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김검천이 샤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김검천은 샤칸과 달리 단순히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무력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상대도 반성한 것 같으니 굳이 더 이야기를 계속 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 잘했어. 샤칸.”
그 말을 끝으로 김검천은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김검천의 칭찬에 활짝 웃던 샤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칭찬받은 건 좋은데 왜 칭찬받은 거지?”
루시엘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김검천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걸 모르는 샤칸이었다.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당신이 부럽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군요.”
“음! 귀쟁이가 드디어 멋진 드워프의 매력을 알아챘구나.”
“난쟁이가 말귀까지 어둡네요. 저도 잠이나 자러 가는 게 낫겠습니다.”
“잠깐만! 같은 방이니까 같이 가자고!”
***
다음 날 아침.
대회라고 해서 오늘은 아침까지 차려주기에 제대로 식사까지 하고 저택을 나섰다.
오늘도 김검천이 먼저 음식과 식수를 먹고 별문제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
챙겨온 식량이 있다지만 나중에 도주할지도 모르니 놔두는 게 좋았다.
이건 김검천이 수도 내에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 한 부분이었다.
리에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기에 쿠퍼와 같이 저택에 남기기로 했다.
그 와중에 샤칸은 음식 맛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다 루시엘에게 혼났고.
“귀쟁이 네가 우리 엄마냐?”
“그쪽같이 손 많이 가는 난쟁이 자식은 저도 필요 없습니다만.”
길을 안내하는 집사는 자부하던 요리에 대해 샤칸이 불평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제 일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집사가 예선 장소까지 직접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김검천은 그런 그에게 한 번쯤 함선의 요리를 접한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도착한 무술 대회 예선 장소는 대충 지어진 임시 건물에 둘러싸인 커다란 공터였다.
“그러면 무운을 빕니다. 좋은 결과를 얻으시기를.”
격려의 말까지 남기고 돌아가다니 확실히 어제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그만큼 집사에게 있어 김검천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집사가 돌아간 후 김검천은 입구에서 예선 대회 때 얻은 구슬을 제출했다.
예선 심사관은 구슬만 살핀 후 뒤에 있는 상자에 집어 던졌다.
이럴 거면 접수대에서 본인 확인은 왜 했는지 궁금해서 세이야가 물어보았다.
“구슬을 받은 당사자인지 확인도 안 하나요?”
예선 심사관이 탁자 위에 올려둔 물컵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는 귀찮은 듯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예선에서 본선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한 명뿐인 건 알지요?”
“예.”
“그러면 예선이 끝나고 그 한 명의 신원만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구슬만 있으니 예선에 참가시켜주면 그만이고.”
“그래도 예선 참가한 사람들 중 구슬이 본인 것이 아닌 사람도 있을 텐데요.”
예선 심사관이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사정 모르고 순진하게 말하는 세이야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알 게 뭐요.”
“예?”
“이쪽은 예선장에서 남아있는 한 명만 본선에 보내면 할 일을 다하는 거라는 소리요.”
김검천이 예선 심사관의 말을 들으니 관리라는 건 어디 가나 비슷한 것 같았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만 이행하면 문제없다는 식이었으니까.
그래서 부길드장이 계략을 꾸민 걸 테고.
김검천이 세이야의 등을 툭툭 쳤다.
“세이야,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내가 본선 진출자가 될 테니까 상관없는 일이야.”
“푸헉!”
예선 심사관이 입에서 마시던 물을 뿜어냈다.
세이야가 물벼락을 맞을 뻔했지만 김검천이 어깨를 잡고 돌려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김검천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요?”
“쿨럭쿨럭, 이거 실례했군요. 거 보아하니 이곳 예선장에 누가 나오는지 모르는가 해서요.”
“당연한 거 아니오? 결과를 모르니까 대회에 참가하는 걸 테지요.”
“그러니 우승할 거라고 말하는 거겠지요. 누가 나오는지 알면 도망치고 싶을걸요?”
싸울 생각도 못 하고 도망부터 치고 싶은 상대라니.
김검천은 자신에게 과연 그런 적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고 싶을 정도였다.
김검천의 생각을 모르는 예선 심사관이 입을 열었다.
“이곳 예선 대회에는 수도 용병 길드의 부길드장이 참가한다 이 말이요. 피바다의 용병이라는 별칭까지 있는 잔인한 자이기도 하지요.”
“정말 대단하군요.”
“그렇지요?”
“아아, 그런 별칭이 붙을 정도로 피를 잔뜩 흘린 모양인데 아직까지 용케도 살아있다니.”
“자기 피가 아니라 상대한 적이 흘린 피를 말하는 거라고요!”
아무렇지도 않은 김검천의 반응에 예선 심사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입장에서는 김검천을 배려해서 한 소리였으니까.
상급 기사 정도의 수준이면 마갑을 입어도 충분히 벨 수 있는 실력자.
덩치는 컸지만 아직 성인도 안 되어 보이는 김검천이 안타까운 것이었다.
김검천은 대답했다.
“그래서 예선 참가자는 어디로 가면 된다는 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안된다면 설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예선 심사관은 안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하긴 자신이 원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나. 저쪽이야. 그 결정을 후회할 걸세.”
일행들은 김검천 말고 다른 출전자들이 후회할 거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세이야와 다른 일행들도 평상시와 같이 김검천 뒤에 붙어 따라가려고 했다.
참가자들이 아니었기에 예선 심사관이 말려 따로 마련된 관람석으로 향했다.
***
김검천이 참가자들을 위한 대기실로 들어섰다.
대기실 안은 마갑과 병기를 휴대한 참가자들로 꽉 차 있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자들은 인사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한쪽 구석에 몰려서 친분을 나누는 자들은 그 패거리만 해도 수십 명은 되어 보였다.
예선 참가자들 중에는 파워드슈츠를 장착한 김검천보다도 더 큰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냥 봐도 평범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초록색인 자들도 있고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울퉁불퉁한 자들도 있었다.
지나가며 들린 이야기를 감안하면 그들은 인간과 다른 종족의 혼혈인 것 같았다.
혼혈이라고 해도 이종족을 천시하는 제국이었다.
이런 곳의 무술 대회를 참가하려는 걸 보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대회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는 자가 있었다.
“들었나? 이번 무술 대회에서 받을 보상 이야기를.”
“그래. 본선만 통과해도 평생 먹고 즐길 돈과 제국 수도 내의 2층 저택을 받을 수 있다지.”
“그것뿐인가? 본선 진출만 해도 바로 준귀족인 기사 작위가 수여된다고 하더군.”
“출신과 관계없이 말이지.”
“흐흐, 종족도 그렇고.”
“우리같이 제국에서 천대받는 자들이 양지로 올라가려면 이번 대회가 기회로군.”
“아아,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해서 용병으로 떠돌아다니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그들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다만 그들은 김검천 말고도 다른 사람에 의해 탈락할 예정으로 보였다.
대회에 대해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자들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야, 일어서. 딴 곳으로 이동하자고.”
김검천을 향해 다가오는 한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몸 군데군데 지렁이 같은 흉터가 나 있고 상반신을 덮는 붉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는 자들이 투덜거렸다.
“이런 곳에서 약세를 보일 필요가 있어? 왜 그냥 피하자는 건데.”
“저 사람 몰라? 제국 용병 본부 부길드장이잖아. 괜히 저자의 표적이 될 필요는 없잖아.”
“끄응, 하긴 여기 예선은 한 사람만이 본선에 올라가니까 처음부터 힘을 빼면 안 되겠지.”
“그러고 보니 너도 적인 셈이잖아? 괜히 말해주었는데.”
“이 새끼가? 너야말로 시작하자마자 각오해라.”
대기실 안이 여러모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부길드장이 김검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네 놈인가.”
“별 난 이름도 다 있군. 부르려면 제대로 김검천이라고 부르지? 그러는 네 놈은 누구냐.”
부길드장의 얼굴에 있는 흉터가 부르르 떨렸다.
“예의를 모르는 녀석이로군.”
“처음 보는 사람을 네 놈이라고 부르는 상대에게는 어울리는 대답이지.”
“기세 한번 좋군. 결정했다. 넌 천천히 즐기기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남겨주도록 하지.”
부길드장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들었나? 여기에 있는 김검천이라는 녀석이라는 녀석은 이 손으로 잡을 테니 함부로 손대지 말도록! 말을 안 듣는 자는 나중에 단단히 혼을 내주지!”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무슨 용무가 있기에 나를 찾아온 건가?”
“어제 네 녀석 일행을 따라간 자들에게서 소식이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제국 수도 용병 길드 부길드장이라더니 그런 쪽 정보력은 제법 있나 보네.”
“정보력보다도 가진 무력은 더 뛰어나지. 그건 오늘 네 몸으로 느끼게 될 테고.”
고개를 돌린 부길드장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자들을 향했다.
부길드장과 비슷한 차림새의 용병처럼 보이는 자들이 히죽 웃어 보였다.
어제 암흑가 조직원들이 말한 대로 오늘을 위해 부길드장이 모은 자들인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위협적인 모습인지라 주변의 참가자들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자리를 비켰다.
김검천은 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가만히 있던 우리를 덮쳤던 녀석들이라면 내가 거기를 떠났을 때만 해도 살아있기는 했지.”
“거짓말하지 마라. 오늘 아침까지 복귀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사실이야. 어딘가 한군데씩 부러지기는 했지만. 애초에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
“너나 네 일행들이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건가. 설마…”
“수도 외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 뒤에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 아마 죄가 있다면 천벌이 내리지 않았을까 해.”
“크큿. 네 녀석, 말솜씨만큼은 마스터 나이트급이구나.”
“실력은 그보다 더 무서운걸?”
“햐, 마지막까지 봐주겠다고 했더니 내키는 대로 말하는구나. 어디 그 잘난 실력 좀 볼까?”
부길드장이 허리춤에 장착된 무기를 뽑아 들려고 하자 그의 패거리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참가자들도 만일을 대비해서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려고 했다.
그때였다.
- 현 시간부로 예선 시작을 알립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대회에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대회 운영 측에서 마법으로 소리를 증폭시켜 안내 방송을 했다.
부길드장이 김검천과 대회장으로 연결되는 출구쪽을 번갈아 보다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네 녀석은 대회장에서 죽이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 같군. 나중에 짜릿한 시간을 보내자고.”
부길드장이 가슴을 펴며 대회장으로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부길드장의 패거리로 보이는 자들도 빠져나갔다.
남은 자들은 그제야 서로 눈치를 보며 한둘씩 대회장으로 향했다.
김검천이 마지막으로 천천히 나서며 중얼거렸다.
“네 뼈가 저릴 정도로 기대에 부응해 주도록 하지.”
김검천까지 들어서자 얼마 있지 않아 입구에서 본 예선 심사관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십여 명의 제국 기사와 수십 명의 제국 병사들과 함께였다.
예선장의 출전자들이 모두 미쳐 날뛰면 별 소용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