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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05화 (205/250)

205화

괜히 고르바 탑주가 잠깐의 치욕을 참고 암흑 마탑주를 유인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피해를 보았다면 그들도 김검천에게 당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 큰 피해를 보게 말이다.

고르바 탑주가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요즘 들어 두통이 심해지는군.”

실제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그런지도 몰랐다.

그래서인지 짜증 나는 일에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잦았다.

마법사가 이래서는 안 될 텐데 말이다.

암흑 마탑주의 즐겁게 웃는 웃음소리 너머로 상급 마법사의 신음이 들려왔다.

“끄으윽. 귀, 귀가…!”

시끄럽게 웃는 암흑 마탑주에게서 눈을 돌린 고르바 탑주가 상급 마법사에게 말했다.

“너, 시끄럽구나.”

자기 때문에 다친 상급 마법사를 타박하는 고르바 탑주였다.

저쪽에 더 시끄러운 암흑 마탑주는 내버려 두고.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심했지만 상급 마법사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통이 심하다고 항의라도 하면 이번에는 귀대신 목이 떨어질지도 몰랐다.

그것도 고르바 탑주의 손에 의해서.

어떻게 보면 아부하러 나선 상급 마법사가 억울할 것은 없었다.

상급 마법사도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중급이나 하급 마법사들을 그렇게 다루었으니까.

원래 마법사가 이런 식이긴 했다.

그게 마도 왕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여들자 더 심해진 거고.

자신보다 못한 자를 더욱 가혹하게 다루는 것에.

마도 왕국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이런 체계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니 마법사가 아닌 자들에 대한 처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상급 마법사가 끙끙거리며 한 손으로 지혈을 시도했다.

고르바 탑주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근처에 있던 다른 마법사들이 달려와 상급 마법사를 도와주었다.

마법사 한 명이 상급 마법사를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넌 이게 괜찮아 보이냐!”

염려해주었다가 생각하지도 못하게 욕을 얻어먹은 마법사였다.

이래서 마법사란.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마침 마탑주실로 향하는 고르바 탑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짜증이 난 그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아, 고르바 탑주님은 또 마탑주실에 가시는 모양이군요. 그곳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그렇게 자주 드나드시는 걸까요?”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는데 평정심을 지킬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급 마법사가 평상시라면 대답하지 않을 질문에 화를 내며 입을 열었다.

“뭐긴 뭐겠냐. 뭔가 숨겨두었으니 자주 들리는 거겠지.”

“고대의 대마법 같은 비전 같은 것 말입니까? 거기에 꼭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 이상으로 값진 게 있다던가. 쳇, 그런 것보다 치료제 가져온 녀석은 없냐?”

***

마탑주실.

오직 마탑의 탑주만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

그곳을 출입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의 마법사에 불과했다.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사람은 고르바 탑주 본인 정도였다.

마탑주실 문밖에 선 고르바 탑주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았다.

차 한잔 마실 동안 마법을 영창한 고르바 탑주의 발밑에서 마법진이 빛났다.

“차원의 권능이 허가된 자에게 길을 열지어다. 유체이동.”

- 피슛.

마법진의 빛이 사라지자 고르바 탑주의 몸은 반투명한 몸으로 변했다.

고르바 탑주가 손으로 자신의 몸을 찔렀다.

- 푸욱.

찔러 넣은 손이 거침없이 자신의 몸을 휘저었다.

물속에 넣은 듯한 손의 움직임에 고르바 탑주는 만족스러웠다.

“마법 유지 시간 확인. 제대로 마법이 발동 중이니 이제 통과해도 되겠군.”

손으로 마법 효과를 확인한 건 최악의 경우 몸이 통과 대상과 겹칠 수 있어서였다.

입이나 손이 벽과 한 몸이 된다면 마법을 시전도 못한 채 그대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가장 비참한 죽음 중 하나인 굶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

고르바 탑주 정도 되면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전투 시도 아니고 여유로운 상황에서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반투명한 몸을 문에 가져다 대자 육체가 물처럼 스며들어 갔다.

마탑주실 안으로 육체의 이동이 끝나자 그제야 몸에 다시 색이 돌아왔다.

고개를 숙인 고르바 탑주는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나 확인하기 위해 손을 쥐었다 폈다.

그제서야 몸속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유체이동 마법은 사람을 고스트같이 이차원의 존재로 변화시킨다.

지금처럼 문 하나 통과하기 위해 쓸만한 마법은 아닌 것이다.

“몸을 변이시키는 게 좋은 기분은 아니야. 요즘 두통이 심해진 게 이게 관련 있으려나?”

“어디가 아프십니까? 고르바 탑주님. 요즘 같은 때는 건강이 제일인데 말입니다.”

“크르륵!”

누군가의 걱정해주는 말소리에 고르바 탑주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눈을 돌리니 익숙한 집무실이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긴 했다.

하나는 이곳이 천연색이 아닌 흑백, 2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것.

또 하나는 한쪽에 있는 의자에 펠우테와 동행한 치료사가 앉아 있는 것이다.

치료사와 의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앉아있는 게 의자인지도 의문이었으니까.

“키익, 키익!”

적어도 평범한 의자에는 저런 소리를 내는 입은 안 달려있는 것이다.

그 입으로 뭘 먹어치우려고 들지도 않고.

의자뿐이 아니었다.

책장과 책상, 의자 같은 가구의 배치부터 마법 도구까지.

그 내부는 이형의 존재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겉모습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이다.

이거야말로 고르바 탑주가 유체이동 마법을 사용해 집무실 문을 통과한 이유였다.

이곳은 탑주실이기도 했지만 또한 치료사가 머물고 있는 다른 공간이기도 했다.

그냥 탑주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면 볼 수 있는 건 평범한 탑주실 내의 모습뿐.

집무실 문이라는 매개체를 따라 유체의 몸으로 이동 안 하면 도달하기 힘든 장소였다.

몸에 걸맞지 않은 갑옷을 걸친 듯한 이 느낌.

치료사와의 대화를 빨리 마치기 위해 고르바 탑주가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면 건강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된다네.”

치료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앉아있던 의자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러면 여기에 앉으시는 건 어떨까요? 아플 때는 가능한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답니다.”

진리의 탐구에 미쳐있는 고르바 탑주라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알지도 모르는 사이에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죽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죽으면 어떻게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죽을 때는 적어도 원하는 대로 눈을 감을 것이다.

고르바 탑주가 손을 내저었다.

“안정을 취할거면 애초에 여기로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요.”

“하하, 그렇군요. 그래도 기분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만.”

고르바 탑주가 미소를 지었다.

치료사의 말에 기분 좋은 이유가 떠오른 것이다.

“그럴 거요. 방금 암흑 마탑주에게 어려운 일을 떠맡기고 왔으니.”

“기분 좋으실 만도 하겠군요. 그런데 어떤 일이기에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는지요?”

치료사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고르바 탑주나 암흑 마탑주 모두 마스터 매지션이자 마도 왕국의 실세.

그 혼자만으로도 일인 군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제국에도 당당하게 메테오 스웜을 시전한 장본인에게서 어렵다는 말이 나오다니.

고르바 탑주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제국의 일이 실패한 건 당신도 알 거요.”

“아,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메테오 스웜을 막아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초월 존재마저 나타났고 말이오.”

여유 있던 치료사의 얼굴이 처음으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 대륙에 초월 존재라고는 오직 그가 모시는 존재 하나뿐.

당연히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다.

그러니 제국 수도에 나타난 초월 존재는 당연히 거짓된 존재.

스스로를 초월 존재라고 하든 남들이 그렇게 믿든 관계없었다.

초월 존재를 신봉하는 치료사가 그게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치료사는 말했다.

“그건 소문이라도 들을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물론 진짜일 리가 없소. 본인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런데 그 이야기 중에 김검천이라는 이름도 함께 들리더구려.”

고르바 탑주가 치료사에게 김검천에 대한 언급을 했다.

치료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김검천, 그가 끼면 잘 나가던 계획들도 모조리 박살 나더군요.”

“그 김검천이라는 자를 암흑 마탑주 파벌에 맡기고 왔소.”

“아하, 기분이 나아질만 합니다. 김검천이란 사람은 적이라면 정말 끔찍한 존재니까요.”

“그래서인지 제국 수도에는 김검천이라는 자에 대한 헛소문마저 돌고 있었소.”

“저도 들었습니다. 그가 초월 존재의 화신, 아바타라는 풍문을요.”

“정말 불쾌하지 않소? 한낱 인간을 초월 존재의 위치에 두다니. 마법사도 아닌 자를.”

치료사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눈은 웃지 않았지만.

“무지한 자들이 하는 소리이니까요.”

“마법사라도 그런 걸 믿는 자들이 있지요. 심지어 마도왕국 내에서도.”

“그들은 탑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물론이요. 가능하면 그들이 죽지 않았으면 바랄 정도로.”

마법사를 걱정하는 듯하는 말투였지만 오히려 으스스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고르바 탑주에게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했다.

“이쪽과 협조하시는 이상은 원하시는 바가 이루어지실 겁니다.”

치료사와 고르바 탑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안에서는 욕망과 탐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세계의 진리를 접한 이 몸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요?”

“그 말씀대로 고르바 탑주님이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쳐야 할 때이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치료사가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고르바 탑주에게 넘겨주었다.

고르바 탑주는 방금 전까지 여유는 어디 갔는지 급하게 책을 움켜쥐었다.

치료사가 활짝 웃었다.

“하하, 고르바 탑주님. 책은 발이 없으니 어디 도망가지 않는답니다.”

고르바 탑주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색이 안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르바 탑주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치료사에게 있어서도.

그때가 오면 모든 이가 진실된 왕을 향해 경배하리라.

황제 같은 가짜 인간이 아니라.

진리의 문을 열고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한 명의 마법사를.

고르바 탑주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눈동자 같은 반투명한 검은 구체가 떠 있었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힘이 한 곳에 뭉친 듯이.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리면서.

고르바 탑주는 치료사가 넘겨준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그 속에 고르바 탑주가 원하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메테오 스웜 뿐만 아니라 다른 고대의 대마법까지.

다른 마법사들은 메테오 스웜만이 고르바 탑주가 얻은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 안의 내용을 고르바 탑주가 모두 얻는 순간.

마도 왕국은 누가 진실된 마법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이 세상 모두가 알도록 만들어 줄 것이었다.

고르바 탑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김검천이라는 자가 얼마나 잘해줄지 기대가 되는군. 가능한 힘껏 날뛰어 주기를.”

그 와중에 마법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고르바 탑주가 알 바 아니었다.

그가 마법사들을 위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일 뿐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다.

***

- 부으응.

서리와 모래로 덮힌 평지 위를 다목적 무인 차량 한 대가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김검천과 그 일행들이 탄 차량이었다.

새롭게 얻은 다목적 무인 차량 뒤에는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한 짐들이 잔뜩 있었고.

“슬슬 엘프 부족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고 했지.”

차량 안에서 김검천이 루시엘에게 물었다.

“예. 주변을 확인해보니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무인 차량 안을 멀미 때문에 굴러다니던 샤칸이 밖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네가 말한 엘프는 숲에 산다고 하잖아. 숲 같은 건 아무 데도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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