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40화 (140/250)

140화

무술 대회는 제국에서 제법 알려진 행사였다.

흔하지는 않지만 대회에 마스터 나이트나 마스터 나이트급 실력자가 참가한 적도 있었고.

하지만 제국을 대표하는 사천왕 같은 실력자가 참여하는 건 처음인 것이다.

김검천이 흥미를 보이자 짧은 머리 남자가 급히 말했다.

“황제 폐하에 대한 것도 있고 해서 원래 사천왕들은 무술 대회에 참가할 생각도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뿌듯한 표정을 지은 그를 향해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국 사천왕 중 김검천이 상대했던 글래셔가 떠올라서였다.

오러를 변환시킬 실력자인 만큼 킬만 같은 평범한 마스터 나이트보다 강하긴 했다.

마스터 나이트를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건 김검천밖에 없을 것이다.

“사천왕 정도의 강자라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당연하니 재미가 없어서인가?”

“그렇지요. 아무리 제국의 무술 대회라서 각지에서 강한 자가 몰린다고 해도 그 수준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마스터 나이트 정도만 되어도 어디를 가도 우대받는 자들이겠지. 그러니 굳이 무술 대회에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될 텐데.”

“그래서 이번 대회는 뭔가 특별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황제 폐하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분들이니 합리적인 의심 아니겠습니까.”

물론 세상은 넓고 사람마다 다르니 강한 자와 겨루는 걸 좋아하는 부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스터 나이트 정도 되면 국가에서도 결전 병기 취급이었다.

그런 존재인 만큼 같은 마스터 나이트끼리 대련도 함부로 못 하는 처지였다.

그 말은 전쟁터에서나 제대로 된 자신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스터 나이트가 힘을 발휘하고 싶다는 욕구 불만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드문 게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무술 대회에 출전하는 자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 무술 대회 참가자들 중에서는 마스터 나이트 정도의 실력자라도 있는 모양이로군.”

“그런 소문도 있네요. 그렇다 해도 사천왕이 나오는 이상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당연히 제국이 가져갈 테지만요.”

“대회에서 제국의 위세라도 떨칠 생각인 건가? 사천왕이 나온다는데 대회에 출전하는 자들도 보통은 아니겠군.”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을 겁니다. 아예 모르는 자들도 있고요.”

하긴 관람석에 앉아서 구경만 하는 자들에게는 어느 편이든 관계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차피 그들을 흥분시킬만한 일만 일어나면 충분히 만족할 테니까.

제국 수도 안에서만 도는 소문이라면 각지에서 몰려드는 자들이 알 리도 없고.

제국민에게 있어서는 기왕이면 제국 출신이 승리하면 좋을 테고.

“그게 용병 부길드장이 우리를 습격해 구슬을 얻으려는 것과 무슨 상관이라는 거지?”

“말한 대로 특별한 대회라면 그만큼 대우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본선 진출자들이라든지요.”

“이번 대회에서 본선 진출할 정도라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는 좋겠군.”

“거기다 사천왕이 대회에 출전할 정도니 황제 폐하가 뭔가 대단한 걸 보상으로 준비해 두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꼭 우승자만 뭘 받으라는 법은 없거든요.”

“예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 보군.”

“예. 본선 진출을 한 자들을 위해 근위 기사나 군대에 자리가 마련되거나 집이나 상금 같은 것도 받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렇게 대단한 실력자들이 모이는 대회라면 일단 살아남고 봐야 할 텐데.”

“부길드장은 본선만 진출한다면 상대에 따라 바로 시합을 포기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목숨 하나는 잘 챙기는 녀석이로군.”

“그거야말로 용병다운 모습 아니겠습니까?”

“상급 기사급이라는 부길드장마저 이런 짓을 꾸밀 정도로 걱정이 되는 건가. 그 정도면 본선 진출을 할 정도의 실력자들이 너희들에게 당할 리 없다는 말도 되지 않나?”

김검천의 의문에 짧은 머리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수십 명 모인다고 해보았자 하급 기사, 잘해야 중급 기사 정도나 상대할 수 있었다.

본선 진출 가능성이 있는 상급 기사를 정면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함정을 파고 독과 암기 같은 걸 철저히 준비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다만 그 정도로 강한 자는 보통은 이름이 알려진 게 일반적이었다.

짧은 머리 남자도 그런 자들은 가능한 피해 가며 구슬을 모아왔다.

오늘 김검천 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재난 같은 존재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애초에 암흑가 조직원들은 본선 진출이 가능한 실력자들을 상대하려 든 것도 아니었고.

“출전자의 수를 줄이려는 게 아닙니다. 예선은 배틀 로얄 형식이라 한 사람만 본선에 진출합니다. 그러니 부길드장은 출전자의 구슬을 사용해 자기편을 늘리려는 거지요. “

김검천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부길드장과 한 편이라면 보통 용병일 테고 제국 수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원래 자기 신분으로 참가할 수도 있겠지만 용병 부길드장과 관련 있다는 게 들통날 것이다.

괜히 정체를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을 테니 남의 신분을 이용하기 위해 구슬이 필요한 거였다.

구슬을 가지고 참가한 자는 부길드장의 편을 들어 다른 참가자를 먼저 공격해 탈락시킨다.

그다음 용병 부길드장을 남겨두고 자신은 시합을 포기하면 된다.

유일하게 남은 부길드장은 본선 진출자가 될 것이고.

“그래서 아무 관련 없는 다른 사람의 신분을 빌어 무술 대회에 참가하려는 거였군. 예선 참가자들은 등록했다는 구슬만 있으면 본인 확인을 안 하나?”

“그렇기에 이런 편법이 가능한 거지요.”

“그러면 자기 신분으로 참가해도 될 텐데.”

“부정행위를 했다는 흔적 자체를 남기지 않으려는 겁니다. 타국 사람이면 몰라도 제국에서 칼로 밥 먹고 사는 자들이 이러면 좋은 꼴 못 보니까요.”

“나중에 참가한 자들의 인적사항을 구슬로 확인해도 정 다르게 나온다는 건가.”

“애초에 신원이 다르니 참가한 사람들을 알아본다 해도 닮은 얼굴이라 우기면 그만이지요.”

제법 힘을 쓰는 제국 용병 본부 부길드장이 뒤에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모아보니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긴 한 모양이었다.

본선 참가가 확실한 실력자는 거르고 일행 수가 적은 자들은 습격한다.

그렇게 뺏은 구슬로 대회 예선에 참가해 용병 부길드장의 편이 되어 다른 자들을 공격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용병 부길드장이 본선에 진출하는 건 실력이 모자라도 가능한 일.

혼자서 안 되는 일이라면 여럿이서 힘을 합치면 되는 것이니까.

거기다 수십 명의 본선 진출자 중 하나로 만족한다니 크게 걸릴만한 일도 아니었고.

물론 떨어진 예선 출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김검천은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른 게 있었다.

“혹시 접수대 앞에서 내 어깨를 치고 간 것도 너희들이 수작을 부린 건가?”

“한 사람이 주의를 끌면 다른 사람이 구슬을 훔치지요. 매번 싸울 수는 없으니까요. “

결국 김검천이 순순히 당하지 않아서 암흑가 조직원들이 험한 일을 겪게 된 셈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당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앞으로 겪을 일 또한 그럴 것이었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한번 살펴본 김검천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면 가끔은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겠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솔직히 대답해주겠어?”

“어떤 것 말입니까?”

“대회 측으로부터 아무 이야기를 못 들은 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몰랐을 가능성이 높거든. 대회 시작 전에 접수원이 구슬 분실 주의하라고 나에게 경고해준 걸 생각하면 말이지.”

주최 측이 이런 사건을 모른다는 건 몇 가지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구슬을 분실한 참가자들이 대회 참가를 포기하고 수도를 떠난 것이었다.

나머지는 안 물어도 뻔한 일이었지만 일단은 대답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검천이 루시엘에게 슬쩍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루시엘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김검천이 물었다.

“우리를 습격한 것처럼 다른 자들도 공격했겠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명령에 따른 것뿐이라고요.”

“명령을 받는다는 게 어떤지는 나도 알지만 실행한 네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 없다는 듯 실실 웃는 짧은 머리 남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김검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습격한 그들은 어떻게 되었나? 그리고 너희들에게 구슬을 순순히 넘기는 자들도 있었을 테지. 그들은 살아있나?”

“습격한 건 사실이지만 구슬만 얻으면 모두 살려 돌려 보내주었습니다!”

“정말인가? 거짓말이면 후회할 텐데.”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대단한데. 보통 이런 곳의 암흑가 조직원이면 살인, 강간, 방화 등 나쁜 짓이라는 나쁜 짓은 다 하고 살아야 할 텐데.”

“살다 보면 저처럼 선하게 사는 암흑가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군. 세상은 넓으니까.”

“그러니 이제 볼일도 끝난 거 같으니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어떨까요?”

“당연히 자신에게 맞는 길을 보내줘야겠지. 이 친구에게 물어보고 난 후에. 루시엘.”

주의깊게 듣고 있던 루시엘이 고개를 저었다.

“살려 보내주었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그의 말에서 짙고 어두운 악의 감정이 느껴지더군요.”

짧은 머리 남자가 루시엘을 비웃었다.

“엘프? 엘프 따위가 누구의 말이 옳다 틀리다 단정 짓는 거냐?”

김검천이 짧은 머리 남자의 다리를 붙잡았다.

“네 말대로 그는 엘프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구별 가능한 특성이 있는 종족. 그건 몰랐나?”

“에? 엘프에게 그런 특성이?”

놀라는 모습을 보니 정말 몰랐던 모양이었다.

엘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을 알리며 돌아다닐 종족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보통 제국민들은 엘프나 드워프같은 이종족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이종족이라고 불리는 도구는 도구답게 부리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김검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몰랐으니 엘프 앞에서도 뻔뻔하게 말한 거겠지. 알았으면 들키지 않게 입이라도 다물었을 텐데.”

“그… 그건 다 사정이 있어서.”

김검천이 손을 내저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난 너희들에게 직접적으로 벌을 줄 생각이 없어.”

김검천이 어리둥절한 모습의 남자를 놔두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이만 자택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이동하는 도중 김검천에게 다가온 쿠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놔두시는 겁니까? 저라도 대회 접수하는 자들에게 이 일에 대해 알릴까요?”

“우리가 대회 운영에 대해 참견하면 일이 복잡하게 될 거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저자들을 이대로 용서해 주는 겁니까?”

“리에 앞에서 벌을 주기는 좀 그렇지. 거기다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을 거야. 다른 사람의 행동까지 말릴 생각은 없으니까.”

김검천은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움직이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름대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김검천은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살의가 누구를 향하는 지도 알 것 같았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