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27화 (127/250)

127화

김검천이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하는 루시엘을 달랬다.

생각 없는 샤칸과는 다르게 루시엘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루시엘.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어. 설사 함정이라고 해도 다들 자기 한 몸은 챙길 수 있는 사람만 데려온 게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해.”

쿠퍼도 루시엘에게 한마디 했다.

“거기다 최악의 경우라도 김검천님이 있으니까요. 변경백의 기사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에게 큰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압니다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건 생각이 깊은 엘프로서 어쩔 수 없군요. 저기 있는 생각 없는 드워프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루시엘이 샤칸을 쳐다보았다.

작은 몸이기에 누운 채로 마차 안을 굴러다니던 샤칸이 콧방귀를 꼈다.

“흥, 너희 엘프들은 그래서 안 된다니까. 가끔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샤칸.”

“왜 그러지? 이 샤칸님의 입에서 나온 너무 멋진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냐?”

“그게 아니라 당신이 왜 단순하고 무식한지 이유를 알았거든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할 줄이야. 그게 지적 생명체로서 가능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자, 덤벼라! 그렇게 도발 안 해도 너와의 싸움은 언제든 환영이야!”

“도발이라니요? 그저 제 느낌을 솔직히 말했을 뿐입니다만.”

“대놓고 말하는 게 도발이라고!”

둘이 다투는 모습을 본 김검천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루시엘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된 건 보기 좋았으니까.

샤칸의 단순함은 가끔 머리가 아픈 일도 만들지만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내보이기도 했다.

누구의 말이 맞냐고 물어보는 두 명은 답이 없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곧이어 검문소에 도착해서 쿠퍼는 마부석으로 이동했다.

마차가 도착하자마자 성문 안에서 경비병이 나오더니 대뜸 말했다.

“신분증을 제출해라.”

마부석의 쿠퍼가 신분증을 찾는데 김검천이 마차 안에서 말했다.

“아니, 우리는 신분증을 제출할 필요가 없다.”

“뭐라고? 지금 반항하겠다는 거냐?”

김검천의 대답에 경비병의 얼굴이 굳었다.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니 곧 싸움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한 모양이었다.

하긴 얼마 전에 이곳의 성문이 날아가는 큰 사건도 있었으니 걱정할 만 했다.

성문을 날려버린 사람이 김검천인 건 모르는 것 같았지만.

알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김검천이 변경백과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난 김검천이다.”

“김검천? 어디선가 들은 이름 같기는 한데. 그런데 뭐 어쨌다는 거냐.”

“이상하군. 전에 헤어질 때 변경백이 내 이름만 대면 된다고 했는데.”

“뭐라? 수상한 놈이군! 백작 각하가 네 친구라도 된 듯이 말하다니!”

경비병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소란이 벌어지는 걸 눈치챈 경비 책임자인 기사가 경비병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가 급히 움직이니 그 뒤를 다른 경비병들도 영문을 모른 채 따라붙고 있었고.

자기편이 늘어나니 자신감도 불어난 경비병이 히죽 웃었다.

“자, 봐라. 기사님도 어이가 없는지 여기로 달려오시잖아. 억?”

달려온 기사가 경비병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경비병이 뒷통수를 잡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억? 웬 놈이… 아니라 기사님이시군요. 왜 때리시는 겁니까?”

기사가 경비병을 향해 인상을 구겼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가 아니라 입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두들겨 패고 싶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있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나. 몇 번이고 말했던 건데 그새 까먹어! 그 이름을 대는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항상 숙지하라고 했을 텐데!”

막 대들던 경비병과 전혀 다르게 기사는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김검천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검천님. 교육이 부족한 것 같으니 제가 나중에 따로 혼을 내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쪽을 보아하니 변경백이 나에 대해 이야기는 확실히 한 것 같으니까.”

“물론입니다. 백작 각하가 직접 하달하신 명령이라서 위에서 몇 번이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기사가 앞에서는 안 보이게 등 뒤로 주먹을 쥐고 흔들어 보였다.

김검천을 검문한 경비병의 얼굴이 파랗게 죽어갔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난 후 지옥 훈련이 기다릴 모양이었다.

기사가 몸을 돌려 따라온 경비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변경백에게 김검천이 왔다는 걸 알린 게 한 것이다.

그런 뒤 김검천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가시는 길은 사람을 붙여드릴 테니 귀찮은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면 검문은 안 하나?”

기사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하하하, 백작 각하가 직접 모셔오시라는 분에게 검문이라니요. 그냥 지나가시면 됩니다.”

“그것 고맙군. 여행길이라 짐을 좀 많이 챙겨와서 살펴본다면 귀찮아질 뻔했거든.”

“여행길의 짐 정도쯤이야 별거… 있을 수도 있겠군요.”

기사의 코앞으로 김검천이 탄 마차가 지나쳤다.

마차 안에 가득 찬 짐들은 그래도 이해가 갔다.

마차 뒤로 연결되어있는 짐이 마차 몇 대분은 되지만 않았다면.

기사가 더듬거리며 마차 뒤를 가리켰다.

“저… 저게 다 뭡니까?”

“이번에 수도에 간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 같으니 이것저것 챙겨온 거야. 그쪽이 통과해도 된다고 했으니 알 바 아니지 않나?”

“그래도 저건 몇몇 사람이 사용할만한 짐의 분량이 아닙니다만.”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가야겠는 걸. 변경백에게는 어떤 기사가 짐이 좀 많다고 내가 돌아갔다고 전해주겠어?”

곤란하다고 말하던 기사가 슬쩍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고 보니 짐이 많다고 이미 했던 말을 바꿀 수는 없지요. 거기다 백작 각하가 기다리시니까요.”

“마음 써주는 게 고마운데. 자네에 대해서는 변경백에게 잘 말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김검천이 변경백에게 과연 말해줄지 안 해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손해 볼 건 없었기에 기사는 경비병 몇 명을 붙여 변경백에게 안내하도록 했다.

변경백을 향해 가는 길에 예전 무료 배식을 하던 장소도 보였지만 사람들은 안 보였다.

쿠퍼가 아쉬운 듯 아무도 없는 공간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그 무료 배식하던 사람들은 여기서 철수한 걸까요?”

“급한 건 아니니 다른 기회를 보자고. 변경백부터 봐야 하니 나중에 찾아봐도 늦지 않아.”

사람들은 광장을 지나 변경백이 거처하는 내성에 도착하였다.

내성은 외성과는 다르게 성문에 위치한 다리인 도개교를 지나야 했다.

성 주변에 존재하는 물이 고여있는 넓은 구덩이인 해자를 지나야 해서였다.

그러니 다리만 내리고 올려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천연의 요새가 되는 셈이었다.

지금은 전투 상황이 아니라서 다리를 내려두고 있었지만.

김검천을 여기까지 안내한 병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료 병사에게 물었다.

“이상하네. 원래는 병사가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왜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지?”

“연락이 먼저 가서 그런 거겠지.”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우리가 알 게 뭐야. 시킨 일만 잘하면 그만이지. 빨리 알 리기나 해.”

병사 한 명이 앞서가 도개교를 지키던 기사에게 김검천이 왔다는 걸 알렸다.

잠시 후 기사들 사이에서 부기사단장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원래는 기사단장님이 마중 나오셔야 하는데 개인적인 사정상 제가 대신 나오게 되었습니다.”

“두들겨 맞게 된 상대를 마중 나오기는 싫겠지. 그쪽은 괜찮은가?”

“백작 각하의 명령에 따르는데 제 개인적인 감정은 관계없지요. 따라오십시오.”

기사단장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부기사단장이었다.

다리 위를 걷자니 코를 저절로 막고 싶을 정도로 악취가 풍겨왔다.

해자 속의 물은 흐려서 바닥이 안 보일 정도니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는 알만했다.

김검천이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해자의 물이 맑은 편은 아니군. 물 안에 뭐가 있는지 누구도 모르겠는데.”

“전투를 감안하면 저게 좋은 겁니다. 물이 더러울수록 아무도 건너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내성 안으로 들어서는데 마주치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주변 정리를 해둔 모양이었다.

대놓고 드러낼 정도로 좋은 일로 변경백을 만나려는 건 아니었으니까.

기다리고 있던 변경백이 김검천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나. 이렇게 온 걸 보니 제안을 승낙한 모양이군. 황제의 탄신기념일 전에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제국의 신하의 입에 오른 단어가 황제 폐하가 아니라 황제였다.

김검천은 용무를 마치고 물러서는 부기사단장을 살펴보았다.

부기사단장은 변경백의 말에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부기사단장은 황제보다는 변경백 쪽에 충성을 바친 모양이었다.

변경백은 김검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적어도 김검천을 자신의 아래로 보지는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다른 일행들을 대표하는 김검천도 적의가 없다는 걸 보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 딸랑, 딸랑.

인사가 끝나자 변경백이 머리 위로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오자 변경백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온 것을 보니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러면 식사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들이니까.”

변경백의 말대로 나온 풀코스 요리는 나쁘지 않았다.

전채에 이어 스프와 빵, 샐러드, 주식인 고기, 디저트까지.

왕국 수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다른 일행들은 아쉬운 표정이 떠올랐다.

이미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한 김검천을 제외하고는.

변경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검천에게 물었다.

“뭔가 식사에 부족한 점이라도? 혹시 음식이 이상했다면 당장 요리사의 목을 쳐서 사죄라도 해야겠소.”

김검천이 식사의 마무리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주방장은 죄가 없지. 그게 아니라 우리 일행은 더 맛있는 걸 먹어봐서 그런 거지. 쿠퍼.”

“예.”

쿠퍼가 들고 온 짐에서 간식으로 챙겨온 휴대용 전투식량 하나를 꺼냈다.

변경백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게 뭐요?”

“일종의 보존식이라고 할까? 다른 것도 있지만 이건 그냥 먹어도 되는 종류고.”

“그렇군요.”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변경백은 전투식량을 보면서 손을 대지는 않았다.

김검천이 피식 웃으며 전투식량을 반으로 가른 후 하나는 변경백에게 내밀었다.

다른 하나는 입에 넣으며 말했다.

“독살이라도 할 거 같은가?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바에는 그냥 손을 쓰고 말지.”

“…누가 못 먹을 줄 알고 그러오? 보존식 같은 건 어쩔 수 없을 때나 먹는 것이라 그런 거요.”

김검천이 먹는 걸 본 변경백은 마음을 굳힌 듯이 손을 뻗어 전투식량을 받아먹었다.

몇 번 입을 우물거리던 변경백이 눈을 크게 떴다.

“음?”

“맛있지?”

“크흠. 정말 맛있구려. 이렇게 차린 코스 요리만큼이나.”

“뭘 그 정도 가지고. 제대로 조리해 나온 음식은 더 맛있다고.”

“과연. 그쪽 일행들이 대접한 식사에 만족 못 한 이유를 알겠소.”

변경백은 전투식량을 마저 먹어치웠다.

아쉬운 듯이 잠시 눈을 감으며 맛을 음미하던 변경백이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는 이상한 것 같지만 좀 더 상대를 존중해야 하지 않겠소? 예를 들면 서로 간에 존대를 한다든지.”

오늘은 헤어질 때와는 달리 꼬박꼬박 반존대를 하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김검천이 변경백의 눈앞에서 다 마신 찻잔을 손가락에 놓고 돌렸다.

김검천은 변경백을 처음 만난 순간의 일을 잊지 않았다.

샤칸을 짓밟고 채찍을 휘두른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샤칸이 먼저 공격했다지만 빌미를 제공한 건 변경백 아닌가.

“난 존중 받을 사람이 아니면 존대를 안 해. 그 쪽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서로 손을 잡기로 했으면 겉치레라도 예의를 지켰으면 해서 그러오.”

“꼬우면 그쪽도 반말하든가. 우리 관계가 좋은 의미로 시작된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해.”

“그렇군. 우리는 서로 주고받을 게 있을 뿐이지 친구를 사귀려는 건 아니니까.”

괜히 말을 높여 손해 본 것 같은 변경백도 그냥 말을 놓았다.

김검천이 딱 잘라 말했다.

“먼저 확실히 해둘 게 있다.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말은 절대로 잊지 말도록.”

“물론. 황제만 죽일 수 있다면 뭘 못 들어줄까.”

“그러면 계획을 들어보도록 할까. 어떻게 황제에게 접근시킬 생각이지? 아무래도 황제의 탄신기념일과 연관 있는 것 같던데.”

“황제가 이번 생일을 맞아 개최하는 무술 대회를 노릴 예정이야. 죽음이 넘치는 축제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