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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20화 (120/250)

120화

손등의 문양이 떠오르자 쟈칸 집 앞에 놓여있던 배틀 머신이 꿈틀거렸다.

이 정도 거리라면 전함에서 사출할 필요도 없이 자체적으로도 움직이는 것이다.

공중에 떠오른 두 개의 팔은 김검천의 부름에 응해 동굴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곧이어 문양에 의해 에너지 공급이 증가한 내부의 나노 머신이 활성화되었다.

얼어붙었던 피부가 분홍색으로 변해가며 굳었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그런 변화를 못 본 글래셔가 김검천을 질문을 던졌다.

“문양? 그런 알 수 없는 소리가 네 마지막 유언이냐?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판국인데 두렵지도 않은 건가?”

글래셔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히 말하는 김검천이 기가 찬 모양이었다.

김검천은 상대가 그럴수록 더욱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실드 밖에 펼쳐진 인테리어가 춥긴 하지만 감성적이라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네 죽음을 부르는 얼음 속에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거라니?”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데. 공간이 좁아 그리 못하는 게 유감이네.”

오러의 얼음에 갇히면 벗어날 수 없는 혹독한 추위에 삶의 의지가 꺾여버리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 김검천이라는 녀석은 여전히 의지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글래셔는 김검천의 머리 부분을 향해 검을 들어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글래셔는 꼼짝 못 하는 김검천을 확인하고도 얼음 속에 가둬 죽이려던 마음을 버린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글래셔가 말했다.

“추위에 강한 체질인 거 같은데 머리에 구멍이 나고도 안 죽는지도 확인해보도록 하지.”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면 안 죽으면 사람이겠냐. 바보가 여기 있군.”

꼼짝도 못 하는 상대에게 바보 취급당한 글래셔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서렸다.

글래셔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그 안에서 오러섬을 맞고도 입을 놀릴 수 있을까?”

“안 맞도록 여기서 벗어날 건데?”

“무슨 재주로 말이냐?”

“내가 적의 기대를 저버리는 재간은 제법 있거든. 참, 너 뒤통수 조심해라.”

“흥, 그게 무슨… 으헉!”

김검천의 경고를 들은 글래셔가 콧웃음을 치다가 기겁을 하며 앞으로 엎어졌다.

등 뒤로부터 뭔가가 날아와 글래셔를 치고 지나갈 뻔했던 것이다.

- 쾅!

“이게 무슨?”

글래셔가 커다란 소음을 들으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 파샷!

그의 눈앞에서 얼음의 벽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 보였다.

내부의 실드와 날아온 배틀 머신이 양쪽에서 얼음의 벽을 눌러 박살 내버린 것이다.

글래셔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오러의 얼음을 부수고 여기까지 날아왔다는 거지? 단순한 금속 덩어리의 힘이 속성 오러보다 더 강하다는 말인가?”

그 사이 양팔에 날아온 배틀 머신을 장착한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얼음 밖으로 빠져나오자 나노 머신의 회복력에 의해 얼굴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갔다.

파워드슈츠에 의해 보호되던 몸 부위는 이미 회복된 상태였고.

“힘으로 오러를 처리하지 못하면 혹시 힘이 부족한 게 아닌가 고민부터 하라고?”

“세상에 그런 힘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네 눈앞에 있는데?”

김검천이 몸 주위에 남아있는 얼음을 배틀 머신의 팔로 치우며 대답했다.

비실체형인 실드도 얼리던 오러의 힘이 배틀 머신이라고 해서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배틀 머신의 팔에 다시 얼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걸 목격하자 마음이 놓인 글래셔는 아직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차라리 김검천이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순간 도망쳤으면 성공했을지도 몰랐는데.

글래셔가 김검천을 비웃었다.

“흥, 큰소리는 쳤지만 결국 얼음의 오러에서 벗어나지 못했군. 몸 전체가 얼어붙는 걸 피하려면 스스로 팔이라도 잘라야 할 거다.”

“그 정도로? 사람이 살다 보면 팔이 얼 수도 있는 노릇이지.”

“자기 팔을 잃는 중인데 하는 말이 고작 그거냐?”

“내 팔인데 네가 왜 흥분하는데? 얼면 녹이면 그만이잖아.”

“평범한 얼음도 아니고 오러에 의한 얼음을 도대체 뭐로 녹이겠다는 것이냐?”

“사람은 도구를 쓰는 동물이잖아. 이런 식으로!”

김검천은 그대로 팔을 지면에 내리꽂았다.

아까 전 미리내에게 주변 지형을 살펴보라고 한 이유가 다 있던 것이다.

땅속을 흐르는 용암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 쿵!

강렬한 일격에 지진이라도 난 듯이 땅이 흔들리며 아예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그 구멍 속에서는 용암이 당장이라도 흘러나올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김검천은 그곳에 약간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배틀 머신의 팔을 집어넣었다.

지켜보던 글래셔가 흠칫할 지경이었다.

- 치익. 치익.

팔에 달라붙은 얼음과 용암이 만나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용암이 나타나자 근처에 있던 슬라임이 본능대로 용암 구덩이 근처로 몰려들었다.

김검천이 잠시 후 꺼낸 팔에는 붙어 있던 얼음 같은 건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아무리 강력한 힘에 의한 결과라도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이 없으면 약해지는 법이다.

거기에 더해 용암 구덩이에 얼어있는 팔을 집어넣었으니 녹을 수밖에.

물론 배틀 머신의 팔이 용암 온도에 버틸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했지만.

김검천은 팔에 달라붙은 검은 돌 부스러기들을 털어냈다.

“이제야 따뜻하군. 역시 얼음 제거에는 용암이 최고야.”

사람이 아니라 금속도 녹일 수 있는 1000도가량의 용암에 팔을 넣고도 저런 소리라니.

눈앞에서 그런 행위를 직접 목격한 글래셔의 입에서는 이 말밖에 안 나왔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네 상식을 넘어서는 힘이라 괴물이라고 말한 건가? 사천왕이라더니 하찮네.”

얼음의 오러 영향에서 벗어난 김검천은 장착한 배틀 머신의 거대한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글래셔 보다도 더 큰 팔은 용암이 뿜어내는 붉은빛을 받아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글래셔는 그런 김검천이 과거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마왕보다도 더욱 무서운 존재로 보였다.

저것 앞이라면 글래셔 자신 같은 건 바닥을 기는 개미보다도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으아아! 사천왕인 이 몸이 그런 하찮은 존재일 리가 없다--!”

글래셔가 비명을 지르며 검에서 오러를 뿜어내 김검천을 찌르려고 들었다.

모든 걸 잃은 자가 발작적으로 꿈틀거리는 듯한 행위였다.

“한심하군. 마지막까지도.”

오러를 뿌리는 글래셔를 향해 배틀 머신의 커다란 주먹이 뻗어 나갔다.

그 주먹에는 실드를 몇 겹으로 중첩한듯한 은은한 푸른빛이 서려 있었다.

이쑤시개 같은 글래셔의 검과 거대한 강철 주먹이 맞부딪혔다.

- 우드득.

오러를 덧씌운 검의 끝부터 진흙처럼 뭉개져 내렸다.

격돌한 순간 절망을 접한 글래셔가 지금이라도 검을 놓고 도망치려고 했다.

- 물컹.

뭔가 밟은 느낌에 이런 상황에도 글래셔는 자신의 발밑에 눈이 갔다.

근처에 깔린 슬라임이 글래셔의 발아래 쪽부터 그를 녹이는 중이었다.

글래셔의 눈이 돌아갔다.

제국 사천왕 중 한 명이자 블루의 칭호를 받은 마스터 나이트가 슬라임에게 당하다니.

“슬라임 따위가 감히--!”

이런 생사가 오고 가는 긴박한 순간에 어디다 정신을 파는 걸까.

오히려 재상이었던 테우펠 공작 쪽이 더욱 정신력이 강했던 거 같았다.

그렇다고 적을 봐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검 끝부터 시작된 파멸은 검날을 지나 검을 쥐고 있던 글래셔의 팔에 도달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몸이 붕괴되는 걸 본 글래셔가 최후를 예감하며 유언을 남겼다.

“이건 꿈이야!”

“꿈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지!”

- 파삭.

김검천이 주먹을 거둔 자리에는 그저 피가 뭉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는 박살 난 혈석으로 보이는 붉은 돌의 파편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근처의 용암 구덩이 아래로는 뭔가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용암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용암의 파문은 곧 잔잔해졌고 동굴 안은 적막에 휩싸이고 되었고.

김검천은 배틀 머신에 묻은 잔재를 바닥에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행복한 꿈에서 깨어날 때 혹독한 현실과 마주친다면 정신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법이고. 미리내. 주변의 반응은?”

[현재 탐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인간형의 생명 반응은 없습니다.]

“이제야 드워프 마을에 평화가 돌아온 건가.”

[그런데 사천왕 정도 되는 자라면 죽이는 것보다는 생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배후에 있는 자가 제국 황제라는 건 알았으니 당장 필요한 정보는 얻어냈잖아.”

[그게 문제라서 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황제를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건 나중 일이지. 지금 직면한 문제는 오리하르콘을 구하는 거잖아.”

김검천은 엉망이 된 동굴을 살펴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동굴 안은 여전히 오러가 변형된 얼음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맨몸의 평범한 드워프라면 만지는 순간 얼어 죽을지도 몰랐다.

김검천이 주먹을 쥐며 중얼거렸다.

“글래셔 녀석이 눈앞에 있으면 한 대 더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런 주먹에 다시 맞아야 한다면 부활할 수 있다고 해도 안 할 거 같네요.]

***

결국 약간 지체되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리하르콘 작업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샤칸과 쿠퍼가 피부가 얼어붙는 추위를 참으며 동굴 안을 용암으로 청소했기 때문이었다.

들것에 실린 채로 쟈칸이 중간에 불의 정령으로 도와주기도 했고.

무사히 제국 기사들의 손으로부터 풀려난 드워프들이 김검천을 향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덕분에 살았군!”

“인간들 중에서도 이런 자가 있었다니? 정말 대단해!”

“김검천이라는 이름 꼭 기억해 두겠네! 다른 마을에도 알릴 정도로!”

그건 그만둬 줬으면 했지만 눈을 반짝이는 드워프들을 향해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김검천이 없었으면 그날로 이 드워프 마을은 전멸했을 테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병상에 누워있던 쟈칸도 몸을 일으켜 구원자인 김검천에게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자네는 우리 마을의 은인일세. 만약 샤칸이 자네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모두 제국에 끌려가 이렇고 저런 일을 당하고 말았을 거야.”

“그렇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드워프들을 도와주려고 여기에 온 건 아니니까요.”

“실제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 잡혀갔다면 죽는 것보다도 더한 치욕과 고통을 받았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보답을 해주고 싶군.”

“보답이라면?”

“뭐든지 말만 해주게. 이 쟈칸과 드워프들의 명예를 걸고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안 그래도 김검천은 드워프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오리하르콘을 얻으려면 해야 하는 의식이 있었으니까.

“무엇이든지? 들어 주기 힘들 텐데요.”

“걱정하지 말게! 드워프들은 한번 입에 낸 말은 반드시 지킨다. 인간과는 다르다.”

“뭐든 지라… 이거 거절하면 안 되겠군요.”

김검천이 슬쩍 웃어 보였다.

쟈칸과 드워드들은 갑자기 본능에 의해 등골이 오싹하는 걸 느꼈다.

김검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수염 삭제를 시작하지.”

“히이익!”

오리하르콘은 수염에 달라붙는 만큼 그게 목적이던 김검천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기겁을 하는 드워프들을 보며 뒤에서 구경하던 샤칸이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김검천님이야. 나만 당할 수는 없지.”

김검천이 그런 샤칸을 힐끗 보며 말했다.

“아, 샤칸. 네 수염도 포함이다. 혼자 빠지면 다른 드워프들이 섭섭하지 않겠어?”

“이에에에에?”

쟈칸과 드워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혼자 빠져나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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