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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으로 귀환해서 이세계 최강-223화 (223/250)

223화

암흑 마탑주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게 정말이요!”

따지러 왔는데 대화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이 잘못한 듯한 분위기가 돼버린 상태.

그런데도 고르바 탑주는 오히려 자신이 손해 보는 듯한 제안을 해왔다.

메테오 스웜 주문이라면 마도왕국의 처음이자 끝이었는데.

마도왕국에 모이게 된 모든 마스터 매지션들이 간절히 원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고.

믿기지 않는 듯 쳐다보는 암흑 마탑주를 보며 고르바 탑주가 속삭였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소.”

“하, 이제 보니 뭔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려고 이런 미끼를 거는 거였어!”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요. 김검천을 처리하라는 제안 어디가 무리한 것 같소?”

“으음, 김검천의 처리라. 마스터 매지션 2명으로도 안 되는 자인데…”

암흑 마탑주의 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욕심으로 꿈틀거렸다.

고르바 탑주가 제시한 조건은 영혼을 탐내는 악마가 속삭이는 유혹 못지않았다.

그런 암흑 마탑주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고르바 탑주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당신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닐텐데. 할 건지 안 할 건지나 말하시오.”

암흑 마탑주가 듣기에도 고르바 탑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인과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마스터 매지션 2명이 당해버렸다.

그것도 암흑 마탑주 파벌의 마법사가.

암흑 마탑주 자신에게 크게 유리하던 세력비가 무너진 상태.

지금으로서는 고르바 탑주 파벌에 비해 약간 우세할 할뿐이었다.

여기서 서로 싸우는 일이 발생하면 다 같이 죽자는 말 밖에 안 되었다.

그러면 운 좋게 암흑 마탑주측이 이긴다고 해도 마도 왕국에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암흑 마탑주는 아까보다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대답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다른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알 것 같소.”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상급 마법사도 가혹하게 처벌했던 암흑 마탑주였다.

이제와서 바로 대답하기 싫어서 다른 마법사를 끌어들이는 게 우스웠다.

고르바 탑주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자비심이라도 생긴 거요? 암흑 마탑주답지 않게. 아니면 그냥 넘어가든지.”

암흑 마탑주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건 말을 꺼낸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니요?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뭉친 집단이라도 적절한 선이라는 게 있는 법.

그 순간 암흑 마탑주의 파벌은 산산이 조각나 해체될 것이었다.

마스터 매지션이 죽은 일조차도 그냥 넘어가면 암흑 마탑주를 누가 믿을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고르바 탑주 쪽으로 노선을 갈아탈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김검천을 죽이려고 들면 몇 명이나 되는 마스터 매지션이 당할지도 몰랐다.

암흑 마탑주로서는 어느 걸 선택해도 문제인 것이다.

고르바 탑주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암흑 마탑주의 세력이 줄어들 테니 좋을 테고.

암흑 마탑주는 어느 쪽이 그나마 나을지 결정하기 몰라 머리가 익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대마법의 주문을 보상삼아 넘겨준다는 것 아니겠소? 누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남은 자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피해는 없는 셈일테고.”

고르바 탑주의 말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암흑 마탑주는 진심으로 고르바 탑주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이엘프를 잡으러 갔는데 마스터 매지션들이 당했으니 함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고르바 탑주는 대마법 주문까지 넘기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중이다.

정말 고르바 탑주의 말대로 김검천이라는 자와의 전투는 우연의 산물이었을까.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독이면서 암흑 마탑주가 물었다.

“그런데 당신이 어째서? 왜 우리 파벌의 일에 협조해 주겠다는 거요?”

고르바 탑주가 사람 좋게 웃었다.

“허허, 당신들을 적대하는 자는 본인의 적이기도 하오. 당신들도 또한 마도왕국의 마법사 아니요?”

고르바 탑주가 암흑 마탑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에 대해 아무런 적의가 없다는 듯이 악수를 청해 온 것이다.

암흑 마탑주가 망설이다 손을 마주 잡았다.

웃고 있는 고르바 탑주의 손을 차가웠다.

섬뜩한 느낌이 든 암흑 마탑주가 얼른 손을 떼며 감사 인사를 했다.

“고르바 탑주의 고귀한 뜻 잘 알겠소이다. 주겠다는 건 잘 받도록 하지요.”

“그러면 장거리 공간이동 주문은 바로 전부 넘겨주겠소. 마탑주 같은 수준 높은 마법사들 여러 명이 함께 연구한다면 마법의 부작용도 없앨 수 있겠지요.”

마도 왕국 최고 마법사의 칭찬에 흐뭇해진 암흑 마탑주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흐하하, 고르바 탑주께서는 이 몸만 믿고 있으시오. 잘되면 성과를 같이 나눕시다.”

“말만 들어도 고맙구려.”

암흑 마탑주가 잠시 미적거리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시나 싶지만 그쪽에서 제시했던 하이엘프에 대한 권한은 아직 유효하오?”

“마음대로 하시게나. 아, 그러고 보니 황색 마법사가 대해서는 본인이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소만.”

그냥 어쩌다 생각나서 말한 듯한 내용에 암흑 마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황색 마법사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다가 마법까지도 못 쓰는 상태.

다른 때라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고르바 탑주가 무슨 수작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회유를 할 거면 적어도 황색 마법사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나 해야 할 테니까.

지금 따지러 왔기에 황색 마법사를 위하는 듯 말했지만 어차피 남의 일인 것이다.

암흑 마탑주는 귀찮은 짐을 던다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원한다면 직접 데리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되겠소?”

“가끔 연락이나 주시지요.”

헤어지는 길에 고르바 탑주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이라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혹시 몰라 몇 개 더 넘겨받은 장거리 공간이동 마법 도구도 그것들 중 일부.

암흑 마탑주가 필요했던 메테오 스웜 주문은 아쉽게도 조금씩 나눠 받기로 했다.

공간이동 주문을 받은 암흑 마탑주는 더이상 재촉할 필요를 못 느껴 연구실을 나섰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것들을 받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발걸음도 가볍게 걷던 암흑 마탑주는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할 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손해 본 건 하나도 없고 이익만 보았는데 뭔가 휘말린 느낌이 들다니.”

장거리 공간이동 마법 주문도 메테오 스웜같이 사라졌던 대마법 중 하나.

메테오 스웜도 그렇고 도대체 고르바 탑주는 어떻게 이런 대단한 주문들을 얻은 걸까.

고르바 탑주와 직접 대면했을 때는 대화에만 신경 쓰다 보니 생각이 닿지 않은 부분이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천천히 생각하다 보니 아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궁금해진 것이다.

고르바 탑주의 능력이 대단해서 대마법 주문을 복원한 걸까.

아니면 탑주에게만 전승되어 오던 주문을 자신의 대에 성공시킨 걸까.

그것도 아니면 대마법 주문들이 기록되어 있는 고대의 유물이라도 얻은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암흑 마탑주는 흥분으로 몸이 떨려왔다.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면 고르바 탑주야 말로 살아 있는 보물창고군.”

즐거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암흑 마탑주를 향해 한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암흑 마탑주님 아니십니까. 왠지 기뻐하시는 듯합니다만?”

그는 암흑 마탑주 파벌의 마스터 매지션 중 하나이자 정신 계열의 청색 마법사였다.

마법 실력은 마스터 매지션 중에서는 낮은 편.

다만 부드러운 혀만큼이나 말을 잘해 암흑 마탑주가 마음에 들어했다.

그래서인지 암흑 마탑주는 이번에도 청색 마법사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아, 그게 말일세…”

암흑 마탑주는 부담 없이 고르바 탑주와의 일을 말해주었다.

고르바 탑주가 챙겨준 장거리 공간이동 마법이 담긴 마법 도구도 넘겨주면서.

실전된 대마법이 담긴 마법 도구라니 연구할 가치가 넘쳐났다.

청색 마법사도 슬쩍 마법 도구를 챙기며 귀를 기울였다.

고르바 탑주와의 일은 딱히 비밀로 할 내용도 아니었다.

어차피 마스터 매지션들에게는 바로 전할 이야기였고.

청색 마법사가 이야기를 듣더니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잡아당기는 손에 이끌려 집무실로 자리를 이동한 암흑 마탑주가 물었다.

“뭔가?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자는 듯이 굴다니.”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할 작정이라서였다.

침묵마법을 발동한 후에도 청색 마법사는 목소리까지 낮추었다.

“앞으로는 그래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암흑 마탑주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김검천이라는 녀석을 죽이러 가야겠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들 중 누군가는 또 죽을 테지요. 파벌의 힘도 약화될 테고요.”

“음?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그냥 놔둘 수도 없는 일이잖는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위대하신 마법사이자 마도왕국의 국왕께서 불행한 사고로 먼저 서거하실 수도 있는 일이고요.”

청색 마법사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김검천에 앞서 고르바 탑주를 먼저 해치우자는 말.

암흑 마탑주가 발끈했다.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청색 마법사가 움찔했다.

설마 암흑 마탑주가 고르바 탑주에 대해서 의리를 지키려고 할 줄이야.

평소에 하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혀 그런 자가 아니었는데.

“헉! 죄송합니다!”

“어찌 사람이 말이야. 말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지도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청색 마법사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그렇지.

암흑 마탑주는 이런 마법사였다.

***

“…라고 암흑 마탑주는 생각하고 있겠지요? 욕심이 많은 자들은 행동 예측이 쉽지요.”

고르바 탑주의 말을 듣고 있던 치료사는 대답을 하는 대신 옆에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이런, 이번에는 책상이 말썽이군요.”

- 끼익끼익.

입을 벌리자 촉수가 튀어나오던 책상으로부터 고르바 탑주가 얼른 팔을 떼었다.

치료사가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외모만큼이나 귀여운 녀석들 아닙니까? 성격이 좀 사납긴 합니다만.”

“자주 보니 익숙해지기는 합니다.”

말과 달리 고르바 탑주는 꿈틀거리는 책상과 의자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치료사와의 거리도.

그 와중에도 치료사에게 받은 책만큼은 꼭 붙들고 있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그가 이런 곳에 올 이유도 없을 것이다.

치료사 옆에 서 있던 펠우테가 느닷없이 들고 있던 칼을 책상을 향해 휘둘렀다.

- 꺄아악!

꿈틀거리는 책상으로부터 검은색의 액체가 튀었다.

하필이면 고르바 탑주가 있는 곳을 향해.

끈적거리는 검은색 액체를 뒤집어쓴 고르바 탑주를 향해 치료사가 말했다.

“이런, 펠우테가 고르바 탑주님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버릇없는 책상을 혼내주기도 하는군요.”

“하하하, 펠우테도 저를 좋아한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중급 마석의 값어치가 있는 마법 로브가 순식간에 걸레가 돼버렸다.

고르바 탑주가 입고 있던 마법 로브를 벗어 얼굴을 닦았다.

로브가 비싼 값을 해서 얼굴은 제대로 닦이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면 고르바 탑주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먼저 암흑 마탑주와 그 파벌을 처리하실 겁니까?”

치료사는 눈앞에 나타난 암흑 마탑주와 청색 마법사를 보며 물었다.

그 2명이 실제로 이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방안에 존재하는 눈동자 같은 반투명한 검은 구체로부터 투영된 환영이었다.

이 알수 없는 검은 구체는 마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뭐든지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마법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장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이 검은 구체에 대해서는 고르바 탑주도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애초에 유체이동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치료사가 알려줘서 가능한 방법이었고.

고르바 탑주는 다시 암흑 마탑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을 죽이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칩니다. 제압하는 건 더욱 힘들고요.”

“하긴 2명이 떨어져 나갔다 해도 마스터 매지션의 수는 저쪽이 더 많으니까요. 죽이는 거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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