 읍읍?”

워스덤의 말에 쿠퍼가 급히 그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어쩔 수 없었다.

김검천도 쿠퍼가 한때 기사였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던 것과 그에 대한 사실을 직접 들은 건 다른 이야기였다.

워스덤이 힘껏 쿠퍼의 손을 떼어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쿠퍼. 입은 자네 손이 틀어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세. 위대한 지식을 말하기 위한 것이지.”

“그 지식 때문에 사람 신세 망칠 수도 있다는 거 모르십니까. 워스덤도 그 정도는 알잖아요.”

“당연한 지식 아닌가. 그 정도는 책으로 이미 배웠지.”

우쭐거리는 워스덤을 보며 쿠퍼가 이마를 짚었다.

알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행동으로 보여줄 때와 아닐 때는 구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검천이 쿠퍼에게 말했다.

“역시 기사였던 건가. 그것도 제국의 출신이었군.”

“죄송합니다. 일부러 속이려고 들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다. 나도 굳이 물을 필요를 못 느꼈을 뿐이었으니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듣자 둔한 워스덤도 드디어 분위기를 읽은 모양이었다.

워스덤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쿠퍼. 설마 개인적인 일은 비밀로 하고 있는지 몰랐구나.”

“뭐, 괜찮습니다. 사실 김검천님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으셨던 부분이니까요.”

“그렇다고 잘못한 게 사라지는 건 아니지. 정말 이 몸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하기는 하는구나.”

“가능하면 다음부터는 안 하시면 그걸로 되겠습니다.”

“아니지. 아니야.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야 하는 법. 잘못했으면 뭔가 대가라도 치러야지.”

워스덤이 열심히 로브의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로브를 벗더니 아예 뒤집어 살펴보았다.

휴대용 식량 조금과 하급 마석 부스러기, 하급도 안 되는 마법 재료 몇 개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게 워스덤이 가지고 있는 소지품의 전부였다.

속옷만 걸치고 있는 워스덤의 야윈 갈비뼈가 애처로워 보였다.

한숨을 쉬던 워스덤이 다시 로브를 입으며 떨리는 손으로 휴대용 식량과 마법 재료를 내밀었다.

“오늘 제국으로 돌아간다고 얼마 전 여행 자금을 모두 쓴 게 기억나는군. 이거라도 받아주겠나?”

삐쩍 말라 허약해 보이는 워스덤에게 이걸 받으면 돌아가는 길에 굶어 죽을지도 몰랐다.

겉모습만 보면 오히려 이쪽에서 워스덤을 챙겨줘야 할 판국 아닌가.

그냥 있다가는 입고 있는 옷까지 털어줄 것 같아서 쿠퍼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주신 것만 해도 사과의 대가로 충분합니다.”

“아, 이런 거로는 모자란 건가? 그러면 이렇게 하지. 방금 전 마석끼리의 반발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잖은가. 거기에 대해 알려주면 어떨까?”

“잠깐만요. 그거라는 이야기가 다르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먼저 보도록 하게나. 요즘 화약인지 뭔지가 유행한다고 해도 이것보다는 못할걸?”

워스덤은 신이 난 모양이었다.

김검천은 그 모습을 보고 함선 내에 동승한 과학자들을 떠올렸다.

알고 있는 지식을 열심히 가르쳐주려는 건 마법사나 과학자나 비슷한 모양이었다.

설사 경쟁자라고 해도 차이가 너무 나는 상대면 질투의 대상도 안 되는 법이다.

'역시 고인물에게는 초보자가 최고인가.'

워스덤은 가지고 있던 하급 마석 부스러기와 하급도 안 되는 조각을 뭉쳤다.

그리고는 발로 땅을 살짝 판 후 바닥에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다.

“혹시 물 가진 거 있으면 좀 줘보겠나? 마실 게 아니니까 물이 담긴 용기만 있으면 되네.”

“그거라면 이걸 쓰시지요.”

김검천이 파워드슈츠의 수납 부분을 열어 작은 물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워스덤이 투명한 용기에 담긴 물통을 보자 만지작거렸다.

“오호, 이건 유리도 아니고 투명한 돌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신기하군. 이건 도대체?”

“그건 그냥 드릴 테니 우선 보여주신다는 것부터 해보시지요.”

“그래도 되겠나? 고맙군! 그러면 잘 지켜보도록 하게나.”

워스덤이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물통 안에 가지고 있던 마법 재료 하나를 투여했다.

재료가 물에 녹아 사라지더니 황금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워스덤이 그 액체 전부 조심스럽게 구멍 속으로 부으며 소리쳤다.

“위험하니 좀 떨어져 있게나!”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경고하는 워스덤이었다.

저렇게까지 하는데 무시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구멍으로부터 멀어지자 뭔가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퍼퍼퍽.

그때 구멍 속에서 황금색의 불꽃이 튀어나오더니 마을 광장 쪽으로 날아갔다.

가만히 있던 마을에 마법의 불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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