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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12화 (112/250)

112화

부서진 술병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손을 찌르는데도 쟈칸의 손에서 피가 흐르지 않았다.

유리 조각 따위로는 손상을 입히지 못할 정도로 단련된 손인 것이다.

쟈칸이 옷에 손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미안하군. 기껏 가져온 선물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

“신경 쓰지 마시길. 아직도 많이 있으니까요.”

둘의 대화를 듣던 샤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망치라고 불릴 정도의 드워프라면 인간의 기준으로 상급 기사 수준이었다.

붉은 망치라는 칭호가 붙은 쟈칸은 젊었을 때 인간의 마스터 나이트를 때려잡기도 했다.

이런 전력을 보유한 부족이 제국과 전쟁 하는 중도 아닌데 제국 기사 몇몇에게 당하다니.

샤칸이 물었다.

“붉은 망치여. 우리 마을이 언제부터 제국의 인간들에게도 당할 정도로 약해진 거요?”

“약해진 게 아니야. 전력이 될 만한 드워프들은 싸우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면 인간들이 군대를 보내기라도 한 거요?”

“이런 평야 지대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적이 몰려오면 안 들킬 리 없지. 그 정도면 막아낸다고 해도 피해가 클 테니 마을을 비우고 도망치겠지만.”

“아, 진짜. 그게 도대체 뭐라는 겁니까? 드워프 답답하게 만들지 말고 빨리 말해봐요.”

“우리도 몰라. 알았으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면 그만인데 이러고 있겠냐.”

“예?”

쟈칸이 들어 올린 드워프제 잔 안에 든 액체에 파문이 일었다.

손도 못 쓰고 당한 것에 화가 나 팔이 저절로 떨릴 지경인 것이다.

“아무도 녀석들을 목격한 드워프가 없었다는 말이지. 뭔가 있다고 생각한 건 희생당한 드워프와 사라진 드워프들은 분명 있었기에 그런 거고.”

“그 외에 다른 점은요?”

“사라지거나 당한 드워프들 근처에 없던 커다란 구멍 정도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

“그러면 아까 전 제국 기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라는 겁니까?”

- 탁! 쿠득!

쟈칸이 다 마신 잔을 힘껏 돌 탁자에 내리박았다.

돌 탁자가 쟈칸의 힘을 못 이겨 박살 나버렸다.

그 와중에도 드워프제 잔은 멀쩡한 걸 보니 확실히 그들의 기술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었다.

“죽어가던 드워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것뿐이었거든. 아마도 놈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서 버려두고 간 거겠지.

“드워프다운 근성이었네요. 결론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거군요.”

“덕분에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야. 오늘 네가 겪은 일은 그게 원인일 테지.”

“그래도 평상시와 같이 대장장이 작업은 하는 것 같던데요.”

“흥, 제국이든 마도왕국이든 우리는 드워프야. 인간들이 무섭다고 아무것도 못 하고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사실 대장장이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해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그러면 하는 김에 우리 일 좀 도와줘요.”

쟈칸이 수염에 묻은 액체를 털어내며 웃었다.

오랜만에 본 샤칸의 뻔뻔함은 여전했기에 반갑기까지 했다.

“하하하! 네 놈이 마을로 돌아온 이유가 있구나. 거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요구를 해오다니.”

“괜찮다고 했으니 평소처럼 부탁 좀 한 거지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샤칸이 고개를 돌려 김검천을 쳐다보았다.

김검천이 품속에서 수리용 구슬을 꺼내 쟈칸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여기서 이것과 비슷한 재질의 금속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아니, 이 금속은!!”

김검천이 놀란 눈으로 샤칸을 바라보았다.

금속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종족이라고 하지만 한 눈에 이것의 재질을 알아보다니.

“과연 드워프인가. 설마 수리용 구슬의 재질을 보는 것만으로 파악할 수 있다니.”

“아니, 이건 나도 모르는데.”

“…방금 전 아는 듯이 말하던 그건 뭐요?”

“그거야 모르니까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거든.”

- 퍽!

김검천을 대신이라도 하듯 샤칸이 쟈칸의 턱을 머리로 들여 박았다.

쟈칸이 샤칸을 노려보았다.

“뭐하는 거냐!”

“손님들 앞에서 무슨 추태냐고요!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부끄럽게 아는 척하기는요!”

“망치가 불꽃 망치의 머리를 때리는 건 괜찮나? 이건 하극상이야.”

샤칸이 코웃음을 쳤다.

“헹, 우리가 무슨 인간들과 같은 수직적인 계급 사회입니까? 아니다 싶으면 거부할 수 있잖아요.”

“그래도 모두의 인정을 받아 불꽃 망치라는 호칭을 얻어 이곳 드워프 부족의 두목격인 치프를 맡은 게 이 몸인데.”

“그래서 이 정도로 넘어가 준 건데요. 다른 녀석이 그랬으면 주먹이 아니라 망치로 때렸을 거라고요. 김검천님 앞에서는 그러지 말죠?”

쟈칸이 샤칸의 말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내심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던 샤칸이었다.

그런 그가 인간을 인정하는 듯이 이름으로 부르다니.

그것도 존칭까지 붙여서.

“뭐? 김검천님? 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이 몸한테도 그렇게 안 부르는 녀석이?”

샤칸이 쟈칸의 묘한 눈길에 주춤했지만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제가 인정하고 승복한 사람이니 그런 말을 들을 만하지요. 제 수염도 도로 붙여줬다고요.”

“네 수염이 뭐 어때서. 멀쩡하기만 하구만. 어라? 그러고 보니 오리하르콘이 붙어 있어서 황금색이던 수염이 은색이 돼 버렸네? 오리하르콘은 어디로 팔아치운 거냐?”

“그건 말이지요…”

샤칸에게 이야기를 들은 쟈칸이 감탄의 눈길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샤칸이 김검천에게 존칭을 붙이는 이유를 알았으니까.

“샤칸을 가볍게 때려잡을 정도의 실력자인 데다가 수염을 존중하는 마음씨까지. 과연 샤칸이 손님으로 여기까지 모시고 올 정도군. 자, 뭘 도와주면 좋겠소?”

쟈칸도 김검천을 인정했는지 말투가 공손해졌다.

드워프에게 수염을 붙여준 효과는 굉장했다.

김검천은 생각보다 일이 잘 진행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리용 구슬에 대한 일을 해결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지요.”

쟈칸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전투 실력만큼은 다른 드워프들도 인정할 정도로 자신이 최고였다.

그 말은 전투가 아닌 방면 쪽은 자신보다 나은 드워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가 있기도 했다.

능력이 있는 드워프들은 자신의 말도 잘 안 듣는 것이다.

“가능은 할 것 같지만 그런 드워프들은 전부 자기 집이나 작업장에 박혀서 꿈쩍도 안 하는 놈들이라…”

“일단 여기로 부를 수는 없습니까?”

“아까 샤칸에게 말했듯이 드워프들은 비상시를 제외하고 강제적으로 뭘 시킬 수가 없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는 쟈칸을 향해 김검천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샤칸에게 먹히는 것이라면 다른 드워프들에게도 통할 방법일 테니까.

“자발적으로 달려올 만한 걸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혹시나 싶지만 그들도 금속 제품을 좋아합니까?”

“당연한 말을. 드워프라면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동안 밖에 있는 배틀 머신을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고 전달해 주시지요.”

“아까 샤칸도 그러더니. 배틀 머신이라는 게 어떤 것이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건가?”

“직접 보시지요.”

김검천이 쟈칸을 데리고 나가 마차 뒤에 걸쳐져 있던 천을 치웠다.

오는 길에 먼지가 쌓이는 게 싫어서 그걸 올려두었기에 배틀 머신이 안 보였던 것이다.

나타난 배틀 머신의 모습에 쟈칸이 입을 크게 벌리며 감탄했다.

“오오, 세상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금속으로 된 예술품이 다 있다니! 이 빛깔! 이 자태! 완벽할 정도로 곡선을 그리는 이 차갑고 단단한 감촉!”

쟈칸이 배틀 머신의 팔을 어루만지며 황홀해 했다.

역시 드워프는 드워프인 모양이었다.

가만 놔두면 떨어지지 않을듯한 기세였기에 샤칸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뭐랬습니까. 애송이라고 하시던 제 안목이?”

“크흠. 네가 보는 눈이 보통은 아니라는 건 인정해야겠군. 이런 예술품이라면 평생을 봐도 안 질릴 정도야.”

“흐흐흐, 이런 정도로 놀라시면 곤란하십니다.”

“뭐라고? 지금 이것보다 더한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말이냐?”

“전 보았지요. 불꽃과 금속의 초월 존재가 세상에 강림한다면 아마도 그런 모습일 겁니다.”

샤칸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대장장이 체질인 드워프였다.

산만 한 크기의 금속 덩어리인 함선을 보았으니 샤칸이 그럴 만도 했다.

쟈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나도 그걸 볼 수 있을까?”

“글쎄요. 그건 저 말고 김검천님에게 물어보시지요.”

쟈칸이 김검천을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보였다.

지금 급한 일은 따로 있지 않은가.

김검천이 그런 쟈칸에게 딱 잘라 말했다.

“먼저 다른 드워프를 불러와 이쪽 일부터 해결한다면 한번 생각해 보지요.”

“아쉽군. 그런데 저건 그렇다 치고 여기까지 오는 것도 귀찮아할 텐데 어떻게 불러올까나.”

“그건 그쪽이 생각해야지요. 데리고 못 오면 샤칸이 말한 건 상상만으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딱히 방법이 없는 쟈칸이 울상을 지었다.

그걸 본 김검천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수리용 구슬이 놓여있었다.

“그런 얼굴 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까지 데려오는 건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

“아, 이것의 재질은 여태까지 대장장이로 일해 왔던 나도 제대로 파악 못 할 정도였으니.”

드워프라면 이것만 봐도 당연히 무거운 엉덩이를 뗄 것이었다.

바로 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쟈칸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샤칸은 멀뚱히 서서 쟈칸을 보내려고 했다.

쟈칸이 샤칸의 귀를 잡아당겼다.

“나이 많은 노인을 혹사시킬 작정이냐? 한창 힘이 넘칠 때인 너도 따라와서 도와! 한 명만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니라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이쪽이 당하는 거 같은데요?”

쟈칸과 샤칸이 사라지자 김검천이 루시엘에게 물어보았다.

어깨가 넓은 데다가 수염도 풍성하게 길러 겉보기에는 쟈칸도 노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쟈칸의 나이가 얼마나 되기에 저러는 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거의 500살 가까이 되어 갈 겁니다. 하지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이 차이를 무시할 만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건 각 종족마다 수명이 다른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요. 단순히 나이만 따지면 인간은 언제나 다른 이종족에게 아이 취급 당할 테니까요.”

“그런 건가. 100세를 넘어가는 나이라도 다른 종족은 아이로 취급될 나이일 테니.”

“참고로 샤칸은 200살이 되어가지만 드워프족으로 따지면 이제 청년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루시엘은 몇 살이지?”

“후후, 엘프의 나이는 비밀입니다.”

그렇게 대화 중인데 멀리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쟈칸과 샤칸이 불러온 드워프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수리용 구슬을 먼저 보여주도록 한 게 이렇게나 효과가 좋았다.

“내가 먼저 볼 거야!”

“비켜! 이 동네 미친 드워프는 나야!”

“에잇! 아무래도 좋으니 그 배틀 머신이라는 건 내가 먼저 확인한다!”

몰려온 드워프들이 배틀 머신을 혀로 핥듯이 훑어보았다.

어떤 드워프는 진짜로 핥으려다가 다른 드워프들에게 수염이 당겨지는 형벌을 받았다.

변태다. 변태가 여기있다.

그런 김검천의 시선을 받고도 아우성치는 드워프들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샤칸이 코를 쓱 문질렀다.

“하하, 드워프판이네. 엉망 그 자체야.”

“샤칸,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닙니다.”

루시엘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샤칸이 김검천에게 말했다.

“김검천님. 저기 몰려온 드워프들이 오면서 수리용 구슬과 비슷한 재질의 금속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 자신들도 그와 비슷한 금속을 실험 중이었다고 하니까.”

“좋은 소식이군. 그런데 어떤 금속을 말하는 거지?”

“정확히는 한 가지 금속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금속을 녹여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더군.”

“합금을 말하는 건가. 하긴 구슬도 다양한 금속으로 만들어지긴 했으니 신뢰가 가는데.”

김검천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자 샤칸이 잠시 망설였지만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알아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고. 오는 길에 이야기를 해보니까 합금에 들어가는 다른 재료들은 대부분 있지만 오리하르콘이 없다 하더라고.”

“그거 드워프들의 수염에 붙어 있는 게 아니었나?”

“평상시라면 그런 셈이었지만 요즘은 비상시라잖아. 가끔은 비상금도 털어야지.”

“…정말로 다들 수염에 붙어 있던 거였나? 그래도 마을 전체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니.”

“얼마 전에 다른 곳에 보내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이제 얻으려면 드워프들이 실종되거나 죽은 지역으로 들어가야 광석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하더군.”

“오리하르콘이 필요하다면 제국 기사들과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리는걸.”

역시 그냥 얻을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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