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00화 (200/250)

200화

김검천도 미리내가 염려하는 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걸 감안하고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로 결정한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봐. 도플갱어가 함선 내에서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미리내가 김검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짚어냈다.

[직접적인 위험이 아닌 여기 모인 자들의 인간관계가 걱정되시는 겁니까?]

“방금 전만해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사이야. 그런데 이제는 누구를 봐도 도플갱어인지 몰라 경계해야 한다니. 끔찍하잖아.”

[서로 간의 신뢰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쉽게 깨질 관계는 아니야. 그렇다 해도 이런 식의 위험이 길어지는 것은 좋지 않지.”

육체의 아픔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가는 법.

김검천이 파워드슈츠가 있는 구역에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어느 쪽이든 위험 부담이 있다면 짧고 빠르게 해결하는 게 나아.”

***

세이야가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샤칸은…일단 저쪽에 가서 서 계세요. 아, 무기는 왜 들고 오신 거예요?”

“그거야 도플갱어인가 뭔가 하는 괴물이 있다고 했으니까.”

샤칸이 금속 망치를 등 뒤에 짊어지고 루시엘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루시엘이 물었다.

“그 무식한 무기를 들고 온 건 도플갱어를 보면 머리라도 깨려고 그런 겁니까?”

“당연하지! 머리가 없는데 살아있는 녀석은 드물다고.”

“누가 도플갱어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까? 가능하면 제 옆에는 서지 마시지요.”

루시엘의 왼쪽에는 세이야가 서 있었다.

세이야는 다시 자기 옆에 있던 워스덤에게 말했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네요. 오신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었으니까요.”

“무슨 말을. 이런 위험도 감수하고 온 거지요. 도플갱어의 습격은 예상 못 했지만 말이요.”

세이야가 한숨을 쉬었다.

다들 괜찮다고 해도 도플갱어를 함선 내에 들여보낸건 사실이었다.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후우, 일단 다들 모일 때까지라도 아무 일 없으면 좋겠네요.”

금속 망치를 거꾸로 세워 거기에 기댄 샤칸이 지루한 듯 주위를 살폈다.

다들 보던 얼굴이었다.

여기서 두 명을 더한다면.

“그러고 보니 쿠퍼와 리에가 아직 안 왔네.”

루시엘이 말을 받았다.

“조금 더 기다려 보지요.”

샤칸이 물었다.

“그런데 왜 자리 배치가 이래? 평소와 다르게 다들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너희 둘 빼고.”

그 말대로 세이야와 루시엘은 같이 붙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루시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샤칸, 이건 김검천님이 시키신 일입니다.”

“들었어.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라고. 그놈의 도플갱어가 뭐라고.”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자, 누가 도플갱어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샤칸이 자신 있게 답을 말했다.

“일단 금속 해머로 머리를 두들겨 팬다!”

“도플갱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본인 빼고 다 처리하면 그중에 하나는 도플갱어 아니겠어?”

맞는 말이기는 했다.

실제로 샤칸에게 맞으면 농담으로 끝나지는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샤칸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슬쩍 거리를 벌렸다.

샤칸이 손을 내저었다.

“아, 농담이라고. 드워프는 농담할 줄도 모르는 줄 아나?”

드워프식 농담이 샤칸의 입에서 나오자 이렇게 끔찍할 줄이야.

루시엘이 진지하게 말했다.

“본인이 아는 샤칸이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드워프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왜 그렇게 진지해? 여하튼 그 도플갱어에게 공격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라는 거잖아.”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게 샤칸다웠다.

이런 모습이 가끔이라는 게 아쉬울 뿐.

루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샤칸은 똑똑하군요. 잘하고 있습니다.”

“흥, 너 같은 귀쟁이보다는 낫거든.”

“그 도플갱어는 마법도 사용합니다. 붙어있지 않는다 해도 주의하십시오.”

이런 상황에도 흥미가 생긴 워스덤이 물었다.

“도플갱어가 마법을 쓰는 게 정말이오? 보통 도플갱어는 상대의 육체만 복사하지 않소?”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심지어 세이야도 함께 말이지요.”

“그게 마법 도구일 가능성은 없소?”

“직접 마법을 발동하는 걸 봤습니다. 그러니 상급 마법사임이 분명하지요. 다만…”

루시엘과 워스덤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마법사지만 마법 도구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마법 도구를 가진 마법사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소.”

둘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비슷한 지식수준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편한 것이다.

루시엘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방면으로 대화가 통하시는 분이 있어서 정말 기쁘군요.”

“마법사가 할 줄 아는 게 마법밖에 더 있겠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만족스럽구려.”

“하하하!”

둘이 즐겁게 웃자 샤칸이 짧은 다리로 뛰어오르며 양손을 흔들었다.

시선이라도 끌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이, 이 몸을 빼고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여기에 쿠퍼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음? 이 몸을 찾았나?”

어딘지 정신이 없어 보이는 쿠퍼 또한 역시 금속 해머를 들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샤칸이 괜히 쿠퍼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이다.

샤칸이 반갑게 맞이했다.

“쿠퍼, 왔는가. 오우거도 부르면 온다더니.”

“오우거가 되었으니 귀족은 못 될 팔자겠군.”

“그건 종족 차별이야. 그보다 옷은 왜 그래? 새로운 취미인가?”

속살이 보일 정도로 옷 한쪽이 길게 찢어먹은 쿠퍼가 대답했다.

“아, 오다가 세이야를 만났거든. 칼도 든 녀석이 실수하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다고.”

“어이쿠, 다치지는 않았고?”

“멀쩡해. 세이야 녀석, 걱정이 되었는지 어디 다친 곳이 없나 열심히 몸을 만져대더라고.”

“…잠깐. 세이야라면 아까 전부터 여기에 있었는데 만나고 왔다고?”

“무슨 소리야? 세이야는 실수한 게 미안한지 같이 오지 않고 뒤따라 간다던데. 엉?”

찢어진 옷과 샤칸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쿠퍼는 그제야 세이야를 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천천히 벌렸다 닫았다.

스스로도 자신이 겪은 상황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게 도플갱어라는 건가. 정말 위험한 놈이군.”

쿠퍼는 이제야 미리내가 전달한 말이 가슴에 와닿은 모양이었다.

가장 오랜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세이야마저도 본인인지 아닌지도 몰라보았으니까.

쿠퍼가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세이야가 긴장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잠시만요. 쿠퍼 아저씨.”

쿠퍼가 멈칫했다.

“왜 그러니? 세이야.”

“저희 쪽으로 접근하시면 안 돼요. 모두 간격을 둬야 하거든요.”

“루시엘과 넌 붙어있는데?”

“저희는 도플갱어가 출현했을 때부터 쫓아낼 때까지 김검천님과 같이 있었어요.”

“아, 이해했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군.”

쿠퍼는 더이상 묻지 않고 바로 사람들과 거리를 벌렸다.

평상시와 다르게 불평 없이 자기 말을 따르자 세이야가 오히려 무안해졌다.

“쿠퍼 아저씨, 죄송해요. 이건 만약을 위해서 이러는 거라서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쿠퍼가 손을 내저었다.

“미안할 건 없다. 방금 너, 아니 도플갱어에게 당해보니 이게 당연한 행동인 거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이야가 쿠퍼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쿠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냐? 세이야. 할 말 있으면 해봐.”

“그게 말이지요. 계속 혼자 계셨던 건가요? 리에는 어떻게 하고요?”

세이야의 말에 다들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리에가 이 자리에 없었다.

지금 리에 혼자 있으니 도플갱어에게 습격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쿠퍼에게 쏠렸다.

쿠퍼가 초조한 표정으로 빠르게 입을 열었다.

“리에라면 여기보다 차단문 안쪽이 안전한 거 같아서 그쪽에 놔두고 놓고 왔다.”

통보받기 전에 리에가 잠이 들어 방에서 재우던 참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지금이라도 데려올까 하고 쿠퍼는 고민했다.

세이야가 그런 쿠퍼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아니, 잘하신 거예요. 미리내와 대화한 김검천님도 차단문은 못 열 거라고 하셨거든요.”

쿠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검천이 스스로 죽으라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지시해도 따를 쿠퍼였다.

물론 그 이유는 쿠퍼 스스로 납득할 정도는 돼야겠지만.

그만큼 김검천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김검천님이 그러셨다면야. 그 차단문을 열 정도의 괴물은 아니라서 다행이군.”

“김검천님도 고생하실 정도였잖아요. 올 사람은 다 온 거 같으니 김검천님이 올 때까지 잠시 대기하지요.”

세이야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는.

“아니, 저건 또 뭐야!”

모일 사람은 다 모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에는 한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쿠퍼가 보였다.

손가락의 끝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먼저 와 있던 쿠퍼가 보였다.

샤칸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여기도 쿠퍼, 저기도 쿠퍼. 오늘 무슨 쿠퍼의 날인가?”

루시엘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쿠퍼가 아니라 도플갱어의 날인 것 같습니다.”

먼저 온 쿠퍼가 나중에 온 쿠퍼를 금속 해머로 가리켰다.

까불면 그대로 금속 해머로 찍어버릴 듯한 움직임이었다.

“네 놈이 도플갱어인가 뭔가냐?”

나중에 온 쿠퍼가 발끈했다.

“아니야! 이 몸이 쿠퍼다! 네가 가짜겠지. 아니, 세이야, 넌 언제 여기에 도착한 거니?”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체격까지.

사람들이 아무리 봐도 겉모습 만큼은 둘 다 똑같았다.

세이야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봐도 진짜 똑같네요. 도대체 언제 저렇게 똑같이 모습을 복사한 것인지… 아!”

세이야와 똑같은 생각을 워스덤이 해냈다.

“아까 쿠퍼가 세이야를 만나 접촉 당했다고 했지 않소?”

“그때 쿠퍼로 변이할 정보를 얻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일까요?”

“나중에 온 쿠퍼도 세이야를 만났다고 했는데…”

루시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공격당한 쿠퍼가 진짜가 아닐까요?”

워스덤이 반박했다.

“도플갱어가 그것을 노리고 일부러 공격당한 것처럼 꾸몄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세이야도 한마디 했다.

“그렇게 생각할 걸 예상해서 멀쩡한 모습으로 왔다면요?”

사람들의 머리가 복잡해져 갔다.

“이 쿠퍼가 도플갱어인가? 저 쿠퍼가 도플갱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쿠퍼가 둘이니 누구를 부르는지도 헷갈립니다. 일단 호칭이라도 따로 정리합시다.”

금속 망치를 들고 엉망이 된 모습으로 먼저 출현한 쿠퍼를 쿠퍼 ‘일’.

멀쩡한 모습으로 나중에 나타난 쿠퍼를 쿠퍼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쿠퍼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고민하던 중 세이야가 나섰다.

“모습은 똑같을지 모르지만 기억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샤칸과 루시엘, 워스덤도 동의했다.

“하긴 도플갱어가 외모라면 몰라도 기억을 복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시간을 들여 탐색한다면 몰라도 말이지요.”

“그냥 둘 다 머리통을 날리면?”

마지막 말에 사람들이 샤칸을 째려보았다.

샤칸이 턱을 세웠다.

“뭐, 왜, 뭐?”

세이야가 나섰다.

“그 방법은 일단 놔두고 쿠퍼 아저씨라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지요.”

쿠퍼 일과 쿠퍼 이가 대답했다.

“무엇이든지!”

“그러면 질문. 진짜 쿠퍼 아저씨라면 알겠지요. 리에는 제국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쿠퍼들이 앞을 다투어 외쳤다.

“리에는 제국 황실의 핏줄을 이었다!”

“리에는 제국의 황녀야!”

쿠퍼들이 서로 마주 보았다.

“이 가짜가?”

“가짜 놈이!”

둘 다 정답이었으니 세이야가 참견할 수 없는 다툼이었다.

워스덤이 끼어들었다.

“잠시만. 리에 황녀의 일은 이 몸도 들었다네. 어느 정도 소문이 퍼졌거든.”

“아,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이러면 어떨까 싶네. 동시에 말하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다른 질문을 하는 거지.”

세이야가 워스덤의 조언에 따랐다.

그런데도 두 명의 쿠퍼는 모두 정답을 말했다.

분명 자신과 쿠퍼만 알고 있는 걸 도플갱어도 알자 세이야는 당황했다.

“마법으로 기억마저 복사는 못 한다면서요?”

곰곰히 생각하던 루시엘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혹시 마법 도구가 아닐까요? 진실인지 맞추는 마법 도구도 있으니까요.”

워스덤이 동의했다.

“흠, 그러고 보니 그런 종류의 마법 도구가 어느 마법 학파에 전승된다더군.”

“어떻게 쓰이는 건데요?”

“한 사람을 지정하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걸 맞추는 마법 도구라더군.”

“하아, 도대체 왜 그런 걸 만들었답니까?”

“도박에 쓰려고 만들었다나? 그것도 마스터 매지션이.”

“별종이로군요.”

“괜히 세상이 넓다고 하겠나?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거지. 마법사도 예외는 아니고.”

“그런 예외가 없었으면 좋을 텐데요. 아무튼 이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이지. 누구도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속아서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사람들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흘러 지나갔다.

그 침묵은 차단문이 열림으로써 깨졌다.

- 위이잉.

평상복 차림의 김검천이 차단문 너머로 나타난 것이다.

이야기하고 간대로 파워드슈츠를 장착한 게 아니었다.

뭔가 사정이 있었던 것 같지만 세이야와 루시엘은 가만히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안 될 만큼 더 이상한 게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세이야, 루시엘, 샤칸, 워스덤, 그리고… 두 명의 쿠퍼인가.”

김검천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쿠퍼들에게 머물렀다.

“쿠퍼.”

쿠퍼 일과 쿠퍼 이가 대답했다.

“예! 김검천님!”

“말씀하십시오. 김검천님!”

김검천이 쿠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를 위해 죽어줄 수 있겠나? 지금 이 자리에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