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키잉.
화살과 비슷하게 생긴 손바닥만 한 미사일이 하나가 어깨와 수평으로 이루며 튀어나왔다.
루시엘과 샤칸이 멀뚱멀뚱 미사일을 바라보았다.
저것의 위력을 알고 있는 쿠퍼를 제외하고서.
“엑? 김검천님?”
쿠퍼는 이 자리에서 김검천이 발사한 미사일의 위력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변경백의 영지에서 성문을 날릴 때도 숄더 캐논만 사용했었다.
테이룬도 미사일 한 발에 즉사할 뻔한 적이 있지 않았는가.
미사일은 1발씩만의 위력이라면 숄더 캐논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쿠퍼는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웠다.
김검천은 쿠퍼에게 괜찮다는 듯 훈훈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쿠퍼, 이제야 네 소원을 이뤄줄 수 있겠는데.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만.”
“다음번에 더 화려한 걸 보고 싶다는 말이군. 미리내. 발사.”
[발사합니다.]
- 쿠와왕--!
날아간 미사일이 붉은 안개 속을 뚫고 블러드 타워에 부딪혔다.
폭발로 인한 화염과 연기가 블러드 타워를 뒤덮었다.
튀어나온 불똥으로 블러드 타워 옆의 나무에 불이 붙기도 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블러드 타워에 서려 있던 붉은 안개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김검천과 쿠퍼를 제외하고는 미사일의 위력을 처음 보는 루시엘과 샤칸이었다.
1킬로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는 폭발의 위력.
생각하지도 못한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흠칫하던 샤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하하! 이거 정말 끝내주는 위력이로군! 하나쯤 가지고 싶은데! 단번에 끝났군!”
같이 놀라긴 했지만 루시엘은 조용히 블러드 타워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사일의 위력이 놀랍기는 했으나 그보다 마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벌어질 상황이 예상 가능한 루시엘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놀라운 위력이기는 하나 블러드 타워를 처리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미사일이 폭발하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날아갔기에 김검천도 볼 수 있었다.
루시엘의 말대로 블러드 타워는 멀쩡해 보였다.
아예 타격이 없지는 않았는지 블러드 타워를 둘러싼 붉은 기운이 약해지긴 했지만.
김검천이 의외로 단단한 블러드 타워의 내구도에 감탄했다.
“미사일이 통하지 않다니? 대단한 방어력이야. 여기 와서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단단한데.”
감탄하기는 했지만 김검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사일 외에도 더 강한 무기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반입자 큐브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관급 파워드 슈츠 때는 1번도 무리였지만 영관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여전히 에너지 소모가 심하긴 했지만 적당히 위력을 억제한다면 두 번 이상도 가능했다.
그때 루시엘이 블러드 타워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를 보시지요. 김검천님의 말대로 떨어져서 공격을 한 건 현명한 행동이었습니다.”
블러드 타워로부터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이상한 건 블러드 타워의 입구라고 생각된 곳에서 나타난 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근처의 숨겨진 비밀 통로로부터 튀어나온 것이다.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나쁜 놈들의 소굴답군. 음흉하기 짝이 없는걸.”
혹시라도 들킬까 봐 긴장하던 쿠퍼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이 저 문이 아닌 어딘가에서 나타나는 걸 보았지?”
“그렇습니다. 아, 그러면 저게 출입구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혹시 함정이라는?”
“정말로 저게 출입구라면 어떤 식으로든 사용했을 텐데 쓰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자고.”
물론 적의 습격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검은 로브 마법사들이 주위에 깔려 안전이 확보된 후에도 거기서 나타난 자는 없었다.
확실히 무늬만 출입구인 모양이었다.
“저게 출입구라고 생각해서 탑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잡히거나 죽는 신세가 되었겠군요.”
쿠퍼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이제는 김검천이 트롤을 보고 사람이라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김검천이 그러는 건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샤칸이 그런 쿠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쳤다.
“뭐해? 누군가의 멋진 수염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라고.”
“그러면 뭘 해야 하는 시간인데?”
“저길 봐.”
샤칸이 괜히 그러는 건 아닐 것이었다.
김검천은 다른 사람에게 물러나자고 신호를 보냈다.
그 와중에 김검천은 미리내를 통해 마법사들의 대화를 들어보기로 했다.
***
“불이야! 주변의 불을 꺼라!”
“침입자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어?”
“공격을 막을 준비부터 해야지 않을까?”
마법사들이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그중 책임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법사들은 각자 자기 내키는 대로 소리치며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근처의 불길은 금방 잡힐 정도로 작았는데 이제는 점차 번져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검은 로브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제야 질서가 없던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의 움직임에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붉은 선 마법사 근처에 있던 가는 눈의 마법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붉은 선 마법사가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모른다면 끝이냐?”
“하지만 저희들 중 누구도 침입자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들! 마법사가 마법을 두었다 어디다 쓴다는 말이야!”
똑똑하다는 게 꼭 지혜롭다는 말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지식을 욱여넣었다고 다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닌 것이다.
평생을 책상 앞에서 실험으로 보내는 마법사일수록 이런 경향이 있었다.
가는 눈의 마법사가 억울하다는 듯 급히 대답했다.
왜 하필이면 자신 옆에 나타나서 자신만 이런 욕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다들 예상하지도 못한 공격을 받았기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자신만이 탐색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변명도 슬쩍 했다.
붉은 선의 마법사가 혀를 찼다.
“쯧, 한심하기는. 그러면 이야기를 들었으니 너라도 일단 시도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 말에 따라가는 눈의 마법사가 급히 탐색 마법을 영창했다.
그러더니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탐색 마법을 발동했는데 주변에 사람은 없다고 나옵니다.”
“장난하나? 탐색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정말로 주변에 저희 외에는 다른 자들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붉은 선의 마법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에게 바칠 것들을 연성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기에 공격받은 것도 몰랐다.
공격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건 허둥지둥 달려온 부하 마법사가 보고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공격받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마법에 의한 경고였나?”
“아닙니다. 블러드 타워의 마나 보호막이 흔들렸기에 공격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타워의 마나 보호막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붉은 선의 마법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야 몸에 칼이 박혀도 실험에 열중할 정도니까 눈치 못 채기는 했다.
하지만 평범하게 일을 하던 자들은 알아챌 정도의 공격이 블러드 타워에 향하다니.
블러드 타워는 제국에 있는 어느 곳보다 강대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변경의 성벽이든 수도의 황궁이든지 간에.
그런 블러드 타워의 보호막을 흔드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블러드 타워에 들어간 돈과 소재, 그리고 투여된 마법사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럴만했다.
붉은 선 마법사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방금 공격받은 위력은 못 낼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탐색 마법에도 침입자의 행방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너희들의 실력이 대단하지 않다고 해도 마법사라고 부를 정도는 될 텐데…”
무시하는 듯한 말에 가는 눈의 마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곳의 마법사도 기사처럼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눠진다.
마법사 쪽에서 마스터 나이트의 위치에 있는 건 마스터 매지션이라 불렸고.
그리고 블러드 타워에서 일하는 검은 로브 마법사들은 중급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중급을 넘어가기 전이나 중급으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자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가는 눈의 마법사도 그런 중급 마법사들 중 한 명이었다.
붉은 선의 마법사는 그들을 관리하는 자로서 상급 마법사였다.
그러니 중급을 넘지 못하는 검은 로브 마법사들을 낮춰 보는 것이다.
사실이라지만 속이 상한 건 어쩔 수 없는지 가는 눈의 마법사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상급 마법사이자 관리자답게 현명한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기다려 봐라!”
붉은 선의 마법사는 은근히 재촉하는 말투에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 데 옆에서 정신까지 흩트리게 만드는데 좋을 리가 없었다.
공격을 시도한 침입자가 마법도구로 탐색 마법을 막았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탐색 마법이 미치지 않은 범위에서 원거리 공격을 했다는 말 아닌가.
이건 제국 사천왕이 달라붙어 원거리에서 오러를 퍼붓는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사의 마나는 거리를 두면 급격히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마법사가 블러드 타워를 공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최소 마스터 매지션으로 상급 마법 이상을 구사하는 자가.
“혹시 네 녀석의 마법이 실패했을지도 모르니 다른 녀석들에게도 시켜봐라.”
“…알겠습니다.”
실력을 무시당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상급자가 하라면 해야 했다.
잠시 후 돌아온 가는 눈의 마법사가 보고했다.
“역시 탐색 마법에 걸리는 사람 같은 건 없다고 합니다.”
“으음. 운이 나쁘면 상대가 마도 왕국의 상급 마법사나 마탑의 탑주 일수도 있겠군.”
“헉!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저희가 하는 일이 다른 곳의 귀에 들어간다면?”
“황제 폐하에 대한 일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으니 멈출 수는 없겠지만.”
“아, 하긴 블러드 타워를 부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마스터 매지션이 쓴다는 고급 마법보다 더 강한 힘이 아니면 파괴될 일도 없을 테니까.
하늘에서 재앙을 불러온다는 전설급 마법보다 더 강하다면 또 모를 일이었다.
그건 블러드 타워를 살펴본 마법사들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붉은 선의 마법사가 눈을 빛냈다.
“그래도 들켜서 좋은 일은 없겠지.”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탐색 마법에도 걸리지 않는 상대입니다만.”
“마법으로 찾을 수 없다면 직접 살펴봐야겠지. 하늘에서 말이다.”
“과연! 저희들을 관리하시는 분 다우신 의견이십니다.”
붉은 선의 마법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머리로는 아부라는 걸 알아도 귀는 즐거운 법이니까.
그러다 느껴지는 열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침입자를 찾는다고 신경을 덜 쓴 불이 번져 큰 화재로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너와 A조는 불을 꺼라. 이 몸과 나머지 마법사들은 비행 마법으로 정찰을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마차에 올라타면서 김검천이 들었던 이야기를 짧게 끝냈다.
“…라고 저 마법사들의 상급자가 말하더군.”
루시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볼 때 한두 명도 아니고 백여 명은 충분히 될만한 숫자였다.
탐색 마법은 막을 방도가 있었다지만 공중에서 지켜보는 마법사들의 눈은 어찌하겠는가.
마법사들이 하늘에서 정찰을 시도한다면 피할 길이 없었다.
그냥 도망치는 것도 아니라 대회 결승전까지는 수도로는 가야 했으니까.
저런 마법사들이 수색을 금방 그만둘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았다.
“이곳은 그렇다치고 산을 벗어나면 주변은 평지입니다. 결국 들킬 테니 싸워야겠군요.”
싸움이라는 말에 샤칸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놈들의 머리를 가루로 만들어 주겠다!”
쿠퍼도 슬쩍 자신의 금속망치를 만지며 말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런데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에게 다른 생각이 있다.”
모두가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거리가 좁혀지면 탐색 마법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들키지 않고 거리를 벌린다고 해도 멀어지기 전 하늘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들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방도가 있다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