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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11화 (211/250)

211화

대장로의 말은 엘프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말.

그렇다고 순순히 대장로의 말에 따를 생각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검천이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온 목적도 묻지 않을 생각입니까? 결계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온 겁니다.”

대장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가 오해라도 한 얼굴.

“설마 얼마 전부터 마을의 결계를 뚫으려고 하던 녀석이 너희들이었나?”

“오해입니다. 엘프들의 결계가 아니라 마도왕국의 결계 때문에 방문한 거니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다만 들어줄 수는 없겠군. 침입자는 죽이는 게 원칙이니까.”

대장로의 말에 가장 먼저 발끈한 건 샤칸이었다.

“이 귀쟁이가 뭐가 어째고 어째? 고맙다고 해놓고 이제와서는 죽이겠다고?”

“그게 규칙이니까. 가슴은 아프지만 눈물을 머금고 규칙에 따르는 것이지.”

“결국은 죽인다는 말이잖아?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보시든가!”

샤칸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대장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리가 짧은 신체인 만큼 빠른 몸놀림은 힘들었다.

그래도 샤칸 정도 실력자라면 마나를 사용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뛰어오르던 샤칸은 결국 자신의 허리 높이도 넘지 못하고 자리에서 엎어졌다.

워스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로부터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해서였다.

“이건 방어 마법? 아니면 정령인가. 이상하군. 어떤 마나의 흐름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샤칸이 바로 알려주었다.

“큭, 몸에 힘이 안 들어가다니? 마나를 쓸 수 없어!”

대장로가 차가운 시선으로 넘어진 샤칸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드워프. 몸 먼저 움직이고 보는 야만적인 족속 같으니. 그러니 아픈 맛을 보는 거다.”

지켜보던 루시엘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샤칸을 낮춰보는 건 루시엘 자신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루시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드워프인 줄 알면서도 죽인다는 말을 먼저 꺼내신 건 대장로시지요.”

“아직 어린 엘프라서 그런지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구나. 엘프가 드워프의 편을 들다니?”

대장로는 자신에게 대드는 듯한 루시엘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외부에서 왔다고 해도 같은 엘프면 대장로인 자신의 말을 순순히 따라야 하지 않는가.

“옳다는 걸 말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대장로야 말로 옳고 그름을 구별 못 하시는군요.”

“본인은 규칙을 따를 뿐이다. 너희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 규칙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따르실 겁니까?”

“물론.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 와중에 워스덤은 간단한 주문을 영창하다 실패했다.

마스터 매지션이 주문 자체를 완성 못 하는 실수를 할 리 없었다.

다만 마법도 어떤 식으로든 마나와 관련되어 있는 힘.

마나 자체를 못 움직이는 데 마법을 발동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워스덤이 마법사인 줄 아는데도 입을 막지 않은 게 이런 이유가 있어서였다.

김검천이 양팔을 봉인한 수갑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리피엘에게 말했다.

“수갑을 찰 때 마나를 못 쓴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던 거 같은데.”

“속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안 했을 뿐.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마법을 거듭 실패하던 워스덤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우거도 이 수갑을 못 벗어난다는 건 진짜였군. 하급 마법사일 때도 이보다는 더 많은 마나를 움직였는데.”

“너희들 같이 강한 자들은 노력하면 수갑을 찬 채로도 그 정도 마나는 사용 가능해.”

“그래도 수갑을 풀 수는 없지 않소?”

“그 말대로. 수갑까지 찬 상태에서는 스스로 그걸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그래도 마나를 움직일 수는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봐야겠구려.”

그 와중에 김검천이 태연하게 리피엘에게 물었다.

“수갑을 푸는 방법은?”

리피엘이 김검천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김검천이라는 인간은 도대체 겁이라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검천이 수갑을 차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은 없었을 터.

그저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이런 건지 의문이었다.

“마나도 제한하는 그 수갑은 특별히 제작된 것이야. 열쇠는 장로 이상들만 가지고 있고.”

김검천의 시선이 말다툼을 하고 있는 대장로와 루시엘을 지나 옆의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 장로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장로와 사고방식이 별 차이 없어 보였다.

하긴 그들이 대장로와 반대 입장이라면 저렇게 평온하게 앉아 있을 리 없었다.

“열쇠 외에 푸는 방법은 없나 보군.”

“오러라면 모를까 마나로는 힘들다. 그래도 한 말이 있으니 본인이 대장로를 설득해보지.”

“도저히 설득될 대상은 아닌 것 같은데. 너와는 달리 들은 척도 안 하고 있었어.”

하긴 친아들의 유품을 가져온 김검천 일행도 규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대장로였다.

대장로는 아들이 마을을 떠난 지난 100년에 걸쳐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도 대장로는 여전히 규칙을 들먹이며 김검천 일행을 죽이겠다고 한다.

상황이 답답하기 짝이 없던 리피엘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니 그 친구가 이곳을 떠난 거였어. 여기서 차분히 죽어갈 바에는 차라리 밖에서 죽는 게 낫겠다면서.”

김검천도 이 닫힌 세계 속의 엘프들이 느끼는 감정을 대충이나마 알 것 같았다.

대장로를 만나고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가 얼마나 말이 안 통하는지 느꼈으니까.

죽을 때까지 군대에서 막내로 지내야 하는 셈 아닌가.

하물며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대장로와 장로들의 말을 들어야 했던 엘프들은 어떻겠는가.

어딘가로 도망도 가지 못한 채.

그러니 경호대장이라는 직위의 리피엘마저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외부인에 불과한 김검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이곳 엘프들이 억눌려 있는 감정은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장로들은 이 마을의 엘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군.”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는 그들만 알겠지.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오래 살아왔고 많이 가진 자일수록 변화를 싫어하기는 하지. 그것이 좋든 나쁘든.”

리피엘이 김검천 일행을 여기까지 데려온 건 마을의 규칙 때문은 아니었다.

마을의 경직된 규칙에 반항해 떠난 엘프의 마지막 유품.

대장로가 아끼던 아이의 유품을 가져온 김검천 일행들.

이들에 의해서 마을에 조금이나마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으면 했다.

대장로나 장로들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고집을 버릴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너희들이 찾아와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지. 하지만 그냥 이렇게 끝날 것 같군. 앞으로도 이럴 테고.”

리피엘은 암울한 눈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루시엘은 장로들을 호위하는 다른 검사 엘프들에 의해서 끌려나가고 있었다.

리피엘은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한 듯했다.

하긴 몇 마디의 말과 외부에서 온 몇 사람으로 풀릴 일이면 진작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리피엘이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검천이라고 했었지. 넌 어느 손을 자주 쓰지?”

“양손 다 쓰지만 굳이 따지면 오른손이겠지.”

“알겠다. 최악의 경우를 각오해두고. 일단 본인이 나서서 대장로를 상대해보도록 하지.”

버둥거리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 샤칸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엥? 무슨 의도로 주로 쓰는 손을 물은 걸까?”

김검천이 수갑을 이리저리 당겼다.

샤칸의 눈도 수갑을 따라 움직였다.

“보다시피 양손이 묶여 있으니 팔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처지잖아?”

“그러게. 수갑을 풀 수가 없으니 양팔도 쓰기 힘들어.”

“그러면 최악의 해결방법이 뭔지 알아?”

“뭔데?”

“한 손을 자르는 거야. 그러면 남은 한팔 만큼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우와, 진짜 최악이네?”

리피엘은 대장로에게 가려다가 김검천에게 잠깐 시선을 빼앗겼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김검천의 갑옷와 손에서부터 빛이 나는 듯해서였다.

리피엘은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신기한 게 지금 상황을 해결해 줄 건 아니지 않은가.

“대장로님! 잠시 제 이야기도 들어 주십시오.”

“뭔가?”

대장로는 리피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완고함과 고집으로 응축된 듯한 눈동자.

평소라면 대장로의 일에 의문조차 가지지 못할 테지만 리피엘은 각오를 굳혔다.

“이들은 나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계가 목적이라고 했다. 위험한 건 확실해.”

“그게 목적일지는 모르지만 악의를 가지고 마을을 찾아온 건 아닙니다.”

“안다. 이들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요? 그런데도 이들을 그렇게 대하는 겁니까?”

“그게 규칙이라는 거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든 행동 범위. 자비라면 베풀어 줄 수 있겠지.”

리피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들을 죽이는 걸로 말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합니까? 오늘도 순찰 중 죽은 엘프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태어나는 엘프보다 성인 엘프가 죽는 속도가 더 빨랐다.

엘프가 죽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다가는 마을에 남을 엘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으음, 그것참 안 된 일이군. 다른 엘프를 보내 대체하도록.”

“교대 가능하다고 해도 남은 자들은 피로와 상처로 제 상태가 아닙니다! 엘프가 없습니다!”

“허허, 그거 힘들겠군. 하지만 규칙은 지켜야지. 그게 규칙이니까.”

그놈의 규칙.

대장로는 항상 규칙이라는 말로 어떤 변화도 따르지 않으려 했다.

규칙이라는 말에 얼마나 매여 있는 것일까.

화를 참을 수 없던 리피엘이 폭발했다.

“대장로! 더이상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부디 주변을 살필 줄도 알아주십시오!”

- 휘잉.

주위의 엘프들은 리피엘의 행동에 모두 얼어붙었다.

대장로의 딱딱하던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대장로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주변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냄새가 변해갔다.

“리피엘 경호대장.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가?”

“대장로님도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셔야 알 것 같아 한 말입니다. 규칙에 매이지 말고요.”

“그렇군. 잘 알겠다.”

대장로가 리피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히 내놓았다.

결코 좋지 않은 쪽으로.

“이래서 규칙이 중요하지. 리피엘도 잡아라. 자신이 지켜야 할 규칙을 거부하는구나.”

옆에서 호위하고 있던 검사 엘프들이 주춤거렸다.

리피엘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설마 대장로에 거슬리는 말 몇 마디 했다고 자신마저 규칙에 따라 처단하려 들다니.

“대장로님?”

“그러게 마을의 규칙을 어기려고 하지 말았어야지. 뭣들 하는 게냐?

검사 엘프들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경호대장님.”

“대장로님의 말씀이 경호대장님의 명령보다 우선시 되니까요.”

“너희들도 그동안 만만치 않게 머리가 굳은 거냐!”

자신만큼은 아니라지만 검사 엘프들도 나름대로 실력자.

이들이 한꺼번에 덮치면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건 어려웠다.

- 윙위윙.

리피엘이 검을 뽑아 들어 마령검을 발동했다.

누가 봐도 순순히 잡혀가지 않을 태도.

검사 엘프들이 뒷걸음질 쳤다.

결국에는 리피엘을 잡기야 하겠지만 그 와중에 누가 얼마나 다칠지는 모를 일.

거기다 내키지 않은 일인 만큼 서로 눈치만 보고 나서는 자는 없었다.

대장로가 한숨을 쉬었다.

늙은 자신이 나서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것도 잡아온 죄인의 처벌을 논하는 자리에서.

“가능하면 순순히 잡혔으면 했건만. 죄가 더 깊어지는구나. 바람의 상급 정령이여.”

- 퍽!

리피엘의 등 뒤에서 어느새 나타난 반투명한 푸른 정령이 머리를 후려쳤다.

검사 엘프들을 신경 쓰느라 방심한 리피엘은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샤칸이 대장로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깐이었지만 리피엘은 마스터 나이트와 상급 기사 사이의 실력자.

아무리 기습이라고 하지만 일격에 기절시키다니.

대장로가 검사 엘프들에게 짧게 지시했다.

“리피엘에게도 수갑을 채워라. 그리고 저들과 함께 끌고 가라!”

“예!”

김검천이 다가서는 검사 엘프들을 보며 수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대화는 여기서 끝인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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