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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77화 (177/250)

177화

승기를 잡아 여유가 넘치는 붉은 갑옷 기사가 느긋하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들 뭔가 잊고 있지 않나?”

잠시 시간이 생긴 틈을 타 호흡을 고르던 쿠퍼가 물었다.

“뭘 말이지?”

“살아 남아야 그 친구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여태까지는 같이 놀아준 거였지.”

“놀이는 끝이라는 건가?”

“너희들도 끝이고.”

붉은 갑옷 기사의 검과 손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상급 기사를 넘어 선 마스터 나이트급 3명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힘은 발휘해야 했다.

공격에 대비한 쿠퍼가 흠칫했다.

생각보다도 더한 모습을 보았으니까.

“오러가 2개씩이나? 그것도 검뿐만 아니라 맨 손으로도 오러를 만들어 내다니!”

맨손보다는 무기같이 모양이 고정되어 있는 물체에 오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쉬웠다.

자신의 육체에 오러를 생성하는 건 오러를 변형하는 것 못지 않은 수준.

더 놀라운 건 다른 오러를 구현하는 와중에 만들어 냈다는 것이었다.

쿠퍼의 경악한 표정에 붉은 갑옷 기사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이건 사실 강기剛氣라는 거라네. 자네들은 오러라고 말하지만은.”

“강기라면 다른 대륙 무인들이 쓰는 무공이라는 힘의 정점이라고 하던데. 너는 도대체?”

“거기까지 알 필요는 있겠나? 아, 이건 여태까지 즐겁게 해준 보상이라고 생각하게나.”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라면?”

“자네들 정도의 강자라면 더 높은 경지의 힘으로 죽여주는 게 배려 아니겠나.”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대답에 이제는 쿠퍼 외에도 샤칸마저도 투덜거렸다.

“그놈의 배려 두 번만 하면 팔다리도 뜯겨 죽겠네. 그냥 살려주는 게 더 낫거든?”

“개인적으로는 그러고 싶지만 황제 폐하의 명이 워낙 지엄해서 말이지.”

“거 봐! 어차피 죽일 생각으로 가득하잖아!”

붉은 갑옷 기사가 막 손을 쓰려는데 친위 기사 한 명이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붉은 갑옷 기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눈이라는 게 달려 있다면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안 보일 리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도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뭐가 그리 급한 것이길래 찾아온 것이냐?”

“지금 황성을 향해 거대한 강철 골렘이 다가오는 게 목격되었습니다! 부디 명령을!”

“수도에 강철 골렘이라? 놀랍긴 하지만 친위 기사단장이 알아서 처리해도 될텐데?”

친위 기사단장도 명색이 마스터 나이트다.

오러의 힘이면 강철 골렘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전투 중인 자신에게 찾아와 명령을 부탁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 같지는 않았다.

물론 일방적으로 자신이 압도하던 전투라서 개입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긴 했지만.

친위 기사가 질문에 답했다.

“그게…친위 기사단장님은 연회장을 나가신 이후로 안 보이십니다. 거기다 나타난 건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강철 골렘입니다. 크기가 거의 외성 높이에 근접할 정도입니다.”

붉은 갑옷 기사는 그제야 친위 기사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반적인 골렘이라면 방금 말한 절반 크기에도 못 미치는 게 대부분이다.

그 정도 크기라면 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용 골렘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건 상급 마법사들이 달라붙는 건 기본이고 상급 마석마저 투입되어야 했다.

요즘같이 마석이 말라붙은 시대에 그런 강철 골렘이, 그것도 제국 수도에 나타나다니.

어느 쪽이든지 평범하게 생각할 게 없었고 대처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친위 기사가 자신을 찾아온 것일 테고.

“…이거 마지막에 와서 별 괴상한 일을 다 겪는군.”

붉은 갑옷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마나와 강기의 힘이 통로의 벽을 부수는 바람에 하늘과 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3개의 달 옆으로 유성이 지나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보이는 듯했다.

그 유성을 따라가다 보니 황성을 향해 다가오는 배틀 머신도 보였다.

하늘을 보던 붉은 갑옷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허어, 이거 아쉽군. 흥이 깨졌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붉은 갑옷 기사가 재촉하는 친위 기사를 노려보았다.

친위 기사가 뭔가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듯이 움찔했다.

“친위 기사단장은 책임지기 싫어 모습을 감춘 건가. 너희들이 본좌를 찾아오게끔.”

“정말 저희들은 모르는 일입니다.”

미묘하게 말투가 바뀐 붉은 갑옷 기사는 명령을 내렸다.

“본좌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황성 내 모든 전투 가능한 인원은 황성 밖에서 공격해라.”

친위 기사는 밝은 표정으로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친위 기사에게는 명령을 내려줄 사람이 중요했지 무슨 명령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붉은 갑옷 기사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나중에 황제가 문제 삼아도 자기 일은 아닌 것이다.

달려가는 친위 기사를 보며 붉은 갑옷 기사가 중얼거렸다.

“본좌는 여기에 없을 테니 그때 책임질 것도 없겠지만. 불만 있으면 본좌를 찾아오던가.”

- 스르렁.

붉은 갑옷 기사가 다시 쿠퍼와 샤칸, 루시엘을 바라보다 검을 집어넣었다.

검과 손에 생긴 강기도 사라진 지 오래전이었다.

샤칸이 자신이 생긴 얼굴로 물었다.

“배틀 머신을 보니 겁이 난 건가? 전투 중에 검을 집어넣다니. 싸움을 그만둘 건가?”

“저 강철 골렘이 배틀 머신이라는 건가. 이제보니 너희들과 관련 있는 것이었군.”

붉은 갑옷 기사는 이제 남의 일같이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쿠퍼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조금만 더 몰아치면 우리는 모두 죽일 수 있을 텐데. 무슨 속셈으로 손을 멈춘거냐?”

붉은 갑옷 기사가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

“후, 너희들을 상대로 본좌가 계책 따위를 세운다고?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군.”

쿠퍼는 맞는 말이기에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 자비라도 베풀 생각인가? 아까 시종들을 그냥 보내줬던 것처럼?”

친위 기사를 보낸 후 같이 나온 시종들은 조건 없이 그냥 보내 준 붉은 갑옷 기사였다.

하는 김에 황성 안에 있는 비전투원들은 모두 내보내도록 해주었고.

의외로 인간미가 있어 보였다.

적어도 황제보다는.

“아니. 이제 너희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것뿐이야. 시간이 지났으니까.”

“시간이라니?”

“황제에게 묶여 있기로 한 계약 기간이 어제까지였다. 그리고 그게 방금 끝났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을 놔주겠다니. 너는 여태까지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 게 아니었나?”

붉은 갑옷 기사가 미친듯이 웃었다.

“후하하! 황제 정도로는 부족하지! 누가 감히 본좌의 충성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더냐?”

- 챙그랑!

그나마 아직까지 성벽에 붙어 있던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나갔다.

천장과 벽이 흔들리며 돌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쿠퍼와 샤칸, 루시엘이 몸 속의 피가 미친듯이 들끊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물러섰다.

루시엘이 중얼거렸다.

“단지 크게 웃는 것만으로 이런 충격을 주다니… 저자는 괴물입니까?”

붉은 갑옷 기사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더니 기분이 상쾌했다.

누가 뭐라고 자신을 불러도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괴물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군. 고향에서는 피의 마귀라고 불렸지만.”

- 쿠왕!

그때 폭음과 함께 연회장 벽이 무너졌다.

벽 너머로 김검천과 황제, 그리고 검은 갑옷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갑옷 기사는 황제의 조종 능력에도 힘이 다한 듯 지면에서 버둥거릴 뿐이었지만.

팔다리가 부러진 상태로는 움직임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연회장에서 새어 나온 붉은 연기는 통로 주변을 다시 메우기 시작했다.

김검천은 주변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쿠퍼, 샤칸, 루시엘.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 쪽에게도 감사해야겠군.”

붉은 갑옷 기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이라니 너무하군. 엄연히 이름이 있는데 말이야.”

“그러면 먼저 이름을 밝혀 주실까?”

“아아, 정말 오랜만에 이름을 밝히게 되었군. 본좌는 혈마血魔라고 한다.”

“혈마?”

“모르는 건가. 꽤 유명할 텐데. 하긴 본좌는 여기 사람이 아니니 모를 수도 있겠군.”

“너와 놀아줄 시간은 없으니 빨리 덤비기나 하지?”

붉은 갑옷 기사, 이제는 이름을 되찾은 혈마가 다시 벽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이제 없다. 아까 저들에게도 말했지만 이미 때가 지났으니까.”

혈마의 말에 마음이 급해진 황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밤은 예상 외의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이 와중에 혈마마저 자신을 버린다니.

“혈마, 이런 상황에서 그냥 떠나려는 것이냐?”

“본좌에게 필요한 건 이제 다 얻었으니 말이오.”

“네 이름을 되찾은 것으로 만족하는가? 넌 이제야 네가 지녔던 걸 되찾았을 뿐이잖으냐!”

혈마가 황제를 보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여태까지 황제를 대한 태도는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황제여. 본좌는 지금까지 받은 것 이상으로 당신을 위해주었소.”

“그러니 좀 더 짐의 곁에서 힘을 보태다오. 그러면 너는 짐 다음의 권력자가 될 것이다.”

“본좌는 권력같은 건 흥미없소. 무력이라면 또 모를까.”

“짐의 힘이라면 네 무력도 강화시켜 줄 수 있다!”

혈마가 검은 갑옷 기사를 바라보았다.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못 할 정도로 다쳐 벌레처럼 지면에서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저런 꼴로 말이요? 한 때는 사천왕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바닥을 기고 있는 자처럼.”

“혈마, 넌 그와 다르다!”

“당연히 다르고 말고. 본좌는 당신의 힘따위를 빌어 강해질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으니까.”

무너진 벽으로 몸을 내밀던 혈마가 황제를 돌아 보았다.

“황제여.”

“오오, 생각이 달라진 건가?”

“그게 아니라 그동안의 관상을 보니 당신의 최후는 비참할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요.”

“혈마! 어찌 짐에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 탁.

황제의 분노와 원망에 찬 외침을 뒤로 하며 혈마가 벽을 박찼다.

그 순간 벽에서 일렁거리던 무수한 그림자가 뛰쳐나와 혈마와 함께 황성을 벗어났다.

혈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김검천! 너와는 다시 못 만날 것 같다는 게 아쉬울 뿐이로구나. 작별이다! 아하하하하!”

혈마는 단 한 걸음으로 100여 미터의 거리를 도약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수도 밖을 향해 성벽을 넘어 사라졌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힘을 빌렸다지만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능력이었다.

혈마가 사라지자 김검천은 황제를 응시했다.

“마침내 너 혼자 남았군. 모두에게 버려진 느낌이 어떤가?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몸을 부들거리던 황제가 소리 높여 외쳤다.

자신의 능력을 가능한 발휘하면서.

“아무도 없느냐! 목소리가 들린다면 누구든 좋으니 당장 짐의 곁으로 오너라!”

- 휘이잉.

부서진 벽 바깥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만이 황제의 외침에 응답할 뿐이었다.

항상 황제의 옆에 있다는 그림자 부대도 방금 전 혈마를 따라 사라졌다.

여태까지 그림자 부대를 육성해온 건 혈마.

그림자 부대는 선택의 순간 황제와 혈마 중 혈마를 따라간 것이었다.

친위 기사들을 방금 혈마가 모두 성 밖으로 내보냈고.

황성 안에는 이제 황제의 편이라고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황제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말이다.

홀로 남은 황제가 손가락을 들어 김검천을 가리켰다.

“이렇게 된 이상 네 동료들을 짐의 수하로 조종해주마!”

“저런, 방금 전에 능력을 사용한 것 같던데. 하지만 저들 중 누가 네 말을 듣고 움직였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샤칸이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제가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그런 웃는 얼굴의 황제를 향해 샤칸이 침을 뱉은 후 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퉤! 기분 나쁘게 오라고 하기는. 가만히 있는 드워프라서 우습게 보이냐?”

샤칸이 뱉은 침에 맞지는 않았지만 황제는 그것만 해도 충분히 불쾌했다.

황제가 된 이후로 이런 모욕은 처음 겪는 것이다.

황제가 얼굴을 찡그렸다.

“김검천, 너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도 대비를 했던 것이냐?”

“당연하지. 네 능력에 인질이라도 잡히면 귀찮아지는 걸 알면서도 당하라고?”

“어째서냐? 짐이야말로 제대로 된 인간. 너희들은 짐이 말하는 대로 따르면 되는데!”

쿠퍼가 하도 어이가 없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제대로 된 인간이라니. 여태까지 죽은 사람들이 땅을 치고 울겠군요.”

“짐이 말한 인간이라는 의미는 그게 아니다. 이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들이란.”

쿠퍼가 발끈했다.

“피와 눈물도 없는 당신 같은 자 때문에 그녀가 죽었는데도 그런 소리를!”

“짐이 너와 가까운 누군가를 죽인 것이냐? 이런, 너무 많이 죽여서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구나.”

“뚫린 게 입이라고 잘도 그런 말을…!”

황제가 분노하는 쿠퍼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를 한다고 쿠퍼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든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널 언제 본 것 같기도 하구나. 뭐, 벌레가 다 비슷하게 생겼기는 하다만.”

쿠퍼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뭔가 숨기려는 모습이었기에 김검천은 쿠퍼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그 벌레 같은 자들도 너보다는 낫지 않나? 그래서 이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고 싶은데.”

김검천은 황제가 던진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 것이다.

이세계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은 김검천도 생각하던 바이기도 했고.

황제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건 곧 봉인이 풀릴 짐의 분노를 감당한 후에나 다시 물어보거라. 김검천.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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