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87화 (187/250)

187화

마법사들의 잘난 척하는 모습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코가 뾰족한 마법사 한 명이 대표로 고개만 까닥거렸다.

“안녕하신가요. 황태자 전하.”

아랫사람을 향하는 듯한 간단한 목례.

황태자를 만나러 온 주제에 오히려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듯한 행동과 말투.

예전 황제였다면 친위 기사들이 먼저 나서서 말없이 칼로 베어버렸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황태자의 앞.

친위 기사들은 말없이 황태자의 명령을 기다렸다.

언제든 황태자의 명령에 따를 준비를 하면서.

황태자의 한마디면 마법사들은 바로 죽어 나갈 것이었다.

황태자의 고개가 김검천을 향해 슬쩍 돌아갔다.

김검천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을 정한 황태자는 손을 내저었다.

저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기 건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늦지 않았다.

“놔두거라. 저렇게 자신 있게 나섰으니 무슨 말을 할지 오히려 궁금해지는구나.”

뭔가 믿는 게 없다면 제국의 절대 권력자가 될 자신 앞에 저런 식으로 나올 리 없었다.

보통 사람은 스스로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이다.

뾰족코의 마법사가 으스댔다.

“후후후, 과연 제국의 황태자 전하입니다. 상황 판단이 빠르시군요.”

황태자가 듣고 싶은 건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었지 헛소리가 아니었다.

아니꼬운 마음을 표출이라도 하듯 황태자는 고개를 모로 꼬며 입을 열었다.

“용건이나 말해 보아라.”

“흐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야기해도 되겠소?”

뾰족코의 마법사는 마치 자신이 황태자의 체면이라도 생각해주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황태자는 이왕 참았으니 조금 더 참아주기로 했다.

황태자가 손짓을 했다.

“모두 물러가라.”

친위 기사들이 황태자의 말에 따라 알현의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황태자 옆에 김검천이 있었으니 그들이 걱정할 건 없는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뾰족코의 마법사가 김검천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자는 왜 남았소?”

“그는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용건이나 말하라.”

뾰족코 마법사가 황태자의 대답이 내키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야 상관없지만 황태자 전하의 체면이… 뭐, 좋습니다. 용건은 간단합니다.”

뾰족코 마법사가 가슴을 펴고 턱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마도왕국에게 순순히 항복하시라는 말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 말을 외울 정도로 똑똑히 들은 황태자가 활짝 웃었다.

“하하하, 그렇군. 우리 제국이 너희 마도왕국에 항복해야 하는구나.”

“하하하, 그렇지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으셨군요.”

서로 웃는 분위기이니 분명 따스한 느낌이 들어야 했다.

그런데 웃는 것과는 반대로 점차 분위기가 싸늘해져 갔다.

마음껏 황태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이 미쳤구나!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마도왕국에 제국을 갖다 바치라고?”

- 쿠당탕.

웃음은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도 나오는 법이었다.

황태자의 고함에 깜짝 놀란 뾰족코 마법사가 뒤로 자빠졌다.

방문이 활짝 열리며 친위 기사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태자 전하. 무슨 일이신지요?”

친위 기사들이 마법사들을 노려보았다.

눈쌀을 찌푸리던 황태자가 가볍게 숨을 들어마셨다.

“후우, 우선 물러나 있거라. 나중에 부르도록 할 테니.”

방문이 다시 닫히자 동료 마법사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뾰족코 마법사가 이를 갈았다.

“사신으로 찾아온 사람을, 그것도 마법사를 이렇게 대하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 같으냐?”

“아니면 어쩔 건가?”

황태자가 노려보자 뾰족코 마법사가 움찔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입은 살아 할 말은 했다.

“황태자 전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수도에 다시 메테오 스웜이 떨어질 것입니다.”

아까보다는 기세가 한풀 꺾였는지 그의 말투가 조금 바뀌었다.

황태자가 김검천을 향해 도움이라도 요청하듯이 돌아보았다.

김검천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군.”

뾰족코 마법사가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황태자 전하. 지금 이 자가 우리 사이의 대화를 방해하고 있습니다만?”

황태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짜증난다는 듯한 몸짓을 할뿐.

김검천이 대신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굳이 격이 낮은 너희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실 필요가 있을까?”

“뭣이?”

“지금부터는 내가 너희들과 어울려 주겠다는 말이다.”

“황태자 전하!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우리는 마도왕국에서 나온 사신입니다!”

황태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여기 있는 김검천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그의 뜻이 곧 나의 뜻이라는 거다.”

김검천이 황태자에게 말했다.

“이러면서 슬쩍 나에게 네 일을 떠맡기려는 건 아니겠지?”

“흠흠, 그런다기보다 자네가 이번 일을 도와주었으면 할 뿐이라고. 부탁하지.”

“부탁이라는 데 매정하게 거절할 수는 없겠군.”

마법사들이 놀란 얼굴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곧 황제가 될 황태자가 김검천 앞에서는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로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인 것이다.

김검천이 마법사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희들.”

“예!”

“네!”

“옙!”

동시에 대답을 한 마법사들이 얼굴을 붉혔다.

김검천의 말 한마디에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동시에 대답을 하다니.

상대가 마치 자신들의 윗사람이라도 된 듯이 굴지 않았는가.

패배감을 느낀 뾰족코 마법사가 빼앗긴 기선을 되찾고 싶어 먼저 나섰다.

“황태자 전하의 전권 대리인이라니 우리와 대화할 자격은 충분하군요.”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나와 대화할 자격이 없지만 참아주도록 하지.”

“이익. 무례하오!”

“너희들이 황태자 전하를 대한 태도는? 너희들이 과연 이 자리에서 협상을 할 자격이 있는가 싶군.”

마법사들은 다시 얼굴을 붉혔다.

마스터 매지션도 아니고 상급 마법사에 불과한 자신들이었다.

평상시라면 황태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새로 각오를 굳혔다.

그들은 고대의 대마법, 메테오 스웜을 복원한 마법사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탑주님은 대마법 때문에 바쁘십니다. 협상이 아니라 통보만 하려는데 그분이 직접 오실 건 없지요.”

김검천이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말로부터 벌써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마법을 발동한 자는 마스터 매지션들 중에서도 소수라는 탑주에 오른 마법사였다.

여기에 온 자들은 그저 용건을 전달하러 온 건 뿐.

이 마법사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탑주의 메시지로 보였다.

또한 탑주라는 자는 확실히 평생을 지식 탐구에 바친 마법사처럼 굴었다.

분노한 사람을 달래야 할 이런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들을 보낼 정도였으니.

마법사라는 이유로 험한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이 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정보를 얻어내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를 것이다.

김검천은 저들을 떠보기로 했다.

“하긴 마탑의 탑주 정도 되어야 잊힌 고대의 대마법, 메테오 스웜을 발동할 수 있겠지.”

“생각보다 말이 통하시는 분 같군요. 말씀대로 고르바 탑주님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지요.”

김검천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지만 황태자의 얼굴을 보니 제법 유명한 모양이었다.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하신가 보군. 하지만 그분이라도 혼자서는 무리인 일이었을 텐데.”

“그래서 다른 마스터 매지션들의 힘마저 빌려야 했지요. 결국 대마법을 발동시킨 건 탑주님이었지만요.”

김검천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마법사라는 부류를 파악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법사가 될 정도니 머리는 좋은 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을 해결하려면 머리가 뛰어난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자리에서 일만 해도 그렇다.

좋은 말로 해도 어려울 판국에 먼저 공격해 놓고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을 고집하는데 누가 들어준다는 말인가.

물론 마법사 자신들 나름대로 계산은 서 있을 것이다.

다시 메테오 스웜에 공격당하지 않으려면 순순히 항복해야 할테니까.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이들은 버리는 패라는 것.

여기서 죽여도 제국이나 마도왕국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자들.

잠시 김검천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뾰족코 마법사가 동료와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그들의 대화 중에서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그런 역사적인 자리에 왜 치료사가 있었는지. 우리 같은 마법사도 아니고.”

“그러게. 상급 마석 같은 걸 많이 가져와 도움을 주기는 했다지만.”

“황제를 배반하고 우리 쪽에 붙은 걸 높이 평가해서인가?”

그 바람에 김검천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치료사라는 존재는 자신이 아닌 치료사인 거 같았다.

“치료사라? 그가 왜 마법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지?”

“높으신 분들의 생각을 어찌 알리오? 그런 것보다 우리 제안은 어찌 생각합니까?”

“하나 묻고 싶군. 제국이 마도왕국 밑으로 들어간다는 걸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다시 고대의 대마법을 발동해 인간들을 쓸어버리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너희들은 그 일로 사람들이 얼마나 죽는지 신경 쓰지 않는가?”

뾰족코 마법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법사가 아닌 인간이 죽는 게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알게 뭡니까. 이 세상이 마법사와 마법사가 아닌 자들로 나누었잖습니까.”

“너희들에게 있어 평범한 사람들이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건가.”

“원래 불공평한 세상 아니요?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필요한 겁니다.”

- 퍽.

뾰족코 마법사가 코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부여잡은 손 사이로 코피가 흘러내렸다.

“아악! 뭐하는 짓이요? 아파, 아프다고!”

그에게 달려든 황태자가 피가 묻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김검천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니.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내가 때렸겠지. 그러면 코가 아니라 머리가 으깨졌을걸.”

다른 마법사 한 명이 소리쳤다.

“이런 죽일 놈들! 마법사를 이렇게 때려도 되는 거냐고!”

정말 대단한 자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다니.

김검천이 피식 웃었다.

“마법사가 주먹 한 방 맞은 건 큰일이고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이 죽는 건 슬픈 일이냐?”

“지금 마법사에게 대항하는 거냐? 우리는 대마법을 발동한 그분과 같은 마법사다!”

“오, 그 대단하신 마법사께서 지금 너희 곁에 있기라도 하는가?”

마법사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여전히 입만큼 살아 움직였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고대의 대마법이 다시 수도에 떨어질 거다. 이번보다 더욱 강력하게!”

“그래서?”

“그래서라니? 네 녀석은 메테오 스웜이 다시 떨어지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거냐?”

“하나 모르는 게 있나 보군. 그 메테오 스웜을 어떻게 막아냈는지 아나?”

“흥, 초월 존재가 강림해서 막았다는 소문 따위는 이미 들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겠지!”

김검천과 황태자가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

미리내가 모습을 드러냈던 일로 상대적으로 김검천의 활약이 묻힌 모양이었다.

겨우 코피를 지혈시킨 채 뾰족코 마법사가 소리쳤다.

“더군다나 블러드 타워가 날아갔지! 제국이라고 해도 마법 전력만큼은 우리가 위다!”

의외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황제가 제국 마법사들 중 실력자들은 거의 다 블러드 타워에 배치했던 것이다.

블러드 타워가 붕괴했을 때 그곳에 있던 제국 마법사들은 다 죽었고.

역시 아예 아무 생각 없이 제국을 방문한 건 아닌 듯했다.

대량 살상만큼은 마도왕국의 마법사들이 우위.

단순한 수적 우세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뾰족코 마법사가 마음껏 지껄였다.

김검천이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자 기세가 오른 듯했다.

“고대의 대마법을 막을 수 없는데 버티는 건 바보나 하는 짓! 마도왕국에 분산된 마탑을 부수지 않고서는 너희들이 대마법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읍?”

내키는 대로 말하던 뾰족코 마법사의 입을 당황한 동료 마법사들이 급히 틀어막았다.

대표로 나선 뾰족코 마법사보다는 그나마 저들이 나은 모양이었다.

김검천과 황태자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혹시 저놈 바보인가? 저렇게 다 털어놓다니.”

“잘못된 정보를 알려줘서 우리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게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어.”

“저 정보가 어떻든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지만.”

“그러게 말이야. 휴우…”

황태자는 한숨을 쉬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도 제국이 지금 취할 수 있는 방도가 그리 많지 않은 게 안타까웠다.

동료들을 뿌리친 뾰족코 마법사가 그런 황태자의 모습에 자신 있게 외쳤다.

“고민할 것 없다! 순순히 항복을 한다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거 아나? 세상을 살다 보면 인맥이라는 게 의외로 무섭다는 걸 알거든.”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문밖에서 친위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태자 전하. 이 자리를 위해 부르신 분이 도착했습니다.”

김검천과 황태자에게 마도 왕국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온 것이다.

얼마 전 직접 황태자의 저택으로 찾아온 사람과 동일인이기도 했다.

황태자가 목소리를 깔았다.

“들라 하라.”

문이 열리자 각오를 굳힌듯한 표정의 워스덤이 들어섰다.

김검천이 마법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인사들 하지. 제국 삼현자 중 한 명, 워스덤이다.”

마스터 매지션급 마법사인 워스덤은 얼마 전 밤중에 김검천과 황태자를 찾아왔었다.

그는 고대의 대마법과 마도왕국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찾아온 마법사들보다는 더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