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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17화 (217/250)

217화

하이엘프도 오래 살아온 만큼 대장로만큼은 아니더라도 변화가 없었으면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이엘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건강한 엘프들과 수는 줄어만 갔고 각자 부담은 늘어만 갔다.

결계가 있다지만 정신적으로 죽어가게 만드는 닫힌 사회.

그리고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사고와 죽음.

태어나는 아기는 줄어들고 늘어나는 건 죽은 자뿐.

이 엘프 사회는 악순환의 굴레에 들어선 것이다.

하이엘프는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 건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하이엘프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묘목을 뒤져서 멀쩡한 부분을 찾아내 보존한 거야. 그게 마지막 조각이지.”

“마도왕국 결계를 해제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는 건가. 그런 귀중한 걸?”

이곳이 망해간다고 해도 이 조각에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말한 대로의 힘이 있다면 결계의 유지도 가능할 터.

엘프들도 얼마간이지만 더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세계수 묘목의 조각을 자신에게 넘겨주다니.

하이엘프가 어딘가 영혼 한 조각이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멸망할 것. 그러면 너에게라도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게 좋을 테지.”

김검천이 나무 조각을 하이엘프에게 내밀었다.

“너희들이 죽는 걸 알면서 받을 수 없는 노릇이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

하이엘프가 활짝 웃었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가 거짓처럼 보일 정도의 밝은 표정.

“아하하,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우리가 죽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 말은? 아, 다른 엘프 부족이나 마을로 흩어진다는 건가? “

“또 한가지. 우리 마을 엘프는 더이상 세계수와 연결될 수는 없을 뿐. 우리 스스로 묘목을 버린셈이니까.”

가지고 있는 소중한 걸 스스로 망가트렸다.

대장로가 저지른 일이기는 했다.

다만 처음부터 하이엘프가 개입했다면 이런 사태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을 터.

여태까지 대장로의 말에 순종하기만 했던 엘프들에게도 아예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판단은 세계수의 묘목이 아니라 엘프 스스로 알아채고 있을테고.

하이엘프가 묘목의 나무 벽을 어루만졌다.

- 우웅.

하이엘프의 손길이 닿은 나무 벽이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이 진동했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건드린 나무 벽으로부터 푸른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김검천이 물었다.

“그러면 세계수가 있는 마을로 옮겨 가면 될 것 아닌가?”

“너무 멀어. 이동하다가 인간들이나 괴물들에게 당할 염려가 크지.”

“그건 내가 해결해주지.”

하이엘프가 고개를 흔들었다.

“세계수와 함께하는 곳은 대체로 폐쇄적이지.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아, 다른 곳은 대장로보다 지독한 엘프들도 많다고?”

그 말에 김검천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규칙을 들먹이던 대장로보다 더한 엘프라니.

역시 세상은 넓고 엘프는 다양했다.

김검천이 뭔가를 해준다고 해도 엘프들이 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

무엇보다 엘프들은 하이엘프의 말을 따를 것이었다.

하이엘프가 말을 이었다.

“세계수 묘목의 나무 조각을 넘겨준 것에 대해서는 다른 엘프들에게는 알리지 말아줘.”

“불필요한 희망을 갖게 하기 싫다는 건가. 희망 고문이니까.”

하이엘프가 지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희망이 있기에 절망하잖아?”

“하긴 희망을 품은 만큼 좌절하면 그만큼 상처를 입겠지.”

“하하, 이 몸도 사실 대장로에게 뭐라고 할 만한 입장은 아니었던 것이야.”

“대장로가 규칙에 잡혀 있었다면 그쪽은 세계수의 묘목에 잡혀 있었군.”

“뭔가를 집착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거든. 오늘 그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었어.”

김검천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물건이라도 하이엘프는 무거운 짐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볼일을 끝낸 김검천과 하이엘프가 밖으로 나섰다.

나가는 와중에 하이엘프가 의외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길래 김검천이 물었다.

“이제 다 내려놓기라도 한 표정이로군.”

“숨길 게 없어질 예정이라서. 묘목이 힘을 다했다고 엘프들에게 알릴 생각이야.”

“비밀로 하려던 게 아니었나?”

“활기가 넘칠 때 말해야지. 어차피 숨기지도 못해. 괜히 네게 그걸 넘긴 게 아니라고.”

“무슨 말이지?”

“이제 곧 마을을 지키던 결계가 사라질 거라는 말이지. 그러면 모두가 모를 리가 없지.”

김검천은 하이엘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세계수 묘목에 결계를 유지할 힘이 남아 있을리 없었다.

세계수의 묘목이 죽어간다고 듣긴 했지만 김검천마저 실감할 정도라니.

오히려 여태까지 결계를 지탱하고 있었던 게 신기한 일이었다.

“하긴 갑자기 결계가 사라져서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 네가 알리는 게 낫겠군.”

“본인이 직접 말한다고 해도 아예 대비를 못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까 나무 벽에 손을 대었을 때 대화를 했던 건가.”

“사람의 말처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고마워.”

하이엘프가 근처에 있는 엘프를 불렀다.

주변의 상황이 대충 마무리되어 겨우 휴식할 참이었지만 엘프는 급히 달려왔다.

하이엘프가 부르는데 약간의 피곤함 정도는 무시할 수 있었다.

“하이엘프이시여,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마을 전체의 엘프를 여기로 모아와라. 혼자서는 힘들 테니 다른 자와 함께해라.”

“알겠습니다.”

엘프는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 묻지도 않고 다른 엘프들과 함께 움직였다.

하이엘프는 아까 올라선 자신의 의자 쪽으로 이동했다.

김검천이 미소 지었다.

“의자에 다시 올라서려고?”

하이엘프가 의자를 밟고 다시 탁자 위로 올라섰다.

“아니, 이번에는 탁자야!”

“아까는 의자에 올라서더니?”

“탁자가 더 높잖아? 하지만 회의 탁자에 올라서면 대장로가 화를 내서 못 올라간 거야.”

그야 회의하는 탁자에 발을 올리면 누구나 보통 화를 낼 것이다.

상대가 하이엘프라서 그런지 대장로는 되어야 말릴 수 있었던 것 같고.

탁자 위에 올라서자 그제야 하이엘프의 키가 김검천과 비슷한 높이가 되었다.

으스대는 하이엘프는 즐기시도록 놔둔 김검천이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언제 결계가 사라지지?”

“빠르면 아마 내일쯤?”

하이엘프가 활짝 웃었다.

웃을만한 일이 아닌데도 너무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하이엘프였다.

하이엘프도 어딘가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인가.

어쩌면 하이엘프는 죄책감으로 인해 대장로보다도 더한 모습을 보여줬을지도 몰랐다.

김검천이 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하이엘프와 반대로 복잡한 표정의 리피엘이 김검천에게 다가왔다.

대장로가 스스로 물러서게 된 건 변화가 필요한 만큼 환영할 일이었다.

다만 수백 년이 넘도록 지시받는 일에 익숙해진 엘프들이었다.

개인적인 일이면 몰라도 마을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건 그들에게 어려운 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리피엘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리피엘은 시키는 대로 따르면 되는 엘프들과 달리 결정하는 입장인 것이다.

리피엘이 아무렇지 않은 척 김검천에게 물었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이엘프님과 같이 갔던 일은 잘 처리되었나 보군.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 얼굴도 그렇게 티가 나던가?”

“응? 그게 아니라 하이엘프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는 건 근래 처음 봐서 너에게 물은 거야.”

말을 하는 도중 리피엘의 굳어진 표정이 약간이나마 풀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이엘프는 엘프들이 본능적으로 따르는 대상.

하이엘프가 좋아하면 엘프들도 좋아하고 그가 슬퍼하면 엘프들도 슬퍼하게 된다.

저렇게 기뻐하는 하이엘프라면 침체 된 마을 분위기도 어느 정도 밝아질 걸로 보였다.

그래서 리피엘도 마음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묻고 싶은 건 그게 전부라면 섭섭한데.”

“아,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지. 너희들이 언제 떠날지도 궁금해서 말이야.”

김검천은 하이엘프에게 빨라도 내일은 되어야 결계가 사라진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만큼 하루 정도는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결계가 사라질 때쯤에 마도왕국으로 떠날 예정.

김검천 일행의 목적지인 마도왕국에서 얼마나 마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거기는 주변의 모두가 적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김검천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내일 출발할 생각이야.”

“그래도 되겠나? 좀 더 쉬고 가지 그러나.”

“하이엘프께서 이야기할 내용을 들어본다면 우리 생각은 안 날걸?”

딱 잘라 말하는 김검천 때문에 리피엘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곧 알게 될 내용이 아니었다면 당장 물어보았을 것이다.

리피엘은 김검천에게 묻는 대신 엘프들을 빨리 모으는 방법을 선택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오늘만큼이라도 푹 쉬고 가라. 손님으로서.”

- 탁탁.

리피엘이 떠나자 김검천은 하이엘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하이엘프는 아예 탁자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동안 억눌려왔던 억압감의 표출인지도 몰랐다.

대장로가 저 모양이었는데 하이엘프라고 멀쩡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혼자서도 잘 노는 하이엘프를 응시하며 김검천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리내. 아까 하이엘프에게 받은 나무 조각으로 새싹을 틔울 가능성은 있을까?”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가 준 소재든 우리의 장비든 능력 밖의 일입니다.]

“단호한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할 수 없지. 그러면 적어도 이걸 유용하게 사용해주자고. 아무런 후회도 없도록.”

마을의 엘프는 생각보다 빨리 모였다.

마을이 공격당한 직후라서 그런지 모든 엘프가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서였다.

리피엘이 하이엘프에게 말했다.

“현재 올 수 있는 엘프들, 특히 성인 엘프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잘했다. 리피엘.”

모여든 엘프들은 모두 조용히 하이엘프가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스덤이 옆에 있던 루시엘에게 속삭였다.

“나뭇잎이 떨어져 내려도 들릴 만큼 조용하군요.”

루시엘이 뭐라고 대답하려는데 엘프 한 명이 소리쳤다.

“그쪽 조심해! 나뭇잎이 떨어진다!”

모여 있던 엘프들 중 일부가 급히 흩어졌다.

그곳으로 묘목의 나뭇잎 하나가 바람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 타탁!

엘프들이 웅성거렸다.

“휴우, 하마터면 나뭇잎에 맞을 뻔했네.”

“맞으면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아프다고.”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이니까. 크기만큼 좀 무겁기도 하고.”

샤칸이 워스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진짜 나뭇잎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정도네? 역시 마법사가 똑똑하기는 해.”

워스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

정리가 끝나 다시 조용해지자 하이엘프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제 마을은 끝이다!”

안 그래도 조용했는데 하이엘프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엘프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반응도 없자 하이엘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다들 알아들었다는 건가? 못 알아들었다는 건가?”

딱딱한 표정을 지은 리피엘이 하이엘프에게 말했다.

“하이엘프이시여. 너무 요약하셔서 말씀하신 듯합니다.”

“이런 실수를, 그러니까 결계가 한계에 달했다는 말이다. 묘목이 죽어가고 있거든.”

동네 산책 나온듯한 하이엘프의 느긋한 얼굴과 말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

그래서인지 엘프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는 게 좀 늦었다.

다들 멍하니 하이엘프를 바라보고 있는데 하이엘프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마디로 결계로 마을을 보호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세월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이야.”

그제야 이해가 되었는지 엘프들이 저마다 앞뒤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 나름대로 이성을 유지한 엘프들 중 대다수가 일치한 의견이 있었다.

의견이라고 해도 결국은 질문에 가까웠지만.

“하이엘프이시여. 그러면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보통 이런 일은 대장로와 장로 엘프가 모인 회의에서나 결정할 중대한 일.

하지만 그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설사 있었다고 할지라도 엘프들의 마음은 그들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믿을 건 하이엘프와 리피엘 같은 믿음직한 엘프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김검천 일행에게 기대를 한 것인지 이쪽을 쳐다보는 엘프도 있었다.

위급 상황에 빠지면 뭐라도 믿고 싶은 게 당사자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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