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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69화 (169/250)

169화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을 꺼낸 친위 기사가 길 안내를 시작했다.

수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커서 그런지 이곳은 높으신 분들을 위한 구간이 따로 있었다.

계단과 통로를 벗어나자 마차가 지나가도 될듯한 넓은 장소에 단상 하나가 보였다.

그곳에 황제가 있었다.

화려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은 미래라도 꿈꾸는 소년 같아 보였다.

그 속은 겉모습과 다르게 고목같이 마르고 악의로 비틀린 상태였지만.

여기는 입구부터 친위기사들이 정렬한 채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주둔 중인 제국군이 출동하는 사태 속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위 기사들에게 있어 호위 대상은 황제.

그 외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 바 아닌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친위 기사가 김검천에게 말을 걸었다.

“김검천님. 황제 폐하의 앞이니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엇?”

김검천은 친위 기사의 말을 무시한 채 황제를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그 모습을 친위 기사단장이 보았다.

친위 기사단장은 김검천이 누구인지 몰랐다.

황제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니 대회같은 게 친위 기사단장의 눈에 들어 올리 없었으니까.

알았다고 해도 김검천이 친위 기사와 함께 온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건 같았을 것이다.

친위 기사단장은 저 친위 기사에게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김검천을 데리고 온 친위 기사는 황제 곁에 있는 붉은 갑옷 기사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친위 기사의 직속 상관인 친위 기사단장 자신의 명령이 아니라.

조직의 명령 체계가 엉망이 된 걸 좋아하는 집단의 수장은 없었다.

심지어 황제의 곁을 지키는 건 친위 기사들이 아닌 붉고 검은 갑옷의 호위 기사였다.

누가 봐도 황제는 친위 기사단장보다 호위 기사들을 더 믿는 걸로 보였다.

친위 기사단장은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황제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신뢰를 못 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으니까.

그렇기에 평상시보다 예민해진 친위 기사단장이 김검천의 앞을 가로막았다.

상급자의 행동에 반응한 친위 기사들이 칼자루를 쥔 채 언제든 뽑아들 준비를 했고.

“멈춰라! 이 몸은 황제 폐하를 지키는 친위 기사단장이다. 이름을 밝혀라.”

“김검천.”

친위 기사단장은 김검천의 이름을 듣고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대회를 안 보긴 했지만 대회 운영측에서 이름을 부른 게 기억 나기는 했다.

이제야 김검천이 대회 우승자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김검천? 아, 황제 폐하가 부르셔서 왔나 보군.”

“알았으면 비켜줬으면 하는데.”

친위 기사단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친위 기사단장도 마스터 나이트의 칭호를 받은 실력자.

우승자라고 해도 자신이 상대 못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황제의 앞만 아니었다면 당장 오러를 뿜어내 김검천을 반 토막 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김검천이 사천왕을 이긴 펠우테와 상대한 걸 봤으면 그런 생각은 못했을 테지만.

친위 기사단장에게 있어서는 다행스럽게 붉은 갑옷 기사가 끼어들었다.

“친위 기사단장은 길을 비켜라. 황제 폐하께서 김검천을 만나 보고자 하신다.”

친위 기사들은 붉은 갑옷 기사의 말을 듣자 바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친위 기사단장이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 으드득.

그 모습을 본 친위 기사단장은 속이 터지는지 이를 악물었다.

엉망인 명령 체계를 김검천이라는 외부인에게 보였으니 더욱 그랬다.

이래서야 누가 친위 기사들을 지휘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황제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일.

친위 기사단장이 김검천을 향해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운이 좋은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앞으로 저 친구에게 하루 세 번씩 절하라고.”

“이놈이….”

이를 가는 친위 기사단장의 모습을 뒤로하고 김검천은 황제에게 다가섰다.

검은 갑옷 기사는 동상인 것처럼 황제의 옆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붉은 갑옷 기사만이 김검천을 보고 흥미로운 듯 말을 걸어왔다.

김검천의 걷는 자세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움직임이로군. 과연 이번 대회에서 우승자가 될만해.”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

단순한 동작 하나를 봐도 하수인지 고수인지 알 수 있는 법이었다.

김검천처럼 걷는 건 붉은 갑옷 기사 자신도 힘든 일이었고.

강자를 숭상하는 그에게 있어 김검천 같은 자를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김검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파워드슈츠를 입으면 자동으로 자세를 보정해주는 모습을 보고 뭔가 오해한 듯 했다.

“내 실력이라고 볼 수 없지. 이번에는 상대가 도망가서 부전승으로 승리 했을 뿐이야.”

“사천왕 이상의 실력자가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그 자는 도망친 게 잘한 일이었을거다.”

호감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붉은 갑옷 기사가 김검천에게 말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김검천이 붉은 갑옷 기사의 곁을 지나치려고 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김검천을 제지했다.

“아차, 미안하지만 이 이상 황제 폐하에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되네. 그게 규칙이거든.”

“황제 폐하를 더 가까이 보고자 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을 규칙 따위로 막을 수는 없을 텐데.”

“그래서 규칙이라고 했지만 예외를 두게 되는 몇 가지 상황이 생겼지. 궁금한가?”

붉은 갑옷 기사가 김검천을 향해 은근하게 속삭였다.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듣고 싶지 않아지는걸.”

“사양할 필요는 없네. 황제 폐하를 가까이 보려면 몸 위의 그걸 떼기만 하면 되거든.”

“목과 몸을 분리하면 죽는다고.”

붉은 갑옷 기사가 씨익 웃었다.

“단번에 요점을 알아챘군. 그게 황제 폐하에게 근접한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이지.”

웃으며 말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붉은 갑옷 기사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그의 등 뒤로부터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짐에게도 이번 대회 우승자의 얼굴을 보여주겠나?”

미소를 지은 붉은 갑옷 기사가 옆으로 걸음을 옮기며 김검천을 향해 눈짓을 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황제 폐하. 그러면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그제야 황제가 2명의 호위 기사 사이로 김검천의 눈에 들어왔다.

김검천은 우선 그와의 남은 거리를 눈으로 대충 재어보았다.

자신의 정면에 존재하는 자는 황제를 제외하면 호위 기사 단 2명뿐.

10미터 정도 거리였으니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웠다.

김검천이 직접 뛰어들거나 원거리 무기를 쓰면 몇 초 내로 상황이 종료될 테니까.

김검천의 등 뒤에 있는 친위 기사나 친위 기사단장들은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만 있었다면 김검천은 이 자리에서 황제를 공격한 후 자리를 떴을 것이다.

공격한다면 성공했을 테고 죽어야 하는 사람도 한 명으로 끝났을 테니까.

다만 지금은 붉은 갑옷 기사와 검은 갑옷 기사 때문에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붉은 기사가 김검천의 강함을 알아볼 것처럼 김검천도 그가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 중에서는 붉은 기사만큼 강한 자는 없어 보였다.

김검천이 인정하는 실력자인 테이룬도 붉은 기사보다는 못 해 보였다.

단순히 느낌이라지만 이곳에서 겪어 보니 의외로 믿을 만한 감각이었다.

거기에 더해 검은 갑옷 기사의 모습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붉은 갑옷 기사와 달리 약한지 강한지 제대로 알기 힘든 것이다.

다만 붉은 갑옷 기사와 같이 호위를 서고 있었으니 약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또한 둘을 이기는 것 둘째 치더라도 그사이 혼란을 틈타 황제가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여기까지 와서 노력한 게 모두 헛수고가 될 터.

거기다 아직 대회장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김검천은 문제의 근원인 황제를 잡으러 온 것뿐이었다.

그와 싸우면서 그 여파로 이곳에 모인 관중들이 죽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김검천은 살인마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김검천은 잠시 지켜보며 기회를 좀 더 보기로 했다.

이 거리에서 본 황제의 얼굴색은 생각보다 더 창백했다.

청년의 얼굴에 걸맞지 않은 하얀 머리와 주름이 잡힌 손.

황제의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황제의 주변으로부터 느껴지는 끈적거리는 붉은 기운의 정체를 알아챘기에 더욱 그랬다.

먼저 말을 꺼낸 건 황제였다.

“자네가 김검천이로군.”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축하하네. 방금 전 시합은 짐의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었다. 진심으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린 황제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크게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검은 갑옷 기사가 말없이 비단 손수건을 들어 황제의 입가를 닦았다.

비단 손수건 위로 핏방울이 점점이 묻어 나왔다.

황제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의 붉은 기운을 마셨다.

잠시 후 진정이 되었는지 황제가 다시 김검천에게 말을 걸었다.

붉은빛이 번뜩이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유감스럽지만 이 자리에서는 오래 이야기할 상태가 아니군.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겠어.”

안 그래도 이 자리에서 황제를 공격하는 게 망설여지던 김검천으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황제가 붉은 갑옷 기사에게 귓속말을 하고 돌아가려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 거기로 마중할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김검천은 황제의 그냥 묻는 듯한 말에 근처에 있는 숙소를 대려다가 멈추었다.

방금 자신은 황제와 황태자의 사이가 나쁜 걸 알기에 머무는 곳을 속이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일 것 같지는 않았다.

황제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황태자 저택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숫자도 파악해 낼 것이다.

황제가 모르는 건 당장 필요가 없다는 뜻에 불과한 것이다.

그건 김검천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일 터.

황제가 전력을 다해 파고든다면 김검천에 대한 정보를 입수 못할 리 없었다.

제국 사천왕을 죽인 것이라든지.

황태자를 내버려 두고 있는 것도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황태자에 대한 일은 좀 더 악의적인 의미가 있었지만.

“황태자 전하의 저택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제 신원 보증인이 황태자 전하시거든요.”

“황태자인가. 다른 건 몰라도 나름대로 사람 보는 눈이 있었군.”

“그거야 제국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황태자 전하 아닙니까? 제법 친한 사이이기도 하고요.”

황제가 김검천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황태자와 짐의 사이와 어떤지 들었겠군.”

“필요한 만큼은 들었습니다.”

황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검천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저 당당한 얼굴이 죽음 앞에서 어떤 표정으로 변할지도 궁금했고.

“짐은 솔직한 자가 좋다.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 않거든. 이만 가봐도 좋네.”

김검천이 떠나자 붉은 갑옷 기사가 황제에게 조용히 물었다.

“황태자와 연관 있는 자였군요. 저 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할까요?”

황태자와의 인연은 저번에 살려준 것으로 끝낸 상태.

황태자에게 위협이 될 질문을 던지는 붉은 갑옷 기사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적어도 오늘 밤까지는 황제에게 충실해야 했다.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잘한 일까지 신경 쓰기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더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고.

“그것보다 블러드 타워에서 짐에게 보내올 물건은?”

“황성을 돌아가시면 바로 사용하실 수 있게 준비해두겠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명에 따라 대회장을 나가는 제국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이건 모두 황제를 위한 일이었다.

얼마나 큰 희생이 나더라도 황제 자신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수도의 문을 모두 걸어 잠궈라. 오늘 밤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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