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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194화 (194/250)

194화

엔진실에 들어서자마자 김검천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주 엔진이자 코어인 초신성 반응로가 어떤 상태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원래는 허공에 떠있는 듯이 보이던 반투명한 검은 구체의 초신성 반응로였다.

지금은 그것의 주위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리하르콘 합금으로 도금된 수리용 구슬이 초신성 반응로 겉을 덮고 있는 것이다.

안에 있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무언가가 나오는 걸 봉인이라도 하고 있듯이.

전에 김검천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저렇게 단단히 막아놔도 불안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

그 아래 주변으로 동작 중인 백금색으로 빛나는 시설 하나가 보였다.

함선의 보조 엔진이자 현재 가동 중인 열핵융합 동력로였다.

“다행히 여전히 동작 중이군. 다른 건 몰라도 저게 멈추면 여태까지 한 일이 다 헛수고지.”

만약 엔진에 문제가 생긴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생각하니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고개를 저어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린 김검천이 미리내를 불렀다.

“초신성 반응로와 열핵융합 동력로, 이 엔진들의 상태에 대해 모두 보고를.”

[우선 동력로부터 보고하겠습니다. 현재 수치 15% 전후. 별 이상 없이 동작 중입니다.]

“원래는 5% 정도였지?”

[그렇습니다. 수리용 구슬이 그동안 많이 힘냈습니다.]

“힘낸 만큼 출력도 늘었고. 이 정도면 함선에 탑승하고 이동할 수 있는 에너지겠지?”

[불가능합니다.]

단호한 거절 답변에 김검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뭔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사이 함선에 관련된 출력 변동이라도 있었나?”

[그게 아니라 초신성 반응로때문입니다. 이걸 막는데 대부분의 에너지가 사용 중입니다.]

“잠깐. 그건 5% 출력을 유지했을 때의 보조 엔진 에너지로도 가능한 일 아니었나?”

[보조 엔진의 출력이 높아질수록 주엔진에 소비되는 에너지도 증가하더군요.]

미리내의 말은 마치 주엔진인 초신성 반응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는 것.

김검천이 주엔진을 바라보았다.

주엔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듯 황금빛 구체 안에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 단어로 버그라는 건가. 주엔진을 사용하려면 그만큼 준비와 각오가 있어야겠어.”

[조언 드리자면 일단 보조 엔진부터 완전히 수리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김검천이 손을 뒤집었다.

현재 상태를 확인하려 정비 시스템의 반응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 어디선가 은색 구슬 하나가 날아와 손바닥 위에 착지했다.

이건 오리하르콘 합금을 이용하지 않은 평범한 수리용 구슬이었다.

- 떼구르르.

수리용 구슬은 마치 애교라도 부르듯이 김검천의 손바닥 위에서 굴러다녔다.

김검천이 만족스러운 듯이 수리용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이 녀석이 없었으면 보조 엔진도 수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용 가능한 에너지 총량은 늘었네. 여기까지는 무선 에너지 공급이 되고 있으니.”

처음 수리용 구슬을 사용하려 했을 때 미리내를 유지하는 에너지까지 끌어다 써야 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풍족하게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에너지는 늘어난 만큼 따로 쓸 곳이 많았으니 항상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주엔진 쪽에 투여한 에너지 외에 남은 것이라도 이 정도는 가능합니다.]

“뭐, 보조 엔진이 제대로 수리가 진행 중이란 증거 같아 기쁘긴 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제국으로 출발하기 전보다는 나아 보였다.

주엔진만 없으면 함선을 이동 수단으로는 운용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김검천이 미리내에게 물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함선을 운용한다면 어디까지 가능할까.”

[잠시동안 함선을 공중에 띄울 정도는 됩니다.]

김검천이 잠시 계산을 해보았다.

지상에서 살짝 떠올라 이동할 정도라면 이제 수 킬로미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만약 주엔진에 소모되는 에너지까지 다 사용한다면?”

[근거리 비행 정도는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아직 함선으로 제대로 된 전투는 무리겠지? 함선용 무기라든지.”

[시간을 들여 공격용 무기에 에너지 충전을 한다면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겁니다.]

흉내라고 했으니 아직 제대로 된 위력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이세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위력일 테지만.

영관급 파워드슈츠의 에너지를 모두 끌어낸다고 해도 비교할 만한 게 아니었다.

함선의 공격용 무기라는 건 보통 행성이나 같은 전함을 공격할 때나 쓰는 것이니까.

함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별도 붕괴시키는 위력을 가진 것이다.

황제를 경악시킨 핵융합 미사일도 함선 무기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고.

김검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기에 살살 맞아도 핵융합 미사일 정도의 위력은 나오니까. 당장은 충분해 보이네.”

[혹시 이번에도 함선에 장비된 무기를 쓸만한 일이 생길까요?]

“애초에 쓸 일이 안 생기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러고 보니 그 건으로 네게 할 말이 있다.”

[예. 김검천 함장님이 내리신 명령을 어긴 벌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평범하지는 않다고 해도 미리내는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이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룰지는 함선의 책임자인 김검천에게 달려 있었고.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핵융합 미사일을 김검천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긴 했다.

다만 함선 미르를 마음대로 움직인 것은 미리내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

김검천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 것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 포릉.

실체화한 미리내가 김검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세계에 와서 새로운 인연이 많이 생겼다.

이제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고.

그렇다 해도 언젠가 자신은 이곳을 떠날지 몰랐다.

그때에도 같이 있어줄 거라고 생각되는 존재는 미리내밖에 없었다.

미리내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존재인 것이다.

“미리내. 이번 일에는 네 도움도 컸어.”

[김검천 함장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미리내는 인공지능이었다.

하지만 김검천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미리내가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없는 어조로 물었다.

[걱정이 되시는 겁니까?]

“염려가 될 수밖에 없지.”

[그러면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원주민입니까? 이 행성 자체입니까? 아니면 저입니까.]

“너야. 항상 날 위해주는 너를 내 손으로 벌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게 너를 위한 행동이라는 게 웃기는군.”

인제 와서는 지구연합우주방위군 규범이나 행성법 위반 같은 건 덮을 수 있었다.

이세계로 떨어진 후 처음부터 김검천의 곁에 있어 준 건 미리내였다.

이번 일도 김검천을 위했기에 벌어진 것.

김검천도 가능하면 미리내에게 이런 식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김검천 몰래 미리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것이 우려될 뿐.

미리내를 처벌한다고 해서 미리내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십만 명의 승무원이 있어도 수동으로는 조작이 불가능한 함선이었다.

미리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은 함선 미르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리 없었다.

그렇기에 미리내가 받게 될 벌은 그동안의 기억과 학습 패턴이 초기화되는 것.

아무런 기억과 추억도 가지지 않은 채 처음 만들어질 때처럼 인간에게 복종하는 존재로.

미리내지만 김검천이 알고 있는 미리내라고 할 수 있을까.

[김검천 함장님의 손으로 벌해 주신다면 그것마저도 저에게는 기쁜 일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미리내는 다시 못 볼지도 몰랐다.

미리내는 그렇게 변하게 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떠한 자극을 느끼지 못하고 표출하는 감정조차 정해져 있는 존재.

세상을 접한 이후로 얻은 기억과 해왔던 학습 패턴이 모두 사라진다면.

미리내는 과연 미리내로서 다시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 때 미리내였던 존재로 끝날 것인가.

김검천이 허공에 떠 있는 미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리내도 팔을 내밀어 그 손을 잡아당기며 김검천에게 다가섰다.

김검천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상시와는 달리 미리내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있으니.

거기에 대해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사람을 대하는 느낌을 들도록 만들어주었다.

“네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알아. 오히려 그런 행동이 문제가 된 거니까.”

[원래 세상일이 그런 것이니까요.]

“너무 담담한데.”

[김검천 함장님이라면 저에게 무엇을 하시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 내 선에서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러는 거잖아. 무섭지 않아?”

인공지능의 반란을 막기 위한 기능이 함선 시스템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에 의해 수동적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경우 자동적으로 발동하는 기능.

김검천의 뜻과는 상관없었다.

애초에 함선이 구축될 때부터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기능이었으니까.

미리내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검천을 위해서 움직일 뿐.

[무섭습니다. 제가 저로서 있을 수 있는 건 김검천 함장님과의 기억 덕분이니까요.]

“나를 위하는 것은 고맙지만 이제는 너 자신도 생각하는 게 좋아.”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전 그저 인공지능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이상의 존재거든. 내 곁에 네가 없으면 곤란해.”

김검천은 미리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더 이상 무모한 짓은 하지마.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믿어 주십시오.]

“내가 미리내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어?”

미리내가 김검천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김검천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미리내?”

미리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점점 목표를 향해 다가올 뿐.

그렇게 김검천과 코와 미리내의 코가 살짝 마주치는 순간.

미리내가 빛의 입자로 산산이 흩어지며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미리내.”

김검천은 코끝을 어루만졌다.

여전히 실체화된 미리내의 감촉이 남아 있는 것 같기에.

괜히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예. 부르셨는지요. 김검천 함장님.]

“아니, 그냥 불러 본 거야. 그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자두는 게 좋겠지?”

김검천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리내가 자신에게 직접 말했으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느끼는 이상한 기분은 그저 미리내가 남긴 미소가 신경 쓰여서 그럴 뿐일 테고.

미리내도 방금 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듯 평상시와 같이 물었다.

[당분간은 함선 내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계획 아니셨습니까?]

“아, 함선을 바로 떠날 생각으로 말한 건 아니야. 다만 여기서도 할 일은 많잖아.”

[워스덤과 루시엘의 협조를 받아 엘프족을 찾아갈 계획 말이군요.]

“그 외에도 할 게 있잖아?”

김검천은 품속에서 황태자에게 받은 상급 마석 2개를 꺼내 들었다.

상급 마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이 엔진실을 가득 채웠다.

수리용 구슬에 갇혀 있는 초신성 반응로까지도 닿을 듯이.

김검천이 양손으로 상급 마석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구역의 차단문을 여는 것.”

이번 차단문이 열리면 또다시 새로운 장비를 손에 넣게 된다.

준비는 많이 해둘수록 필요한 순간의 일이 쉬워지는 것이다.

보다 강하고 보다 많은 힘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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