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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29화 (129/250)

129화

쿠퍼나 샤칸, 루시엘도 궁금한 얼굴로 김검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검천이 다시 의자에 허리를 기대며 입을 열었다.

“방금 변경백에게 노예 이야기를 한 건 샤칸을 위한 부분이 있긴 해. 노예 중에서는 드워프같은 이종족이 있으니까. 그게 약점으로 보이도록 말한 점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는 잘 모르겠군요. 상대가 방심하는 걸 노리기 위해서입니까?]

“그런 셈이지.”

미리내의 목소리가 들리자 샤칸이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거 참, 신기하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들리는 목소리라니. 미리내라고 하던가?”

루시엘이 샤칸에게 대꾸했다.

“그렇게 신기해하지 마십시오. 정령이나 고스트 계열 같은 경우에도 이렇지 않습니까.”

“너야말로 모르는 소리를. 이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까 놀라운 거잖아.”

샤칸과 루시엘이 투닥거리는 걸 내버려 둔 채 쿠퍼가 말했다.

“방심을 위해서라도 굳이 약점으로 보이는 부분을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까?”

“방심을 유도하면 상대는 그만큼 우리에게 마음을 놓게 되거든. 우리에게 신경 쓰는 것보다는 방심한 상대가 낫지 않아? 어느 쪽이든 상대 못 할 건 없지만.”

쿠퍼가 뭔가 알아챈 표정을 지었다.

“우리보다는 황제를 처치하는 일에 변경백이 몰두하게 만드신 거군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인간보다는 뭔가에 욕심을 부리는 쪽이 조종하기 편할 테니까.”

“왜 김검천님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필요한 걸 공급해주는 이상은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세상일은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지만요.”

“쿠퍼, 너도 그런 경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걸.”

“그러게 말입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지 대충 대답을 한 쿠퍼가 씁쓸하게 웃었다.

눈치 없게 샤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 변경백에게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달라고 한 게 무리한 건 맞았군.”

“당장 노예 모두를 해방시켜 달라고 한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

“노예를 무작정 때리게 한 일은 막지 않았는가. 덕분에 드워프들도 안 맞게 되었군.”

“그래서 먼저 해방시켜달라고 한 거지. 무리한 요구를 먼저 말해서 때리지 말라는 요구가 상대적으로 쉽게 먹힌 것이야.”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잡혀간 동족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샤칸을 김검천이 다독였다.

급한 불을 껐으니 이제는 자신들의 일부터 처리할 시간이었다.

“황제를 처단하는 게 네 종족들이 겪을 피해를 줄여준다고 생각해. 변경백도 약속했잖아.”

샤칸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혼자서는 이 영지에서 드워프 한 명도 못 구한 채 당했던 일이 떠올랐으니까.

“그 말이 맞아. 그래서 황제를 벌주는 일에 끼어들게 된 거지.”

김검천은 조용히 있는 루시엘을 바라보았다.

그도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왜 그러지? 루시엘.”

“아, 방금 전 변경백에 대해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라도 있었나?”

“황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의 예전의 그는 아들을 위한 순수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욕망도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말입니다.”

“아들이 죽은 게 동기가 되긴 했지만 지금 와서는 다른 욕심이 생겼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직접 대화를 나눈 건 아니라지만 바로 옆에 있었으니 이 정도는 느껴지더군요.”

“가끔 생각하지만 엘프의 그 능력은 마법 도구 이상인 것 같네.”

“꼭 좋은 건 아닙니다. 이것 때문에 마법 도구 취급을 당해 잡혀가는 동족들이 있으니까요.”

평소와 다르게 귀가 쫑긋 선 걸 보니 루시엘의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었다.

드워프보다 이성적이라는 엘프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엘프도 아예 감정이 없는 건 아닌 것이다.

김검천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보통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긴 마련이거든. 다들 변경백에 대해 주의는 해둬.”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분 탓인지 몰라도 뭔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듭니다.”

“아, 지금 풀어주도록 하지. 미리내.”

[실드 해제. 통상 공간으로 복귀합니다.]

쿠퍼와 샤칸, 루시엘은 호흡하기가 편해진 느낌을 받았다.

김검천은 변경백이 나간 이후로 실드를 펼쳐 공간을 장악해두었던 것이다.

“김검천님. 방금 그걸 발동한 이유는 뭡니까?”

“생각보다 답답했나 보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변경백이 돌아와 김검천에게 알렸다.

“거래한 대로 영지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노예들에 대해 의미 없는 체벌을 금지하도록 알렸다.”

“알 리기만 하면 끝이 아닐 텐데.”

“아무리 그래도 오늘 당장 하지 말라는 건 내가 아니라 황제의 명령이라도 무리일 테지. 모두에게 알려지려면 적어도 내일 정도의 시간을 필요해.”

김검천이 변경백 어깨너머로 샤칸과 눈을 맞추었다.

샤칸이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변경백은 김검천이 침묵을 지키는 걸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재빨리 다른 말을 했다.

“체벌을 금지했으니 노예들이 제국민과 문제가 생긴다면 그들 사이의 문제는 재판을 통해 제재가 가해질 거야.”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아니니 나쁘지 않군.”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지. 영지 내 귀족들의 집단으로 모여 본인에게 대적할 위험을 무릅쓴 것이라고. 무슨 생각으로 노예 체벌을 금하라고 명령했는지 대답을 요구하면서.”

변경백의 얼굴은 그 짧은 사이 몇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도 노예 체벌을 막은 게 꽤 무리한 요청인 것 같아 보였다.

힘들어 보이는 와중에도 변경백은 지나가는 말투로 김검천에게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그런데 본인이 돌아오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묵을 계속 지키는 것 같던데. 그쪽은 같이 있어도 서로 대화를 잘 안 하는 건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지. 필요한때는 마음껏 이야기하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크흠. 그거야 그렇지만. 그냥 궁금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야.”

변경백은 그가 떠난 후 김검천과 일행들이 대화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변경백이 이동하자마자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도.

그 말을 들은 루시엘이 뭔가 눈치를 챈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를 이어 쿠퍼도 그랬고.

김검천의 의도뿐만이 아니라 변경백이 한 행동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변경백은 마법 도구 같은 이용해 김검천 일행의 대화 소리를 엿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김검천이 실드를 써서 대화 내용을 못 듣게 한 것이었다.

숨쉬기가 곤란했던 건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샤칸은 직접적인 설명이 없어서인지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고.

루시엘이 있으니 나중에 샤칸에게 설명해 주겠지.

김검천이 손을 내저었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변경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대회나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 중인데.”

“다들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 모양이라서. 오늘은 이만 가서 쉬었으면 하거든.”

“그런가. 하긴 이 몸도 여러모로 힘든 게 느껴지니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오늘 이후의 일을 생각하니 변경백도 머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믿을 수 없는 상대의 고민인 만큼 김검천은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며칠 정도는 여기에 머물러야 할 거 같으니까. 그쪽에 부탁한 걸 확인도 할 겸.”

“부탁치고는 꽤 무례했지만.”

“네가 해온 일에 비해서는 별로 무례한 행동이 아니었을걸. 정말 무례한 게 뭔지 알고 싶나?”

“아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빌어야겠군. 각자 방을 안내해 줄 테니 편히 쉬게나.”

변경백은 노예를 불러 김검천 일행이 잘 방으로 안내하도록 시켰다.

김검천 일행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기사단장이 나타났다.

변경백이 피곤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기사단장. 별것 아닌 일이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좀 쉬고 싶거든.”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백작 각하.”

“일단 들어는 보지.”

“저 이방인들과 뭘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변경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사단장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가서였다.

변경백이 짜증 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건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이곳은 우리 가문의 영지고 이곳의 지배자는 이 몸이지.”

“그리고 그 영지와 작위를 백작 각하에게 하사하신 분은 황제 폐하시지요.”

변경백이 대답을 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기사단장의 얼굴을 살폈다.

마스터 나이트급의 기사단장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변경백의 신하에 불과했다.

수하에 있는 자가 변경백 자신을 향해 모욕으로 느껴지는 소리를 태연히 내뱉다니.

변경백은 기사단장이 자신의 수하라기보다 황제의 감시역 같아 보였다.

기사단장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변경백을 마주 보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습으로.

변경백이 한발 물러나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저들은 황제 폐하에게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이득이 될만한 자들은 아닙니다. 제국인도 아니고요. 그러니 저번에 영지에서 일으킨 죄를 물어 모두 처리했으면 합니다.”

“누가 어떻게 말이냐? 다른 건 몰라도 저들의 무력만큼은 진짜라는 걸 너도 알텐데.”

“저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변경백이 그런 기사단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결과가 뻔하니 승낙할 수 없다.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그만 물러나도록.”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기사단장.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군.”

“별수 없군요. 백작 각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단장이 변경백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변경백은 의외로 순순히 의견을 굽히는 기사단장에게 의심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평소라면 몰라도 기사단장은 저렇게 쉽게 자기 뜻을 물릴 자가 아니었으니까.

잠시 눈을 굴리던 변경백은 기사단장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다가 묘한 미소를 떠올렸다.

“하긴 일이 어떻게 돌아가도 상관없지. 만약 죽는다면 본인이 사람을 잘못 본 걸 테니까.”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살 테지.

그건 기사단장의 생각과도 같았다.

기사단장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기사들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마갑 대신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밤이라 조용해서 소리가 더 잘 퍼지는 만큼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기에 장비를 바꾼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삐꺽이는 갑옷의 소리가 시끄러웠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정체를 드러낼 만한 건 가능한 몸에 지니지 않아야 했고.

대기하던 그들 중 한 명이 기사단장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백작 각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역시 제안한 게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더군. 이미 예상은 했지만.”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몰라서 묻나? 백작 각하가 모르게 우리 선에서 처리해야지.”

기사가 주저하며 말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건 백작 각하의 뜻에 반하는 행동처럼 보입니다만.”

“백작 각하께는 죄송스럽지만 우리는 그분보다도 황제 폐하와 제국이 우선이지.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영지를 엉망으로 만든 저놈들이 사라지면 백작 각하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그러면 망설일 것 없겠지. 놈들이 있는 방 위치는 알아두었나?”

“노예들에게 물어 파악해두었습니다.”

“잘했다. 알고 있겠지만 이 일은 백작 각하를 거스르는 게 아니다. 황제 폐하와 제국을 위해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고 나서는 일이지.”

기사단장의 발언에 나머지 기사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변경백의 명령에 앞서 황제와 제국을 위해 각오를 한 것뿐이었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다.

“예! 그런데 놈들은 죽인 후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기사단장이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 해자의 더러운 물속이 놈들의 무덤으로 어울 리지 않나? 흐린 수면 아래는 보이지 않으니 들키지 않을 테고.”

“하하, 옳으신 말씀입니다.”

기사단장은 앞장서 김검천 일행을 찾아가는 기사들을 보며 뺨을 매만졌다.

다들 보는 앞에서 변경백이 자신을 때렸던 부위였다.

“백작이 김검천이라는 녀석과 뭘 계획하는지 모르겠지만 엉망이 되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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