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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04화 (104/250)

104화

단순히 반응만으로는 끝내고 싶지 않았는지 검은 구체가 김검천을 향해 천천히 내려왔다.

검은 구체와 닮아있는 주엔진 자체가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엔진으로부터 분열이라도 된 듯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하나 더 생성되어 움직인 것이다.

맨몸의 김검천은 일단 다가오는 검은 구체를 피해 이동했다.

하지만 검은 구체는 눈이라도 달린 듯 김검천을 따라 움직였다.

모습을 보이지 않게 김검천이 장애물 뒤에 숨어도 소용없었다.

검은 구체는 물리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그대로 벽을 뚫고 나왔으니까.

벽을 뚫고 나타난 그대로 검은 구체는 피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김검천을 덮쳤다.

검은 구체는 그대로 김검천의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몸속에 이물질이 침투했는데도 김검천 몸속에 있는 나노 머신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어쩌면 이건 육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직접 침투하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소리가 김검천의 머릿속으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으니까.

육체는 정신에 영향을 받는 법이었으니 어느 쪽이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 하나가 되자. 우리는 내가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완성이다.

“웃기는 소리. 이 몸이나 정신이나 모두 내 것이다! 알 수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네 놈 것이 아니야!”

검은 구체에 의한 소리는 거듭해서 김검천의 정신 방벽을 흔들었다.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처럼 정신 침식이 이어졌다.

하지만 김검천은 이런 이상 사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백, 수천 번을 죽었어도 망가지지 않은 비상식적으로 단련된 정신력을 가졌으니까.

김검천의 정신적 방벽과 검은 구체의 침식에 의한 힘겨루기는 거의 비슷했다.

어쩌면 자신 속에서 상대하는 김검천이 조금이나마 유리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김검천이 막아낸다고 해도 무한히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몸속에서 검은 구체의 영향력을 없애지 않은 한은 말이다.

그때 김검천의 내부에서 따뜻한 느낌의 빛이 반짝였다.

무수한 별들의 바다가 빛나는 것처럼.

[감히 누구를 덮치려는 거야? 김검천 함장님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고!]

- 너는…?

미리내가 개입하자 김검천은 몸과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검은 구체와 미리내가 서로 견제하자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혼자 힘으로도 비슷하게 대처하던 김검천이였으니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자신의 몸과 정신을 도로 장악하기 위해 김검천이 정신과 기력을 집중하며 소리쳤다.

“내 몸에서 꺼져라!”

[꺼지라네요!]

- 이 파편의 힘만으로는 무리인…완… 완벽한 합일을 이루우ㅇㅜ….

김검천이 느끼던 이상한 감각은 점차 사라지고 들려오던 목소리도 멀어져만 갔다.

어떻게서든 일단 몸속에서 쫓아내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깜빡이던 계기판 위의 불빛이 제 자리를 찾자 엔진실에 에너지가 공급되었다.

그와 동시에 차단문도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김검천이 이마를 부여잡고 가만히 있자 미리내가 육체를 살펴보았다.

[심박 수 안정. 생체 신호 정상. 신체에 이상 징후 없음.]

“정상이라는 단어가 너무 길잖아. 그것보다 방금 전 그게 뭔지 파악했어?”

[죄송합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그걸 제대로 파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괜찮아. 나조차 내 몸속을 헤집고 다니던 녀석의 정체를 몰랐잖아? 하지만 기분은 좋군. 더할 나위 없이. 아하하하하!”

오늘따라 감정의 변동폭이 커진 김검천은 마음껏 웃었다.

검은 구체가 김검천을 장악하려고 들 때 일방적으로만 당한 건 아니었다.

김검천도 검은 구체로부터 자세한 건 아니었지만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검은 구체가 김검천을 볼 때 김검천 또한 검은 구체에 대해 파악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얻은 실마리였다.

이 단서를 발판으로 자신과 함선 내의 사람들을 이 모양으로 만든 원흉을 찾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귀환하기 전 반드시 그것에 대해 죄를 물을 것이었다.

김검천은 고개를 들어 초신성 반응로를 바라보았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네가 원하든 말든 간에. 우리는 다시 보게 될 거다.”

김검천의 말에도 초신성 반응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미리내는 당장 주엔진으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지만 미리내의 말도 있으니 일단 할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미리내. 계기판과 열핵융합 동력로의 상태는?”

[계기판은 정상 동작 중입니다만 엔진은 추락 충격으로 기능 대부분이 멈춘 상태입니다.]

“계기판 수치를 보니 동력로가 동작하는 게 신기할 정도야. 그래도 정체불명의 반응로보다는 나으려나.”

[거기에 관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어느 쪽을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니 나쁜 걸 먼저 듣지. 난 맞을 바에는 먼저 때리겠지만.”

[현재 동작 중인 엔진의 출력을 높이면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건?”

[엔진을 가동한다고 해도 당장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김검천이 입가를 들어 미소를 지어보았다.

“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만약 열핵융합 동력로가 폭발하면?”

[가장 가벼운 피해 예상이 약 지름 100킬로에 달하는 지역이 날아가는 걸로 시작합니다.]

“한국 수도권보다도 더 넓은 범위군. 그 정도면 마물의 숲은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겠어.”

[아시다시피 그 정도의 핵폭발이 일어나면 추가적인 피해가 이어질 테고요.]

“혹시 핵겨울이라도 일어나면 대규모 환경변화로 인해 인위적인 빙하기가 발생할 테지.”

[추운 기후로 바뀌는 것으로만 끝나면 그나마 행복한 경우에 속할 겁니다.]

김검천이 다시 한번 초신성 반응로를 바라보았다.

보조 엔진인 열핵융합 동력로만 해도 행성의 기후를 바꿀 정도의 폭력이 잠들어 있었다.

주력 엔진인 초신성 반응로가 터지기라도 하면 행성 자체가 날아갈지도 몰랐다.

여기서 손가락을 잘못 놀려 세상이 멸망이라도 한다면 웃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이야기라지만 지구의 높으신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여기에 단 거지?”

처음 기술 장교와 대화했을 때도 그랬지만 초신성 반응로에 대한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열핵융합 동력로가 선택된 거야 다른 전함에서도 주력 엔진으로 쓰이는 것이었으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면 차라리 열핵융합 동력로를 하나 더 추가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확실한 건 초신성 반응로는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보조 엔진부터나 제대로 다뤄보자고. 열핵융합 동력로의 사용 가능한 출력은?”

[현재 엔진의 정확한 상태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에너지양으로 추정하면 5% 미만입니다.]

“그래도 엔진은 돌아가니 다행인가. 터지지 않은 채로.”

[말씀대로 엔진이 망가진 상황인데 출력이 높은 상태를 유지했다면 이미 폭발했을 겁니다.]

“어쩌면 엔진실의 차단문을 열기도 전에 터졌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로군.”

김검천도 저절로 가슴이 떨릴 정도의 소리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 건 절대로 사양이었으니까.

이 세상의 운명은 지금 김검천에게 달린 셈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존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지만.

“먼저 열핵융합 동력로에서 얻은 에너지는 엔진 자체를 제어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겠어.”

[예상치 못한 폭발로 죽고 싶지 않는다면 당연히 내리실만한 명령이군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걸로 만족하면 발전이 없겠지. 엔진을 안정시키는 수리도 동시에 진행할 생각이야.”

[수리를 통해 점차 엔진 출력을 상승시킬 작정이십니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5% 미만의 에너지로 만족할 리가 있겠어? 폭발이나 오작동의 위험은 없애는 한편 원래 성능은 되찾아서 써먹어야지.”

김검천은 힐끗 초신성 반응로를 쳐다보았다.

열핵융합 동력로와는 다르게 계기판에 보이는 표시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김검천도 당장으로는 저것에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눈앞의 열핵융합 동력로의 문제만으로도 신경쓸 것이 너무 많았다.

“열핵융합 동력로를 사용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초신성 반응로는 일단 봉인해둘 거야.”

[사실 둘 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보조 엔진은 수리하면 사용 가능이라도 하지 주엔진은 무엇인지 파악조차 못 했으니까.”

[어찌 보면 폭발 직전의 열핵융합 동력로보다 위험한 녀석이긴 합니다.]

“알지도 모르는 녀석이 날 덮치기도 했잖아. 내 동의가 없는 접촉은 싫어한다고.”

[그런 문제였습니까?]

“아무튼 함선만큼은 안전한 장소였으면 해. 이건 내 문제만이 아니니까.”

주변 사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와 김검천 함장님의 보금자리는 누구도 망가트릴 수 없을 겁니다.]

뭔가 사심이 들어간 듯한 미리내의 말을 슬쩍 넘어가며 김검천이 물었다.

“그런데 정작 엔진의 수리는 어떻게 할지 고민인데.”

[가장 큰 문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엔진 수리에 필요한 재료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네. 그런 거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많지는 않다지만 에너지가 공급되었기에 차단문 정도는 이제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출입이 자유스러워진 김검천은 수리용 구슬을 하나 집어 들고 엔진실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던 세이야와 리에, 쿠퍼, 댕댕이가 김검천에게 다가섰다.

김검천은 사람들에게 엔진 때문에 위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같이 위험한 상황을 겪어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예전과 같이 앞으로도 김검천만 믿으면 된다는 마음일 뿐이었다.

김검천은 생각보다 문제가 없어 보이자 입을 열었다.

“그러니 임시 출입 권한 부여와는 별개로 엔진실은 가능한 한 들어가지 마. 그리고 쿠퍼.”

“예. 김검천님.”

“엔진을 수리하기 위해서 금속 재료나 광물 같은 게 필요한데 구할 수 있겠어?”

“어떤 종류인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지요.”

“이것과 비슷하면 된다. 이 재질과 완벽히 똑같은 걸 원하는 건 아니거든.”

“유사하기만 해도 괜찮다는 말씀이군요.”

김검천이 내민 수리용 구슬을 보자 멀리서 구경하던 샤칸이 슬며시 쿠퍼의 뒤로 이동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금속을 훔쳐볼 작정으로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샤칸이었다.

구슬을 보기 위해 제자리에서 뛰는 샤칸의 행동이 눈에 안 뜨일 리 없었다.

잠시 수리용 구슬을 살펴보던 쿠퍼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김검천님. 저로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쿠퍼, 너로서도?”

“저도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한 모양입니다.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쿠퍼가 샤칸을 슬쩍 쳐다보았다.

“흥. 인간들이란.”

샤칸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는 싶은데 먼저 말해주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귀찮은 성격이었지만 김검천은 관대한 마음으로 한번 물어봐 주기로 했다.

“샤칸.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편하게 해봐.”

“김검천님이라면 알 수 있겠지. 드워프라는 종족은 금속과 광물의 발견과 제련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다고?”

“본인이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 부족 사람들이라면 해결책을 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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