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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03화 (103/250)

103화

김검천의 시야에 처음으로 들어온 광경은 엔진실의 여러 곳이 박살 나 있는 모습이었다.

배틀 머신이 부서져 있던 저번 구역처럼 말이다.

엔진실을 들어오기전 불안이 현실로 구현된 듯한 모습이었다.

김검천은 급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백금색 소재 장치로 향했다.

그건 함선 미르의 보조 엔진이자 핵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열핵융합 동력로였다.

열핵융합 동력로는 고장이라도 난 건지 엔진의 빛은 꺼져 있었다.

보조 엔진의 제어 장치 계기판 또한 모든 수치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개를 든 김검천은 바로 주 엔진이자 코어인 초신성 반응로를 살펴보았다.

그쪽의 계기판 역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김검천은 주먹만큼만 열려 있는 차단문 틈새를 살폈다.

아무리 잘 쳐줘도 김검천이 지나갈 정도의 틈은 아니었다.

파워드슈츠는 망가져서 차단문에 끼어있는 신세였다.

“엔진이 저 상태라면 차단문을 못 열어. 설마 여기서 홀로 갇히게 된 건가?”

[혼자가 아닙니다. 김검천 함장님 옆에는 항상 제가 있잖아요.]

미리내가 허공에서 모습을 투영하더니 김검천의 어깨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실제 사람의 몸무게와는 달리 깃털 정도의 무게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김검천이 있는 시대의 홀로그램은 실체마저도 구현 가능한 기술이 가능했다.

실체화를 할 정도면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했으니 잘 사용하지 않을 뿐이었고.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그걸 깜빡했네. 미리내는 내 옆에서 떨어질 리가 없다는 걸.”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전 무슨 일이 있어도 김검천 함장님의 편인걸요.]

함선의 인공지능으로서 함장인 김검천을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말은 더욱 친근하고 믿음직스럽게 들려왔다.

미리내가 김검천의 안색을 살피는 듯하더니 말을 걸었다.

[여전히 지금 상황이 걱정되시는 건가요?]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일이니 관계없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더 걸린다고.”

[그러면 잠시만 손을 내밀어 보시겠어요? 저를 위해서.]

김검천은 미리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손을 내밀어보았다.

지금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으니까.

미리내가 어깨에서 김검천의 손으로 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손바닥 위에서 발끝으로 한 바퀴 돌면서 중얼거렸다.

[김검천 함장님의 손은 따뜻하시네요. 저와는 다르게요.]

어딘가 쓸쓸하게 들리는 말이기에 김검천이 슬쩍 말을 돌렸다.

“너로부터도 온기가 충분히 느껴지고 있거든.”

[그야 충분한 에너지만 있다면 실체화도 가능하니 육체의 열기마저 재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육체가 아니더라도 네 마음의 열기가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라고.”

[제게 마음이 있다고요?]

“단순히 반응하는 걸 넘어 자신에 대해 고민 중이잖아. 가끔은 마음을 버리고 고민 자체를 안 하고 싶어질 때도 있겠지만.”

[겉치레로 하는 말이라도 괜히 기분은 좋아요. 보답을 해야겠네요. 그거 아세요?]

“어떤 거?”

[열핵융합 동력로는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요. 엔진 자체는 살아 있을 확률이 있습니다.]

김검천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열기라서 미리내만 눈치챈 모양이었다.

“엔진에 열기가 남아있다고? 설마 자체적으로 안전 모드에 들어간 건가. 가능성은 있군.”

[확실한 건 확인해야겠지요. 보조 엔진과 연결된 제어 장치를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김검천의 손 위에서 미리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조금 더 미리내와 놀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른 일이 먼저였다.

모습을 투영하는 것에도 에너지와 연산 능력이 소모되었으니까.

김검천은 제어 장치로 달려가 계기판을 살폈다.

계기판에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미리내. 계기판은 역시 엔진이 죽어있다고 가리키고 있는데.”

[제가 확인했을 때는 분명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다는 신호가 있었습니다.]

미리내가 김검천에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김검천의 눈이 빛났다.

그러면 답은 한가지였다.

“보조 엔진이 아직 동작 중이라면 제어 장치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찾지 못한 거였어.”

[그러면 일단 제가 제어 장치 내부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살펴보던 미리내가 답을 내놓았다.

[내부 전선이 끊어져 있어서 에너지 공급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해당 부위를 표시합니다.]

“해당 부위 전선을 이어보라는 거네. 간단한 작업이니 이걸로도 고칠 수 있겠지.”

김검천은 추락하기 전 엔진실에 왔을 때 확인해둔 비상용 수리 장치함을 열었다.

장치함 안에는 작은 구슬이 수십 개가량 정렬되어 있었다.

김검천이 수리용 도구인 작은 구슬을 손에 올린 채로 입을 열었다.

“수리모드 기동.”

김검천의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어떤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검천이 무슨 문제인지 긴급 수리용 구슬을 살펴보는데 미리내가 먼저 답변을 내놓았다.

[무인 장비의 일종인 만큼 수리용 구슬도 에너지가 방전된 모양입니다.]

“그런가. 배틀 머신이 있던 곳의 무인 장비도 부전원실을 기동했을 때나 움직였었지.”

[함선이 추락한 지 꽤 지났으니까요. 대기 모드라도 적게나마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엔진실에서 에너지를 사용 못 하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설계단계부터 엔진실은 다른 곳과 다르게 부전원실이 없게 만들었으니까요.]

“부전원실은 엔진실에서 에너지를 못 얻을 때를 대비한 비상용 시설이기도 하고.”

한 마디로 엔진실에서는 마석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못 쓴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랬다.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없으니 수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아무리 첨단 장비라도 사용할 수 없다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김검천이 긴급 수리용 구슬을 놔두고 직접 고칠 수 있는 도구를 찾아보려고 일어섰다.

미리내가 말을 걸었다.

[이럴 때는 역시 제가 나서야겠군요. 무선 충전 모드를 기동하려 합니다.]

“나도 생각은 해보았지만 그 모드는 너한테 위험해.”

[저도 실패하면 일어날 위험 부담 정도는 예측 가능합니다.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러니 반대지. 첫날 동면모드였던 너도 에너지를 얻어서 겨우 활성화가 되었는데 여기서는 에너지를 따로 얻을 수도 없잖아.”

만약 미리내가 실패하면 이곳에는 김검천 혼자 남아있어야 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김검천은 혼자 있는 것보다, 죽는 것보다 미리내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

김검천 자신이 아니라 미리내를 걸고 모험을 하는 건 거절하고 싶은 것이다.

[괜찮습니다. 저런 작은 수리용 구슬 하나 정도의 에너지 공급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순히 움직이는 걸로 끝낼 게 아니잖아. 계기판을 완전히 수리할 때까지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줘야 하니까. 그 시간까지 확실히 계산했어?”

[…현 상황에서는 한계 구간에 의해 발생하는 오차는 무시해야 합니다.]

“계측 결과가 부정적인데 내가 아닌 네가 하자고 강요 중이라니 이상한 느낌이야.”

[김검천 함장님도 이 방법이 지금 최선이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는 에너지 공급이 안 되는 구역이니까.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네 에너지도 사라질 테지.”

[갈수록 실패 확률이 증가할 바에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김검천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미리내에게서 부탁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다니.

이건 실패하면 최악의 방법이지만 성공하면 최선의 방도였다.

김검천은 결심을 굳혔다.

김검천은 수리용 구슬을 집어 손바닥 위에 올려둔 채 수리할 계기판 부분에 가져다 대었다.

조금이라도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반드시 성공하자.”

[감사합니다. 비상 무선 에너지 공급 개시.]

“음? 에너지가 주입되어도 안 움직여. 설마 원격으로는 에너지 투사가 안 되는 장치인가.”

[그게 아니라 그 수리용 구슬이 고장 난 걸로 확인 됩니다.]

“수리를 위한 도구가 고장 나다니. 하긴 엔진도 망가지는데 이거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지.”

[수리용 구슬은 더 있으니 동작하는 게 있을 겁니다. 다른 것에 에너지를 투입하겠습니다.]

“잠깐. 에너지 낭비는 막아야지. 수리용 구슬은 액체 금속을 사용한 장비니 물리적으로 확인하자.”

김검천이 고장난 수리용 구슬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 보았다.

- 팅.

가벼운 금속음 빼고 구슬 표면에는 아무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검천은 아무 반응도 없는 구슬은 한쪽에 따라 내려놓으며 다른 걸 계속 시도해보았다.

그렇게 분류하다 보니 손가락에 튕긴 구슬 표면이 물결과 같이 흔들리는 게 있었다.

김검천이 그걸 집어 올렸다.

“미리내. 이건 정상적으로 보이니 여기에 에너지를 주입해봐.”

[비상 무선 에너지 공급 재개. 수리 시스템 접속.]

에너지를 주입받자 수리용 구슬이 액체처럼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계기판에 스며들었다.

이제 남은 건 계기판이 정상 작동하기 전까지 미리내가 공급하는 에너지에 달려있었다.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인지 미리내는 김검천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크고 넓은 엔진실에는 오직 어둠 속에 김검천만이 적막 속에 남아있었다.

김검천은 뭔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혼자 남은 상황이 된 건 오랜만이군. 그래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지도.”

그런 김검천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일까.

어두운 엔진실에서 불빛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계기판에 설치되어 있는 장치에 불이 들어온 것이다.

“성공한 건가!”

[일부 수리 완료. 김검천 함장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김검천은 빠르게 계기판을 살폈다.

주 엔진인 초신성 반응로는 여전히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보조 엔진인 열핵융합 동력로에 대한 계기판에는 불이 들어왔다.

계기판으로 확인해보니 사용 가능한 에너지도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김검천이 계기판 패널을 조작해 에너지 공급을 시도했다.

- 우우웅. 위이잉.

열핵융합 동력로에서 약간의 진동과 함께 소음이 들려왔다.

그 순간이었다.

머리 위로 짙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맴돌기 시작한 것은.

- 마침내 돌아오셨습니까. 언젠가 귀환할 줄 알았습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엔진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엔진실 안에 김검천 혼자만 있는데도.

그건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김검천은 이상한 느낌이 든 방면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반투명한 검은 구체의 초신성 반응로가 위치하고 있었다.

김검천이 초신성 반응로를 쳐다본 순간 검은 구체가 일그러지며 반월형으로 바뀌었다.

무언가의 눈동자처럼 말이다.

- 우리는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당신이라는 존재가 오게 될지를.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듣자 불길한 감각과 살의가 동시에 김검천의 전신을 타고 내달렸다.

그 순간 김검천은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김검천은 분노를 표출했다.

그도 감정이 흘러넘칠 때가 있는 인간인 것이다.

“네 녀석이구나! 웜홀 속에서 그 현상을 일으켜 함선의 모두를 그렇게 만든 원흉이!”

상대의 얼굴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쓰여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저게 얼굴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저 수없이 죽어왔던 김검천의 육체와 마음, 정신이 놈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김검천은 초신성 반응로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자 눈동자를 닮은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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