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15화 (215/250)

215화

김검천은 보기만 해도 무서운 강철 대롱을 들고 검사 엘프들을 향해 걸어갔다.

지친 엘프들에게는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정신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저벅. 저벅.

장로 엘프들에 이어 자신의 상급 정령도 불러오려던 대장로가 흠칫했다.

김검천이 어떻게 정령을 퇴치했는지는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결과는 눈에 보였다.

2명의 장로 엘프가 쓰러진 것만 해도 이미 큰일.

자신의 상급 정령마저 강제로 역 소환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마법이야 쓸 수 있겠지만 정령이야말로 엘프들이 가진 가장 강한 힘.

그 힘을 검사 엘프들을 구하기 위해 김검천에게 써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대장로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지켜야 한 일들이 남아 있었다.

상급 정령을 못 쓰게 된다면 앞으로 규칙을 지키는 데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미리내가 대장로의 반응을 보고했다.

[상대는 김검천 함장님의 힘을 보고 적극적으로 싸울 마음이 사라진 모양입니다.]

“뭐, 저자가 신봉하는 규칙 안에 검사 엘프들을 지키는 내용은 없나 보군.”

[대장로의 규칙이라는 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로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규칙인 걸까. 필요할 때 아무 데도 쓸모없는 규칙이라면.”

때마침 내린 눈이 강철 대롱 위에 떨어졌다.

- 치치직.

닿자마자 눈은 흘러내리지도 않고 바로 수증기로 변해 다시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흐물거릴 정도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철 대롱이 얼마나 뜨거워서 저러는 걸까.

김검천이 향하는 방향에 있는 엘프들이 기겁을 하며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다친 몸으로 빠른 움직임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도망칠 수 있는 거리에도 한계가 있었고.

도망치던 엘프들이 걸음을 멈춘 건 한 검사 엘프 곁이었다.

목이 다리만큼이나 부어올라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어진 바닥에 누운 엘프의 옆으로.

그가 바로 맨 처음 목을 마충에 물린 검사 엘프였다.

이제 두 손으로 목 부분을 잡고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거 같았다.

“쌕…쌕…”

김검천이 움직일수록 그가 원하는 목표가 누구인지 확연해졌다.

김검천은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숨을 헐떡이던 검사 엘프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덜 다친 검사 엘프가 어떻게든 막으러 나서려는데 다른 동료가 붙잡았다.

“그만둬, 저 녀석은 이미 늦었어. 막으면 너마저 죽을 거야!”

“어차피 다 죽을 거면 적어도 반항이라고…”

“아니, 반항하면 다 죽을지 모르지만 저항하지 않으면 몇 명 정도는 살 수 있을지 몰라!”

“어쩌라는 거야…”

감정 변화가 인간보다 덜한 엘프, 그것도 무력을 담당하는 검사 엘프가 눈물을 흘렸다.

저 김검천이라는 인간이 곧 저지를 일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힘을 써가며 저런 강철 대롱을 만들었겠는가.

저 길고 날카로운 강철 대롱으로 엘프들의 몸에 피로 물든 구멍을 만들 생각인 것이다.

동료의 말이 타당해서 그런지 김검천이 다가오는데도 저항하는 엘프들은 없었다.

그저 분노한 눈으로 김검천을 노려볼 뿐.

마침내 김검천이 목이 부은 검사 엘프 앞에 도착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강철 대롱을 검사 엘프 얼굴 위에서 휘저었다.

잠시 후 김검천은 제 색깔을 찾아가는 강철 대롱을 검사 엘프의 목 위로 들어 올렸다.

“딱 좋은 온도야. 박아넣기 좋을 정도로. 더 늦기 전에 사용해야겠지?”

그 말을 들은 엘프들의 얼굴색도 파랗게 질려갔다.

심지어 눈을 돌린 엘프들도 있었다.

이제 곧 끔찍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목이 퉁퉁 부은 검사 엘프는 이제 의식마저도 거의 사라진 듯했다.

김검천은 사정없이 그 검사 엘프의 목에 강철 대롱을 내리꽂았다.

- 푸욱!

“으앗!”

“저런 잔인한 인간!”

“어떻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엘프에게 저런 짓을?”

눈을 돌리지 않고 김검천과 검사 엘프를 지켜보던 한 엘프가 옆의 동료에게 말했다.

“응? 잠깐만. 이상해.”

눈을 감은 동료 엘프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다 죽게 생겼으니 이상하겠지.”

“아니야. 눈을 뜨고 저 친구를 좀 보라고.”

- 후욱.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에 따라 다들 강철 대롱에 찔린 검사 엘프를 바라보았다.

검사 엘프의 목은 아직 부어있었지만 얼굴색은 차츰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가슴도 제대로 요동치고 있었고.

목에 저런 강철 막대를 찔렀는데도 오히려 살아나다니.

엘프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김검천에게 있어서는 생존을 위한 상식.

검사 엘프는 목이 심하게 부어 기도가 막히니 호흡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호흡을 위해서는 기도와 외부의 연결 고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김검천은 강철 대롱을 가열해 소독한 후 목에 찔러넣은 것이다.

기도 안에 들어간 강철 대롱을 통해 공기가 출입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 필요했던 힘과 기술은 김검천과 미리내의 동반 작업이 필요했다.

이유를 모르는 엘프들이 보기에 기적과 같은 신기한 일이었다.

엘프들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긴 귀를 쫑긋거렸다.

“저 행동이 엘프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거였어?”

“인간의 행동은 겉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었던 건가…”

“아, 봤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저 인간의 곁에서 초월 존재 같은 걸 보았다고.”

“야, 너도?”

“오오, 이건 기적이야. 저 인간, 아니 김검천이라는 분은 우리를 위해 오신 걸거야.”

“그러고 보니 하이엘프께서도 저들을 인정하시지 않았나?”

“사실은 본인도 대장로보다 하이엘프님의 말씀이 가슴에 더 와닿더라고. 규칙이 뭐냐고.”

“맞아. 그놈의 규칙. 이제는 지긋지긋하지 않아?”

김검천을 바라보는 엘프들의 눈에 담긴 적대심은 점차 친근감으로 변해갔다.

저런 놀라운 힘을 가졌는데도 이렇게까지 참은 건 엘프들을 배려해서였을 것이다.

허락 없이 침입한 자라고 했지만 정말 악의를 가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저런 힘을 가졌다면 엘프들을 처리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도 쉬운 일.

강대한 무력을 가졌음에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다니.

이성적인 걸 좋아하는 엘프에게는 상대가 인간이었지만 존중할만한 대상으로 보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도 공격해 오던 마충을 퇴치해 준 것이었고.

자리에서 일어선 김검천이 엘프들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도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정도는 있을 텐데. 이대로 그냥 보고만 있을 텐가?”

엘프들이 망설이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절한 리피엘이 막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것이다.

“너희들, 뭐하고 있나!”

“아, 경호대장님!”

“너희 스스로도 알고 있을 거다. 김검천의 말이 옳다는 걸. 그렇다면 행동으로 옮겨라!”

“알겠습니다!”

리피엘의 말대로 김검천의 지시가 맞다는 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방금 전까지 싸웠던 적이었기에 약간의 망설임이 남아 있었을 뿐.

망설임은 사실 리피엘의 한마디에 바로 사그라들 정도로 별 것 아니었다.

엘프들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맞다고 등을 떠밀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엘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다쳤지만 거동이 가능한 상처와 움직이기도 힘든 상처의 차이는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엘프들이 중상을 입은 자들을 운반하거나 치료약을 가지러 갔다.

김검천이 다가온 리피엘에게 말했다.

“다행이로군. 기절한 사이에 크게 안 다친 거 같아서.”

“휴우, 싸우는 사이에 기절이나 하고 있던 본인이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으려나?”

리피엘이 한숨을 쉬었다.

리피엘은 명색이 마을의 경호대장이었다.

외부인인 김검천 일행들이 적과 싸우는데도 자신은 그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심지어 같은 엘프인 대장로의 상급 정령에게 두들겨 맞고서 정신을 잃었서 그랬다니.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그런 리피엘을 생각해서인지 김검천이 조언했다.

“그러면 기절했을 때 못한 걸 지금이라도 해야지 않겠나? 다들 자네를 기다린다고.”

정신이 든 리피엘의 고개가 똑바로 들렸다.

다른 자들을 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김검천이 말해주다니.

“자네의 말대로야. 고맙군.”

“고맙긴. 나야말로 아까 전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던 너한테 감사하고 싶다고.”

리피엘은 김검천의 말대로 다른 엘프들을 도우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또한 루시엘과 샤칸, 워스덤도 어느새 다친 엘프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엘프들은 미안해하면서도 그들의 도움을 감사히 받고 있었다.

공통의 적이었던 마충들을 함께 격퇴하면서 묘한 유대감이 생긴 것이다.

혼란했던 상황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는 듯했다.

이제 김검천 일행은 엘프들에게 있어 침입자라기보다 동료 같은 느낌인 듯했다.

그렇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간에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자리에 대장로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뭣들 하는 짓이냐? 어째서 다들 인간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거란 말인가!”

대장로의 난입에 잠시 움찔한 엘프들이었다.

대장로가 내세운 규칙에 따르면 말이야 맞는 말이었으니까.

대신 리피엘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걸 꼭 물어야 하는지요? 보시면 알만한 일이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라고 해도 대장로는 규칙을 어긴 리피엘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대장로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규칙을 준수해야지. 어떻게 엘프가 인간이 하는 말에 따르는가?”

“그러면 다친 엘프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라는 말씀입니까?”

“하긴 해야지. 다만 먼저 김검천과 그 일행들의 처우를 결정한 다음에 할 일이다.”

리피엘의 표정이 화를 낼 듯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이제와서는 대장로에게는 화를 내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리피엘이 대장로에게 말했다.

“예. 대장로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오! 과연 리피엘 행동대장이로군. 언제나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알고 있지.”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니 저는 김검천의 말대로 엘프들을 돕는 걸 먼저 해야겠군요.”

“뭐라?”

대장로가 리피엘의 어깨를 붙잡았다.

노여움에 대장로가 화가 나서 부들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피엘이 어깨를 힘껏 흔들어 대장로의 손을 떼어냈다.

“대장로님도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저를 잡아가든지, 김검천과 그 일행을 처리하시든지 말입니다.”

대장로가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리피엘을 바라보았다.

지난 수백 년간 자신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적 없던 리피엘이 이렇게 나오다니.

자신을 버린 그의 아이보다도 더 순종적이었던 리피엘 아니었던가.

대장로는 배신감을 느끼며 검사 엘프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친 엘프들은 내버려 두고 먼저 리피엘부터 잡아 가둬라! 규칙을 어긴 죄를 묻겠다!”

검사 엘프들은 소리치는 대장로를 힐끗 쳐다볼 뿐 아무 말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대장로는 그들이 자신의 말을 못 들었는지 싶어서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몸의 말이 안 들리는 게냐? 당장 리피엘을 잡아라! 검사 엘프들!”

그나마 장로 엘프들만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뿐.

나머지 엘프들은 김검천의 지시와 리피엘의 말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대장로가 계속 고함을 쳤지만 반응하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대장로는 거기에 없는 존재로 여기듯이.

대장로가 비명을 지르듯 쉰 목소리를 냈다.

“이 몸은 대장로다!”

“그만해라. 아직도 모르겠나? 대장로.”

하이엘프가 댕댕이에 올라탄 채 대장로를 향해 다가왔다.

대장로가 혼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뭘 말입니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지 말게나. 자네의 그 규칙이라는 건 도가 넘었어.”

“말이 심하십니다. 규칙에 모욕하는 건 하이엘프이시더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크르릉--!”

대장로가 하이엘프를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자 댕댕이가 반응했다.

댕댕이의 행동에 대장로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이엘프가 피식 웃었다.

“규칙이 초월존재도 아닌데 모욕할 게 뭐가 있겠나? 정신 차리게.”

“제가 어떻게 보이길래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규칙은 엘프를 위해 만들어진 걸세. 규칙을 지키기 위해 엘프가 살아야 하는 게 아니야.”

하이엘프의 시선이 김검천과 일행들을 향했다.

엘프도 아닌 자들이 엘프를 위하고 있었다.

대장로라는 엘프는 다친 엘프들은 내버려둔 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저들을 보게.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