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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92화 (192/250)

192화

다음날.

황태자는 퇴근에 성공했다.

마침내.

아침 해를 보며 출근하던 사람들의 미묘한 시선을 받으며.

전날보다도 더 눈 밑이 거멓게 죽은 황태자가 김검천에게 말했다.

“어제도 너만 아니었다면 별을 보기 전에는 퇴근할 수 있었을 텐데.”

“결과가 좋았으니 된 거 아니야? 팬더가 사람 말도 하네.”

“응? 팬더라는 게 뭐길래?”

“아, 내가 살던 곳에 있던 녀석인데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존재지.”

거짓말은 안 했다.

다만 눈가가 까맣게 닮은 부분만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

단번에 화를 가라앉힌 황태자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나이에 사랑스럽다는 말을 듣다니.”

쉬운 녀석이었다.

“아니, 날 보고 그런 얼굴 하지 말아 줄래? 덕분에 내일로 출발 일자가 늦춰졌거든.”

“그건 너 때문이잖는가!”

“나 덕분이라고 해야겠지? 덕분에 오늘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잖아.”

황태자의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추가된 마법사 인력으로 인해 앞으로 정시 퇴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김검천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싫었다.

“큿, 너와 대화하면 이 몸이 황태자라는 걸 잊어버리는군.”

“그거 좋은 일이네. 황태자라 해서 말도 편하게 못 하면 사는 게 피곤하다고.”

“하긴 격식 없는 대화도 필요한 법이지… 가끔이라면.”

“계속 해달라고 했으면 자네 취향을 의심했을 거라고.”

김검천과 황태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다 웃은 황태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김검천에게 말했다.

“아무튼 조심해. 제국을 떠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어차피 뭘 하든지 일단 돌아가 준비는 해야 하니까.”

황성에 억류된 마도 왕국의 마법사들과 워스덤이 제공한 정보의 결론이 났다.

일단 마도 왕국으로 가 고대의 대마법을 저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마도 왕국 근처의 엘프 부족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수한 마법 결계에 의해 마도 왕국 자체가 숨겨져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보다 정말 리에나 쿠퍼도 데려가는 건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야. 안전한 장소가 최고니까.”

황태자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 두 명이 차기 황제의 옆에 항상 머물러 있는다 해도?”

“황제가 될 너라면 다시 수도가 공격받는다고 해도 무사할 것 같지?”

“당연하지! 최고의 마법사와 기사들이 항상 옆에서 지켜줄 테니.”

“너는 그럴지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김검천은 대답을 늦추며 저택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황태자의 고개도 따라 돌아갔다.

창 너머로 붕괴한 건물 잔해가 보였다.

김검천도 막아내지 못한 운석에 의한 흔적이었다.

김검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저걸 전부는 막지 못했었지. 최악의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차기 황제인 이 몸이 명령해서 지키라고 하면 된다!”

“그들은 네 명령을 충실히 지키는 자들인가?”

“물론이다! 이 몸의 말 한마디면 죽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자들이야.”

“그렇군. 그러면 누구보다도 먼저 너를 위할 사람들이겠군.”

그 말에 황태자가 흠칫했다.

만약 황태자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온다면.

과연 호위 병력들은 명령에 따라 리에와 쿠퍼의 목숨을 지킬까.

아니면 리에와 쿠퍼를 버리고 황태자의 목숨을 살리려고 들까.

황태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답은 정해져 있었군.”

“칼에 눈이 없는 것처럼 마법에는 자비가 없지. 그러니 아이라고 피해가지 않을 테고.”

“과한 욕심을 부렸군.”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도를 날려 버릴 정도의 대마법만 아니었다면 그들을 네게 맡겼을 거야.”

“어째서?”

“리에는 널 잘 따르지. 넌 아이를 키울 완벽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고.”

황태자는 김검천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조금 기뻤다.

“그런 건가. 평화로울 때라면 옆에 두고 리에를 차기 황제로서 교육시키고 싶었는데.”

“시기가 나빴을 뿐이야. 일이 끝나면 고려해 보지.”

“그런데 정말 갈 건가? 생각 같으면 제국에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이미 이야기한 내용이잖아. 마법사들을 상대로 방어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게 아니라 모든 게 끝나면 제국에 남아 주겠나? 돈? 작위? 필요한 건 뭐든 주지.”

- 팅.

김검천이 손가락으로 튕겨 황태자로부터 받았던 징표를 날려 보냈다.

황태자가 두 손으로 받아낸 징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네 대답인가? 제국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

김검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외출했을 때 그걸로 다 사서 필요 없어 돌려주는 거야. 원거리 배송도 되더라.”

“그러면 대답을 명확히 해주었으면 해.”

김검천이 손가락으로 뺨을 살짝 긁었다.

“처음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대공의 작위를 가지고 있지. 세이야의 나라에서.”

황태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놀라운 일인걸.”

김검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과는 달리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알고 있기라도 한 건가.”

“너와 처음 만났을 때라면 그걸로도 놀랐겠지. 그런데 우리가 겪은 일이 보통 대단했나?”

“그것도 그렇군.”

“그러고 보니 세이야라는 소년도 보통은 아닌 것 같던데.”

“보는 눈이 있네. 세이야는 그 왕국의 왕세자야.”

그 대답을 들은 황태자는 어딘가 힘이 빠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김검천이 확답을 주지 않은 이유가 이미 다른 곳에 몸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왕국의 대공보다는 제국의 대공이 더 나을 텐데. 세이야의 왕국이 널 품을 정도였다니.”

“그럴 리가. 대공의 작위는 국왕의 부탁으로 넘겨받았을 뿐이야.”

“흐음, 그런 거였나. 그러면 네가 돌아가야 할 거처는 어디라는 말인가?”

“내가 소유한 함선.”

“이상하군. 그 왕국 근처에는 바다가 없을 텐데.”

“함선이 꼭 바다 위에 있으라는 법은 없거든.”

김검천이 말하는 걸 들으니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황태자가 아까보다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바다가 아닌 곳에 있는 함선이라니 한 번쯤 가보고 싶군.”

“언젠가 볼 기회가 있겠지. 그러면 이야기는 끝인가?”

“잠깐.”

“왜?”

“선금을 먼저 지급해두려고.”

황태자가 품속에서 마법 상자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서는 상급 마석 2개가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김검천이 감탄했다.

“상급 마석을 2개나 주다니. 황태자라고 해도 배포가 큰데.”

“주는 게 아니다. 대여해 주는 거야.”

“황태자치고는 인색하네.”

황태자가 마법 상자를 김검천에게 내밀었다.

“1000년 동안 무이자 대여라면 어떨까?”

김검천이 상급 마석이 든 마법 상자를 품속에 넣으며 대꾸했다.

“돌려주기도 전에 늙어 죽겠는데? 보통 인간의 수명은 100년도 안 된다고.”

“그러면 네 후손들이 대를 이어 쓰면 되겠군.”

“내 후손이라. 그런 건가.”

“그런 거다. 그 전에 네가 직접 그 상급 마석들을 반환하러 와주면 더 고맙겠지만.”

“일이 끝나면 이보다 더한 걸 받으러 올 테니 두려움에 떨고 있으라고.”

황태자가 씨익 웃었다.

“그러고 보니 김검천, 네 인기가 황태자인 이 몸보다도 좋더라?”

“너 설마…”

“제국 수도를 구원한 김검천이잖아. 모든 수도 시민들이 널 기다리고 있다고.”

황태자의 태도로 보아하니 수십만 명에 달하는 수도 시민을 모두 동원할 태세였다.

외출했을 때 경험한 바에 의하면 수도 시민들도 별 거부감 없이 따를 것 같았고

황태자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수도 곳곳에 배치된 수십만 명의 열광적인 환영 의식이 기대되지 않나?”

“아, 좀.”

“하하하!”

황태자는 마음껏 웃었다.

자신이 아는 한 김검천이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

떠나기 전 김검천은 자신이 가져온 물품 중 황태자에게 필요할 것 같은 걸 넘겼다.

음식이나 군용폰 등의 물품이었다.

황성 옆의 배틀 머신도 기념으로 남겨두었고.

“그러면 다시 볼 때까지 잘 있으라고.”

“네가 더 걱정이야. 다들 무사하기를.”

작별 인사를 김검천 일행들이 탄 마차가 저택을 벗어났다.

올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워스덤이 거기에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황태자는 마차가 안 보일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차가 안 보일 때쯤 집사가 침중한 얼굴로 품속에 잔뜩 안고 황태자에게 달려왔다.

“황태자 전하. 김검천님이…”

황태자가 손을 내저었다.

“알아. 자네도 그들이 떠나서 서글픈 마음이라는 것을.”

“그게 말입니다. 슬프긴 한데 그런 종류와는 좀 다릅니다. 이 영수증들을 보시지요.”

“응? 이게 뭔가?”

“김검천님이 제국 황태자의 증표로 구입한 물건 목록과 금액입니다.”

김검천이 부들거리는 집사의 품속에 얹혀 있는 종이 더미를 들어보았다.

물건도 아니고 물건을 구입한 목록이 이렇게나 무거웠다.

황실 재정이 파탄 나지 않으려면 당분간 황태자가 빵만 먹고 살아야 할 정도.

“우오오, 김검천---!”

김검천이 귀를 매만졌다.

“아, 귀가 가렵네. 누가 날 애타게 부르는 모양인데?”

“김검천님 이름을 부를만한 사람은 많을 테니까요. 저걸 보세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김검천과 일행들이 탄 마차에 모였다.

막 출발해서인지 아직까지는 기운이 넘치는 샤칸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인간들이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 마차의 멋진 곡선미를 알아보는 것일까?”

루시엘이 대답했다.

“그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이래서 귀쟁이들이란. 너희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 거래?”

“조금만 더 마차로 이동하다 보면 당신도 곧 알게 될 겁니다.”

그 와중에 쿠퍼가 뭔가 아는 척했다.

“듣자 하니 황태자 전하의 배웅 제안을 김검천님께서 거절하셨다지요?”

“나에게 그런 배웅을 할 바에는 차라리 수도 재건에나 신경 쓰라고 했지.”

“그 바람에 김검천님이 떠나신다는 말이 사람들에게 퍼졌을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마차를 지켜보는 건가.”

“이런 시기에 황태자 전하의 저택에서 나와 수도 밖으로 향하는 마차니까요.”

“지금만 해도 이 정도니 황태자에게 하지 말라고 하기를 잘한 것 같군.”

그렇게 마차를 지켜보는 사람들 속에서는 수상쩍은 마법사들이 있었다.

김검천이 탄 마차가 수도를 빠져나가자 로브 쓴 마법사가 동료에게 말했다.

“어떡하지? 직접 쫓아가는 건 위험 부담이 크겠는데.”

“그러게. 외출 나왔을 때 사람들 속에서 감시하던 시선을 느낄 정도니.”

“원거리 탐색 마법이라도 사용해야겠지?”

“그건 때와 장소에 따라 제대로 탐색 못 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네가 마차를 직접 추격하던가.”

“아, 평소부터 원거리 탐색 마법을 꼭 사용해보고 싶었지.”

동료 마법사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뭐라해도 우리로서는 그게 최선이야. 이후에 윗선에 보고나 제대로 하자고.”

“하긴 높으신 분들이니까 우리 같은 말단 마법사와 달리 뭔가 생각이 있겠지.”

***

마차는 예전 통과했던 길을 따라 함선으로 돌아갔다.

황태자의 입김이 닿아서인지 모든 길이 무사통과였다.

드디어 마차가 제국을 지나 왕국을 넘어 마물의 숲에 진입했다.

정확한 목적지를 몰랐던 워스덤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함선이라는 곳으로 귀환하신다고 들었는데 그게 마물의 숲 안에 있는 거였습니까?”

세이야가 자랑스럽게 나섰다.

“놀라셨지요? 하지만 잠시 후면 더 놀라실 거라고요.”

“그렇군요. 기대가 큽니다.”

워스덤은 세이야가 왕세자라는 걸 알았기에 공손하게 대하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도대체 마물의 숲보다 마법사를 더 놀라게 할 것이 뭐가 있다는 것일까.

그렇게 마물의 숲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자 워스덤은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오오! 세상에 이런 것이 존재하다니! 보고도 이 눈을 믿을 수 없구려!”

분화구를 오른 워스덤은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금속의 대지는 고개를 힘껏 꺾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김검천 일행은 드디어 함선 미르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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