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02화 (202/250)

202화

오러 이상의 위력를 자랑하는 광선검이 도플갱어의 머리 위에 닿았다.

손가락 두께의 금속도 자르는 위력인데 나이프에도 관통당하는 몸이 견딜리 없었다.

도플갱어의 입으로 보이는 부위가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무서운 인간이로군… 죽어가는 괴물을 협박하다니.”

“우리를 죽이려던 괴물에게 들으니 영광이야. 아직 입은 살아있는 것 같은걸.”

“이런 몸에게 뭘 원하는지 몰라도 그럴거면 조건이 있다.”

도플갱어는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입을 놀렸다.

김검천이 아니라 옆에 있던 샤칸이 발끈했다.

“다 죽어가는 괴물 주제에 어디다 대고 조건을 거는 거냐?”

괴물은 다른 생명체를 본능적으로 죽인다.

그러면 다른 존재가 괴물을 죽이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샤칸이 금속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

도플갱어가 쥐어짜듯 한 말투로 반응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죽이던가. 어차피 할 것 아니었나? 너희 마음대로 해라.”

“잠깐, 샤칸.”

광선검을 도로 집어넣던 김검천이 손을 내밀어 샤칸을 말렸다.

샤칸이 도플갱어를 노려보다 금속 망치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 쿵.

김검천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내려찍었을 것이다.

샤칸이 물러서자 김검천이 물었다.

“네가 원하는 조건이 뭐지?”

“살려줘.”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들어줄 수 없었다.

도플갱어가 김검천만 노렸다면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동을 보았듯이 함선 내 어떤 인원도 죽일 수 있는 게 도플갱어였다.

김검천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난 내 사람을 노린 자는 용서하지 않아. 다만 고통을 덜 느끼게 해줄 수는 있지.”

“솔직하군. 거짓으로 대답해 줘도 될 텐데.”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마법이나 마법 도구를 사용한다며?”

“그러려면 힘이 들거든. 죽어가는데 할 만한 건 아니지. 특히 넌 생각을 읽을 수 없더군.”

“네 조건이라는 게 나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었던 건가?”

도플갱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아,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죽어가는 도플갱어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많지 않아 보였다.

김검천이 재촉했다.

“다시 한번 묻지. 들어줄 수 있을 만한 걸로 말해라.”

“…죽으면 바깥에 잘 묻어 주겠나? 이따위 갑갑한 장소에서 있기는 싫다.”

“안 그래도 너 같은 존재를 함선 내에 놔둘 생각은 없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좋아. 거래가 성립되었으니 원하는 걸 말해라.”

“정보. 너만 아는 중요한 정보라면 더욱 좋고.”

워스덤과 마도 왕국의 마법사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이미 있었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일 리가 없었다.

적에 대한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도플갱어나 마법사에게 있어 사소한 정보가 김검천에게는 중요하게 쓰일 수도 있었고.

“무엇부터 말해줘야 하나? 아무거나 말해줄까?”

“그럼 이것부터 묻지. 고대의 대마법이 발동하는 곳은? 그것을 막을 방법은 뭐지?”

회색 달걀처럼 생긴 도플갱어의 입 부근이 흔들렸다.

“그거야말로 마도 왕국의 핵심 비밀인데 이런 괴물이 알 것 같아 보이던가?”

“왜 모르겠나? 네가 마법사들에게 좋은 취급을 받을리 없겠지. 그것과 별개로 묻는 거야.”

마도왕국의 마법사들이 도플갱어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눈앞에 있는 김검천마저 알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의문이 솟아난 도플갱어가 물었다.

“취급이 박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을 텐데. 어떻게 알았나?”

“사람들을 뮤턴트라는 괴물로 만드는 마법사를 본 적이 있지. 사람도 그런 취급을 하는데 하물며 처음부터 괴물의 취급은 어떨까?”

이런 자를 속이려 해보았자 도플갱어 정도로는 통할 리 없었다.

도플갱어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군. 그런 사소한 정보의 조각을 모아서 제대로 된 결론을 도출해내다니.”

김검천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내 질문에 답이나 해. 시간이 많지 않아.”

“크, 네 말대로 괴물에게 누가 그런 걸 말해주겠나?”

“모른다는 건가?”

“아니, 그렇기에 들을 수 있는 것도 있었지. 마탑으로 가라. 그곳에 모든 게 있다.”

“위치는?”

“마도왕국에 간다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다. 물론 먼저 거기 결계부터 넘어서야겠지만.”

가면 알 수 있다니.

마탑이 어떤 곳인지 김검천이 궁금해질 정도의 확신이었다.

그 마탑이라는 곳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적인 것일까.

아니면 마도왕국에 사는 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기에 저렇게 말하는 것인가.

다행인 점은 마도왕국의 결계만 통과하면 찾는 것에는 별문제 없을 거 같았다.

그 사이에도 도플갱어의 목소리 크기가 점차 줄어가고 있었다.

김검천은 다급히 다음 질문을 던졌다.

“너 이후로 우리를 찾아올 자들이 있는가?”

“흐흐, 마도 왕국의 추격자들이 걱정되는가?”

“질문은 내가 했다. 넌 답변만 해라.”

“현재 있는 장소에서는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자유의 마을까지 소문이 퍼졌으니까.”

김검천은 빈정거리는 듯한 도플갱어의 말투에 신경 쓰지 않았다.

화 같은 건 나중에 내도 되었으니까.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떠나든 남아있든 상관 없을 걸. 어차피 너희는 마도왕국 근처 엘프를 찾아갈 것 아닌가?”

엘프에 대한 정보는 루시엘과 워스덤이 제공한 것.

정보가 샜다면 이번에 합류한 워스덤이 문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김검천보다 워스덤이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들이 엘프를 찾아갈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소?”

도플갱어의 입 주위가 움직였다.

“그쪽이 워스덤인가. 넌 고르바 마탑주님께서 먼저 죽이라는 대상 중 하나였는데.”

“그 일이 실패해서 정말 다행이구려. 그보다 어떻게 안 거요?”

“결계를 통과할 방법은 엘프의 경애를 한 몸에 받는 하이엘프 정도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이엘프.

오래 사는 엘프 중에서도 더욱 오랜 수명을 가진 엘프.

초월존재의 가호를 받았다고 여겨 하이엘프라고 불리는 엘프가 있었다.

그 수명만큼이나 특별한 힘이 있기에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 실권 없는 왕 같은 존재.

다만 엘프 부족이라고 해서 모든 지도자가 하이엘프인 건 아니었다.

그만큼 하이엘프의 수가 적은 것이다.

워스덤이 반박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곳의 하이엘프를 찾아갈지도 모르잖소? “

“크크, 이 몸에게 마탑주님이 뭐라 하셨는지 아나?”

“뭐라고 한 거요?”

“그러면 신경 쓸 것도 없다고 하셨다. 우리야 다음 대마법만 문제없이 발동하면 되니까.”

워스덤이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고르바 탑주의 말대로였다.

김검천 일행의 목표는 결국 대마법을 처리하기 위한 것.

적어도 대마법이 어디에 시전될지만 알아도 이렇게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을 텐데.

“과연 고르바 마탑주군. 우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예측하고 있다는 건가.”

“마탑주님이 말씀하셨지. 워스덤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거라고.”

도플갱어의 말대로 워스덤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다른 엘프 부족을 찾아가도 마도왕국의 결계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대마법의 발동까지 제한된 시간.

얻은 정보에 따르면 다시 마법이 발동되기까지 지금으로부터 대략 4주 정도 남았다.

마도왕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의 엘프 부족까지도 몇 주가 소모된다.

다른 곳을 들렸다가 마도왕국을 향하면 시간이 모자랄지도 몰랐다.

결국 마도왕국 근처 엘프 부족을 방문해야 해야 했다.

여유가 없는 만큼 선택의 폭은 좁아지는 것이다.

거기로 간다는 건 알면서도 드래곤 굴에 머리를 집어넣는 셈이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워스덤도 아직 해결책이 없어 김검천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워스덤이 눈치를 보자 김검천은 넌지시 말을 건네었다.

“괜찮아. 어차피 그들과 맞붙을 거니까. 적이 기다린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

“알고 계셨군요. 그런데 싸워야 하는데 감사하다니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들의 전력을 조금씩 소모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마도왕국까지의 길이 평안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워스덤뿐만 아니라 김검천도 이미 예상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스덤이 감탄한 눈으로 김검천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사람은 다른 일행들이 믿고 따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검천은 워스덤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도플갱어를 바라보았다.

도플갱어는 이제 입을 여는 것마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도플갱어의 최후가 바로 코 앞이었다.

김검천이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가?”

“크크, 먼저 지옥으로 가서 기다리마…”

도플갱어는 그 말을 끝으로 움직임이 멈추었다.

김검천이 중얼거렸다.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지는 나도 알고 싶은데. 미리내. 놈의 상태는?”

[모든 생체 신호 중지. 생명체로서 활동을 정지했습니다.]

“그렇군.”

김검천은 그때 머릿속에 스치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대마법이 발동될 때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대해서였다.

생각해보니 마법 중에서 원거리를 탐지하는 마법이 있긴 했다.

아니면 고대의 대마법이니 그런 기능이 덤으로 탑재되어 있는지도 몰랐고.

김검천은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당장 급한 일도 아니었기에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김검천이 허공에 매달린 듯한 도플갱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가슴에 꽂힌 나이프를 빼냈다.

- 쿵.

도플갱어는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살아서 여러 제약에 묶여 있던 도플갱어였다.

죽어서 겨우 자유롭게 풀려난 것이다.

김검천이 빼낸 나이프를 도플갱어의 가슴 위에 올려두고 일어섰다.

그제야 루시엘이 입을 열었다.

“도플갱어의 말에 따르면 위험한 상황입니다. 적이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넘치는 호기심이 마법사를 죽인다.

그것은 워스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워스덤은 무례하다는 걸 알면서도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렇기에 둘의 대화 중에 워스덤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김검천님. 실례지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도플갱어가 김검천님의 생각을 못 읽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도 과학의 힘인지요?”

막 상황이 종료되어 어수선한 판국인데 눈을 반짝이며 탐구심에 불타는 워스덤이었다.

싸우는 와중에 질문을 안 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김검천이 그런 워스덤을 위해 대답했다.

“아마 미리내가 있어서 그럴 거다.”

“미리내라고요?”

“아아, 워스덤은 미리내를 직접 접한 적이 없었군. 간단하게라도 서로 인사하라고.”

미리내가 모습을 허공에 투영했다.

[원주민 워스덤. 안녕하십니까. 미리내입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미리내였다.

마스터 매지션인 워스덤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굳이 따지자면 정령과 비슷한 듯 했으나 그것과도 달랐다.

생각하지 못한 등장에 멍하니 보던 워스덤이 더듬거렸다.

“아니, 어디서 나타난 것이요? 마력의 파동도 없었고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는데.”

거기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잊을 리 없는데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크기는 많이 달랐던 것 같지만.

뭔가를 생각하던 워스덤이 화들짝 놀랐다.

“이 인간을 초월한 미모는… 설마 수도에 나타났다는 초월 존재 아니십니까?”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 망설이는 워스덤이었다.

이세계의 생명체로서 미리내로부터 알 수 없는 경외심이 느껴진 것이다.

김검천이 살짝 미소지었다.

“미리내는 초월 존재가 아니야. 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고.”

[말씀대로 미리내는 초월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김검천 함장님의 것입니다.]

워스덤이 미리내의 발끝에 떨리는 손으로 대려고 했다.

미리내는 워스덤의 기대에 어울려주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마스터 매지션도 알 수 없는 현상에 워스덤이 물었다.

“마법도, 정령도, 인간도 아니라면 미리내 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겁니까?”

초월 존재가 아니라고 직접 들었는데도 워스덤은 여전히 미리내를 경외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인지를 초월하는 걸 접한다면 보통 2가지 형태를 취했다.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던가.

제국 수도의 사람들이 미리내를 초월 존재로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마법사인 워스덤마저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