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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28화 (128/250)

128화

무술 대회라는 이름의 죽음의 축제.

별로 예감이 좋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었지만 김검천은 차를 마시며 입가심을 할 뿐이었다.

김검천에게 있어서는 자신에 대한 죽음의 위협보다 맛없는 차가 차라리 더 신경 쓰였으니까.

“제국의 정점이라는 황제치고 별난 취향을 가졌군.”

“죽지도 않은 괴물이 즐길 수 있는 취향은 그 정도일 테니까.”

뭔가 빈정거리는 듯한 말에 김검천이 물었다.

“죽지 않은 괴물이라는 게 별명 같은 건가,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기라도 한 건가?”

“하긴 이건 제국 귀족들 중에서도 일부만 아는 사실이니 너희들이 알 리가 없겠지. 황제의 나이가 올해로 300살이라는 걸 말이야.”

가만히 듣고 있던 루시엘이 반박했다.

엘프인 그가 아니더라도 이곳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60세만 넘어도 이곳의 인간은 오래 산 편입니다. 인간이 300살까지 살다니 말도 안 됩니다.”

샤칸은 일단 손을 잡기로 했지만 동족을 패던 변경백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나온 음식은 죄가 없기에 나머지도 물처럼 들이키면서 내키는 대로 투덜거렸다.

“알고 보니 인간이 아니라던가? 우리 같은 이종족의 피가 섞인 하프나 쿼터일 수도 있지.”

김검천의 눈길이 쿠퍼에게 향했지만 그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황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평상시보다도 더욱 말수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김검천은 샤칸의 말대로 이종족 조상을 가진 사람의 격세유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는 발현되지 않아도 몇 세대가 지난 후 선조와 같은 게 발현될 수도 있었으니까.

황제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할아버지나 그 선대에 황제와 같은 자들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변경백이 단호히 거부 반응을 보였다.

“괜히 괴물이라고 했겠나?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이까지 살아있으니까다. 그것도 젊은 외모 그대로.”

변경백이 저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김검천이 다시 질문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인간이라고 확신하는 근거가 있을 테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순수 혈통의 인간이었거든. 그들은 모두 늙어서 70세 이전에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어디서 본 기록인지 모르겠지만 위조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

“우리 가문에 전해오는 비밀이니 그럴 리 없다. 가문의 가주와 그 후계자만이 볼 수 있거든.”

그 정도로 비밀리에 전승되는 것이라면 틀릴 가능성은 낮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전해오는 가문의 기록인 모양이었으니까.

높으신 분들의 추악한 일들이 적혀 있기에 협박용으로도 쓸 수 있는 것 같았고.

“혹시 현재 황제의 부모가 아닌 그전의 황실 가계도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나?”

“그것만 해도 벌써 300년 전 일이야. 전해져 온다고 해도 훼손된 부분이 많다고.”

“그런 건 보통 마법적으로 처리해서 소중히 보관하지 않나?”

변경백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이미 죽은 선대의 변경백이나 알만한 이야기였다.

자신은 모르는 것이다.

“거기다 이 몸이 변경백이라고 해도 우리 가문이 처음부터 변경백이었던 것도 아니야. 예전 변경백 가문은 황제에 의해 몰살당했거든. 원래 그 기록서는 그들 가문의 것이었어.”

“그들은 황제의 비밀에 대해 접근해서 토벌당한 건지도 모르겠군.”

“가능성은 높지. 제국에서 황제에게 불손한 마음을 가지고 오래 사는 자들은 못 보았거든.”

변경백의 말에서 불길한 어감이 풍겼다.

지금 그가 황제에 대항해 그런 길을 걸어가려는 중이었으니까.

“제국 황실은 변경백 가문이 있기 전부터 있었겠지?”

“제국이 생긴 이후 황실의 혈통 자체는 지금까지 바뀐 적 없었을 거다. 1000년이 넘도록.”

김검천이 지구 역사를 떠올려보았다.

제국은 유지되어도 역모나 반란으로 황실의 혈통이 바뀌는 일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제국 건립 이래로 1000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황실이라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눈앞의 찻잔에 시선을 둔 채 변경백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말하고도 뭔가 수상함을 느껴서인지 머릿속이 혼란해진 모양이었다.

그때 미리내가 김검천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인간이 그 나이까지 사는 게 이상한 겁니까? 김검천님도 300년쯤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김검천은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만 움직였다.

변경백 앞에서 혼잣말하는 건 이상하게 생각될 테니까.

미리내는 입 모양을 읽어 김검천이 무슨 말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건 우리 시대 사람들은 몸속의 나노 머신이나 유전자 조작을 해서 가능한 일이잖아.”

[여기는 확실히 다르군요. 이세계 사람들은 그런 것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이세계인이니 나와 완전히 같은 유전자를 가졌는지도 알 수도 없고.]

[제가 세이야라도 잡아서 유전자검사라도 해볼까요?]

“그건 지구연합우주방위군 규범 위반이야. 중범죄라고.”

[죄송합니다. 김검천 함장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더니 잠시 폭주한 모양입니다.]

“이래서 네 옆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내가 관계되면 너는 금방 선을 넘으니까.”

[그 말씀대로 김검천 함장님 옆에는 항상 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이야기 같았다.

미리내와 이야기를 끝내고 김검천은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는 변경백에 물었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

“아, 이거 사람을 앞에 두고 실례했군. 필요한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주지.”

“아까 전 무술 대회를 죽음의 축제라고 했는데 그렇게나 위험한가?”

“대회라는 건 겉치레일 뿐이거든. 그곳 규칙은 한 가지뿐.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거나 죽이면 승리한다는 거지. 예외가 있다면 본인이 스스로 전투를 포기하고 항복하든지.”

“대회의 출전자가 순순히 포기할 것 같지도 않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수를 써도 상관없다는 건가?”

“독이든 마법이든 암기든 상관없다. 이긴 자가 진리니까.”

“과연. 황제가 피를 보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 이해가 갈려고 해.”

“황제 말고도 다른 제국민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황제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가 무술 대회라고 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니까.”

고대 지구에서도 싸움 구경을 통해 사람들의 불만을 통제하는 수단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자기가 말려들지 않았을 때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국도 사정이 좋은 건 아니겠군. 그렇게 피를 봐야 만족하는 자들이 있으니.”

“크크,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식량도, 식수도 부족하니까. 또한 배는 고프지 않더라도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야. 제국 또한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이종족을 가장 하급 계급인 노예로 부리면서. 그런 의미에서 네게 하나 원하는 게 있다.”

“뭔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지.”

김검천이 변경백을 노려보고 있는 중인 샤칸을 바라보았다.

“먼저 선수금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솔직히 일이 다 잘 될 거라는 보장도 없고 끝난 후 정산받기도 힘들 거 같거든.”

변경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만을 표하려던 변경백은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돈인가? 이번 일에 필요한 돈이라면 얼마든지 넘겨주도록 하겠다.”

“돈이 아니라 네 영지 안에서만이라도 일단 노예를 풀어주었으면 해. 특히 이종족들을.”

깜짝 놀랄만한 발언에 변경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종족 노예를 거느리는 제국이라도 제법 큰 돈이 없으면 엘프나 드워프를 살 수 없었다.

제법 잘 살고 영향력이 있는 제국인들이나 이종족 노예가 있는 것이다.

노예를 해방시켜 준다면 나름대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변경백도 등 뒤에서 칼에 찔릴 걱정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무슨 의도로 그런 소리를 하나? 변경백이라 해도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거 재미있군. 뭐든지 들어준다는 말도 했으면서 그 정도도 못 해준다는 건가?”

“황제가 사라지면 그 공백을 메꾸는 과정에서 본인이 그만한 권력을 지니게 될 테니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변경백이 곤란한 듯 쩔쩔매었다.

김검천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네 영지의 노예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야. 내가 황제가 사라진 후 제국 전체의 노예를 풀어달라고 한다면?”

“그것과 이건 이야기가 달라! 어렵다고!”

“이곳 영지에서는 네가 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이런 식이라면 그때라고 달라질까 싶은데.”

“그… 그건 황제만 사라진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사실 상관없긴 해. 네가 싫다고 하면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거든.”

“하하, 그것 잘 생각했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변명 같은 건 들을 필요가 없었다.

쉬울 거 같은 일이라면 굳이 부탁할 이유도 없었고.

김검천이 변경백의 말을 끊었다.

“다들 이만 가도록 할까? 변경백께서는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니 이쪽도 알 바가 아니지.”

김검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쿠퍼, 샤칸, 루시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검천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걸 본 변경백이 다급히 말했다.

“왜 그렇게 마음대로 구는 거지? 그를 처리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냐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난 내 입으로는 네 제안을 승낙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확실히 김검천이 하겠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검천이 온 것을 보고 변경백 혼자서 마음대로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김검천이 오해의 소지가 있도록 행동하기는 했지만.

변경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밥은 배불리 잘 먹고 간다는 거지. 맛은 좀 아쉬웠지만.”

“잠깐! 너희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변경백의 외침이 멀리 떨어진 호위 기사들의 귀에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그런 약조가 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일이 잘못되면 무력이라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뛰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호위 기사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백작 각하!”

분노한 표정의 변경백이 입을 열기 전 김검천이 먼저 말했다.

“왜 나를 불렀는가를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이런 약한 기사들을 믿지 말라고.”

호위 기사들이 인상을 썼다.

변경백의 손님이라고 하지만 기사들을 앞에 두고 굉장히 무례한 발언 아닌가.

물론 막 명령을 내리려던 변경백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두들겨 팬 일도 그냥 넘긴 채 김검천 일행을 불렀는지 떠올린 것이다.

박살 난 성문과 호위 기사들이 장난감처럼 나가떨어지던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변경백은 김검천과 자신의 호위 기사들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본인이 가진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력이 있어서였지. 기사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라.”

“백작 각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돌아가라고 했다. 아까 전 고함을 친 건 대화 중 감정이 격해져서 그랬을 뿐이야.”

호위 기사들이 의문의 눈초리로 김검천을 쳐다보며 떨어지지 않은 발을 옮겼다.

계속 변경백이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에 김검천이 결정을 도와주기로 했다.

“좋아. 그러면 이번만큼은 내가 양보해주도록 하지.”

변경백이 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김검천이 한 말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정말인가?”

“당연하지. 난 한 말을 지키거든. 대신 다른 걸 요구하도록 할 테지만.”

물론 상대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때나 약속을 이행한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노예를 해방시키라는 말만 아니면 무엇이라도!”

“뭐든지 들어준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뭐, 좋아. 영지 내 노예에 대한 부당한 폭력은 금지시켜라.”

“그것도 어렵긴 하지만 노예 해방 같은 난이도는 아니군. 개별적인 다툼은?”

“난 최면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확실히 이정도면 해결할 수 있긴 하지만 여전히 반발하는 자들이 많을 텐데…”

“뭐든지 들어 준다고 한쪽은 네가 먼저였다. 이 정도도 못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김검천과 변경백 중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뻔했다.

지금 급한 쪽은 변경백인 것이다.

변경백이 두 손을 들었다.

“할 수 없군. 네 말대로 따르기로 하지.”

“그러면 지금 당장 시행해라.”

“바로?”

샤칸이 고개가 떨어지도록 급히 끄덕이고 있었다.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물론. 약속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넌 자유의 몸이 아니야.”

“좋다! 그러면 그쪽도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겠다.”

“네가 먼저 성의를 보이면 그러도록 하지.”

“잠시 실례하도록 하지. 이런 일에 소리쳐서 사람을 부르는 건 목이 아프니까.”

변경백이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김검천이 입가에 대고 손가락을 묘하게 움직이자 미리내가 말했다.

[발동했습니다. 김검천 함장님. 그런데 변경백에게 뭔가를 요구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그건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그러셨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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