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00화 (100/250)

100화

샤칸의 말이 끝나자 지면에 내려둔 금속 해머 주변으로 흙이 모였다.

금속 해머에 붙은 흙은 사람처럼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해머인데도 수포라도 생긴 듯 여기저기 튀어나오더니 팔이 생겨나고 다리가 나타났다.

금속 해머는 곧 키가 3미터 정도 되는 금속 고릴라처럼 변한 채 경기대에 섰다.

그걸 본 김검천이 지적했다.

“애초에 마법은 쓰지 말자고 네가 말했을 텐데. 골렘을 만드는 마법을 사용한 것 아닌가.”

샤칸이 대답했다.

“아니다. 이건 마법하고는 관련 없다. 마법으로 만든 골렘이 아니라 정령을 소환한 거니까.”

이걸 인정해야 하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던 김검천이 세이야를 바라보았다.

전문적인 지식을 몰라도 대략적인 건 세이야가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세이야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게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세이야나 쿠퍼가 알았다면 미리 김검천에게 정령에 대해서 알려주었을 것이다.

“같은 이종족인 엘프가 잘 알지 않을까요.”

시선을 한 몸에 모이게 된 루시엘이 대답했다.

“태어나자마자 드워프들이 사용할 수 있는 힘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마법은 아니지요. 마법은 배워야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엘프도 저런 정령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군.”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같은 힘이라도 개인마다 다루는 방법이 똑같을 리 없었다.

하물며 종족이 다르면 그만큼 차이가 날 것이었다.

김검천은 샤칸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만 알면 충분했다.

“좋아. 그 말이 맞다면 샤칸 대신 팔씨름을 해도 상관없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샤칸은 드워프답게 말도 안 통하고 행동이 앞서서 성격이 더러운 걸 느낄 수 있지만 이런 일에 거짓말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김검천과 루시엘의 대화를 들은 샤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루시엘의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거 욕 아니지?”

루시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샤칸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욕 아닌 거 맞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자칫하다가는 루시엘과 샤칸이 다시 싸움을 붙을 것 같았다.

김검천이 샤칸을 불렀다.

“샤칸. 그러면 내가 하나 묻지. 이번 팔씨름에 마법만 쓰지 않으면 그만인가?”

“그건 왜 묻지? 방금 네가 문제없다고 하지 않았나.”

“네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샤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실 샤칸도 금속의 정령을 불러낸 것이 마음에 안 걸리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김검천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금속 정령으로 대신 시합을 시키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좀 너무한 것 같았으니까.

겉만 보아도 어른과 어린아이의 시합 같지 않은가.

괜히 찔린 샤칸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마음대로 해라! 이미 말했듯이 마법에 관한 것만 아니라면 동의한다고 했으니까.”

“그거 고맙군. 그러면 나도 한번 제대로 힘을 써볼까. 1차 인장 강제 해방. 머신 융합.”

김검천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인장이 빛나는 손등을 보이며.

함선에서 발사된 배틀 머신의 양쪽 팔이 김검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미 그 광경을 보았던 쿠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그 광경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 쉬익! 샤킹!

오리하르콘을 얻으면 바로 쓸 생각으로 함선 근처까지 왔다.

이렇게 근처까지 왔으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쓰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김검천이 융합한 배틀 머신의 팔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게임을 시작해볼까?”

갑자기 샤칸이 김검천에게 달려가 배틀 머신의 팔에 달라붙었다.

김검천이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누가 보면 살인 게임에 참가라도 한 듯이 눈이 충혈된 채로.

“헉! 그건 무엇이냐? 크고…. 아름답구나. 거기다 이 고귀할 정도의 단련된 금속이라니. 이제 보니 입고 있는 마갑도 보통 솜씨로 만들어진 게 아니로구나!”

“이놈! 감히 김검천님께 달라붙다니!”

“그러게요! 저도 아직 달라붙은 적이 없는데! 아, 이게 아니라. 떨어지라고요!”

쿠퍼와 세이야가 샤칸을 겨우 떼어냈다.

불과 금속을 다루는데 특화된 종족이라 그런지 이런 종류의 물건에 흥분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샤칸 대신 루시엘이 나서며 김검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그거야말로 마법 도구가 아닙니까? 아직 마갑도 입고 있는 상태고요.”

“아니다. 네가 말한 건 모두 마나나 마법하고는 전혀 관련 없는 물건이라는 걸 보증하지.”

“인간이 말하는 건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니라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판단해라. 난 처음 보는 정령에 대해서도 너희들의 말 몇 마디로 인정한 사람이야.”

김검천이 말하는 내용을 신경 써서 귀를 기울이는 루시엘이었다.

이종족 중 아인인 드워프도 그렇지만 엘프는 특히 생명체의 감정에 민감했다.

귀를 기울이면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딱히 마법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엘프라는 종족의 특성이 그랬다.

물론 평상시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확인이 끝난 루시엘은 김검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진실이군요. 머리로는 믿기 힘들지만 제 귀는 사실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당연하지. 이건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과학의 산물이거든.”

잠시 후 배틀 머신을 본 충격의 영향에서 겨우 벗어난 샤칸이 김검천에게 물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주술이나 정령의 힘이라도 사용된 건가?”

“아까 말하는 거 듣지 못했나? 이건 과학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배틀 머신이라는 거다.”

샤칸은 자신이 불러낸 금속 정령과 김검천과 융합한 배틀 머신의 팔을 보았다.

고작해야 팔 부분에 불과한 배틀 머신은 금속 정령의 크기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이건 사기야! 저런 게 있다면 이런 승부는 하자고 안 했을 거라고! 네가 더 강해 보이잖아!”

“드워프는 질 것 같으면 도망칠 작정부터 하는 종족인가? 난 네가 금속 정령을 불러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그건!”

“네가 싫다면 승부 내용을 다른 걸로 바꿔줄 수도 있다. 난 관대하거든.”

김검천은 먼저 샤칸을 도발했다.

불만을 늘어놓던 샤칸이 발끈했다.

인간에게 동정까지 받으며 승부 내용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겁쟁이라는 거냐! 좋아! 해보자고!”

“겁쟁이라고는 안 했는데. 그러면 루시엘. 부탁하지.”

김검천의 말대로 시합 개시 신호는 루시엘이 내리기로 했다.

루시엘은 샤킨의 일행이긴 했지만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고 김검천의 편도 아니었다.

지금 모인 인원 중에서는 가장 중립적인 입장인 것이다.

김검천은 팔씨름용 경기대 앞에 섰다.

고릴라처럼 생긴 샤칸의 금속 정령도 거기에 맞춰 경기대에 팔을 올렸다.

샤칸의 말이 없어도 익숙하게 행동하는 걸 보니 아마도 몇 번이고 해본 동작으로 보였다.

김검천은 샤칸에게 말을 걸었다.

“정령이라는 것의 행동을 보아하니 너도 승부 내용을 갑작스럽게 떠올린 건 아닌 모양이야.”

“우리 드워프의 경우에는 직접 팔씨름같이 피부를 맞대고 승부를 하면 과열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령을 이용해서 대리 승부를 보는 거였군.”

“같은 레벨의 정령이라도 소환자의 상태에 따라 사용 가능한 힘이 달라지니 승부에 쓰기에 좋았지. 물론 정령이 진 게 자신의 패배는 아니라고 우기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너는?”

“걱정 마라. 정령이 진다면 깔끔하게 인정할 거야.”

루시엘이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향하며 말했다.

“그러면 빛의 구슬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오는 걸 신호로 삼지요.”

김검천이 금속 정령의 손을 붙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경기대의 끝쪽을 잡았다.

팔씨름에서 힘을 주기 위한 기본자세였다.

- 팍.

루시엘의 손바닥에서 빛의 구슬이 떠올랐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구슬에서 뿜어진 빛이 생각보다 강렬했기에 김검천이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은 것이다.

그 틈을 타 금속 정령이 김검천의 팔을 힘껏 밀어붙였다.

금속 정령은 생명체가 아니니 사람과는 달리 시력에 별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김검천의 손등이 경기대에 닿을락 말락 한 지점까지 도달했다.

시작하자마자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된 샤칸이 웃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으하하! 이거 괜히 걱정했군. 과학인지 배틀 머신인지 모르겠지만 금속 정령의 힘을 이겨낼 게 세상에 있을 리 없지!”

“과연 그럴까?”

김검천은 이런 상황에서도 목소리가 태연했다.

그걸 눈치 못 챈 샤칸이 자신 있게 소리쳤다.

“인간. 네가 이 몸보다 강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된 자세라면 금속 정령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그런 힘이라면 얼마든지 보여주도록 하지. 1차 문양 강제 개방. 신체 증폭.”

김검천의 손등에서 빛의 문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나마 빛의 문양에 집중되었다.

그중에서도 루시엘이 빛의 문양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김검천은 서서히 금속 정령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샤칸은 빛의 문양이고 뭐고 간에 승패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런 상황에서 열세를 만회하다니!”

김검천의 팔이 원래 위치에 도달한 순간이었다.

김검천이 샤칸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게 승부의 즐거움이지. 게임은 끝을 봐야 하는 법이고. 합!”

김검천이 기합과 함께 팔에 힘을 주었다.

- 쾅!

배틀 머신에게 밀린 금속 정령은 땅에 처박히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박살이 났다.

부서진 금속 정령과 경기대를 본 루시엘이 단호히 말했다.

“승부가 났습니다. 샤칸의 패배군요.”

세이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은 누군가의 승리라고 하지 않나요? 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이유는 별거 아닙니다. 샤칸이 졌다고 하는 게 더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겁니다.”

누가 봐도 루시엘과 샤칸의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긴 사람이 가려지자 김검천이 손가락을 들어 샤칸을 향했다.

“나의 승리군. 인정하나?”

“인정… 한다. 진 건 진 거지.”

“그러면 이제 네 수염을 내놔라.”

“큭. 차라리 죽여라. 목숨은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수염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거다.”

분명 비장한 대사일 텐데 왠지 김검천은 화가 났다.

“나한테 필요한 건 네 수염이지 네 몸 따위가 아니거든. 수염. 수염을 보자고.”

“마음대로 해라. 다만 이 수염이 그렇게 간단히 잘려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샤칸이 턱을 추켜올렸다.

샤칸이 김검천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던 쿠퍼가 단검을 들고 수염을 깎으러 나섰다.

생각보다 손을 먼저 쓰는 것도 나름대로 익숙한 쿠퍼였다.

“그딴 수염이야 일단 자르면 그만 아닌가! 으차!”

- 탱.

“엥?”

쿠퍼의 단검이 수염을 자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실패한 모습을 본 샤칸이 웃었다.

“푸하하! 3대 금속 중 하나라는 오리하르콘 가루가 묻어 있는 수염이야. 인간 식으로 따지면 상급 기사의 마나 소드로 겨우 자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란 말이지. 자, 자를 테면 잘라가 봐라!”

“그래? 그러면 이걸로 베어주지.”

그 순간 김검천의 광선검이 빛을 발했다.

원통형의 검자루로부터 빛의 칼날이 솟아오르며 샤캰의 목 부위를 베어나갔고.

빛이 자신을 스쳐지나간 샤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번에 자신의 황금 수염이 턱 아래로 모조리 잘려 나가버린 것이다.

“아이고! 목숨 같은 수염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꿔온 수염인데!”

샤칸을 뒤로한 채 김검천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전리품을 손에 쥔 채로 중얼거렸다.

“이걸로 드디어 함선의 엔진실을 열 수 있게 되었군. 수염으로 연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