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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47화 (147/250)

147화

황태자가 집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안 그래도 대회에 관한 소식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알리라고 한 건 황태자 자신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고 싶어한 정보인 것이다.

그래서 기사가 이런 자리에도 불구하고 난입한 것이었고.

“그냥 놔둬라. 그보다 대회 소식이나 말해보거라.”

황태자의 기대에 찬 눈길을 받은 기사가 가슴을 펴며 마법 인장으로 봉인된 서신을 폈다.

“예. 이번 본선 진출자인 김검천이 배정된 대회 조 편성은!”

“조 편성은?”

“감축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시드 배정으로 인한 부전승으로 2차전으로 바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전하께서 여러모로 마음 쓰신 것이 돌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히 황태자가 힘을 쓰기는 했다.

나타난 결과와는 정반대의 기대를 가지고.

기사의 발표에 김검천이 황태자를 향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정말 축하할만한 자리로군. 오늘은 정말 즐거운 식사가 되겠어.”

“하.하.하. 뭘 이 정도가지고 그러나.”

아니, 그런 맑고 고운 눈으로 보지 말라고.

자신은 김검천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로 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한 점 티 없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황태자로서는 복잡한 마음인 동시에 양심이 찔릴 수밖에 없었다.

양심의 가책은 죄 없는 대회 운영진에게 향했고.

황태자는 나중에 두고 보자는 생각을 굳혔다.

그래서인지 대회 운영진들은 그날 밤 소름이 돋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나마 맛있는 저녁 식사가 황태자의 다친 속마음을 달래주었다.

에피타이저부터 스프, 빵, 샐러드, 주식인 고기, 디저트까지 이어진 코스 요리였다.

식사에 앞서 김검천은 자신이 먼저 음식과 음료의 맛을 봐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이 먼저 식사하는 게 예절이었지만 황태자는 무슨 사정이 있을 것 같아 허락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김검천이라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저절로 생각이 든 것이다.

김검천이 음식에 손을 대다가 황태자에게 한마디 했다.

“혹시 음식이나 음료를 먹거나 마시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면 나에게 먼저 부탁해.”

그 말을 하면서 김검천은 마법의 하얀 가루가 이런 곳까지는 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긴 무작위로 배포했다고 해도 높으신 분들보다는 그 아래 계급을 노렸을 것 같았다.

황태자는 김검천의 말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불쾌한 기분이 사라졌다.

혹시 독같이 이상한 게 음식에 있을까 봐 남들이 걱정되어 저러는 거였으니까.

물론 김검천이 단순히 말로만 투덜거렸다면 황태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황태자도 같이 먹는 음식이었으니까.

그러나 김검천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먹어보는 중이었다.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뭐라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황태자나 집사가 김검천에 대한 호의를 가진 것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같은 행동을 해도 미운 놈이 하는 것이랑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하는 건 다른 것이다.

김검천이 식사를 해도 좋다는 뜻을 내보이자 다들 식사를 시작했다.

마치 주인과 손님이 바뀐 느낌이지만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나자 한결 기분이 좋아진 황태자가 김검천에게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이번 저녁 식사는 맛이 어땠나? 아침 식사와는 다르지. 아침 식사와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긴 했지만 황태자의 얼굴은 자신이 넘쳐 보였다.

저런 모습을 보면 보통은 황태자를 위한 아부와 찬사로 식사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었다.

김검천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

“확실히 다르긴 해. 세이야가 태어난 왕국 수도의 고급 레스토랑 음식보다는 괜찮더군.”

“괜찮다니 다행이로… 잠깐만. 그게 끝인가?”

“아니면 처음 먹는 맛있는 요리에 이제껏 인생을 손해 보았다는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 건가?”

“그 정도 찬사를 듣고 싶은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만족도가 덜 한 거 같아서 그런 거다.”

“맛있다는 거짓말을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주겠지만 그게 더 실례겠지?”

황태자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검천에게까지 거짓과 속임수로 뒤덮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맛만 좋으면 그만이긴 한데 너에게만큼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군.”

“그래서 한 말이야. 혹시 내 말이 거짓 같으면 저쪽의 솔직한 대답을 두 눈으로 확인하던가.”

김검천의 시선이 리에를 향하자 황태자의 고개도 같이 돌아갔다.

어린아이인 리에는 좋은 건 좋고 싫어하는 건 싫다고 솔직히 표현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리에의 앞에 반 이상 남겨져 있는 디저트의 잔해는 확고한 증거였다.

저녁 식사는 아이의 입맛도 완벽히 사로잡지 못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황태자가 손가락을 탁자를 툭툭 치면서 입을 열었다.

“집사.”

“예. 황태자 전하.”

“이 요리를 만든 자를 당장 저택에서 내쫓게. 아이 한 명의 입맛도 못 맞추는 요리사를 데리고 있다면 격이 떨어지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집사는 현직 황태자 전속 요리사에서 곧 전직 요리사가 될 사람에 대해 조의를 표했다.

쫓겨난다고 해도 요리사는 새 직장을 찾는 데 불편함을 없을 테니 별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요리사 많기로 유명한 제국 수도에서도 100명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으니까.

집사는 그런 요리사의 음식에도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에 저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김검천과 그 일행들은 얼마나 맛있는 걸 먹고 다녔기에 그러는 걸까.

그걸 알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김검천이 그런 둘을 말리고 나서며 설명에 나선 것이다.

“잠깐. 둘 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라고. 음식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입맛이 높아서 그런 걸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황태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김검천이 선물로 가져왔던 상자를 들고 다가갔다.

원래는 황태자의 안전을 위해 집사가 받아 넘겨주어야 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같은 방 안에 있는 이상 김검천이 달려든다면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무엇보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 김검천이 황태자를 노릴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첫날 그 일만 해도 김검천은 황태자를 직접 붙잡았는데도 별다른 건 하지 않았다.

김검천은 상자를 열고 투명한 강화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황태자가 궁금한 표정으로 김검천에게 물었다.

“이게 뭔가?”

“선물이야. 전투식량이라고 비닐에 싼 일종의 휴대용 식량인데 먹을거리지.”

“이게 휴대용 식량? 딱딱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질긴 것 같은데 먹을 수 있다고?”

황태자가 신기한 듯 전투식량이 든 비닐을 꾹꾹 눌려보다 입에 가져가려고 했다.

리에가 남은 디저트를 포크로 찍으며 놀다가 그걸 보고 말했다.

“안 돼. 지지야. 지지.”

확실히 포장까지 먹으려 드는 황태자는 말려야 했다.

저 포장은 식용이 아닌 것인가.

나중에 먹을 수 있는 포장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김검천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리에의 말대로 그건 그렇게 먹는 게 아니다.”

황태자가 머쓱한지 거칠게 전투식량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그렇다고 먼저 이야기해야 할 거 아닌가?”

“설명하기도 전에 입에 넣으려고 한 사람은 또 누구고? 그걸 그냥 양손으로 당겨봐.”

“진작에 그럴 것이지.”

황태자가 전투식량을 양쪽으로 당겼다.

전투식량의 비닐이 살짝 한쪽으로 길어진다 싶더니 하얀 김을 뿜어냈다.

급속 냉동된 걸 뜨겁게 조리를 시작한 것이다.

- 푸슉!

“위험합니다!”

집사가 본능적으로 황태자를 뒤로 잡아당기며 전투식량 앞을 막아섰다.

김검천이 그런 집사를 보며 웃어 보였다.

“위험하긴 하지. 그 음식의 맛이. 한번 먹어보라고?”

시선을 돌려보니 전투식량의 비닐은 사라지고 없고 대신 숟가락 하나가 놓여있었다.

조리가 끝나자 전투식량의 강화 비닐이 자동으로 변형해 일회용 숟가락이 된 것이었다.

황태자가 신기한 듯이 물었다.

“호오, 이건 마법인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야. 굳이 말하자면 마법 같은 맛의 햄 김치볶음밥이라 할까나.”

황태자가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에 입맛을 다시는데 집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제가 먼저 시식을 해볼까 합니다.”

“아니다. 저 김검천이 이런걸로 독살 시도 따위는 할 턱은 없겠지.'

그냥 때려잡으면 또 몰라도.

황태자는 숟가락으로 뜬 김이 잔뜩 피어오르는 볶음밥을 거침없이 입에 넣었다.

- 쨍그랑.

그러더니 숟가락을 떨구며 양손으로 입을 잡았다.

“우욱--!”

“황태자 전하!”

입을 부여잡은 황태자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긴 집사가 김검천을 향해 소리쳤다.

“믿었는데! 김검천 너를 믿었건만!”

김검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황태자가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물이나 한 컵 건네주라고?”

“물이라니요?”

이상함을 느낀 집사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황태자가 입을 열어 혀를 식히고 있었다.

“뜨거!”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막 조리 끝난 요리를 바로 먹으려 드니 그렇지.”

“처음 접하는 조리 방식인데 이렇게까지 뜨거운 줄 누가 알았겠나?”

“그보다 맛은 어때?”

“훌륭해! 맛의 예술적인 균형을 적당히 매운 채소가 느끼함을 씻어주는걸로 완성되었군.”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알아챈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집사가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황태자 정도 되면 어지간한 요리에 맛있다는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집사는 그제야 김검천 일행이 저녁 요리에 대해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쉬운 한 표정으로 황태자가 덜어준 햄 김치볶음밥을 먹어보니 확신할 수 있었고.

김검천이 웃어 보였다.

“넘겨준 상자 안에 물건도 몇 개 넣어두었는데 그건 나중에 한번 보라고.”

“음. 어떤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햄 김치볶음밥 같은 거라면 무조건 환영이다. 그리고 과학이라고 했나?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건가?”

“사용한다고 다 원리를 아는 건 아니라고.”

만드는 건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김검천은 함선 내 다음 구역에 있는 것들을 떠올렸다.

함선 내 제조 시설들은 사람이 붙어야 제대로 움직이지만 기계만으로도 생산은 가능했다.

구역을 좀 더 개방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황태자가 김검천이 준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과학이 뭔지 궁금해지는군.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의 뜨거운 요리를 바로 만들어내지?”

“원한다면 약간의 지식 정도를 알려줄 수 있지.”

“그게 정말인가?”

“다만 내가 시간 날 때만이야.”

“그게 어딘가? 이 선물도 그렇고 감사하게 받도록 하지. 대신 뭔가 원하는 건 없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는 우리나라 전통문화가 여기서도 전해져 오는 모양이었다.

첫인상은 나빴으나 지내다 보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있고.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한 모습이 흐뭇했다.

김검천은 대견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말아. 오늘 저녁 식사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게 더욱 신경 쓰이는 법.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김검천 일행이 방으로 돌아가자 황태자가 집사를 불렀다.

김검천에게 보기 드문 선물까지 받았으니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일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이보게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황태자 전하.”

“그게 말일세. 첫날 일이 있다지만 이 몸이 김검천에게 그 이상으로 심술을 부린 걸로 보이던가?”

집사는 황태자가 김검천을 골탕 먹이려고 대회 운영진을 찾아간 일을 떠올렸다.

그래도 황태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치고는 대처가 양호한 편이었다.

높으신 분들 중에서는 욕했다가 상대의 혀를 그냥 뽑아버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황태자 전하의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댄 자입니다. 그 정도로 끝내시려고 하셨으니 오히려 관대하신 편이시지요.”

“흠. 그렇다고 해도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군. 앞으로는 좀 더 그들에 대해 편의를 봐주도록 하게. 원한다면 본 태자의 이름을 내세워도 된다네.”

집사가 고개를 숙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진 거 같아 흐뭇해서였다.

황제로부터는 매번 고통받는 황태자가 이렇게나마 치유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느낌으로 황제와 황태자의 관계가 가까워졌으면 싶기도 했다.

집사가 수십 년간 지켜본 바로는 절대로 그럴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

- 우드득.

황제가 팔을 걸치고 있던 팔걸이가 으스러져 내렸다.

“아직도 멀었다는 말이더냐? 짐이 블러드 타워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알면서도?”

황제는 평상시와 다르게 거칠게 감정을 표출했다.

검은 로브를 둘러쓴 마법사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이제 며칠만 더 참으시면 됩니다. 워스덤이 가져온 연구 결과와 무술 대회의 출전자를 이용한 성과가 곧 나오니까요.”

“짐보다 더 참으라고 하는 게 그 잘난 입에서 나온 말이더냐? 입만 산 놈들 같으니라고.”

“황제 폐하. 저희 제국 마법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만! 안 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결과를 내놓으란 말이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마법사가 황제를 보며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절로 떨려오는 손을 들어 황제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이마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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