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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75화 (175/250)

175화

김검천은 자신의 귀를 툭툭 건드렸다.

미리 발라두었던 액체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내 고막은 소중하니까. 네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미리 손을 봤지.”

사람 목소리가 내는 주파수 대역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정해져 있었다.

주파수 범위에 따라 사람 목소리가 들릴 수도 안 들리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소리는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파동.

김검천이 바른 액체는 그걸 흡수할 수도, 방법에 따라 차단이나 상쇄간섭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김검천은 미리내가 대신 소리를 듣고 따로 알려주는 방법을 택했다.

귀에 바른 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것.

굳이 황제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황제가 아무리 떠들어 보았자 김검천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황제가 목소리를 깔았다.

“짐의 능력이 목소리와 관련 있다는 걸 어찌 알았느냐?”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내가 하얀 마법 가루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몰랐겠지?”

“허어, 그런 것마저 알고 있었던 건가?”

“마법사들을 잘 단속했어야지. 제국 내 사람들을 자기 실험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더군.”

“지식 탐구에 정신이 팔린 놈들이 결국 사고를 쳤구나. 마법사들이란!”

김검천에게는 황제나 나쁜 마법사나 별 차이 없어 보였지만.

김검천이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대회장의 일로 확신했지. 그렇게 대놓고 사람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널 만나러 왔겠나?”

최면이나 강압적인 명령에 더 잘 반응하게 해주는 마법 가루였다.

그걸 먹은 사람들은 황제의 능력에 더욱 반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무료 급식에 마법 가루를 섞어 무작위의 제국인들에게 배포했다.

물론 황제의 능력이라면 기사도 아닌 일반인을 세뇌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건 수십 명 정도의 인원일 때 이야기였다.

수백 명을 넘는 인원을 한 번에 조종하는 건 황제에게도 힘든 일.

무엇보다 육체가 노화되어 움직이는 것도 힘든 상태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마법 가루를 쓰게 된 것이다.

특히 마법 가루를 오래 복용한 후 조종당한 인간은 그 자체가 마법 가루 덩어리였다.

전염병 환자가 병에 안 걸린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역할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김검천의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황제는 평온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에게는 다른 수단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겠군. 일어서라.”

서서히 붉은 기류에 휩싸여 가는 연회장 안에서 검은 갑옷 기사가 벌떡 일어났다.

가슴 부위가 움푹 들어간 큰 상처에도 상관하지 않고서.

검은 갑옷 기사는 황제에게 조종당하는 인형 같은 존재인 것이다.

황제가 검은 갑옷 기사를 보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소개가 늦었군. 이 자는 짐의 호위 기사 중 한 명, 흑색의 칭호를 받은 사천왕이라네.”

“저자가 사천왕이였나? 확실히 보통은 아니었지. 이제 한 명만 더 보면 다 보는 걸 텐데.”

황제가 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후후후, 그도 이미 자네가 보고 있다네.”

“여기에는 너와 검은 기사밖에 없을 텐데.”

김검천은 말을 하다 멈추었다.

황제가 혈석을 쓰고 있다는 걸 기억해 낸 것이다.

혈석의 소재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쓰는 것도.

황제가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사천왕이 대회장에 안 나타난 게 아니라 네가 먹어치워서 못 나타난 거였어. 지독하군.”

“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300년 가까운 세월을 이 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을 것 같은가.”

김검천은 새로운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조용히 반중력 장치를 작동시켰다.

조금씩 바닥에서 떠오르던 김검천은 과거 지구에서 누군가 한 말이 기억났다.

“너도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하는 부류인가 보군.”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짐은 그런 소리는 하지 않는다.”

“어째서?”

“제국에 속한 모든 건 짐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그런 말을 하겠는가?”

“…방금 한 말 취소하지. 생각보다도 더 위험한 녀석이었어.”

황제가 눈짓을 주자 전직 사천왕, 검은 갑옷 기사가 움직였다.

가슴의 뼈가 부러져 몸이 경련하는 와중에 절도있게 움직이는 모습은 실로 인형 같았다.

“고통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육체를 가지고 쉴 새 없이 오러를 몰아치는 마스터 나이트를 상대해 보았나?”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데.”

황제가 검은 갑옷 기사에게 지시했다.

“굳이 사양할 필요 없다네. 가라!”

- 위이잉.

검은 갑옷 기사가 검을 뽑아 들어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몸 주위로 나지막한 소리가 나자 김검천이 자세를 낮추었다.

“이건 속이 안 좋아져서 별로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관급 파워드슈츠는 에너지 총량뿐만이 아니라 특히 비행 능력이 강화된 상태.

단거리에서도 순간적이나마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면과 마찰을 줄이기 위해 반중력 장치에 사용했다.

비행 시 속도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전면에 푸른 실드가 유선형으로 생성되었다.

이어 파워드슈츠의 팔과 다리 부분에서 노즐이 튀어나왔다.

뿜어지는 초압축 공기로 인한 점화로 속도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다.

마침내 가슴의 에너지 반응로가 빛을 발하는 순간.

“아음속 기동. 윙실드.”

[기동 가속.]

황제가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김검천은 어느새 검은 갑옷 기사 앞에 도달해있었다.

그들은 눈으로 김검천을 보았지만 정작 몸은 반응하지 못했다.

- 퍼억!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검은 갑옷 기사가 있던 곳에 김검천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 갑옷 기사는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든 김검천에게 튕겨져 날아간 것이다.

- 푸식. 치익.

김검천의 파워드슈츠의 관절 부위가 열리더니 뜨거운 하얀 증기를 뿜어냈다.

순간적으로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내서 만들어진 열기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 철컹.

파워드슈츠의 장갑이 다시 결합 되며 은색의 액체 금속이 틈새를 메꾸었다.

김검천이 가슴을 툭툭 치며 얼굴을 찡그리다 다시 폈다.

나노 머신이 중력으로 고생한 몸 상태를 다시 잡아 준 것이다.

아음속이 음속을 돌파했을 때보다 더 몸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것이다.

“멀미로 고생하는 샤칸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걸.”

공격을 받은 건 검은 갑옷 기사였는데 황제가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만졌다.

뺨에서 흘러내린 새빨간 피가 턱을 타고 떨어져 의복을 더럽히고 있었다.

황제의 눈길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 갑옷 기사가 벽에 처박힌 채로 있었다.

김검천은 그를 공격했지만 음속에 가까운 공격의 여파가 황제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일어나라.”

- 버둥버둥.

황제의 명령을 들은 검은 갑옷 기사가 필사적으로 벽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팔다리가 제멋대로 놀고 있는 걸 보니 뼈라도 부러진 모양이었다.

김검천이 황제를 보며 물었다.

“이제 너만 남았군. 그 몸과 네 능력으로는 나를 상대하기 힘들텐데.”

황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번 주위의 붉은 안개를 들이마시면서.

“어리석은 자여. 지금 연회장에 있는 이 붉은 연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혈석의 효과를 내기 위해 만든 것 같은데.”

“제법이구나. 이건 짐이 워스덤과 다른 제국 마법사들에게 명령해 얻어낸 혈석 제조법을 이용한 결과물이지. 블러드 타워에서 마법으로 보내오는 것이고.”

“그 블러드 타워가 어쨌다는 것이지?”

“잠시 후면 짐의 명령에 따르는 수도의 시민들은 모두 블러드 타워로 향할 것이다.”

“…그들 모두를 네 영원을 위해 재료로 삼으려는 건가?”

“영생만이 아니라 젊음까지 포함해서다. 짐을 위한 희생이라면 그들에게도 영광이겠지.”

김검천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영광이면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것도 포상일터였다.

“미쳤군.”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일 뿐이야. 거기에 더해 김검천, 혈석이 된 너를 복용하면 짐은 마침내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이다!”

김검천에게는 황제의 계획이 모래 위에 세워진 성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네 계획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지 않나?”

“짐의 계획은 그 자체가 완벽하다.”

“블러드 타워가 없어지면 소용없어지는 계획이겠지.”

“그래서 누구도 부수지 못하게 만든 것이야. 블러드 타워의 방어력은 제국 제일!”

김검천은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블러드 타워를 향할 것인가.

아니면 황제를 처리해야 하느냐.

만약 황제를 놓치면 앞으로 김검천은 제국군 전체와 싸워야 할 판국이었다.

지금 블러드 타워를 놔두면 최소한 제국 수도에 사는 수십만 명이 죽을 것 같았고.

그때 미리내가 김검천의 머릿속으로 속삭였다.

[김검천 함장님. 이럴 때를 대비해 함선 미르의 무장을 준비해두긴 했습니다.]

“미리내? 그게 무슨 말이야? 준비하다니 왜?”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김검천 함장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나중에 혼낼 거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할 따름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사일 사정거리는?”

[그동안 함선을 이동시켰지만 블러드 타워 근처가 사정거리의 한계입니다.]

“그 정도라도 황제의 꿈을 박살 내는 데는 충분해.”

김검천은 마음을 정했다.

자신은 황제를 이 자리에서 처리하기로.

블러드 타워는 핵융합 미사일이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핵융합 미사일 안전장치 해제. 발사를 승낙한다.”

[김검천 함장님 승인. 안전장치 해제. 발사 취소까지 앞으로 60, 59, 58…]

“네 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황제의 의문스러운 소리를 뒤로하며 김검천이 딱 잘라 말했다.

“네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숴줄 소리지.”

***

- 우우웅.

미리내의 신호를 받은 함선 미르는 기지개를 켰다.

미리내가 보낸 중계형 드론이 제국으로부터 신호를 여기까지 연결한 것이다.

거대한 강철의 별이 움직이자 숨죽이고 있던 괴물들이 겁에 질려 도망갔다.

함선 미르에 설치된 몇 개의 지시등이 눈을 감았다 뜨는 것처럼 푸른 빛을 깜빡였다.

- 위잉. 철컥. 철컥.

이어 함선 미르의 상단 장갑이 개방되며 미사일 사출구가 드러났다.

혹시 몰라 엔진실에서 꺼내 미리 장착하게 했던 핵융합 미사일 2기의 모습도.

준비를 마친 함선 미르의 보조 인공지능에 미리내의 지시가 마지막으로 입력되었다.

[…2, 1, 0. 발사]

핵융합 미사일의 로켓 엔진에 불이 점화되었다.

로켓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점점 붉어지며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마침내 중력을 거스르며 핵융합 미사일이 함선 미르의 사출구를 벗어났다.

서로 약간의 시간을 두고 핵융합 미사일들이 발사되었다.

- 위이잉. 쾅! 쾅!

핵융합 미사일 도달까지는 이제 수십 분.

황제는 새로운 시대의 이유 있는 폭력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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