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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99화 (99/250)

99화

공용어로 다시 생각하니 샤칸 자신은 드워프니까 드워프어를 잘한다는 말인 것 같았다.

드워프가 드워프어를 잘하는 게 뭐가 자랑스러운 것일까.

하지만 외모는 몰라도 속은 어른인 김검천은 모른 척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정도도 못 이해할 거 같으면 드워프어로 대화하자고 말도 꺼내지 않았을 거다.”

“말도 강한 인간. 좋다. 드워프어!”

“나도 드워프어 잘한다고 해주다니 고맙군.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 너한테 원하는 게 있거든.”

“아! 대화! 좋은 폭력 수단이지!”

그 말대로 김검천의 귀가 실시간으로 폭행당하는 중이었다.

그때 루시엘이 공용어로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샤칸. 그냥 공용어로 대화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하면 저 사람은 몰라도 다른 이들은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네 부족장이 알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인간 세상으로 나올 때는 공용어만 쓰기로 했다며?”

“그건 어떻게 알고? 비겁한 놈.”

“비겁한 게 아니라 네가 부족과 약속한 걸 지키라는 것이다.”

샤칸이 드워프어로 더 이상 대화를 못 하는 게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샤칸에게는 뭔가 숨겨진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루시엘의 말대로 공용어로 입을 열었다.

“인간. 네 드워프어는 괜찮았다. 이 몸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니 가능하면 들어주도록 하지.”

드워프어로 대화를 시도한 덕분인지 샤칸의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말 몇 마디로 기분이 좋아지다니 단순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김검천은 쿠퍼에게 들었던 소재를 떠올렸다.

그게 왜 드워프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들어 준다니 고맙군. 나는 네 수염이 필요하다.”

“하하, 수염 정도라면 얼마든지…. 뭐? 방금 이 몸의 수염이 필요하다고?”

윤기가 흐르는 번쩍이는 황금색의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검천도 남이 열심히 기른 수염을 그냥 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검천은 샤칸의 수염을 가리켰다.

“그래. 네 수염이 필요하다. 물론 그냥 달라는 건 아니다. 보답으로 중급 마석이라도 넘겨줄 수도 있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염이라면 또 기르면 될 테니 중급 마석이라면 충분한 보상일 것이다.

샤칸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지만.

“웃기지 마라! 이제 보니 인간은 인간이군. 이 기품 넘치고 우아한 수염을 어떻게 자르라고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목을 자르라고 하지!”

“샤칸. 네 더러운 수염이 필요하다는 인간도 다 있군. 이해가 가는 취향은 아니나 이번 기회에 자르는 게 어떻겠나? 엘프처럼 깨끗한 피부의 드워프라면 같이 어울려 줄 것도 생각해보지.”

“뭐라고? 엘프처럼 이 수염 하나 자라지 않는 놈들이 수염의 멋짐을 어떻게 알겠나!”

김검천은 격렬한 샤칸의 반응이 놀라웠다.

정말로 워스덤의 말대로 자기 목숨만큼이나 수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은가.

김검천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 같은지 쿠퍼가 옆으로 슬며시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김검천님. 저 반응이 이해가 안 되시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지요.”

“내가 뭘 잘못 말하기라도 했나?”

“종족 간의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드워프에게 수염이라는 건 사람에게 있어서는 머리털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김검천은 그제야 이해했지만 샤칸의 수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3대 금속 중 오리하르콘.

그 금속 가루가 샤칸의 수염에 붙어 있었으니까.

김검천이 쿠퍼에게 조용히 물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 오리하르콘 가루만 채취하면 수염을 자를 필요도 없을 텐데.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가루만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요.”

“저 수염에 묻은 금속 가루가 그렇게 채취하기 힘든 건가.”

“뭐라고 해도 3대 금속 중에 하나니까요. 광석을 캐다 보면 소량만 저 수염에 붙는답니다.”

“광석처럼 묻혀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이상으로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는 종류군.”

“거기다 오리하르콘은 보관마저 어렵다고 합니다. 저 수염에서 오리하르콘이 떨어진다면 금방 사라진다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저 수염 자체가 필요한 겁니다.”

“무슨 금속이 얼음도 아닌데 수염에서 떨어지는 순간 사라진다니.”

“그래서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3대 금속 중 오리하르콘을 최고로 뽑더군요. 힘들게 사용하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든다나? 가끔은 마법사들이 변태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어려운 걸 해결하는 순간 느껴지는 쾌감이 좋다던데요.”

김검천은 마음속 깊이 마법사들이 어떤 자들인지 잘 메모해두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쩌면 워스덤이 해결책만 알려주고 그냥 간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고난 끝에 오리하르콘을 얻어야 쾌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그런 쾌감 같은 건 느끼고 싶지 않은 김검천이 샤칸에게 입을 열었다.

“샤칸. 먼저 사과를 하도록 하지. 너한테 수염이라는 게 그렇게 소중한 건지 몰랐다.”

김검천이 고개를 숙였다.

샤칸이 김검천의 의외의 행동에 움찔했다.

김검천 정도의 무력이라면 샤칸 자신을 짓밟으면서 강제로 수염을 털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도 저런 태도를 보이다니.

자신보다 약하면 무조건 강탈하려고 들던 대부분의 인간들과는 달라 보였다.

하긴 인간들 중에서도 착한 인간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샤칸도 조금 누그러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크흠. 뭐, 몰라서 그랬다는데.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그래도 난 네 수염이 필요해.”

“…방금 전 사과하지 않았나?”

“내가 저지른 일에 사과를 한 거다. 다만 필요한 건 필요한 거지. 기회는 눈앞에 있으면 잡아야 하는 법이거든. 지금 너한테 붙어 있는 기회를 말이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오리하리콘을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상급 마석이 스스로 에너지를 회복하는 기다리는 방법을 쓰는 건 마지막 수단이었다.

김검천은 10년이 넘도록 상급 마석만 보고 멍하니 기다리는 것은 되도록 사양하고 싶었다.

샤칸이 아까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염은 드워프의 자존심이자 목숨과도 같은 것이야. 가지고 싶다면 그만한 각오를 보여줘.”

“물론이지. 그래서 뭘 원하는 건가.”

“승부에서 이 몸을 이겨라!”

김검천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샤칸을 한 방에 끝내줄 태세였다.

그걸 본 샤칸이 급히 두 손을 펴며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냐!”

“보면 모르나? 널 때려눕혀 승부에서 이길 작정인데.”

“드워프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아무리 드워프라도 질 게 뻔한 승부는 안 한다고.”

“이걸로 승부를 내지 않겠다는 건가.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자칫하면 김검천의 흐름에 말려 들어가서 원하는 승부의 내용도 말 못 하고 끝날 뻔했다.

샤칸은 드워프답지 않게 머리를 굴렸다.

샤칸은 루시엘과 다툰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인간. 만약 네가 이긴다면 무엇을 원하든지 해주지. 다만 조건이 있다.”

“네게 중요한 걸 가져가려고 하니 당연한 조건이 있겠지. 돈? 마석? 뭐든 말해봐라.”

“후후. 그런 게 이 몸의 수염보다 가치가 있을 것 같나? 그러고 보니 너 같은 인간도 미적 감각은 뛰어나군. 이 수염이 그렇게나 욕심난다니 말이야.”

사실 그 수염에 붙어 있는 오리하르콘 가루가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말을 하면 샤칸이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샤칸은 붙어 있는 오리하르콘보다 열심히 키운 수염이 더 신경 쓰이는 모양이니까.

샤칸이 말을 이었다.

“이 몸이 이기면 넌 드워프들을 볼 때마다 엎드려서 주인님이라 부르며 절을 해야 한다. 그게 인간들이 신분이 높은 자들에게 하는 가장 정중하며 치욕적인 자세라고 하더군.”

드워프가 인간들이 부르는 호칭이라 화를 낼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사용하는 샤칸이었다.

하긴 그런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서로 통하는 단어를 써야 하니 안 쓸 수도 없을 것이었다.

안 중요한 문제는 넘어가기로 한 김검천은 수염도 없는 턱을 만지며 샤칸을 쳐다보았다.

샤칸은 불안한 듯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왜 그러나?”

“그거면 되나 싶어서. 내가 이기면 널 어떻게 할지 모르는데.”

“으음. 생각해보니 너무 관대한 조건이었나? 그러면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하지.”

샤칸이 엘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루시엘이 샤칸의 손가락을 피해 슬쩍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샤칸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귀쟁이놈 보이지? 저놈의 종족을 볼 때마다 욕을 해라. 놈들에게 있어 최고로 모욕적인 내용으로.”

루시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샤칸에게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샤칸. 왜 가만히 있는데 끌어들이는 겁니까.”

“왜냐고? 이런 진흙탕 속에서 너만 남 일처럼 보고만 있는 게 속이 뒤틀려서 그런다!”

“해보겠다는 것입니까? 필요한 일이라면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요.”

루시엘이 차고 있던 활을 꺼내 샤캰을 향해 겨누었다.

화살도 없는 텅 빈 활을 말이다.

김검천이 손을 저으며 싸움을 중재했다.

“루시엘이라고 했지. 걱정 마라. 내가 샤칸의 말을 따라 엘프에게 욕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벌써부터 샤칸과의 약속을 어길 생각입니까?”

“지지 않으면 그만이잖아. 벌써부터 나의 패배를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당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샤칸의 능력은 잘 알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해보면 알겠지.”

김검천이 샤칸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신 나도 조건이 하나 있다. 승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했으면 좋겠군.”

“승부 내용을 본인이 정할 수만 있다면 관계없다. 승부다!”

***

그렇게 두 사람의 합의로 함선으로 돌아가는 김검천 일행에 샤칸이 동행하게 되었다.

의외인 것은 루시엘도 같이 가기로 한 것이었다.

세이야가 가지고 있던 화살의 발견 장소를 물으며 루시엘은 결과가 궁금해서라고 대답했다.

마법 스크롤도 없으니 샤칸과의 일을 증명해 줄 공증인이 늘어나면 나쁠 게 없기는 했다.

며칠을 이동하자 샤칸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언제까지 갈 셈이냐? 이 정도면 마물의 숲 중간까지는 충분히 진입했겠다.”

“여기로 하지. 그러면 오면서 승부할 걸 정했겠지?”

김검천은 유난히 넓어 보이는 공터를 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저번에 킬만과 싸웠던 곳이라 함선도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샤칸이 김검천에게 승부할 내용을 밝혔다.

“팔씨름이다. 우리 같은 전사들의 힘겨루기에는 이만한 게 없지. 물론 그런 승부에 마법같이 허약한 놈들이나 쓰는 기술은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관계없다. 하지만 이미 내 손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다시 한번 묻지. 인간. 분명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만으로 팔씨름을 하겠다고 승부 내용을 정한 거지?”

나름대로 자신에게 자신 있는 종목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단번에 김검천에게 제압당한 적이 있는 만큼 싸움으로는 질 게 뻔했으니까.

김검천은 알면서도 속아주기로 했다.

“승낙하고말고. 너나 지고 나서 약속이나 지켜라.”

“루시엘 같은 비실거리는 엘프가 보고 있는데 이 샤칸이 거짓말을 할 것 같으냐!”

가만히 있다가 욕을 얻어먹은 루시엘이 잘라 말했다.

“만약 샤칸이 졌는데도 인정하지 않으면 내기 내용을 이행하도록 제가 돕지요. 음?”

“키아악!”

사람들의 시선이 비명 소리 옆으로 향했다.

샤칸이 대화를 나누는 짧은 사이 옆에 지나가던 블러드트리를 금속 해머로 때려잡는 중이었다.

샤칸이 블러드트리를 사각형의 탁자를 귀엽게 자르며 대꾸했다.

“뭐? 왜? 뭐? 팔씨름용 경기대는 만들어야 시합할 거 아닌가.”

경기대가 만들어지자 김검천이 다가서는데 샤칸이 금속 해머를 내려둔 채 거리를 벌렸다.

김검천이 샤칸에게 물었다.

“승부를 포기하기라도 할 건가?”

“아니, 네가 승부할 상대를 불러주려는 거지. 불과 금속으로 담금질한 존재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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