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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04화 (204/250)

204화

그들이 대놓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마법사들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맴돌고 있는 것 정도는 고르바 탑주도 알고 있었다.

고대의 대마법을 발동하기 위해 실력 있는 마법사들을 모은 것까지는 좋았다.

마법사를 위해, 마법사를 위한, 마법사에 의한 마도 왕국 이념에도 찬성하는 자들이었고.

문제는 그런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갈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르바 탑주는 마도 왕국의 마법사를 모두 제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눈앞의 일과 고대의 대마법때문에 고르바 탑주에게 당장 등을 돌리지 않을 뿐.

사실상 마도왕국 안에 또다른 마도왕국이 생긴 셈이었다.

눈앞의 암흑 마탑주와 동반한 마스터 매지션들은 그런 불순분자들의 대표격인 자들.

물론 고르바 탑주의 파벌인 자도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고르바 탑주를 따라온 상급 마법사가 그랬다.

상급 마법사가 고르바 탑주 대신 입을 열었다.

“마탑주라고 하셔도 말씀이 심하십니다! 마도 왕국의 정점이신 고르바 탑주님 앞입니다!”

암흑 마탑주가 코웃음을 쳤다.

지나가는 벌레를 봐도 이보다는 정중히 대할 것이다.

“흥, 상급 마법사 따위가. 언제부터 마법사가 하얀 돼지들처럼 신분을 따졌나?”

“그건…”

상급 마법사는 그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었다.

상급 마법사 자신도 마도 왕국의 신분보다는 마법사로서 능력을 더 중요시했으니까.

마도 왕국은 설립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그 마도 왕국의 상층부는 최소한 30년 이상을 마법사로 살아온 자들이었다.

새로운 체계가 마법사들 사이에 자리 잡는 건 아직 어려운 것이다.

“고작해야 상급 마법사가 마탑주끼리의 대화에 함부로 끼다니. 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

암흑 마탑주의 몸에서 푸른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느껴지는 마나의 강대함에 상급 마법사가 얼어붙었다.

상급 기사는 마스터 나이트를 이길 수 없었다.

상급 마법사와 마스터 매지션에는 그 차이보다 더 넓은 간격이 존재했고.

하물며 마스터 매지션 중에서도 강하다고 알려진 마탑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암흑 마탑주를 말릴 사람은 이 자리에서 오직 한 명.

“그만두게나. 자네 말대로 마탑주나 된 자가 상급 마법사 따위에게 손을 쓸 생각인가?”

고르바 탑주가 끼어들었다.

암흑 마탑주가 여전히 기세를 발하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버릇없는 녀석에게 벌을 안 줄 수는 없잖소. 마법사로서는 당연한 일 아니요.”

“그렇긴 하군. 마법사라면 말이지.”

암흑 마탑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마도 왕국의 기반이 되는 세력은 어디까지나 마법사.

그래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고르바 탑주가 마도 왕국의 지도자가 된 것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고르바 탑주가 마스터 매지션을 가볍게 누를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2명 이상의 마스터 매지션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힘든 것이다.

암흑 마탑주와는 일대일로 상대해도 확실히 이길 자신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고르바 탑주가 고대의 대마법을 복원했기에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메테오 스웜은 성공해야 했다.

만약 메테오 스웜이 성공했다면 암흑 마탑주 세력은 그대로 소멸되었을 테니까.

제국의 일만 성공했다면 암흑 마탑주라도 고르바 탑주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뻣뻣하게 목에 힘을 준 채로 응답하는 게 아니라.

제국 수도에 나타났다는 김검천이라는 자만 없었다면.

고르바 탑주는 초월 존재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그보다 덜 신경 쓰고 있었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속으로 한숨을 쉰 고르바 탑주가 암흑 마탑주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손목을 자를 생각이요. 이 몸이 마법사를 죽일 생각을 안 하다니 관대한 처분이지.”

암흑 마탑주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고르바 탑주가 반박했다.

“안 돼!”

암흑 마탑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급 마법사가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을 했다.

고르바 탑주가 말을 이었다.

“손목은 안 돼. 한 팔로는 마법 시전 속도가 느려진다. 차라리 발목을 잘라.”

“그것도 그렇군요. 마법은 말이나 손으로 맺는 수인으로 발동되니까.”

암흑 마탑주의 표정이 펴졌다.

상급 마법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한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된 것이다.

더 말이 길어지기 전 암흑 마탑주가 마법을 영창했다.

“어둠이 가른다. 검은 칼날.”

- 치이익. 툭.

“으악!”

뭔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상급 마법사의 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암흑 마탑주는 비명을 지르는 상급 마법사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가 관심 있는 건 고르바 탑주의 반응이었다.

고르바 탑주가 암흑 마탑주를 향해 인상을 썼다.

“말했던 발목이 아니잖은가?”

“발목이나 귀나. 협의한 선을 넘지 않은 수준에서 시행을 했으니 괜찮지 않소?”

암흑 마탑주가 능글맞게 굴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고르바 탑주가 물었다.

“협의한 안에서는 알아서 해도 된다는 거군.”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마침 잘 되었군. 그쪽이 말한 협의와 융통성을 발휘할 안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암흑 마탑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요?”

“마도 왕국 근처 엘프 부족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요. 그걸 그쪽에 맡기고 싶구려.”

암흑 마탑주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르바 탑주를 보았다.

“엘프를 재료로 삼을 작정이요?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서 엘프를 잡아 올 이유가?”

마도 왕국의 마법사답게 암흑 마탑주도 혈석 외 인체 실험에 엘프를 쓰고 있었다.

인간보다 드물다고 하지만 마탑주 정도 되면 재료가 부족할 일은 드물었다.

고르바 탑주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꺼내 들었다.

“그냥 엘프가 아니요. 하이 엘프가 이 근처 엘프 부족에 있다고 하오.”

“하이 엘프! 마나가 풍부한 엘프 중에서도 최고라는 그 하이 엘프 말이요?”

암흑 마탑주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엘프의 정신적 지주라는 하이엘프도 자신 앞에서는 한낱 실험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여태까지 마법 실험에 따르면 마나가 많을수록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반인보다는 기사, 평범한 기사보다는 마스터 나이트가 더 좋은 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사람이야 어디에나 널려있지만 마스터 나이트 같은 실력자가 흔할 리 없었다.

작은 왕국에서는 아예 있지도 않을 정도로 희귀한 것이다.

왕국에서도 귀한 대접 받는 마스터 나이트를 강제로 납치해 올 수도 없었고.

그 왕국과 전쟁을 각오한다면 또 모를까.

마스터 나이트 자신의 무력도 마스터 매지션과 맞먹는다.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고르바 탑주의 말은 꿀단지가 어디에 있나 말해준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소이다.”

암흑 마탑주가 욕망으로 들끓는 눈빛을 내비치면서도 의문을 드러냈다.

“그런 귀중한 하이 엘프에 대한 정보를 왜 알려주는 거요? 독차지하면 그만일 텐데.”

“그렇게 명령하면 따를 거요?”

“미쳤소? 왜 이 몸이 별 좋은 것도 없는 명령을 따라야 하오?”

고르바 탑주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 보시오. 당신이 명령한다고 순순히 따를 마법사요? 그러니 미리 알려주고 협상하자는 것이지. 부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협상에 이은 부탁이라. 고르바 탑주께서 그렇다면야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하이 엘프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요. 적어도 마스터 매지션은 나서야 하는 일.”

“그건 그렇지요. 하이 엘프 자체의 무력뿐만 아니라 엘프 부족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마스터 나이트가 왕국의 무기이자 보물이라면 하이 엘프는 엘프 부족의 지도자격 존재.

마법사들이 하이 엘프를 잡아가는데 엘프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왕국과 비교하자면 뒤처리가 편하긴 했지만.

엘프들이 괜히 인간 왕국에 밀려 이런 곳까지 밀려온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로서는 운 나쁘게도 근처에 마도 왕국이 새로 들어선 것이다.

그나마 이건 인간들끼리의 이야기.

엘프들은 마도 왕국이라는 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수백 년을 사는 엘프들이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사이에 생긴 왕국을 알리 없었다.

암흑 마탑주가 주변의 마스터 매지션들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필요한 건 마스터 매지션이요?”

“이 몸과 달리 대부분의 마스터 매지션은 그쪽 파벌이니까.”

고르바 탑주의 편을 확연히 드는 마스터 매지션은 2명뿐.

이 자리에서처럼 대놓고 암흑 마탑주 편을 드는 마스터 매지션은 5명이 넘었다.

무엇보다 그 외 마스터 매지션들도 고르바 탑주보다 암흑 마탑주에 가까운 듯이 보였고.

“크흐, 그렇다 해도 이들도 마도 왕국의 마법사. 필요하면 나서는 게 당연하오. 대가는?”

“힘을 빌려준다면 하이 엘프에 대한 우선권을 드릴 수도 있소만.”

“이 몸이 먼저 하이 엘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들이겠지.”

“크흠, 그게 그거 아니요.”

“무엇보다 하이 엘프를 전적으로 넘기는 게 아니요. 끝나고 최소한 생명에는 지장없이 돌려줘야 하오.”

암흑 마탑주와 마스터 매지션들의 눈빛이 서로 오갔다.

고르바 탑주는 무표정하게 눈앞의 광경을 볼 뿐이었다.

마도 왕국을 대표한다는 자신이 이런 모습을 봐야 한다니.

암흑 마탑주의 협력이 없이는 마도 왕국의 힘을 제대로 쓸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파벌 다툼의 폐해였다.

암흑 마탑주가 흔쾌히 대답했다.

“좋소! 마스터 매지션을 동원하리다. 2명이면 충분하겠지요.”

“그건 이제 그쪽이 알아서 할 일이요. 아 참, 이걸 잊을 뻔했군.”

고르바 탑주가 품속에서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마법 도구를 몇 개 넘겨주었다.

암흑 마탑주가 자신 대신 다른 마법사들에게 받아들게 하면서 물었다.

“이게 뭐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탈출용으로 쓰라고 주는 거요. 부탁을 받고 갔는데 죽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소?”

“흠, 뭘 이런 걸 다.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고맙다는 인사 대신으로 생각하시오.”

“흐하하하, 그런 건 지금 말 안 해도 됩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듣고 싶군요.”

암흑 마탑주가 크게 웃었다.

고르바 탑주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체면이 크게 서는 일이었다.

고르바 탑주와 거리가 적당히 멀어지자 그의 곁에 있던 마스터 매지션 한 명이 속삭였다.

“암흑 마탑주님. 고르바 탑주를 그냥 저렇게 내버려둘 생각이십니까?”

“성급하기는. 우리는 아직 그로부터 메테오 스웜에 대한 주문을 다 확보하지 못했다네.”

대부분의 마스터 매지션들은 대마법 때문에 마도 왕국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제국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자마자 떠났을지도 몰랐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남은 마법 주문을 모두 얻어낼지도 몰랐다.

“고르바 탑주만 없어지면 마탑을 샅샅이 뒤져 대마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암흑 마탑주가 꺼림칙하다는 듯 대답했다.

“크흠, 솔직히 말하자면 고르바 탑주를 일대일로 이길 자신은 본인도 반반이야.”

마스터 매지션이 보기에 사실은 그 이하일 것이다.

암흑 마탑주의 성격으로 보아 절반의 승률만 있어도 고르바 탑주와 붙었을 것이다.

방금 전도 자신이 있다면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고르바 탑주를 찍어 내렸을 것이고.

의심이 많기도 했지만 자존심도 강했기에 일단 저지르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괜히 마도 왕국에 동조해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스터 매지션은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글쎄요. 그날따라 고르바 탑주의 상태가 나쁠지 누가 압니까?”

“흐음, 사실 그 정도로 우리들 간의 승부가 갈릴 수도 있겠지.”

“혹은 우연히 근처에 그와 사이가 나쁜 마스터 매지션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암흑 마탑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돌려 말한 거지만 다른 마스터 매지션이 암흑 마탑주와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고르바 탑주를 합공하겠다는 뜻으로.

“이것 참. 자네도 나쁜 놈이구만.”

“이거 실례되는 말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몸은 그런 의견을 낼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지. 생각해보도록 하겠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아무렴. 그날은 꼭 올걸세!”

고르바 탑주는 멀어져 가는 암흑 마탑주를 노려보았다.

마도 왕국 제일의 마법사인 자신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김검천이라는 자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르바 탑주는 다시 얼굴을 폈다.

하이엘프를 잡기 위해 암흑 마탑주 파벌의 마스터 매지션을 보냈다.

저자들은 그곳에서 김검천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자신보다 더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었고.

“죽어도 좋고 살아 돌아오면 더 좋은 일.”

그들이 크게 당할 걸 생각하니 아파져 오던 머리의 통증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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