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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21화 (221/250)

221화

하이엘프가 신음을 흘렸다.

“안 돼! 결계도 아니고 묘목 자체가 쓰러지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세계수의 묘목이 힘을 다해 결계가 사라졌다고 해도 나무 자체는 남아 있었다.

태어나서 무덤까지 엘프에게 필요한 소재를 제공하는 묘목이었다.

그렇기에 하이엘프는 마을에 남아 있을지 떠날지 엘프들에게 선택권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세계수의 묘목이 쓰러진다면 엘프들에게 남은 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리피엘이 하이엘프의 어깨를 잡았다.

“그것도 문제지만 지금 당장은 엘프들이 위험합니다! 저만한 크기의 나무가 쓰러지면 엘프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100층도 넘을 듯한 높이와 그에 못지않은 두께마저 가진 묘목이었다.

묘목의 줄기부터 뿌리 부근까지 모두 마을의 생활권.

묘목이 쓰러지면 그 여파가 마을 전체에 미칠 것이다.

심지어 묘목이 쓰러지는 방향이 하필이면 엘프 마을 중심부를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리피엘의 말대로 피하지 못한 엘프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것이었다.

그때 기울어져 가던 묘목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이엘프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누가 묘목이 쓰러지고 있는 걸 막은 거지?”

리피엘이 다급히 대꾸했다.

“어찌 되었든 일단 마을로 가시죠. 한 엘프의 힘이라도 필요한 때입니다.”

마을을 향해 달려가려는 두 사람 앞을 김검천이 가로막았다.

마음이 급한 리피엘이 김검천을 향해 소리쳤다.

“왜 길을 막는 거냐? 우리는 지금 시간이 없어!”

“나도 알아서 끼어든 거야. 너희들은 어느 쪽이 중요하지? 묘목과 엘프들의 목숨 중에서.”

평소라면 또 모를까.

세계수의 묘목은 이미 죽어가고 있고 그 이후의 일을 논하던 차였다.

그렇기에 리피엘은 망설임을 버리고 바로 대답했다.

“그야 엘프들이지! 엘프들은 지금부터가 새로운 반환점이라고!”

그에 비해 바로 대답하지 못한 하이엘프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런, 이런. 솔직히 말해 본인은 세계수의 묘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이엘프시여!”

리피엘이 목소리를 높이자 하이엘프가 손을 내저었다.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으라는 행동.

리피엘은 자신의 무례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불만이 남아 있는 리피엘을 슬쩍 본 하이엘프가 김검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저 묘목의 생명력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이미 묘목과는 서로 작별인사까지 나누었고. 지금은 어떻게든 엘프들을 살리는 게 먼저야.”

“결론이 나왔군. 그러면 나에게 맡겨주겠나? 다른 건 몰라도 엘프들은 구해내도록 하지.”

“부탁하지. 어떻게 할 건지는 모르지만. 엇?”

하이엘프가 감탄사를 발했다.

파워드슈츠에서 빛을 뿜어내며 김검천이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리피엘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법도 정령의 힘을 사용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늘을 날아오르다니.

김검천이 아래에 있는 자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먼저 갈 테니 뒤를 따라 마을 쪽으로 오라고.”

김검천은 그 말을 남긴 채 묘목을 향해 날아가며 입을 뗐다.

“미리내. 파워드슈츠 에너지 잔량은?”

[80% 이상 남았습니다.]

“좋아. 제대로 힘 좀 써봐도 되겠군.”

[무인차량에서 충전이 가능하다고 해서 에너지를 낭비하시는 건 곤란합니다.]

무인 공장 구역을 열면서 무인차량에 파워드슈츠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장치를 달았다.

이 기능이 없었다면 김검천은 파워드슈츠를 충전하러 함선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다만 효율이 좋지 않아 파워드슈츠의 배터리를 모두 충전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필요할 때 쓰지 못하면 아낄 이유조차 없는 거지. 1차 인증 개방.”

파워드 슈츠의 에너지 반응로에서 빛이 뻗어 나오며 오른손의 장갑에 스며들었다.

빛은 대낮인데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번쩍였다.

하지만 마을에 있는 엘프들은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당장 지금까지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던 머리 위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었으니.

“모두 이쪽으로! 묘목은 저 반대편으로 넘어질 거야!”

“반대편으로 넘어진다고 해도 마을광장부터 그 주위를 벗어나야 해!”

“엄마! 엄마!”

“얘야! 어디 있니!”

“일단 묘목으로부터 멀어져! 위험하다고!”

“장로 엘프님들은 어떡해?”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어!”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선별해 들은 김검천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대장로를 포함해 장로 엘프들이 원을 그리며 서로의 등에 손을 대는 중이었다.

어제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저건 엘프의 비법.

서로 마나를 공유해 그걸 나눌 수도, 하나로 합칠 수도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 힘으로 그들이 불러낸 바람의 상급 정령들이 가장 윗부분에 모여 묘목을 밀고 있었다.

잠시나마 묘목이 쓰러지지 않고 버틴 이유가 여기 있었다.

당장이라도 밀려날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엘프의 비법을 사용하는 중이라도 대장로와 장로 엘프들의 마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심지어 몇 명은 코피를 흘릴 정도로 한계에 달한 모습.

김검천은 반입자 큐브를 불러냄과 동시에 대장로와 장로 엘프들의 옆으로 내려섰다.

- 지금부터 내가 묘목을 날려버릴 테니 알아서 몸조심 하기를.

음성 모드로 말했기에 김검천이 전한 내용은 이 난리 속에서도 잘 들렸다.

대장로와 장로 엘프들은 갑자기 나타난 김검천을 보며 흠칫했다.

그렇다고 김검천의 경고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묘목을 밀고 있던 바람의 정령들에게 남아 있는 마나를 모두 불어넣었다.

한순간이지만 묘목은 예전처럼 하늘을 향해 꼿꼿이 허리를 세웠다.

미리내가 순간적으로 공격 좌표를 김검천의 눈앞에 띄웠다.

[지금입니다.]

김검천이 반입자 큐브를 하늘에 올린 채 세계수의 묘목을 쳐다보았다.

묘목은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사람이 김검천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묘목은 하이엘프에게 그랬듯이 남은 자들에게 마지막을 전했다.

- 투웅웅.

그 소리는 김검천의 귀에는 고맙다고 들렸다.

김검천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머리 위의 반입자 큐브를 그대로 후려 갈겼다.

- 쾅!

반입자 큐브가 치솟았다.

세계수의 묘목의 밑에서부터 하늘 높이 사라질 때까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엘프 마을에 굳건히 서 있던 세계수의 묘목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 쿠오오.

반입자 큐브가 구름을 열어젖히며 하늘 저 너머로 사라졌다.

세계수의 묘목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상급 정령까지 동반한 채로.

뿌리에 가까운 나무 그루터기 일부만을 흔적으로 남긴 채 묘목은 그렇게 사라졌다.

“쿨럭, 쿨럭.”

대장로와 장로 엘프들이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한계까지 마나를 뽑아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반입자 큐브에 의해 상급정령이 강제로 역소환 되었다.

반입자 큐브 정도 되면 공간마저 일그러트릴 힘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물리적 타격에 무적에 가까운 정령이라고 해도 무시할 만한 힘이 아닌 것이다.

묘목을 피해 도망가던 엘프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세계수가… 묘목이 사라졌어.”

“사… 살았다!”

“아니, 우리는 죽었어! 묘목이 아예 날아갔는데 이제 어떻게 하라고!”

엘프들이 멍한 눈으로 묘목이 있던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무라 봐도 사라진 묘목이 다시 생겨날 리 없을 텐데.

그나마 충격을 덜 받은 엘프들은 대장로와 장로 엘프들에게 다가섰다.

“괜찮습니까? 피를 토하시는데 누가 약이라도!”

“우리 마을에 저런 상처에 괜찮은 약이 있기나 하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엘프들이 어찌할지 모르고 혼란스러워했다.

피를 닦아낸 대장로가 손을 내저었다.

“쿨럭, 됐다. 어차피 마을에 있는 약으로는 이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인에게 어울리는 벌이지.”

김검천이 대장로에게 다가갔다.

대장로를 둘러싼 엘프들 중 김검천을 노려보는 자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는 자도 있었다.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묘목을 없애버린 인간이다.”

“아니야, 쓰러지던 묘목으로부터 구해진 인간이지. 덕분에 살았잖아?”

“맞아. 하이엘프께서도 묘목은 죽어간다고 했어. 묘목은 뿌리까지 썩어가고 있었다고.”

“아무튼 이제는 마을을 떠날 일밖에 없는 건가?”

엘프들이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 같은 건 없는 것이다.

- 부우애앵.

마충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남은 묘목의 잔재로부터 날아올랐다.

엘프들이 흠칫하며 거리를 벌렸다.

마충을 투입시켜 공격하기 전 죽어가는 묘목의 상태를 알아본 마법사였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발악으로 남은 마충들로 묘목을 쓰러트린 것이다.

김검천이 마충에게 다가가 떨어트린 후 발로 밟았다.

- 우직.

“이제야 다 끝난 건가.”

대장로가 그런 김검천을 향해 힘들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우리를 도와준 건가? 본인만 해도 너와 너희 일행들은 다 죽이려고 했는데.”

“당신을 도와준 게 아니니까. 하이엘프에게 받은 것에 대해 보답했을 뿐. 그러는 당신은 왜 목숨을 걸고 다른 엘프들이 대피하는 걸 도와주었지?”

대장로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자신을 비웃는 듯한 피곤에 찌든 얼굴.

그는 모든 게 귀찮은 듯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규칙이 그러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규칙을 들먹이는군.”

“나이가 드니 다른 사람처럼 변화에 따라갈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규칙과 함께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했던가.”

“현재와 미래는 마을을 떠날 사람의 몫이니까. 과거는 늙은이와 함께 묻혀야지 않겠나.”

대장로가 엘프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너희들을 위한 새로운 규칙은 떠날 자들끼리 만들도록 해라.”

“대장로님과 장로님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리는 이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정착할 정도로 젊지도 건강하지도 않는다.”

“대장로님!”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이대로 죽는 게 좋은 것이지. 그동안 미안했다.”

장로들을 포함한 엘프들이 깜짝 놀랐다.

대장로가 미안하다고 말한 건 그들의 기억에 처음 있는 일.

대장로가 품속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 쓰다듬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니 아이에게 했던 일들이 후회스러웠다.

대장로 자신은 아이가 이 마을에서 안전하고 문제없이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갈 엘프는 가야지. 남을 엘프는 남고.”

이제야 마을에 도착한 하이엘프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대장로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웃기네. 고작해야 500년도 못 산 젊은 엘프가 이 몸 앞에서 다 산 척을 해?”

“하이엘프시여…”

“네 놈 기저귀도 이 몸이 갈아줬어! 그런 본인도 이렇게 힘차게 돌아다니는데 네가 뭐?”

소년의 외모를 한 하이엘프가 노년에 접어든 대장로를 야단치는 모습.

엘프들도 어이가 없는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장로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은 상처가 깊어서 움직이기도 힘듭니다. 짐만 될 뿐이라고요.”

김검천이 파워드슈츠 수납고에서 군용 응급키트를 꺼내 들어 하이엘프에게 주었다.

복용량과 주사등을 설명한 김검천이 딱 잘라 확언했다.

“이걸 쓰면 예전처럼은 힘들지라도 적어도 걸어 다닐 정도로 몸이 회복될 거다.”

의심 없이 받아든 하이엘프가 군용 응급키트를 대장로 눈앞에서 흔들었다.

“그렇다는데? 당장 죽을 일은 없겠구나. 그러니 일어서라.”

“하이엘프시여. 어째서 저를 다독이시는 겁니까?”

“흥! 네가 할 일이 많다. 본인보다도 젊은 것이 어딜 마음대로 죽는다며 힘든 일에서 도망치려고 하느냐!”

“하지만 하이엘프시여. 묘목이 사라진 이상 이런 저희가 할만한 일들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조금 괜찮아졌던 엘프들의 분위기가 다시 침울해졌다.

결계가 해제되었어도 마을을 떠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삼고 있던 묘목 자체가 사라졌으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급했다.

밤에 땅을 파고 나뭇잎을 덮고 자기라도 해야 할까.

그때 댕댕이가 묘목의 그루터기 위에 올라가 크게 짖었다.

마치 뭐라도 찾은 듯한 모습.

“왕왕!”

그러더니 달려온 댕댕이는 하이엘프 옆에 다가가 입으로 소매를 잡아당겼다.

당장 오늘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인 하이엘프가 댕댕이의 몸을 쓰다듬었다.

“지금은 놀아줄 때가 아니다. 미안해.”

아무래도 오래 보아온 김검천이 나아 보였다.

댕댕이가 울상이 되어 김검천을 향해 애원했다.

“끼잉, 끼잉.”

김검천이 댕댕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단순하게 놀아달라고 이러는 건 아닐터.

댕댕이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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