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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60화 (160/250)

160화

먼저 얼굴을 드러낸 변경백이 비어있는 좌석을 가리켰다.

마지막 참석자가 그 자리에 엉덩이를 가져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제야 하나둘씩 로브를 벗기 시작했다.

“바로 시작하지요. 다들 시간이 많지 않고 이런 건 빨리 끝내야 하니까요.”

의자에 앉은 마지막 참석자가 로브를 벗으며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인 사람들은 수도나 수도 근처에 세력을 둔 대귀족들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대귀족도 아닌데 이 자리에 참여한 남작이었다.

계승 귀족이라지만 그중 공작부터 시작하는 오등작의 계급 중 가장 하위인 남작.

그것도 농사로 먹고 살길도 힘든 가난한 영지의 영주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바로 황궁을 제외한 수도 전역의 치안 담당 책임자, 수도 방위 사령관인 것이다.

수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책임은 사실상 그가 져야했다.

그건 그만큼 그의 권한도 강하다는 말과도 같았다.

변경백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먼저 이 자리에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제안을 들어 주신다는 이야기니까요.”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이 변경백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보게 된 건 사실이었다.

거기다 변경백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이미 들었고 못 해줄 만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여기 모인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변경백을 제외한 대귀족들의 시선이 수도 방위 사령관을 향했다.

수도 방위 사령관은 등을 떠밀리는 듯한 느낌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했으니 다른 사람들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제보하신 정보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거는 이미 확인을 했을 걸로 압니다만.”

수도 방위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황태자가 황제를 시해할 음모를 꾸민다는 말은 간단히 믿을 만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로도 현재 두 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소?”

수도 방위 사령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대귀족들은 나름대로 황궁에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궁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

오히려 황궁에서 일어난 일만 없었다면 변경백의 말도 콧방귀만 뀌고 넘겼을 텐데.

대귀족 중 한 명이 기껏 다들 모였는데 눈치만 보는 게 답답한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듣자 하니 매일 밤 황궁에서 흉한 일이 벌어진다고…”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일단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전해진 셈이다.

그 말에 전염이라도 된 듯 모두 저마다 알고 있는 정보를 한마디씩 내뱉었다.

“으음, 황제 폐하도 근래 들어 좀 더 성격이 급해지셨다고 들긴 했지요.”

“이번 탄신 기념일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말이요.”

“친위기사로 있는 아들이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다툼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군.”

“그날 황태자 전하께서 나가시면서 같이 나온 시체도 있다고 들었소.”

“황태자 전하는 또 어떻게 황제 폐하에게 그런 행동을 하셨다는 건지.”

“어찌 되었든 수도에서 황태자 전하가 황제 폐하를 시해할 거란 소문마저 퍼지고 있잖소!”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게 바로 변경백이 다른 대귀족들을 모을 수 있게 된 시발점이었으니까.

이들은 황제에게 해를 끼치려는 무도한 생각을 가지고 모인 게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의 행동 하나하나에 겁을 집어먹는 사람들인 것이다.

여기 있는 대귀족들은 제국의 수도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했다.

그 일로 인해 황제와 연관되기라도 하면 어떤 식이든 간에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대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자유로운 몸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사람만 좋은 거고 재수 없게 사건이 터지면 자신만 끝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수도로 올라온 변경백이 권리 없이 의무만 이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신 자신과 부하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면서.

책임을 변경백에게 미룰 수 있다면 대귀족들에게 있어 나쁠 건 없었다.

그렇기에 변경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모인 자리이기도 한 셈이었다.

변경백이 입을 열었다.

“다들 근심이 많으시군요.”

“지금 걱정 안하게 되었소?”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거 아닙니까. 다만 일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동의가 필요하지요.”

“동의라면?”

“본인이 수도에서 제국군의 명령 체계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 말입니다.”

대귀족들 중 한 명이 마침 잘 되었다는 듯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무슨 이익이 있다고 당신이 나서는 거요? 우리에게 청탁까지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품고 있는 의문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있어 이익은 있을지언정 손해 볼 일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변경백은 관계도 없는데 괜히 위험한 곳에 발을 담그는 셈이었다.

물론 변경백은 그에 대한 답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변경백이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살기 위해서요.”

“변경의 야만인들이나 주변 왕국이 쳐들어온다는 정보는 못 들었소만.”

“모르는 척하지 마시지요.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황제 폐하께서 직접 본인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실 테니까.”

“크흠. 크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일 테지요.”

아들의 죽음을 담담히 말하는 변경백과 눈을 마주친 대귀족들이 헛기침을 했다.

변경백과 마주하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은 2가지였다.

경멸, 또는 동정.

혹은 그 2가지가 섞인 복잡한 감정들.

아들이 죽었는데도 황제에게 아무 소리도 못 하는 자라니.

그래도 대부분의 대귀족들은 변경백이 그러는 이유를 이해했다.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들도 그랬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본인이 살아야 가족이 살고, 그래야 가문도 사는 법 아니겠소.”

거친 성격만큼이나 굳센 일부 대귀족들만이 경멸의 눈초리로 변경백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의 죽음에도 이런 짓까지 하며 살아남아야겠냐고.

하지만 그들도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자신들도 실제 상황이면 가문 같은 세속의 속박을 모두 떨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변경백은 무력이라는 힘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였다.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걸 입 밖에 꺼내 변경백을 적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들도 그런 상황에서 당당하게 나설지 자신이 없었다.

만약 황제가 자신들의 가족들 중 누군가를 죽였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황제에게 대들 수 있는 각오가 과연 자신에게 있는가.

그들은 황제가 두려운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부터.

그렇기에 변경백을 경멸하는 한편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일단 살고 봐야 후회든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뿐이라면 몰라도 나머지 가족과 가문을 위해서.

결국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마음 어딘가는 변경백에게 공감한 것이다.

황제 앞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찮은 목숨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국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남의 뒤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중얼거렸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많이 안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군.”

“하급 귀족이나 평민들처럼 황제 폐하의 무서움에 대해 몰랐으면 속이라도 편했을 텐데.”

“그렇기에 우리들이 황태자 전하를 압박하는지도 모르지요.”

“상황을 보면 황태자 전하는 황위에 오를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지.”

“그러니 우리들이 안심하고 그분을 핍박하는 거야. 후환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황제 폐하에게 뺨 맞고 황태자 전하에게 화를 푸는 셈이지. 참 웃기는 일 아니요?”

대귀족들이 허무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이들은 황제에 대해 역모나 반란 같은 걸 계획하려고 모인 자들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든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드는 집단에 불과했으니까.

한 마디로 겁쟁이들의 모임인 것이다.

이들이 바로 변경백이 노린 표적이기도 했고.

변경백은 이들에게 황제에 대한 어떤 불손한 행동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를 위해 움직일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들도록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대귀족들 중 한 명이 변경백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래서 이러는 거요?”

“말했지요.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들처럼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으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제국을 위한 일이며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부디!”

그 말을 하면서 변경백의 손에 힘이 들어가서 부들거린 채로 눈에 핏발이 섰다.

뭔가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게 황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잃은 분노 때문이 아니라.

대귀족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조그맣게 수군거렸다.

그러더니 바로 결단을 내렸다.

사실 여기에 오기 전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이건 확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이번 기회에 황제 폐하께 충성을 바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요.”

“어차피 황성 쪽 친위 기사들과 수도 내 제국군의 치안 체계는 다르니 별 상관없겠지요.”

“그가 군대를 들인다는 것도 아니고 백여명 정도 인원이라면 큰 문제 될 것 같지도 않고.”

“그 정도 무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황성의 방어를 뚫을 수는 없으니까요.”

“변경백이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지도 않았을 거 아니요.”

“하하하!”

한 사람이 농담으로 하는 말에 대귀족들이 피식 웃었다.

하나도 재미는 없지만 예의상으로.

그리고는 지금껏 조용히 있던 수도 방위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어떤 식으로든 수도의 치안을 지키는 역할에 엮어있긴 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책임질 필요는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수도에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수도 방위 사령관의 책임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수도 방위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었다.

만약 변경백이 일을 저지르면 1차 책임은 그가 져야 했으니까.

수도 방위 사령관이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바로 그쪽 사람들을 확인 후 치안을 위해 투입되도록 조치해두겠소.”

대귀족들이 차례대로 퇴장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수도 방위 사령관이었다.

다른 대귀족과는 달리 수도 방위 사령관은 다른 식으로 압박을 주어야만 했다.

변경백이 수도 방위 사령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잘 해주었네. 이로써 자네의 영지민과 영지, 그리고 자네 가족의 빚은 사라지게 되었군.”

“…백작 각하의 말씀은 정말이시겠지요?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요.”

“하하, 이런 일로 거짓말할 리 있겠나? 만약 수도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고 치세. 다들 말했지만 황성 쪽의 경계 책임은 자네가 맡은 쪽과는 다른 이야기지 않은가?”

수도 방위 사령관은 속으로 변경백의 말에 동의했다.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는 제국군 소속 기사와 병사가 전부가 아니었다.

황궁에는 황제 직속의 친위기사들도 있었고 비상시에는 사천왕도 달려오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친위 기사단장에게 들은 소리도 있지 않은가.

황제 곁에 항상 있는 두 호위기사.

그들은 사천왕 이상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이다.

수천 명 이상의 군대와 같은 무력을 지닌 마스터 나이트 중에서도 상위 실력자인 사천왕.

그 사천왕보다도 강하다는 호위기사가 무려 2명이나 황제의 옆에 있는 것이다.

변경백에 대해 불안한 감이 들긴 하지만 황제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변경백의 진정한 힘은 국경을 방어하는 군대라는 이름의 병사 숫자인 것이다.

변경백이 모을 수 있는 무력의 한계는 기껏해야 마스터 나이트급.

백여 명 정도로는 사천왕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변경백 또한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검천이라는 다른 수단을 써야만 했었다.

속셈을 감춘 변경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그저 본인을 믿고 마음 편안히 일을 하도록 맡겨주기만 하면 되는 걸세.”

“믿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아, 친위 기사단장에게도 안부 전해주게나.”

“예. 그도 당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안 되도록 연락해 둘 겁니다.”

수도 방위 사령관이 떠나는 모습을 보는 변경백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방금 전까지 밝게 미소를 지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잠시 후 가볍게 가죽 갑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방에 들어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백작 각하. 그러면 계획대로 진행하는 겁니까?”

“그렇다.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고 우리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

“그러면?”

“후환은 남기지 않는 법이지. 돈을 받고 소문을 퍼트린 자들은 일단 죽여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자들도?”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가죽 갑옷의 남자가 변경백이 창 너머 황성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수도에 혼란을 일으킬 준비는 다 끝났다.

이건 변경백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무술 대회가 끝나는 순간부터 수도에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정보를 전해 들었다.

그것도 황제가 직접 나서서 벌이는 행동이라고 들었다.

황성 내부에 심어둔 자에게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게 황제를 배반하는 행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만.

자신은 그저 그 행위에 등을 떠밀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계획 이상대로 움직여주고 있다. 이제 김검천만 잘해준다면…!”

변경백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인 마석이 달린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자신도 그날을 위해 여러 가지 마법 도구를 비롯해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황제의 죽음을 변경백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

***

그리고 다음 날.

김검천은 준결승에 나가지 않고도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번 김검천의 상대인 제국 사천왕 중 한 명이 기권한 것이었다.

마치 사천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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