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마차에 모두 타자 쿠퍼가 출발 준비를 하는 사이 루시엘이 입을 열었다.
“저희 몸에 걸린 상태 이상 방어 마법은 탐지마법을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검천이 마법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애초에 탐색 마법을 막기 위해 준비한 게 아니라서 그런 거겠군.”
“거기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들킬 가능성도 높아지고요.”
샤칸도 입이 간지러운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늘에 하나둘씩 떠오르는 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와서였다.
“마법에 안 들켜도 평지에서 마차가 달리는 모습은 보일걸? 그러니 여기서 싸우자고.”
싸운다면 평지보다는 모습을 숨기기 좋은 이곳 산속에서 공격하는 게 나은 것이다.
그런 샤칸과 다르게 쿠퍼는 아쉬운 표정으로 자기 옆으로 금속망치를 내려놓았다.
김검천이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쿠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지 김검천이 뭔가를 잡은 주먹을 내밀었다.
그러자 샤칸도 주먹을 뻗어 김검천의 주먹에 맞부딪혔다.
모두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샤칸이 항의했다.
“뭐, 왜, 뭐. 싸우기 전 주먹 인사를 나누려는 거 아니었어?”
“아니, 주먹 인사가 아니라 손에 있는 걸 보여주려고 주먹을 내민 거였거든?”
김검천이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손바닥 위에 중계형 드론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이 녀석은 원거리 통신이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중간에서 담당하지. 하지만 부가기능이 있다는 건 몰랐을 거야. 아직 쓸 일이 없었으니까.”
쿠퍼가 흥미를 보였다.
“그 부가기능이라는 게 우리들을 마법사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이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걸 보여줄 생각이거든.”
“공격해서 공격받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거군요. 그런데 싸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만.”
제국의 마법사들하고 정면으로 싸우면 황제에게 들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김검천도 그냥 돌아가자고 말한 것 아니었는가.
김검천이 고개를 저으며 미리내를 불렀다.
“공격한다 해도 직접 싸울 생각은 아니야. 아무래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지.”
[중계형 드론 작동. 드론 모드를 원거리형에서 근거리형으로 바꿉니다.]
“소리는 크면 클수록 좋아할 테니 최대로 부탁해.”
[기동합니다. 음량 최대. 대기 중.]
- 우우웅.
작게 날갯짓하는 소리와 함께 중계형 드론들이 김검천의 손바닥에서 떠올랐다.
그리고는 마차 창문으로 빠져나가 마법사들이 있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김검천은 아무것도 없는 손바닥을 편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들 손 좀 줘봐.”
- 착.
루시엘이 가장 먼저 김검천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렸다.
손등이 보이도록.
함선에서의 댕댕이가 잘하는 행동.
하지만 루시엘은 댕댕이가 아니었다.
김검천이 루시엘의 손을 잡아 돌려주며 웃어 보였다.
“아니, 손바닥이 보이도록 올려주었으면 해. 손가락에 바를 거라고?”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루시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이게 무슨 샤칸 같은 모습이라는 말인가.
김검천은 그대로 물약 같은 걸 루시엘의 검지에다가 발랐다.
이어서 샤칸과 쿠퍼까지 바른 후 자신의 손가락에도.
그리고는 귓구멍 주위로 손가락을 문질렀다.
“나처럼 살짝만 발라주면 되니까 주의하고.”
쿠퍼와 루시엘은 김검천이 하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보며 따라 했다.
바르고 나니 다들 만지지도 않은 귀 쪽 부위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샤칸은 그래서 시원한지 귓구멍에다 손가락을 무지막지하게 쑤셔 박았다.
김검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효과가 강할 텐데. 준비가 끝났으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쿠퍼가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마차는 산과 평지를 잇는 산밑까지 내려와 조금 있으면 눈에 띌 것 같았다.
창밖을 올려다보던 샤칸이 검은 점으로 보이는 마법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히 우리 머리 위의 마법사들에게 들키겠는데?”
긍정적인 샤칸이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를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놀랄만한 노래라도 들려줄 차례군. 미리내.”
[메탈 장르 무작위 재생. 소리에 주의를.]
- 끼탸턍--!
하늘 곳곳에 퍼트린 중계형 드론으로부터 금속 깨지는 음향이 발산되었다.
그러자 하늘을 날고 있는 마법사들이 갑자기 총에 맞기라도 한 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중계형 드론에서 울려 퍼진 소리 크기가 150데시벨을 가볍게 넘어가서였다.
이 정도면 5킬로가 넘는 거리에서도 시청하는 방송의 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다.
그런 소리를 백여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들은 것이다.
그것도 무방비 상태로.
비행 마법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마나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귀가 터져나갈 소리를 들었으니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 들은 정도일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들었다면 그들은 귀에서 피를 뿜었을 것이다.
물론 땅으로 추락한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그 광경에 놀란 루시엘이 김검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방금 내가 보낸 중계형 드론 봤지? 거기서 큰 소리를 발생시킨 거라고.”
루시엘이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큰 소리라지만 귀가 밝은 자신도 소리가 났다는 정도밖에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김검천이 슬쩍 귓불을 어루만졌다.
루시엘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혹시?”
김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금 귀에 바른 게 저 큰 소리를 약화시켜 주는 작용을 하는 거야.”
중계형 드론에서 나는 특정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중화시켜주는 기능을 가진 것이다.
원래는 방송용으로 쓰는 기능이기에 공격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손으로 귀를 막으면 잠시 견딜만한 소리 크기이기는 했다.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귀를 막아야 했으니 양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테지만.
아직 마법을 유지 중인 마법사들은 마차보다 소리 근원지를 찾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인 중계형 드론을 공중에서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 틈을 이용해 마차는 수도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루시엘은 김검천이 바르라고 했던 액체가 묻어있는 자신의 긴 귀를 만지작거렸다.
액체를 발랐던 귀 부근이 찌릿 하는 느낌이 시원했다.
루시엘과 비슷한 행동을 취한 쿠퍼도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샤칸만 빼고.
샤칸은 눈을 멀뚱거리면서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말을 했기에 다들 귀를 만지는 거야?”
루시엘이 샤칸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마치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때에도 장난입니까. 쓸모없는 당신의 귀라도 듣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습니까?”
“응? 뭐라고?”
루시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소리를 약화 시키는 약을 바른 손가락을 귀 안쪽에 쑤셔 넣을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그래서 살살 바르라고 한 거야. 잔뜩 민감한 귀 안쪽에 약을 발랐으니 그만큼 소리가 강하게 차단된 거겠지. 루시엘. 글자로 써서 상황을 알려줘.”
루시엘이 글로 알려주자 샤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건가? 좋은데?”
좋기는 뭐가 좋다는 말인가.
샤칸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기에 자신을 쳐다보는 의미를 짐작했다.
“이제부터 쟈칸의 잔소리나 루시엘이 닦달하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이야기잖아.”
샤칸다운 대답이었다.
그래서 김검천은 밥 한 끼 먹을 시간이면 효능이 다한다고 알려주었다.
루시엘이 적은 글로 상황을 알게 된 샤칸은 절망한 자세로 마차 바닥에 엎드렸다.
“크흑, 세상은 이 몸을 돕지 않는구나.”
“샤칸.”
“루시엘.”
루시엘이 따뜻한 손길로 샤칸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샤칸의 등 위에 자신의 활을 올려두며 말했다.
좌석에 놔두자니 걸리적거렸는데 샤칸 위에 올려두니 딱 좋았다.
“역시 안정적인 자세로군요. 다들 집에 샤칸 한 명쯤은 마련해 두세요.”
“그러니까 본인은 가구가 아니라고!”
귀가 안 들리는데도 루시엘이 말하는 의도를 알아채다니.
과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샤칸은 루시엘에게 분노를 발산하기보다는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뺐다.
루시엘도 샤칸의 행동을 따라 했다.
공중에 남아 있는 마법사는 이제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 정도였다.
공중에 떠 있다고 해도 정찰을 할 만큼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루시엘은 여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붉은 선이 그려진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가 신경 쓰인 것이다.
“여전히 하늘에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한 명은 상급 마법사 이상인 것 같습니다.”
상급 마법사라면 이중 영창이 가능해 동시에 2개 이상의 마법이 사용할 수도 있었다.
중계형 드론의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은 마법사가 마차를 본다면.
루시엘은 불안했다.
마법사들 중 한 명의 눈에만 띄어도 다른 마법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테니까.
김검천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김검천도 중계형 드론 하나만 믿고 있는 건 아니었다.
“소리로 마법사들의 혼란 시킨 게 끝은 아니야. 이건 다른 방법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거든.”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 정도로 큰소리가 나면 잠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빼앗기겠지?”
“그렇다 해도 마차가 수도에 도착하기 전 한 번이라도 눈에 띄면 실패이지 않습니까?”
“그거면 돼. 잠시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루시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붉은 선의 마법사의 시선이 마차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들켰습니다!”
루시엘의 경고와 동시에 붉은 선의 마법사가 마법을 영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붉은 선 마법사 주위로 전기 스파크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그나마 버티던 검은 로브 마법사들이 몸이 마비된 채 땅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눈에도, 마법에도 탐지되지 않는 중계형 드론을 날려 버리기 위해 광역 공격을 한 것이다.
샤칸이 질린 얼굴을 했다.
“위험한 놈이군. 동료마저도 같이 날려 버린 거야?”
쿠퍼가 대꾸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은 뛰어나. 효과는 확실하잖아.”
쿠퍼의 말대로 이제 하늘 위는 조용해진 상태였다.
곧이어 붉은 선 마법사의 머리 위로 붉은 화염의 구슬, 화염구가 떠올랐다.
그가 떠 있는 둘레의 소리가 잦아들었으니 집중하기 좋아진 것이다.
화염구는 점차 크기를 불리더니 사람보다도 더 커져갔다.
저 정도면 마차 하나를 날려 버리기에는 과한 힘이었다.
그리고 마법사가 내린 화염구는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김검천이 탄 마차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서.
마법 공격에 대비하던 루시엘 뿐만 아니라 쿠퍼와 샤칸마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쪽이 아니라 왜 다른 곳에 마법 공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