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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74화 (174/250)

174화

김검천은 대답 대신 느긋하게 쿠키 하나를 집어 입속에 털어놓았다.

- 우물, 우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를 대하는 태도로서는 불경하기 짝이 없는 행동.

친위 기사단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건방진 놈! 황제 폐하를 앞에 두고 어디 감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가?”

친위 기사단장의 고함 소리에 뒤따라오던 친위 기사 몇 명이 알아서 앞으로 나섰다.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놔두거라. 마지막 만찬이니 마음껏 즐기도록 말이다.”

황제의 말에도 화를 참기 힘든 친위 기사단장이 물었다.

“하오나 저런 무례하고 건방진 자를 놔두는 건 황실의 품격에 걸맞지 않습니다.”

황제가 웃었다.

눈은 웃지 않고 입꼬리 한쪽만 올라간 채로.

“누가 너보고 판단하랬느냐. 짐의 말에 불복하는 자가 감히 황실의 품위를 입에 담다니?”

분노로 붉게 물들었던 친위 기사단장의 얼굴은 이제 공포로 새파랗게 변해갔다.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나선 일인데 오히려 잘못 보인 것이다.

친위 기사단장보다 눈치가 빠른 친위 기사들은 벌써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황제를 모시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이건 흔한 일이었다.

황제에게 잘못 보인 자들은 어느 순간 자리에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무덤 속을 지키는 것으로 자리가 바뀐 것이다.

전임 친위 기사단장도 그런 식으로 죽었다.

현임 친위 기사단장은 땅에 머리를 대고 황제를 향해 엎드렸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안 그런가?”

황제는 호위 중인 붉은 갑옷 기사를 보며 물었다.

붉은 갑옷 기사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한번 정도는 더 기회를 주셔도 될 듯 합니다. 황제 폐하의 관용을 보여주시는 거지요.”

“물론 짐은 관대하다. 뭐, 좋겠지. 일어서라.”

“황제 폐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친위 기사단장이 고개를 숙인채 벌떡 일어났다.

황제가 귀찮은 듯 입을 열었다.

“편하게 대화하고 싶은데 너희들 얼굴이 방해가 되니 멀리 떨어져 있거라. “

하마터면 목이 떨어져 나갈 뻔한 친위 기사단장이 그 명을 거역 할 수 있을리 없었다.

친위 기사들은 한명씩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간 자가 연회장의 문을 닫았다.

황제는 남아 있는 시종들에게는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황제에게 있어서 시종들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같은 존재였으니까.

어느새 김검천은 하던 일을 끝내고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가 김검천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만족했는가?”

“어느 정도는 말이지요.”

황제가 들고 있던 상급 마석을 붉은 갑옷 기사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연회실 중앙 맨 위에 설치되어 있던 의자에 앉으며 턱을 괴었다.

“안타깝군. 더이상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될 텐데 말이야.”

“집에 돌아가면 해결될 일이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럴 기회는 이제 없을 것이야. 이제부터 너는 짐에게 먹힐 테니까.”

샤칸이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이런 변태같은 놈같으니라고! 그런 취미따위는 우리들에게 없다!”

황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시야에 안 들어와서 몰랐는데 이 작은 수염달린 게 방해를 하다니.

황제가 붉은 갑옷 기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짐은 너 따위와 대화하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치워라.”

붉은 갑옷 기사가 검을 꺼내들다가 눈을 빛냈다.

자신이 무기를 들었는데 김검천을 포함한 다른 자들은 불안해 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싸우고 싶어서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 아닌가.

“황제 폐하. 설마싶지만 이자들은 자신들이 이곳으로 불린 이유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황제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와 같이 있다 보니 짐에 대한 이야기라도 들어서 눈치챈 건가? 그렇다면 왜?”

여기가 자신들이 죽을 장소라는 걸 알면서도 직접 찾아오다니.

황제로서는 이해가 될 리 없었다.

물론 김검천과 일행들은 죽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죽이러 온 것이었지.

김검천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뭔가 이상한 표정인데. 볼 일이 있던 건 네 쪽보다는 내 쪽이 먼저였다고.”

황제에 대한 존칭 같은 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이 생긴 황제는 나중에 따지기로 했다.

존댓말 같은 건 나중에 혈석으로 만들기 전에 고문을 통해 얼마든지 들으면 되는 것이다.

“짐에게 용건이 있었다고?”

김검천이 테이블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그래. 내가 아는 이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황제, 너를 처단하러 왔지.”

가늘게 떴던 황제의 눈이 활짝 떠지며 입 또한 벌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이야기를 들은듯이.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고? 세월의 힘인가, 그것도 아니면 짐을 웃겨서 죽일 작정이더냐?”

“이 손이면 충분해.”

“진심으로 하는 말이로구나.”

“우승한 건 이 자리에서 너를 보기 위해서야. 이 자리에서는 이제 도망치지도 못할 걸.”

황제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말로 김검천이 무슨 의도로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짐의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냐? 제법 머리를 쓰긴 했구나.”

“상대 못 할 건 없겠지만 의미 없는 살인은 안 하는 성격이거든.”

“그래서 대회장에서는 짐을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냐? 겉보기만큼이나 속도 여리구나.”

“그렇게 보일지도. 하지만 말이지?”

김검천이 황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같은 녀석이라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

“진심으로 하는 말이로구나. 짐은 그런 걸 좋아하지.”

“나 같은 용사를?”

황제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너 같은 자가 짐의 발밑에 깔린 채 울면서 발바닥을 핥을 때의 표정은 근사하니까.”

“허나 거절한다. 그런 취미 있는 사람이나 찾아보시지.”

“후후, 친위 기사들을 물렸다 하나 이곳은 황성이다. 너는 무엇을 믿는 것이냐?”

황제의 시선이 쿠퍼와 샤칸, 루시엘을 향했다.

“네 동료들인가?”

황제가 김검천에게 보았다.

“그것도 아니면 대회를 우승한 네 무력을 믿느냐?”

황제의 눈길이 붉은 갑옷 기사에게 머물렀다.

“무술 대회에서 보인 실력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모자라지. 안 그런가?”

“사천왕급의 실력으로는 어렵지요. 그것도 대단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김검천은 그 말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들이 자신있게 모습을 드러낸 사실을.

펠우테가 도주하는 바람에 김검천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 쿵!

그때 샤칸이 자신만한 금속 해머를 바닥에 내려 찍었다.

“너 인간의 두목 놈아! 무슨 말이 많아? 덤빌 거면 빨리 덤비기나 해!”

- 우지직.

황제가 움켜쥔 팔걸이가 비명을 질렀다.

도구 같은 이종족 따위가 황제인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샤칸이 지금 무기를 들고 있든 말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죽이면 그만 아닌가.

“뭐하고 있는가? 빨리 저 냄새나는 것들을 치워라.”

“예. 폐하.”

붉은 갑옷 기사가 황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면서 가볍게 팔을 저어 보였다.

- 부우웅.

순식간에 붉은 기운의 덩어리가 검의 형태를 이룬채 샤칸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힘은 적어도 오러참 못지 않았다.

샤칸이 급히 소리쳤다.

“불과 금속으로 담금질한 존재여. 오라!”

금속 해머가 생명을 얻은 듯 꿈틀거리더니 고릴라의 모습을 한 금속의 정령이 되었다.

금속의 정령은 샤칸의 앞을 가로막았다.

- 서걱.

붉은 검의 형태를 막는 것과 동시에 금속의 정령은 두 동강이 나버렸다.

붉은 검의 기운은 그러고도 힘이 남아 그대로 샤칸을 향했다.

“마나 애로우!”

푸르게 빛나는 화살이 붉은 검의 기운과 부딪힌다 싶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화살을 쏜 루시엘이 가슴을 부여잡고 샤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깡!

붉은 검의 기운은 결국 쿠퍼가 휘두른 금속 해머에 막혀 사라졌다.

쿠퍼가 자신의 금속 해머를 살피더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금속 해머는 3대 금속이 섞여 있는 합금이라 평범한 금속보다 단단했다.

그런 금속 해머의 두터운 머리 부분이 절반 가량 잘려나가 있었다.

샤칸과 루시엘의 공격이 없었다면 이것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쿠퍼가 신음을 흘렸다.

“금속 정령을 두 토막 내고 마나 애로우를 부수고 나서야 금속 해머에 막히다니?”

샤칸이 쿠퍼에게 급히 손을 내밀었다.

“그거라도 줘! 이 손이 놀고 있잖아!”

“하긴 이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쿠퍼가 들고 온 금속 해머는 2개였으니 1개를 넘겨줘도 남았다.

3명이 밀리는 모습을 보고도 붉은 갑옷 기사가 감탄한 듯 말했다.

“3명만으로 혈천검강血天劍剛을 막아? 마스터 나이트의 오러참보다는 강한 공격인데.”

붉은 갑옷 기사가 몸을 돌려 황제에게 말했다.

“황제 폐하. 저 3명은 제가 맡을 수 있겠습니까? 잠시나마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붉은 갑옷 기사가 쿠퍼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 3명, 밖에서 싸우지 않겠나?”

쿠퍼가 발끈했다.

“설마 우리들을 김검천님 곁에서 떨어트릴 생각이냐?”

루시엘이 대화에 끼어들며 쿠퍼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제안을 받아들이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공격만 봐도 저 기사는 마스터 나이트 이상의 강자입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저희들이 저자의 발을 묶어두기만 해도 김검천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아하! 그러면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다 들리는 소리였지만 붉은 갑옷 기사가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다. 밖으로 따라오도록.”

샤칸이 붉은 갑옷 기사에게 소리쳤다.

“잠깐!”

“이번에는 뭔가? 싸우는 게 무서워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 말고 저들은 보내 주라고 하고 싶었거든.”

샤칸이 가리킨 방향에는 시종들이 떨고 있었다.

붉은 갑옷 기사가 피식 웃었다.

“내키는 대로 해라. 저들 같은 건 죽든 살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연회장에 시종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시종들은 붉은 갑옷 기사의 말을 듣고도 망설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억눌려 왔으니 누구의 명령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김검천이 그런 그들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오늘이 지나면 당신들은 자유가 될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살아서 그걸 누리세요.”

그 말을 들은 시종 한 명이 결심을 굳혔는지 주춤거리면서도 연회장 밖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다른 시종이 발을 옮겼다.

그렇게 나가던 마지막 시종이 김검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붉은 갑옷 기사가 자신의 손에 들린 상급 마석을 한쪽에다 집어 던졌다.

- 위이잉.

이제 상급 마석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상급 마석이 푸른 빛을 잃어가는 대신 어디선가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손에 뭘 들고 다니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란 말이지. 우리도 가볼까?”

- 쿵.

문이 닫히자 이제 연회장에는 김검천과 황제, 그리고 검은 갑옷 기사만이 남아있었다.

황제가 김검천을 보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이제야 짐과 단 둘이 남게 되었군.”

“네 옆에 다른 자도 있는데?”

“이것도 짐에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자기 몸이나 신경쓰는 게 좋을거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과연 그럴지 보도록 하지. 김검천. 이리 와서 짐의 발 밑에 고개를 조아리거라.”

- 우웅.

황제의 목소리에는 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마치 황제가 한 말은 절대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것처럼.

김검천이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제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김검천은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바로 황제를 향해 어깨를 내밀며 달려들었다.

파워드슈츠를 입은 김검천의 돌진이라면 달리는 트럭 못지않은 충격일 것이다.

적어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가 견딜 만한 건 아니었다.

- 쾅!

검은 갑옷 기사가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황제 대신 검은 갑옷 기사가 구겨진 휴지처럼 허공을 날아 바닥에 쳐박혔다.

마갑 가슴 부근이 움푹 들어간 채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니 최소 중상이었다.

그 반동을 이용해 김검천은 뒤로 물러섰다.

자세를 다시 잡은 김검천이 어깨를 으슥했다.

“아깝군. 잘하면 한 번에 보낼 수 있었는데.”

황제는 의혹에 가득 찬 얼굴로 김검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냐? 김검천, 너에게는 왜 짐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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