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93화 (193/250)

193화

워스덤이 김검천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존재의 주인이시라니. 김검천님, 당신은 도대체…”

워스덤은 김검천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듯했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만큼 김검천은 워스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선을 접한 사람은 누구든 이랬으니까.

세이야는 물론 쿠퍼도 그랬다.

루시엘은 경악했고 샤칸은 감탄했다.

그들에게 있어 함선 미르는 이세계의 초월 존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김검천도 1000년쯤 전에 태어났다면 이들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몰랐다.

그래도 밖에 멍하니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김검천이 워스덤의 어깨를 짚었다.

“이것의 주인이라 해서 당신이 알던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닐 겁니다.”

김검천이 워스덤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김검천이 다음으로 쿠퍼가 워스덤의 의복에 묻은 흙을 털었다.

쿠퍼가 넉살 좋게 워스덤에게 말을 걸었다.

“자유의 마을에서는 마법사답게 행동하시던 분은 어디 갔습니까?”

지내다 보면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남긴 쿠퍼였다.

쿠퍼는 졸려 하는 리에를 안고 워스덤을 지나쳤다.

그 뒤를 이어 샤칸이 손바닥으로 워스덤의 허리를 힘껏 쳤다.

“하하! 마법사라도 보는 눈은 있군! 이 샤칸님도 처음 봤을 때는 저기에 절을 했다고!”

말이 나온 김에 샤칸은 함선을 향해 절을 올렸다.

드워프로서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산물에 돌아왔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샤칸도 내려가자 루시엘이 워스덤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저게 바로 과학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존재가 저런 거겠죠.”

마지막으로 세이야가 입을 열었다.

“함선 미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혹시 모르시는 게 있다면 저에게 물어보세요.”

세이야는 워스덤이 진정되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내려가 주었다.

둘이 함선 외부 차단문으로 다가가자 외벽에서 보안 카메라가 뻗어 나왔다.

처음 보는 기괴한 물건에 워스덤이 흠칫했다.

“이… 이게 뭔가?”

“아무나 함선을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마법 도구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시겠네요.”

세이야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 자신의 신원을 먼저 인증했다.

[승무원 세이야, 비인가자 1명 동행. 김검천 함장 권한 일시 승인.]

“아까 김검천 함장님이 임시적으로 출입 권한을 부여하셨나 보네요. 들어가시지요.”

- 위이잉.

세이야가 다가서자 차단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자신에게 해가 없다는 걸 알아서일까.

아까와 달리 워스덤이 호기심 섞인 얼굴로 눈을 크게 뜬 채 차단문을 이리저리 살폈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힘으로 저절로 문이 열린 건가? 어디에도 마석 같은 건 안 보이는데.”

“저도 원리는 몰라요. 일단 들어가시죠. 시간은 충분하니 나중에 알아보셔도 될 거예요.”

워스덤이 아쉬운 눈으로 작별을 고하며 외부 차단문을 통과했다.

차단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갈수록 보이는 것들에 워스덤은 눈이 점점 더 커져갔다.

마침내 배틀 머신이 놓여있는 격납고에 도달했을 때 워스덤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이럴 수가! 이것만 해도 이 대륙의 어떤 국가보다도 강대한 힘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워스덤은 수도에 나타난 배틀 머신이 어떤 위력을 보였는지 알고 있었다.

상급 기사나 마법사 정도의 공격에는 흠집이나 나는지 의문인 방어력.

커다란 체구만큼이나 뿜어져 나오는 공격력은 오우거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만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졌는데도 원거리 무기까지 장비하고 있었고.

그런 게 격납고에 100대도 넘게 있으니 놀랄 수밖에.

워스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 해도 이세계를 정복할만한 힘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야. 실로 두렵군.”

오랜 여행길에 지친 리에를 잘 자도록 방에 데려다 놓은 쿠퍼가 다가왔다.

“뭐, 다 움직일 에너지가 없으니 전부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지만요.”

쑥스러웠던 워스덤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걸 외부인인 본인에게 보여줘도 되는 건가?”

“아십니까? 저희도 처음부터 김검천님의 사람인 것 아니었습니다.”

“너희와 같은 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건가. 제국 삼현자인 이 몸도?”

“김검천님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이실 수 있지요. 우리들 중에 누가 있는지 아시잖습니까.”

워스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일행 중에는 제국의 황녀와 왕국의 왕세자마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제국 삼현자라는 자신도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었다.

결정은 김검천이 하는 것이다.

쿠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다 제국을 떠나려고 마음먹었다는 건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국은 많이 달라졌지만 말일세.”

“그거야 본인의 선택이지요.”

“그것보다…”

워스덤이 배틀 머신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김검천님이라면 또 몰라도 이걸 누가 악용하기라도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군.”

“하하하, 생각보다 걱정이 많으시네요.”

“상식적으로는 염려하는 게 당연한 게야. 이런 무기를 보면 누가 탐내지 않을까.”

그나마 욕심이 없다는 워스덤 자신도 이 자리에 있는 배틀 머신을 보고 마음이 떨려왔다.

다른 누군가 이곳까지 침입한다면 큰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쿠퍼가 어깨를 으쓱했다.

“김검천님의 손이 닿은 것들은 그렇게 쉽게 자기 몸을 내줄 만한 녀석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시나 봅니다. 피곤하고 배가 많이 고프시니 그런 거지요. 따라오세요.”

“어어?”

워스덤이 잡아끄는 쿠퍼에게 잡혀 식당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김검천이 내놓은 음식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김검천이 요리사였다.

“자는 리에를 빼면 쿠퍼와 워스덤도 왔으니 다 왔군. 그러면 다들 식사하도록 하지.”

김검천이 먼저 워스덤을 향해 노랗고 붉은 색의 요리를 내밀었다.

몸에 좋기로는 우유나 치즈나 비슷해서 만들어 본 음식이었다.

“치즈 닭갈비라는 것이지.”

붉은 양념을 한 고기 위해 노란 치즈가 듬뿍.

화려한 외관에 힘입어 맛있는 냄새가 워스덤의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그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었기에 바로 손이 가지는 않을 뿐.

그런 워스덤의 망설임을 없애준 건 샤칸이었다.

왼손에 포크, 오른손에 나이프를 장착한 샤칸이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 고민할 거면 이 몸이나 줘!”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루시엘도 동의하는 듯했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에 워스덤은 망설이지 않고 치즈 닭갈비를 입에 가져갔다.

이성적인 엘프마저 욕망에 충실할 모습을 보일 정도의 요리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워스덤도 오는 길 동안 마차 안에서 김검천이 준 보존 식량을 먹어 보았다.

그것만 해도 수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엄선된 요리사의 음식과 별 차이 없었다.

하물며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갓 조리된 요리라면 얼마나 맛있을까.

치즈에 싸인 닭갈비를 맛본 워스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격납고에서 배틀 머신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격렬한 반응.

“아니, 이 맛은!”

다른 사람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던 김검천이 물었다.

“응? 마음에 안 드나?”

“아닙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김검천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를 만든 입장에서는 상대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드물 것이다.

워스덤이 연신 감탄하며 요리를 핥고 씹으며 즐겼다.

“이 치즈의 고소한 맛이 고기의 매운맛을 중화시켜주는군요. 완벽합니다!”

안 그래도 열심히 퍼먹고 있던 샤칸이 입을 붉게 물들인 채로 웃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 중 하나가 음식이야. 저 까다로운 귀쟁이도 만족할 정도인걸.”

채식을 즐기는 루시엘의 입맛도 바꿀 정도의 요리.

루시엘이 녹은 치즈를 듬뿍 바른 잘 익은 고구마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매일 난쟁이를 보고 견딜 정도입니다. 지친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기분이랄까요?”

“이 귀쟁이가?”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덤빌 거면 이것은 다 먹고 싸우도록 합시다.”

“아, 그건 그렇네.”

쿠퍼와 세이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음식을 물처럼 흡입하며 맛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워스덤은 다시 한 점의 음식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음식만으로도 자신이 여기까지 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김검천과 함께 앞으로 겪을 일을 생각하면 이유가 넘칠 정도였고.

워스덤이 김검천에게 공손히 물었다.

“김검천님. 혹시 가능하시다면 저에게 다른 권한을 부여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출입 권한으로는 부족한가?”

“이래 봬도 마법사 아닙니까? 그냥 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워스덤이 눈을 빛냈다.

이곳에서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건 믿어지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초월 존재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함선 내에서의 생활이라니.

이제는 김검천의 권유가 아니라도 스스로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워스덤은 이어 루시엘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오는 동안 마차 안에서 이야기를 못 끝낸 만큼 좀 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루시엘이 기품있게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

“엘프 마을로 가는 일에 대해서입니까?”

루시엘과는 다르게 입에 잔뜩 묻힌 채로 샤칸이 별생각 없이 끼어들었다.

“귀쟁이들 마을은 왜? 엘프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라고.”

루시엘이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샤칸을 내려다보았다.

“오는 동안 내내 거기에 대해서 토론을 했는데 기억 안 나는 겁니까?”

샤칸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당연하다! 멀미에 시달린다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하나도 머릿속에 안 들어왔거든!”

“아니,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만.”

“그러니 간단하게 말하라고. 뭐더라? 그 한 줄인가 한 마디 요약인가 뭔가 하는 거.”

워스덤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짧게 말했다.

“결국 마법사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계수의 엘프 부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이번 여행의 시작점인 것이다.

샤칸이 다시 음식에 관심을 돌렸다.

“아, 완전히 알아들었어. 그런데 세계수라면 머리 좀 아프겠는데. 아, 남은 건 다 내 거!”

그런 샤칸을 본 워스덤과 루시엘도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요리에 손을 대었다.

김검천이 만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저마다 나눠 정리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잠에 빠진 황녀를 빼고는 왕자도, 전직 기사도, 이종족도 함께였다.

워스덤도 남들처럼 도우려다가 제지당했다.

임시로 출입 권한은 획득했지만 다른 걸 사용할 권한은 아직 못 받았으니까.

심심해진 워스덤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김검천이 없는 걸 발견했다.

“김검천님은 어디에 가셨소? 잘 먹었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얼굴에 붙은 세제 거품을 제거하던 세이야가 응답했다.

“아, 엔진실에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시던데요.”

“엔진실?”

“현재 함선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지요.”

***

[권한 확인. 김검천 함장님. 어서 오십시오.]

- 위이잉.

신분 확인이 끝나자 엔진실의 다중 차단문이 하나씩 열렸다.

김검천이 들어서며 말했다.

“차단문은 닫지 마.”

[알겠습니다.]

김검천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김검천뿐만 아니라 미리내마저 이곳만큼은 제대로 실상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주 엔진이자 코어인 초신성 반응로에 대한 일만큼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